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신부님 강론 정리(2021년 1월)

Bravery-무용- 2021. 1. 26. 18:48

2021년 1월 24일 연중 제3주일

복음 마르 1,14-20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 2021년 1월 24일 연중 제3주일 박진수(시메온) 신부님 강론 -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답변

***지례 성당 부임하셔서 첫 강론입니다. 저도 그랬지만 많은 분들이 신부님 말씀을 처음으로 듣기 때문에 억양, 발음 등이 귀에 익숙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신부님 말씀을 옮겨보았습니다. 한편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는 ㅇㅇ으로 표시하였는데요 그 내용을 아시면 카톡에 올려주시면 고맙습니다.***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은 가르멜 수녀원 입회 8일 만에 수녀회 수녀님들이 장난 삼아 설문지를 내어 놓았는데 거기에 쓴 답을 보게 되면 수도생활 처음부터 이미 그분이 걷고 있는 모든 양식들이 얼마나 높은가를 잘 보여주고 있었고 특별히 더 이상 추구해야 할 것이 없을 만큼 그 후에도 훌륭하게 살아가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랑으로 죽기 위해 사랑으로 살아가셨고 하느님의 뜻에 대한 열정적 정성뿐만 아니라 무엇 보다도 침묵을 가장 큰 당신 삶의 사랑으로 맞아들였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혼에 대한 심신은 말할 필요 없이 뜨거웠고 그분의 전 삶의 표현은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 마음속 깊이 잠기고 숨는 이 하나를 통해 전 일생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하느님만을 찾고 그분만을 향해 달려 나가기 위한 여정이라는 이 단 하나의 길처럼 그리고 삼위일체의 영광을 찬미로 살아간다는 이 결정적인 깨우침 이 둘 만을 제외하고서는 생활을 변하게 할 그 어떤 것도 그 역시 안았던 완벽한 분이었습니다.

그때 수녀원에서 수녀님들이 갓 들어온 신입생에게 던졌던 질문을 저도 이 자리에서 함께 나누려고 그럽니다. 그동안 신앙생활 나름 나름 해오시면서 이 엘리사벳 수녀님과 또 나 자신과의 어떤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면서 구체적으로 앞으로 내가 더 살아 보고픈 나름대로의 하느님을 향한 여생에 있어서 길들을 그냥 편안하게, 그냥 쉽게, 단순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질문 자체가 수도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것과 약간 다를 수가 있겠지만 그래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누구나가  거쳐가야 될 질문이기도 하나 싶습니다. 그래서 나와 무관한 것 같으면서도 실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에게 똑똑 맞는 그런 어떤 질문이다 생각해 보신다면 안 괜찮겠나 생각이 듭니다.

제일 첫 번째 질문은

성덕, 믿음, 완덕 여기에 대한 당신의 이성은 무엇입니까? 질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완덕, 성덕, 믿음에 대한 이성은 무엇입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엘리사벳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 그랬습니다.

저는 본래의 자유를 찾아 나서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오려고 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미덕 혹은 완덕에 대한, 덕에 대한 이상은 무엇입니까? 그냥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마시고 이때 다시 한번 나 자신의 삶을 한 번 정리한다 생각하시면서 평안하게 단순하게 그냥 푹푹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5초 침묵)

 

예수님은 늘 사랑 이야기를 하셨는데 사랑에 다다르기 위한 가장 많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엘리사벳은 답했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작게 하고 아낌없이 깡그리 바치는 것이라 했습니다.

저는 제 고집과 제 이기를 없애는 것으로 늘 여겨 왔었는데 아직도 고집은 충만합니다.

여러분은 사랑에 다다르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이 무엇입니까?(13초 침묵)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좋은 모범됨이 있으면 훨씬 살기가 편하답니다. 성인 성녀들도 그중에 포함이 될 것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성인은 어떤 분이십니까? 

엘리사벳은 답했습니다. 주님의 가슴에 시신 애제자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그냥 제가 만나는 신자들이 늘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그걸 향해서 저는 살아갈 것이고 여러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인은 누구십니까?(12초 침묵)

 

제일 좋아하는 회칙은 무엇입니까?

엘리사벳은 침묵이라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교회의 규율 또는 계명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설마 교무금 이런 거는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내가 계명에서 이러건 내가 살아가는데 좋은 양식이 되었다 그런 게 있다면 한 번 생각해 보십니다. 

신앙적으로도 좋은 단어들이 있으면 역시 매우 괜찮을 겁니다. 저 역시도 침묵을 매우 사랑합니다.(9초 침묵)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성격 중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입니까?

엘리사벳은 나는 남들이 보기에 느끼기 매우 싶습니다. 답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가장 두드러진 성격을 지니고 계십니까?

