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신부님 강론 정리(11) 2020년 11월

Bravery-무용- 2020. 11. 1. 20:02

2020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마태 5, 12)

복음 마태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지례 성당 구기석 안드레아 신부님 강론

찬미 예수님!

코로나가 다 끝난게 아니기 때문에 항상 거리를 두고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마스크 쓰기가 힘들면은 조용히 나갔다 숨 쉬고 들어와도 됩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인데 나는 축일을 모르겠다 내 축일을 모르겠다 하는 사람은 오늘 하면 됩니다. 오늘 자기 축일을 정하면 됩니다. 오늘은 천국에 있는 모든 분들을 성인이라 하고 그분들을 기리는 날인데 우리 카토릭에서는 가경자(可敬者 가히 공경할 만한 대상). 교황님이 공경할 만한 사람이다 선포를 하고, 그리고 그 사이에 기적이 하나 일어나면 복자로 선포하고 , 복자에서 기적이 하나 더 일어나면 성인으로 선포를 합니다. 특이한 이런 예식이 우리 카토릭에 있는데 어쨌든 성인이라면 살아생전에 훌륭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노력했던 분들이고 천국에 있는 분들이 전부 성인이라고 하는데 성인이나 성녀들은 하느님 허락하에서 우리를 도와줄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때때로 마더 테레사 저를 좀 도와주시고 빌어 주세요, 오상의 비오 신부님 저를 위해 빌어주시고 좀 도와주세요 하며 어떤 성인의 특별한 심신을 가지면 그 성인이 우리를 도와주고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진복팔단(眞福八端)하면서 행복하여라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하늘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때때로 참 우리가 죽고 나서 진짜 성인들이 카토릭에 있다 하지만 그분들이 있는가 그런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지, 1981년 6월 24일에 시작돼서 지금까지도 계속 발현이 되니까 아직도 교황청에서 인정을 안 했어요. 그래 교황청에서 특사를 보내 거기를 분별하고 있는 중인데....  그때 6명의 아이들이 지금은 50대 중반이 다 됐습니다. 결혼도 하고....

전 세계인들이 그곳으로 순례를 많이 하고 한국인도 많이 가요. 미국, 남미, 한국 사람들도 그쪽에 순례를 많이 갔는데 한국 사람이 거기에 성모상을 기증하였고... 성모님 발현을 하고 있는데 거기는 완전히 돌산이에요. 돌산 위에 큰 십자가가 있고 성모상도 있는데 그 성모상을 한국 사람이 참 감명을 받아서 기증을 했다고 합니다. 메주고리예에 성모님이 발현한다 그러니까 거기에 담당 신부님이 있을 것 아닙니까, 본당 신부님처럼... 그분은 프란치스코의 수도 사제입니다. 수도 사제인데 이름은 슬라브코라는 신부님인데 이 분은 약 20년간 그 메주고리예에 전 세계에서 순례 오는 사람들에게 피정 지도도 해 주고 고해도 하고 단식기도도 하고... 그런 분이 본당 신부님 프란치스코 수도 사제였어요.

2001년도에 콜롬비아 순례단이 거기에 갔어요. 갔는데 그중에 한 여인이 있는데 그 여인의 이름이 후아니카라는 여인인데 이분이 남편과 사별을 하고 냉담을 한 20년 가까이했어요. 그래 가지고 성모님 발현하는 곳이 있다 해서 얼떨결에 메주고리예에 가서 성모님 발현하는 동산에 가서 순례객들이 전부 묵주기도를 했는데 이 분이 환희의 신비 2단을 하면서 자기 죽은 남편을 보고 싶은 마음과 그리움, 상실감 여러 가지 마음이 착잡하면서, 생각하면서 했는데 눈을 떠보니까 순례객들이 다 내려가고 없고 자기 혼자 있는 거예요. 아이고 큰일 났다 내가 이렇게 묵상하는 동안 다 내려갔으니 나는 우아노 내가 어디로 내려가야 될지 길을 몰라 이래 보니까 거기 신부님 한 분이 계신 거예요. 프란치스코 죽은 사제, 갈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 사제들은....

