산행일기

조령산을 넘고 넘어 조령관, 고사리까지

Bravery-무용- 2006. 6. 11. 22:11

2006. 6. 11 태화와의 산행은 백두대간의 산으로   월악산, 주홀산, 포함산, 신성봉과 함께 조령5악이라 부르는 조령산이다.

어제부터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려 새벽에 걱정을 하며 일어나  하늘을 쳐다보니 잔뜩 구름이 덮어 있고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산행지로 향하는 버스에서 가슴 조이며 자꾸만 구름이 뒤덮은 하늘을 바라보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목적지에 도달할 즈음은 다행스럽게 구름속에 햇빛이 비친다.

"청풍명월의고장 충청북도" 라고 쓰여진 경계석을 지나니 바로 이화령 휴계소 주차장이다.

이화령은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이화령 일대는 백제와 신라,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을 이루었던 곳이며 조선시대는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룬 곳 이다.

 

간단한 산행준비를 마치고 8시50분 "영남의 관문 이화령 경상북도" 표지석에서 좌측으로 하여 바로 산행 들머리로 우리 산우님들 힘차게 깊은 산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해발 523미터 이화령에서 출발하지만 바로 오르막이 시작되며 5번째 나타나는 헬기장에서 산우님들 잠시 다리쉼을 한다. 

약간의 내리막을 내려서고 어제 내린비로 산길은 촉촉하고 나무사이로 솔솔부는 솔바람은 풀내음과 같이 6월의 산행길의 즐거움이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준다.

연풍과 경북의 경치가 잘보이는 헬기장이 또다시 나타나니 들머리에서 약 40여분을 걸었다.

헬기장을 지나 걷기 편하고 소나무 낙옆이 깔린 소나무 숲길이 피톤치드를 우리들에게 보내주니 산길은 더더욱 편하다.

산허리를 따라 산길을 걷다보니 이번에는 산길과 산비탈까지 많은 돌덩이들이 깔려있는 산길이다.

 

산행시간 1시간여가 지나 산허리에 올라서니 이화령과 조령산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조령샘 삼거리>가 나타난다.

산우님들과 휴식을 하고 좌측 조령산표시에 따라 100여미터를 오르니 버드나무 밑 해발 870미터에 <조령샘>이 나타난다.

"조령샘물에서 목을 추기는 길손들에게 한모금의 샘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알리는 표시판이 세워져 있고  갈대도 보인다. 

오늘 산행이 즐거운 산행이 되기를 깊은 산속의 샘물을 마시며 기원도 하여본다.

조령샘을 뒤로하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고 잣나무가 빽빽한 숲길과 신갈나무 군락지를 지나 이화령, 신동리, 조령산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고 우측 능선길을 따라 오르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 동으로는 주홀산이 보이고 남쪽 건너편에는 백화산이 조망된다.

헬기장에서 내려가는듯 하다 바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조령산>산정에 도착 하였다. 10시25분 산높이는 1,026미터.

 

 

 

조령산은 백두대간의 산으로 옛날에는 왕건과 견훤이 이산을 사이에두고 싸움을 하였다는 기록도 있으니 정상에 올라서 나뭇잎끼리 스치며 부는 바람소리가 그 때의 함성 소리처럼 더욱 크게 들린다.

먼저온 산우님들과 정상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멀리 주홀산이 보이며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신선암봉도 작은 봉우리 넘어 넘어 보인다.

산정의 기쁨을 간직하며 신선암봉을 향하여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이곳은 백두대간 구간으로 산악회 리본이 유난히도 많이 보이는데 눈에 띄는 문구가 보인다."어머니의 품속같이 그리운 자연으로".

3관문 이정표에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멀리 보이는 백색의 암봉이 흰구름과 먹구름 아래 한폭의 동양화를 연출하고 있다. 

단당풍나무에 함박꽃나무 그리고 산목련은 하얀꽃을 만개시켜 눈길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태양만 내려쬐는 산길보다 오늘처럼 구름이 해를 가려주니 산행길이 즐겁다.

숲속의 산새들도 여기저기서 재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며 잘가라 재잘거린다.

상암사터, 신선암봉, 조령산이정표가 보이고 신선암길로 접어드니 된비알을 오르고 솔솔바람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히며 걸으니 경사가 심한 능선길을 걷고 동앗줄을 잡고 내려서니 신풍, 새재주막, 신선암봉이정표가 나타나 신선암봉으로 다시 숲길로된 오르막길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다 이번에는 동앗줄을 부여잡고 오르고 리찌도하며 힘들게 암릉을 오른다.