저 역시도 혼자 살기 때문에 매우 단순합니다.(10초 침묵)

 

제일 좋아하는 덕은 무엇입니까?

엘리사벳은 순결이라 답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테 복음 5장 산상설교에 나오는 이 말씀 때문에 그분은 순결을 가장 좋아하는 덕이다 그랬습니다.

저는 택도 없지만 자비라는 단어를 한 평생 지금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덕은 어떤 것입니까?(14초 침묵)

 

제일 싫어하는 결점은 무엇입니까?

엘리사벳은 이기주의라고 그랬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자주 위선자라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이 자리에 섰을 때와 바깥에 살아갈 때 삶이 다르기 때문에 위선이라는 글자가 늘 저 자신에게는 풀어나가야 할 하나의 과제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싫어하는 결점은 무엇입니까?(13초 침묵)

모든 신자들은 나름대로 기도를 하고 있지요. 열심히 또는 열심 히지는 않더라도 나름 기도를 합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엘리사벳은 본래 없던 자와 존재 그 자체이신 분과의 결합이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기도는 천국을 향한 제 목마름이라 표현하며 늘 살아가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기도는 어떤 것입니까? 한 번 정의를 내려보시기 바랍니다.(12초 침묵)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엘리사벳은 그리스도의 영혼이라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 수많은 비밀을 다 밝혀주고 있기 때문에 또 그분은 그러한 삶을 살아가셨고 살아계시면서도 주변에 놀라운 기적들을 얼마나 많이 행하셨는지 모릅니다.  이루 헤아 릴 수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은 당연히 여러분들의 삶이 ㅇㅇ이기는 하나의 살아있는 책으로 늘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따로 책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나는 한 분, 한 분이 저를 사람 되게 하는 그분께서 주신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책은 어떤 책입니까?(15초 침묵)

 

우리가 살아가는 마지막 목적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천국을 정말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

엘리사벳은 때로는 천국의 향수에 젖습니다. 그러나 지복 직관(至福直觀, 천사나 성인이 천국에서 하느님을 직접 봄)을 제외하고는 나는 이미 나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천국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생활 속에 천국으로 살아가셨던 분이었습니다. 실제 그분은 삶 자체가 천국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천국을 얼마나 열망합니까?

저도 너무나 그리워합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을 뿐입니다.(10초 침묵)

 

사람은 누구나 죽어야 합니다.

죽을 때 어떤 심정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습니까?

엘리사벳은 사랑하면서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분의 팔에 안겨 죽고 싶습니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자비라는 글자를 통해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분의 자비를 바라며 저는 죽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습니까?(9초 침묵)

이제 3번째 남았습니다.

 

어느 순결을 가장 좋아합니까?

엘리사벳은 어느 것이나 다 좋습니다. 특히 사람의 순결을 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냥 좀 매우 세밀한 순결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순결을 좋아합니까?(12초 침묵)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어떤 이름을 불러주기를 원합니까?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뜻대로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느님께서 여러분들의 어떤 이름을 천국에서 불러주기를 원하십니까

저는 그분 마음에 들기를 입니다.(13초 침묵)

 

마지막 물음입니다.

당신이 갖고 있는 표어는 무엇입니까?

엘리사벳은 "하느님은 내 안에, 나는 하느님 안에"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그분 가까이 그리고 이웃 가까이"라는 이 표어로써 지금껏 그런 그런 견디어 오려고 노력했습니다.

여러분들의 표어는 무엇입니까? 만일 생각지 않았더라면 앞에 것 보다도 지금 제일 마지막 한 물음은 앞으로 우리 자신들의 삶을 결정짓는데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목적이 뚜렷하게 되면 그 목적 때문에라도 내 삶의 모든 환경들은 그쪽으로 그쪽으로 쏠리게 마련입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더디게 흘러들어 가더라도 나의 목적이 명백하면 내 삶은 작은 것 하나 속에서도 그 목적대로 움직여 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표어 내 신앙의 목적 이것을 한번 가만히 정해 보시기 바라고 여기서는 아니더라도 집에 가서라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20초 침묵)

 

첫 미사이기 때문에 뭘 할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 내용이 떠 올라가지고 책을 뒤적이면서 정확하게 찾아내서 다시 한번 말씀드려 봤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착실한 관심을 갖고 기울여야 될 그러한 우리 신앙의 여정들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이런 물음에 대한 우리 자신 나름대로의 어떤 이 ㅇㅇㅇ서의 단순함들이 그 어떤 ㅇㅇ 보다도 더 많은 이점을 갖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살아오시던 그 삶의 아름다운 저 ㅇㅇ을 기반으로 삼아 보다, 더 그분의 마음에 들 수 있는 저 삶 하나하나를 잘 엮어 나가시기를 바라면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2021년 1월 31일 연중 제4주일, 해외 원조 주일 

복음 마르 1,21ㄴ-28

카파르나움에서, 2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 2021년 1월 31일 연중 제4주일 박진수(시메온) 신부님 강론 - 내 삶의 신앙의 표어는?