그래 그분에게 다가가 물었어요, "여기 어디로 내려가면 됩니까?" 하니까 그 신부님이 "아직 내려가지 말고 여기서 기도를 더 많이 해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 여인이 "신부님 나 여태까지 묵주기도 많이 했어요" 하니까 그래도 기도 더 많이 하고 내려가고 지금 내려가지 말라 그랬어요. 그 신부님의 얼굴이 참 친절하고 인상이 빛나고 그래서 그 신부님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어요. 신부님은 성모님 발현하신 이곳에 계신데 성모님이 천국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합니까, 지옥에 대해서는 뮈라고 말합니까, 인간이 왜 이렇게 고통스럽습니까, 우리가 죽고 나면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말씀을 합니까 등등을 그 신부님께 물었는데 그 신부님이 설명을 잘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 여인이 신부님과 대화를 하는데 신부님이 스페인어를 굉장히 잘하는 거예요. 콜롬비아 사람들도 스페인어를 했던가 봐요. 그래서 스페인말로 주고받고 하면서 2시간가량을 여러 가지 교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답니다. 하고 나니까 이 여인이 "사실 신부님 저는 20년간 성당을 안 나가고 냉담을 하다가 남편을 여의고 어쩌다가 순례객에 끼어서 이 먼 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이야기를 하니까 그 신부님이 듣고 "알겠습니다" 하면서 "내가 알려 줄테니까 지금 이제 내려가는데 저 아래 만디치 성당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가면 고해소가 몇 군데 있는데 둘째 고해소에 들어가서 고해를 보십시오. 그 고해소 있는 사제가 스페인어를 참 잘합니다." 그랬어요. "그리고 그 고해소에서 고해를 보고 나와서 그 날, 미사에 참례해서 성체를 거룩히 모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너무나 기뻐할 겁니다." 하면서 일러 줬어요. 그래서 여인이 신부님 감사합니다 하고 2시간 동안 대화를 하고 내려와 진짜 신부님이 말하는 데로 가니까 성당이 있고 두 번째 고해소에 들어가니까 스페인어를 잘하는 신부님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전생을 고해를 다하고 나와서 성체를 딱 모시고 눈물을 흘렸어요. 그리고 숙소로 가서 순례객들을 만났는데 산 정상에서 프란치스코 수도 신부님 아주 멋진 신부님을 만나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고 하니까  그분 이름이 뭐냐 하여 이름은 잘 모르겠다 내가 물어보지 못했어요. 아 그러냐 이렇게 하고 고해를 보고 냉담을 풀고 성체를 영했어요 하니까 일행들이 다 좋아했어요. 그래서 묵주기도, 저녁식사를 같이하고 끝기도를 묵주기도로 일행들이 함께하고 마지막으로 성체께 바치는 기도문이 있었는데 기도문을 전부 하나씩 들고 성체께 바치는 기도를 딱 바치는데 뒤를 딱 보니까 그 상권에 그 신부님 얼굴이 딱 찍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여인이 내가 산 정상에서 2시간 동안 대화했던 신부님이 바로 이 신부님이다 하니까 일행들이 깜짝 놀라면서 이 신부님은 메주고리예에 담당하는 신부님인데 6개월 전에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슬라브코 발바라치라는 신부님인데 55세로 돌아가셨고 6개월 전에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 여인이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6개월 전에 돌아가신 신부님하고 산 정상에서, 성모님 발현지에서 2시간 동안 대화를 했던 거예요. 그래서 그 하느님이 메주고리예 담당하는 슬라브코 신부님 살아생전에도 그렇게 덕이 많고 성인 사제 같다고 많은 소문이 있었어요. 어쨌든 돌아가시고 나서도 하느님이 그분을 보내 가지고 대화를 하게 만들고 냉담을 풀게 만들고... 그래서 일행들이 전부 놀랬지요.  놀라고, 울고, 감명이 깊고 그죠. 성모님을 보러 갔는데 놀라운 사건을 그 여인은 경험하고 왔던 거예요. 그래서 슬라브코 신부님이 고해를 보고, 성체를 모시고, 죽고 나서 사후에 일들에 대해서는 다 설명해 주고 2시간 동안 죽은 사람과 대화를 했던 거예요. 그분이 바로 하늘에서 하느님이 보내신 겁니다. 이렇듯이 오늘 성인들의 대축일이거든요. 성인들은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고 있어요. 내가 어떤 성인을 좋아하면 소화 데레사 수녀님 저를 도와주시고 피어 주십시오 이러면 그분들이 항상 우리를 도와주고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참 놀라운 사건을 저도 이렇게 보면서 슬라브코 신부님을 제가 사진으로 봐서도 아는데 안경을 끼고, 색안경을 끼고 계신데 이 분이 죽었다가 다시 나타나셨구나 참 놀라운 사건입니다.

모든 성인의 대축일 날, 오늘은 하늘나라에 있는 성인들은 항상 우리 곁에서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우리의 어려운 점들, 내면의 고통스러운 점 들을 해결해 주시고 도와주려고 항상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기도 할 때 특별히 어떤 성인 성녀를 좋아하면 그 성인 성녀 이름을 부르면서 나를 위해 빌어 주세요. 요셉 성인 이시어 나를 위해 빌어 주십시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그분들이 반드시 옆에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래요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을 기억하면서 이 성인들의 전구를 우리도 청하면 좋겠습니다.  아멘

 

  2020년 11월 8일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신랑이 온다. 신랑 맞으러 나가라."(마태 25.6)

복음 마태 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례 성당 구기석 안드레아 신부님 강론 (카토릭의 핵심적인 교리, 육신의 부활)

찬미 예수님!