오랜만에 같이 산행을하는 아내가 걱정스럽기도하고.....

암릉 우측은 깍아지른듯 천길 만길되는 낭떠러지이다.

그러나 산의 아름다움에 이곳저곳 두리번거린다. 깊고 깊은 푸르고 푸른계곡 수많은 봉우리들의 파노라마 자연의 멋을 가슴깊이 간직하며 뒤를 돌아보니 조령산은 벌써 멀리 달아나 있다.

바위를 부여잡고 모퉁이를 돌아서니 앞에 보이는 바위위에 우뚝솟은 소나무의 멋진 자태에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본다.

넓은 바위지대에 올라 배낭을 내려놓고 편한 휴식을 하며 구불구불한 소나무가 그림처럼 서있는 모습과 앞산에 흰빛사면에 바위봉우리와 소나무가 아름다운 멋을 자랑하기도하니 멀리까지 줄줄이 이어지는 능선들의 모습은 일품이다.

다시한번 산의 무한한 정취에 빠져든다.

 

바위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보니 영국시인 <브리지스>의 "유월이오면"이 떠오른다.

 

유월이 오면,

그땐 온종일 나는

향긋한 건초속에 내 사랑과 함께 앉아

산들바람 부는 하늘에 흰구름이 지어 놓은

저 높은 눈부신 궁전들을 바라보련다.

 

그녀는 노래부르고, 나는 노래지어 주고,

아름다운 시를 온종일 읊으련다.

건초집에 남몰래 단둘이 누워 있으면

오, 인생은 즐거워라, 유월이 오면.

 

 

피천득선생님은 수필 오월에"유월은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것이라 하였다."

깊은 골짜기의 푸르고 푸른 녹색의 향연은 시야를 시원하게 하여주고.....

 

칼날같은 바위 능선에 올라서 곡예를 하듯 걷기도 하고 바위를 부여잡고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기면서도 바위틈으로 자라는 바위채송화를 보면서 여성회원 한분이 탄성을 지른다.

바위와 소나무 그리고 바위채송화등과 공존하는 모습은 자연의 아름다운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119신고안내 13지점을지나 산우님들 점심식사를 하고 제3관문을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건강하십시오 멋진인생!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라고 쓰여진 리본이 달려있다.

이화령에서 조령산까지는 부드러운 산길이었다면 조령산서 깃대봉 이정표까지는 보기드물게 거칠고 위험하고 힘이든 산길로 확연히 구분이 된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듯 하더니 바로 멈춘다.

소나무가 섞인 잡목과 굴참나무 숲길을 걸으니 어느덧 깃대봉입구 갈림길이 나타나고 우측 이정표를 따라 제3관문 1키로 방향으로 내려서니 바로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차안에서 대장께서 주의 당부한대로 나무뿌리를 조심하면서 천천히 내려서니 옛날에 설치된듯한 긴축대가 보이고 조령약수에 도착하니 3시다.

 

새들도 넘기 힘들어 쉬어가는 뜻이 있다는 문경새재, 제3관문 조령관이 보인다.

제1관문은 주홀관, 제2관문은 조곡관으로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단다.

문경새재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님들은 70경중 29경으로 손을 꼽는다.

조선시대는 죽령, 추풍령과 함께 한양 나들이로 들어서는 3대 관문중에 하나로 유명한 고개이며 지금은 추풍령, 대관령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고개이다.

조선시대에는<황간의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과거에 떨어지고, 풍기의 죽령을 넘으면 대나무처럼 미끄러져 과거에 떨어지고 그래서  문경새재를 넘는다>하였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초 북쪽 오랑캐의 칩입을 막기위해 쌓은곳으로 임진왜란때는 왜군이 한양을 가기 위해 가장 빠른 이재를 넘은곳이기도 하다.

예부터 영남지방에서 이고개를 넘어 충주를 거쳐 한양으로 통하는 가장 빠른 고갯길, 과거를 보기 위해 영남의 선비들이 꿈을 안고 넘었던 고개.

시간을 되돌려 내가 이재를 넘는다는 생각에 잠겨보기도 하여본다.

과거를 보기위하여 이 재를 넘는가? 아니면 보부상이 되어 등짐을 지고 이재를 넘는가 ?

재법 많은비가 약20여분을 내리더니 비는 멈추고 관문을 통과하여 고사리주차장으로 내려서니 자연휴양림과 소나무숲길 그리고 관리사무소와 이화여대 고사리 수련관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편한 능선길도 오르고 리찌도하며 동앗줄로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하면서 걸었던 산길 푸른 숲속과 흰 암반위의 소나무들의 모습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할 멋진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