제 머리는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고 그러는데 제 몸은 아직 적응을 하고 싶어 하는 모양입니다. 내 코가 계속해서 막히고  ㅇㅇ소리가 계속 들립니다. 그래서 불편하시더라도 너그럽게 귀를 열어 주시고 마음을 풀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주, 처음 만나면서 삼위일체 복녀 엘리사벳이 가지고 있는 이성에 대한 간단한 답변을 우리가 들으면서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도 아주 잠깐이나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앞으로 내가 살고픈 신앙의 한 표어, 목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라 부탁드렸습니다. 내가 가야 할 정확한 길이 만들어져야 그 목적에 따라 나 자신의 삶이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아직까지도 내 나름대로 신앙의 목적, 한 표어 그것을 정하지 않으신 분이 계시면은 또 시간이 계속 있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또 앞으로도 여유 있게 생각해 보시면서 나름 그 표어를 내 신앙의 목적을 한 번 청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족에도 가훈이 있고, 학교에 가더라도 급훈이 있죠. 한 나라의 근간에는 헌법이라는 것이 있고 우리 교회에도 교회법을 통해서 교회 나름대로 살아가야 될 어떤 방향이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 역시도 나름대로 그런 정확한 방향이 설정되었을 때 신앙생활하는 모든 것들 하나하나는 거기에 따라서 제 구실을 올바르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서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뿌리를 우리가 만들 수 있게 되느냐. 여기서 답을 드릴 수 없지만 이걸 갖고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르멜 수도회를 기억하셨던 대 데레사 성녀는 자신이 저술한 자서전 8장 5절에서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란 더 정확하게 묵상기도란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신다는 걸 내가 알고 나를 사랑해 주시는 그분과 내가 자주자주 단 둘이 만나서 우정을 나누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해 주시는 걸 내가 알고 있고 바로 사랑해 주시는 그 분과 내가 자주자주 단 둘이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 우정을 나누는 것, 사랑을 나누는 것"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산상 설교를 통해서 그 길을 또 제시해 주셨지요. "행복하십시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 행복하십시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입니다." 하느님을 뵙기 위해서는 그냥 별 힘든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그 바탕 뿌리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뿌리를 우리가 땅 깊이 내리지 않고 하느님을 알 수 없고, 사랑할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씨를 뿌리는데 씨를 땅 깊이 뿌리내리지 않는 어떤 아스팔트 위나 시멘트에 뿌리는 어리섞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겠지요.  당연히 땅 위에 옥토 위에, 잘 개간한 논이나 밭에 씨를 뿌리게 될 겁니다. 그래야 씨앗이 자랄 수 있는 적당한 뭔가가 만들어질 겁니다. 하느님을 뵙기 위한 그 바탕 역시도 우리 자신의 자그마만 한 희생, 사람에 따라서는 그 큰 희생들, 충실한 노력들, 헌신적으로 우리 자신을 맡기는 그런 모습들 이런 기타 등등이 될 것입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걸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씨를 뿌려놓으면 햇볕이, 바람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들이 바로 씨앗의 성장에 도움이 되죠.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들게 되면 물을 가두어 놓았던 댐에서 물을 방류시켜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렇게 되죠.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아무런 우리 자신의 노력 없이 쉽게 하느님을 만나려는 그 자체는 어리섞은 생각이 될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마음이 가난하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도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가 먼저 알고 있습니다. 역시 하느님을 뵙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기도드린다는 것 역시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죠. 그래서 기도를 잘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걱정을 안 하셔도 됩니다. 내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별로 진전이 없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그런 내 자신을 두고서도 당신의 것이요 식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 스스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의 친구라 불러주셨던 그분께 기쁨 마음으로 조금씩 나갈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그분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완전한 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만큼 천국의 길을 우리 역시도 알아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굳건히 참아 나서게 되면 하느님의 자비는 틀림없이 당신 말씀처럼 우리 자신들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고, 생명이 되어 줄 것이고, 진리가 되어 줄 것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벗으로 택했던 그 어떤 사람도 그분께 사랑받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너무 잘 알고 있죠. 그렇다면 비록 우리 자신이 허점이 많고, 결점이 있고 때때로 그분의 언행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분께서 먼저 끊임없이 당신의 우정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이상 우리는 언제나 그분을 찾고 그러기만 하더라도 얼마나 커다란 유익함이 우리 자신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것인지 그저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자신의 삶에는 많은 열매들이 맺게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나를 당신 가까이 부르시면서 너는 식구라 불러 주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한 주간 삶을 건강하고 좋은 열매를 맺는 날들로 만드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