거리 두기를 지켜야 합니다. 발열 체크할 때 성당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숫자가 50이 넘으면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마리아관에 들어가셔도 됩니다. 코로나 끝날 때 까지는 우리가 늘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의 기원,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고 죽는데...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했지요. 아담과 하와를 만들고... 근데 아담과 하와의 존재가 죽지 않는 존재예요. 영원히 사는 존재로 창조를 했지만 죄를 지음으로써 이제 죽음이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벌을 내려서 사람이 때가 되면 죽게 돼 있어요. 죽음이라는 것이 안 죽고 싶어도 안 죽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우리 카토릭의 제일 핵심적인 교리, 제일 중요한 게 오늘 나옵니다. 이게 뭐냐 하면은 바오로 사도가 데살로니카인들에게 하는 말 중에 나오는데 예수님 재림이 오는데 그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은 하늘에 큰~~ 외침이 일어나고 대천사의 목소리가 지구 상의 모든 이가 들을 수 있도록 천사가 어마어마한 소리로 외친다고 해요.  외치고 나서 하늘에서 나팔소리가 울리는데 지구 상의 모든 이들이 다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내려올 때... 만약에 예수님이 지금 구름을 타고 지구에 내려온다면 이제까지 죽었던 모든 무덤에 묻힌 사람들이 부활을 합니다. 여기 보면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죽어서 뼈밖에 없고 흙으로 돌아간 모든 육신들이 다 결합되어 일어나는 겁니다. 육신의 부활이 일어나고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 당시 있던 사람들이 공중으로... 지금 나타난다면 우리가 공중으로 붕 떠 하늘에 예수님 구름 위로 우리가 올라가는 거예요. 올라가서 구름 속에서 주님을 맞이 한다. 이렇게 바오로 사도가 적어 놨어요. 이게 예수님 재림 때, 세상 종말 때 일어나는 일인데 그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아시고.. 그지요. 2030년도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야 말하는 사람들은 전부 이단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몰라요. 교황님도 모르고 아무도 모릅니다. 하느님만 그 날짜를 아는데 어쨌든 예수님 재림이 일어날 때 이 지구 상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천사의 외침과 천체가 흔들리고 살아있는 사람은 구름 속으로 전부 붕 떠가는데  근데 그전에 뭐냐 하면은 죽은 이들이 다시 부활한다. 죽은 이들을 무덤에서 전부 예수님이 일으켜 세웁니다. 이게 육신의 부활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오면 양과 염소를 가리듯이 죽은 모든 이를 부활시켜서 다시 한번 심판하는 것이 공심판(公審判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제일 핵심적인 것이 무엇이냐면 죽은 이들의 부활, 육신의 부활이 일어난다는 것이에요.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 서간 2서 제3장에 보면 그 날에 예수님이 오는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스러지며, 땅과 그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롭게 드러날 것이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드러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이 불타고, 이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나게 돼있고 원수들이 불에 타고 하여튼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그때는 일어난다고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재림 때... 

죽은 사람이 부활, 에수님이 육신이 부활 했잖아요 그죠, 그거는 예수님이... 우리도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하느님과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다시 살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들을 부활시킨다고...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영원히 가는 거  이게 다가 아니라는 거죠. 이게 다가 아니고 죽은 내 육신이 나중에 내 영혼과 결합돼서 새로운 존재의 모습으로 내가 육신이 부활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육신의 부활 이것이 제일 큰 카토릭의 교리예요. 에수님이 내가 이것을 전해주러 왔다 하늘에서 내려왔다 복음.  복음이란 말은 기쁜 소식인데 너무나 기쁜 소식을 전해주러 왔다. 모든 사람은 죽어 땅에 떨어져 먼지가 되고 없어져 버렸는데 예수님이 그게 아니다 천국으로 영혼도 들어가서 영원히 천국에 살지만 세상 종말에는 이 영혼과 나의 육신이 다시 결합해서 내 육신이 부활된다 이렇게... 육신의 부활이 제일 큰 우리 카토릭 교리입니다. 근데 하느님이 죽고 먼지 밖에 없는데 우에 부활시키뇨? 하느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느님이 세상을 만들 때 해야 생겨라 말 한마디 딱 하니까 그 불덩어리 해가 저절로 생깁니다. 달아 생겨라 한마디 하니까 달이 생기고, 바다야 생겨라 하느님이 말씀하자마자 전부 다 생기는 거예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주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먼지로 돌아간 나의 육신도 다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거예요. 에제키엘 예언서 37장에 보면요.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사람의 아들아 하느님이 이렇게 부릅니다. 부르면서 계곡에 완전히 뼈밖에 없는 사람의 뼈 바삭 말라있는 뼈들의 소굴로 인도를 하여 이 뼈들이 다시 살아나겠느냐 이렇게 물어요. 그러니까 에제키엘 예언자가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 이렇게 대답을 해요. 그러니까 "네가 이 뼈들에게 예언을 하여라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으라고 예언을 하라."그러니까 에제키엘 예언자가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어라 뼈들아" 그러니까 뼈가 붙으면서 살이 생기고 힘줄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에제키엘 예언자가 "하느님 숨이 아직 없습니다." 하니까 "숨에게도 네가 예언하여라" 그래서 에제키엘 예언자가 "숨아 사방에서 불어와 이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하니까 사방에서 숨이 불어와 사람 속에 호흡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거예요. 뼈다귀 밖에 없는 것들이 힘줄과 살까지 연결되고 숨이 돌아와서 완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되는 걸 하느님이 환시로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부활 죽고 먼지로 되고 내 형체가 없는데 무슨 부활이 일어나니 하느님은 하실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천년 전에 죽은 사람도 일어나라 하면 뼈가 결합되어 새로 일어나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육신의 부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종교 안에 있습니까. 신앙의 신비라 하는 건 미사 중에 신앙의 신비요 하잖아요. 신앙의 신비가 뭐냐 하면은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는 거예요. 죽어도 건너간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어느 세계로... 다른 세계로 건너간다. 죽어도 죽지 않는 것이 우리예요. 우리가 숨 멈추면 죽는 것 같지만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살고 마지막에는 내 육신이 또다시 살고 죽어도 죽지 않는 신비가 신앙의 신비인 겁니다. 신앙의 신비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전부 이런 놀라운 ㅇㅇ와 결과가 나중에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근데 이런 걸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그게 무슨 소린가 사람은 한 번 살면 끝이지 100살 살면 끝이다. 인생은 한 번 밖에 없으니까 실 것 즐기고 놀고 내 멋대로 살고 죽으면 끝이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생은 한 번 밖에 없는 거예요. 육신도 영혼도 영원히 살지 못하고 이 한 생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자기도 언젠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영혼은 지옥으로 가게 되고 그지요. 그런 거죠. 그게 놀라운 신비가 우리 카토릭 신비입니다. 천국 가는 것도 어마어마 놀라운 일인데 나중에 내 육신까지도 하느님이 일으켜 세운다니까 아 이거 참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이 기쁜 소식을 전하러 하늘에서 내려왔다. 아담과 하와에게 주었던 신적인 생명을 다 잃어버리고 때 되면 죽어야 되고, 병들어야 되고, 고통스러워야 되는데 예수님이 모든 걸 다시 회복시켜 준다는 그래서 기쁜 소식을 전하러 내가 왔다. 바오로 사도가 이 어마아마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테살로니키 서에서 재림 때 일어날 일들을 이야기를 이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재림이 언제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희망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도 존재가 아니고 죽으면 끝이고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히 영혼도 살고 육신도 부활해서 또 나중에 영원히 사는 그런 존재인 것이지요. 그래서 희망을 가져야 되고 바오로 사도도 오늘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우리는 얼마나 희망 속에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하느님 믿는 게 얼마나 큰 은총이고 축복인가를 한 번 생각해 보시고요. 육신의 부활, 내 육신도 부활하는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굳게 믿어야 될 것 같습니다.  아멘

 

2020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아라."(마태 25,23)  

복음 마태 25,14-15.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탤런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탤런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탤런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탤런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탤런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탤런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지례 성당 구기석 안드레아 신부님 강론 (내 마음속의 자비가 하느님이 원하시는 자비가 있는가) 

찬미 예수님!

코로나 19로 성당내에 정원이 50명인데 경북, 대구가 확진자가 많이 없기 때문에 약간 여유롭게 55명이나 60명으로 하는데, 또 코로나가 확장하게 되면 또 50명으로 제약할 수 있으니까 잘 아시고요.

오늘 예수님이 비유를 드는데 각자의 능력에 따라 뭐라도 해라고 탈런트를 줬는데, 한 탈런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활용 안 하고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었다. 왜 묻어 놓았느냐 알고 봤더니 주인님을 모질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모질 분.... 주인님께서는 모질 분이어서 내가 겁이 나서 돈 투자하다가 말아버리면 우알꼬 싶어서 겁나 땅에 묻어 놔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주인이 화가 나서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느냐 이러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 주인이 누구입니까, 하느님이죠, 그죠. 하느님을 모질 분으로 알고 있다 우리도 하느님이 어떤 분이냐, 맨날 죄를 따지고 엄격하게 팍 이런 분으로 심판자로만 알고 있으면 안 돼요. 제가 알고 있는 하느님은 너~~~무나 자비로운 분이에요.

자비 그 자체가 하느님이십니다.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하느님을 모질 분으로 알고 있는 거예요.

방금도 제가 일괄 사죄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는데 전대사받으시라고 일괄 사죄를 했는데 여러분이 성찰했는지 안 했는지는 제가 모릅니다 마는 어쨌든 제가 받은 권한으로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줬습니다. 사제를 통해서 하느님은 죽을 때까지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그런 자비를 드러내시지요. 에수님이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의 빚을 주인이 탕감해 줬는데 그 사람이 100데날리온을 빚진 동료의 팔을 막 잡고 흔들면서 내 돈 갚으라 내 돈 갚아라  한다고 예화를 드려 놓으셨는데 만 탈란트는 조 단위의 돈입니다. 우리 각자가 하느님 앞에서 조 단위의 잘못과 죄를 하고 있었지만 하느님이 그걸 다 없애 주었는데 그러면 나도 하느님께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에 이웃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되는데 100 데날리 온 한 4백만 원, 5백만 원 빚진 사람을 만나니까 멱살을 잡고 돈 내놔라 막 고함을 치고 악덕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보시고 내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자비를 베풀었는데 너는 이웃에게 못되게 하노 이렇게 해서 이제 심판을 내리신다고 예화로 예수님이 그러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자비를 이웃들에게 자비롭게 베풀고 이웃들에게 자비를 들어내야 돼요.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행복하여라 지비 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이룰 것이다." 남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자기도 하느님의 자비를 입게 된다고 그런 표현을 했는데... 자비의 반대가 뭡니까 공격이죠, 공격. 요즘은 전부 공격하는 시대예요. 공격 말로 공격을 하죠, 말로 거세게 몰아붙이고, 욕하고, 행동으로 또 폭력을 휘드르고... 행동으로 공격하고... 너무 공격하는 시대입니다.

갈라티아 5장에서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한다면 서로가 파멸할테니 조심하십시오." 그러니까 물어뜯고 잡아먹고 그렇게 하면 다 같이 파멸하겠다. 조심하라 갈라티아 예언서에서 그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꾸 남을 공격하고 말로써 공격하고 행동으로써 공격하고 그러지 말고 꼭 자비를 베풀어야 돼요. 그런데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악하다고 이해가 돼요. 하느님을 모르기 때문에 악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근데 신자들도 요즘 이렇게 보면 악해요. 우리 지례는 별로 없고 그지요. 자비로운 마음이 없어요. 성당에서는 미사포를 쓰고 천사처럼 하는데  밖에 나가면 달라요. 두 가지 얼굴이에요. 그래선 안 돼겠지요.

어느 날, 미사를 마치고 나가자마자 주차장에서 욕하고 싸우는 거예요. 주차 때문에... 방금 전에 성당에서 성체를 모신 사람들이 주차 때문에 같은 신자끼리 멱살을 잡고 싸우려고 생욕을 하고... 그런 것을 보고 저 사람이 방금 미사에 다녀온 사람인가? 서로 좋게 말하고 자비롭게 말하면 끝날 일을 고함을 치고 이런 신자들이 많아요. 그래서 신자들이 이 안에서의 얼굴과 밖에 나가서의 얼굴은 또 다르구나를 제가 많이 느꼈어요. 회사 가서는요 동료들에게 굉장히 못 된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신자들이 여기 와서 봉사한다고... 하느님 말씀을 읽고 이래요. 우리 사제는 모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밖에 나가서도 똑같이 행동해야 돼요. 성당에서나 밖에서나 자비롭게 말을 하고.... (50주년 행사 때 있었던 이야기) 성당에서 봉사하는 사람들 다 내려놓고 봉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들에게 좋은 말을 해줘야 하고 격려를 해줘야 되는데...

폴란드의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어떤 말씀을 했냐 하면 "나를 진정 사랑한다면 이웃에게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세 가지 방법으로 자비를 너희들은 실천할 수 있다. 말과 행동으로 그리고 기도로써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예수님이 3가지 자비를 베푸는 방법을 알려 줬어요, "말로써 이웃에게 따뜻하게 말하고 공격적인 말을 거두고 행동으로 베풀고 살고 기도로써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도해 주고 그런 식으로 너희들이 나를 진짜 사랑한다면 이웃들에게 그런 자비를 보여라" 이렇게 폴란드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 그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래요, 하느님을 오늘 모진분으로 알고 한 탈렌트를 가진 사람은 자기가 모질게 살기 때문에 하느님도 모질다고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자기가 자비롭게 살면 하느님도 자비 그 자체라는 걸 알 수 있을 건데 그렇게 묵상을 해봅니다.

어쨌든 우리 지례 신자들은 다른 본당 신자들보다 제가 볼 때는 월등히 훌륭해요.  점잖고 훌륭합니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일부가 자비롭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좀 고치고 여기서도 그렇지만 나가서도 똑같이 겉과 속이 다르지 않게 우리가 행동을 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내 마음속의 자비가 하느님이 원하시는 자비가 있는가 그걸 한 번 또 잘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2020년 11월 22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성서 주간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마태 25,31)

복음 마태 25,3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지례 성당 구기석 안드레아 신부님 강론(이웃을 위해 희생과 사랑)

찬미 예수님!

코로나 때문에 난리예요. 김천에도 확진자가 대학에 10명이... 그래서 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종교시설이니까 인원을 제한하여 달라고 50명 이상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백신이 개발됐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곳처럼 생활해선 안됩니다. 미국은 하루에 확진자가 18만 명이 나오는데... 우리가 인내하여야 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재림할 때 일어날 일인데 구름 타고 재림해서 모든 민족들을...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을 두 줄로 세운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육신도 부활시켜서 심판을 하는데 그때 심판의 기준이 참 특이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때 저 사람이 대학 나왔나, 돈이 많은가, 아파트 있나, 어떻게 사는가 등 이런 걸 보고 판단하지만 하느님은 그런 걸 보고 전혀 판단을 안 해요. 남에게, 이웃에게 얼마나 사랑을 베풀고 살았느냐 그게 하나의 심판의 기준입니다.

오늘 굶주리거나 목마르거나 그랬을 때 그 사람들을 도와주고 따뜻이 맞이하고 헐벗었을 때는 입을걸 주고, 감옥에 있을 때, 병들었을 때 찾아봐 주고 그게 심판의 기준이에요. 그 사람들에게 해준 것이 곧 예수님은 나에게 해준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해주지 않은 사람은 저주받아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런 표현을 하는데 사랑이라는 것은 행동으로 되는 것이지요. 머리로 내가 저 사람을 생각하고 말만 번지르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행위로... 행위입니다. 병든 이를 찾아가 주고, 감옥 찾아가 주고, 헐벗은 이에게 이에게 입을 것을 주었고, 했고, 했고 했는 행위를 두고 예수님이 판단을 하는 것이지 자기 머릿속으로 내가 이리 줘야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께 칭찬받을 일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 예수님도 바리사이 집에 초청을 받아 갔는데 그 바리사이인은 예수님이 들어왔는데 발 씻을 물도 안 주고 그랬는데 죄 많은 여인이 향유, 요즘 말하면 향수 수백만 원짜리 향수, 그 향유를 예수님 발에 통째로 다 부어가지고 자기 긴 머리카락으로 예수님 발을 닦는 행위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걸 딱 보고 "이 여인은 정말로 나에게 큰 사랑을 드러내었다" 이렇게 표현을 하십니다. 바리사이에게는 "너는 너희 집에 왔는데도 발 씻을 물 한 번도 주지 않았으면서 이 여인을 봐라 이 여인은 나에게 큰 사랑을 드러내었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자기가 제일 아끼는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어가지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예수님이 참 내 죄를 용서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하고 나의 주님 이시다 하면서 그 여인은 그런 행위로 드러내니까 예수님이 큰 사랑을 드러냈다 이렇게 칭찬을 하시는 모습이 나오지요. 사랑은 드러내는 것입니다. 드러내는 것은 우리가 좀 희생을 해야 되죠. 자기 시간도 희생해야 되고 자기 육신도 희생해야 되고, 자기 재물 자기 돈도 희생을 해야 사랑이 드러나는 거지 뭐 전부 자기 꺼는 딱 쥐고 내 시간 터치하지 말라, 내 혼자 써야 된다. 오로지 자기 시간 침해받는 것 너무 싫어하고 요즘 사람들이 그죠. 그러니까 내 시간 아깝다 내 몸도 다, 내 돈 어렵게 모은 돈 함부로 쓸 수 없다 딱 가지고 아까워 가지고 발발 발발 떨고 그게 무슨 사랑입니까. 그죠. 내놓아야 돼요. 자기 시간도 내놓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아까운 돈도 좀 내놓고 자기 육신도 봉사를 해서 찾아보려고 하고 병자들을 찾아보려고 움직여야 되잖아요.  희생이 필요하거든요. 희생 없이는 사랑이 드러낼 수가 없어요. 아무것도 안해준 이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이기적을 살잖아요. 이웃에 무관심하고 관심이 없는 거예요. 누가 아프든 죽든 누가 굶주리든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 한 몸만 잘 살고 자기 가족 이렇게 딱해서 잘 사는 아무것도 남에 해주지 않는 그런 사람 들은 예수님께 아주 저주받은 자들아 하는 이런 소리를 듣게 되는 거죠. 신자는요 마음이 따뜻해야 돼요. 남을 가엾은 마음으로 볼 줄 알고 이래야 되지 차가운 마음이 속에 가득하면요 남에게 관심도 없습니다. 누가 죽든 말든 관심이 하나도 없어요. 마음이 차가우면 그래요. 마음이 자비롭고 가엾은 마음이 가득하면 남을 이렇게 보면 불쌍하게 보입니다.  보이게 돼있어요.  마음이 문제지요. 어쨌든 간에 오늘 예수님이 실천하신 사랑을, 예수님이 말하신 이런 사랑을 실천하려면 희생이 필요하다. 우리가 세례 받을 때 이마에 뭐를 우리가 이렇게 신부님이 기름으로 그어줍니다. 이마에 기름으로 십자가를 여러분 머리에 십자가 ㅇㅇ가 다 있어요. 십자가라는 말이 뭡니까 예수님은 전생은 희생입니다 희생. 그러니까 예수님 길을 따라가려면 어느 정도 우리도 희생을 해야 돼요. 십자가 이마에 딱 거 놓고 자기는 하나도 희생하려 하지 않고 자기는 손해 안 볼려하고 이러고 있으면 그것은 신자라고 할 수가 없는 거죠. 어쨌든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고 행위로 보여주는 거고, 자기 것을 희생해야 사랑이 드러나게 돼있는 겁니다. 자기 시간도 좀 남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 자기 돈도 자신만을 위해 쓰지 말고 어려운 이웃들 주위에 좋은데 쓰기도 하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 재림 때 일어날 일들 그 심판의 기준이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잣대가 전혀 통하지 않는 단 1%라도 통하지 않는 그런 놀라운 이상한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사랑입니다. 사랑! 그지요. 우리도 예수님 말씀 잘 기억하면서 나는 얼마나 이웃을 위해 희생을 하고 살았는가 한 번 또 묵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멘  

 

2020년 11월 29일 대림 제1주일

복음 마르 13,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 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 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지례 성당 구기석 안드레아 신부님 강론(늘 깨어있고 신앙생활에 충실하자)

찬미 예수님!

우울한 시기입니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백신도 나오고 효과가 좋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집주인이 집을 떠나면서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깨어있어라" 하라고 합니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집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각자에게 깨어있어라 충실하라는 이 말인데 집주인뿐만 아니라 우리도 먼 길을 떠나는 사람...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은 거예요. 먼 길을 떠나면 길을 가다가 지치면 서고, 좋은 경치 보다가, 잠자다가 물먹고 또 가다가.... 계속 가다 서고, 가다 서고 이렇게 하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먼 길을 가는 그런 경우지요. 당장에 내가 세례 받고 내가 묵주기도 하루에 30단씩 하고, 성체조배 같은 거 하고, 미사 하고, 매일 성경 공부하고, 불이 붙어 이런 건 좋지만 그게 안 그렇거든요. 믿음이 있다가도 없어지고, 의심이 생기고, 너무 성당에서 말하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지고, 성체 안에 예수님이 실존해 있다고 하는 데 있기는 뭐가 있나. 그래도 우리는 성체 조배도, 묵주 기도도 여러 가지 마음이 안통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계속 뚜벅뚜벅 미사 오고 신앙생활하다 보면 하느님이 자꾸자꾸 우리 마음을 열어줘요. 자꾸자꾸 열어주고 깨닫게 해 주고 새롭게 해 주고 그렇습니다. 근데 세례를 받았다고 당장 다 아는 게 아니에요. 저는 지금도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느낍니다. 아~ 이게 이렇게 나를 여는구나 내가 전혀 몰랐던 부분이구나.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은데....

제가 오늘 축일 이라고 꽃이 있네요. 내일이 제 축일인데 오늘 축일 생일을 이렇게 하여 고맙습니다. 근데 제가 안드레아 세례명을 너무나 싫어했어요. 사제가 되고 나서도 안드레아 세례명이 도통 마음에 안 들어 세례명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더러더러 했습니다. 왜냐하면 안드레아 사도가 베드로 동생 아닙니까. X자형 십자가에 양팔 벌리고 순교했다는 그것 이외에는 기록이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리 찾아봐도 알 길이 없으니까 별로 호감도 안 느껴지고 안드레아도 흔하고... 그래가 신부가 되어서도 안드레아에 대해서 별로 시큰둥했는데 그게 한 20년 세례 받고, 20년 지나서 사제가 되고 나서 몇 년후에 이것이 확 깨졌어요. 아! 이게 아니구나 내가 너무나 잘못된 어리섞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무슨 사건이냐 하면은 내가 한 번씩 영적 독서를 성인 전을 한 번씩 읽습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 마더 데레사, 소화 데레사, 아빌라 데레사... 성녀가 좋아가지고... 성녀가 쓴 거 자서전도 읽고 수도원 창립사라는 게 있어요. 이런 글도 성녀가 썼구나, 나보다 나은 분이기 때문에 뭔가 읽고 배우려고 수도원 창립사에서 , 그런 걸 어느 날 신부가 되고 나서 손에 쥐고 읽었어요, 읽는데 거기에 안드레아 사도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어떤 일이 나면 이거는 성녀가 써놨기 때문에 거짓말이 하나도 없는데 어떤 돈 많은 귀부인이 있는데 아이가 없어요. 심신은 깊은데 아이가 없으니까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했는데 수년간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어요. 근데 어느 날, 주위 사람들이 안드레아 사도께 기도를 해보면 아이가 생긴다 하더라 이게 대중 심신인데... 그래서 부인이 안드레아 사도께 기도합니다. "안드레아 사도여 당신은 하늘나라 천국에 계시니까 나를 위해 빌어 주십시오. 아이를 갖고 싶은데 우리 집은 재산이 많고, 막대한 재산을 남겨줄 후손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처럼 그죠. 아주 간절하게 기도를 했죠. 근데 어느 날 이 부인이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자기가 어떤 집 마당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떤 사람이 나타나는데 꿈이 아니고 안드레아 사도가 자기 눈 앞에 나타나 가지고, 거기에 느낀 바에 의하면 너무 아름답고 숭고한 모습에 정신을 잃은 듯했습니다. 이랬어요. 천국에 있는 안드레아 사도가 자기 눈앞에 나타났고, 근데 이 안드레아 사도가 어떤 집 우물가에 있고 그 주위는 전부 꽃밭인데 그 꽃들이 다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서 이 분이 거기에 넋이 빠져 있는데 천국에서 내려온 안드레아 사도가 하신 말씀이 "아이를 가지려고 하지 말라, 너는 다른 것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도록 해라, 네가 그 아이 때문에 네 영혼이 구원을 못 받을 수 있다."이런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잠깐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안드레아 사도는 사라지고... 그걸 환시라고 하는 거예요. 이 귀부인의 마음에 내가 하느님의 것이 아니구나 아이를 낳는 것이... 거기서 딱 그걸 보고 나서 모든 생각이 사라져 버립니다. 하느님께 아기 주세요, 아기 주세요 하는 마음이 사라진 거예요. 그러고 나서 참 신비롭다 하며 남들에게 이야기하니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러다가 어디 어디 어떻게 연결이 되어 어떤 마을로 들어가서 어떤 집을 갔는데 그 집을 보니까 꼭 우물가에 안드레아 사도가 나타났던 그 집과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 부인이 꽃밭에 꽃은 없는데 이 집과 주위의 주택 몇 채를 다 사버립니다. 돈이 워낙 많으니까 다 사버리고..... 나중에 몇 년이 지나서 아빌라 지역에 대성녀 데레사 수녀가 수도원을 18개를 짓는데 성녀가 돈이 없어 돌아다닌다는 소리를 듣고 만났어요. 이 부지를 다 줄테니까 기도회 수도원을 세우세요 하면서 그것을 기증합니다. 성모 영모 수도원이라고 하고 그 수도원이 탄생하고 대 성녀 아빌라 데레사는 그 수도원에서 나중에 세상을 마감하게 되고, 나중에 전쟁이 일어나 세상이 엉망이 되었지만 그 수도원만은 특별히 피해를 입지 않고 보존되었어요. 이게 참 놀라운 일인데 어쨌든 그걸 데레사 성녀가 적어 놨는데 내가 그걸 보고 야~~안드레아 사도가 정말 멋진 분이구나. 그 아름답고 숭고한 그 모습으로 나타나서 이런 훌륭한 조언을 주시고 그러니까, 나는 안드레아 세례명을 너무나 싫어 했는데 내가 어리 섞었구나 라는 걸 20 몇 년 만에 그 생각이 다 없어졌어요.  내 세례명이 너무나 맘에 안 들었는데 , 신부가 되어서도 안드레아 세례명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요 구절을 보고 내가 마음이 확 바뀌었어요.  참 하느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거예요. 좋은 세례명을 가지고 있는데 왜 그리 어리섞은 생각을 너는 수 십 년 가까이했었느냐 저에게 비추어 주시는 거예요. 저는 성경책을 매일 한, 두 장씩 잃을려고 하는데 최근에는 예레미아서를 보는데 보니까... 저는 성경 참 많이 읽었어요. 어느 누구와도 성경 이야기를... 개신교 목사가 써놓은 것 알 수가 있을 겁니다.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이 예레미아서를 읽으니까 또 이런 성경 말씀이 있었나 싶어 가지고 제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구나 새로운 말씀이 또 딱 다가오는 거예요. 뭐냐 하면 하느님이 티로라는 나라에 너무나 악이 많고 거만하게 사니까 티로라는 나라를 완전히 다 흔적 조차 없이 없애버리겠다는 예언입니다. 예레미아 예언자를 통해서 내가 바다의 물을 일으켜 가지고 바닷가의 티로는 나라가 있었는데 너의 나라를 흔적도 없이 없애 버리겠다는 예언인데 결국은 티로라는 나라가 그렇게 됐어요. 이 티로라는 나라에 하느님이 이런 예언을 예레미아 예언자를 통해서 했구나, 나는 그동안 성경을 읽었지만 이런 구절이 눈에 하나도 안 들어왔나, 처음에 잘못한 거예요. 참 내가 교만했구나, 하느님이 먼길을 가는 여행자처럼 우리가 조금조금씩 가면서 깨달음을 주고 또 안다 싶지만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잘한다 싶지만 네가 잘하는 게 아니다 아직 알게 너무 많다 이렇게 하느님이 자꾸자꾸 우리를 깨닫게 해 주고 비추어 주고 신앙생활이 그런 것 같아요... 하루 만에 다 아는 게 아닙니다. 그죠.  때때로는 이렇게 생각해 보면 과거에 그게 죄였구나 나는 죄인지도 모르고 내가 그랬는데 아 그게 죄었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자꾸자꾸 익혀주고 깨닫게 해 주고 하느님이 우리가 먼길을 떠나는 그런 신앙의 길을 갈 때에 순간순간 개입해주신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어쨌든 간에 여러분도 저도 똑같고 우리는 나중에는 하느님이 마지막에 하늘로 올라오라고 부르시겠지요.  그동안까지 우리가 신앙생활을 꾸준하게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하느님이 자꾸 깨닫게 해 주고 비추어주고 알게 해 주고 그럴 것 같습니다. 저도 지나온 경우도 그랬어요. 여러분도 그럴 것 같아요. 어쨌든 우리가 미사에 참여하고 늘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느님이 우리의 어리석음을 부서 주고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해 주고, 보여 주고 그렇게 하실 겁니다. 어쨌든 간에 오늘 깨어있고 충실하라는 하느님 말씀 우리가 잘 묵상하면서 죽을 때까지 우리가 신앙에 충실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