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6일 연중 제23주일
제1독서 예제 33,7-9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7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8 가령 내가 악인에게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할 때,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9 그러나 네가 그에게 자기 길에서 돌아서라고 경고하였는데도, 그가 자기 길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고, 너는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제2독서 로마 13,8-10
형제 여러분,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9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복음 마태 18,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주일 미사를 못 드려 유튜브로 대신하였고, 마리아관 건립과 코로나 19로부터 보호와 종식 54일 묵주기도를 봉헌하였다.
2020년 9월 15일 연중 제24주일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35)
복음 마태 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지례 성당 구기석 안드레아 신부님 강론 (묵주기도 54일 운동 동참을...)
찬미예수님!
한 주 쉬시고 코로나 19 잠잠해져서 미사 재개하라고 하여 앞으로 정상적인 미사, 평일 미사도 하고 다 합니다.
제 뒤에 현수막이 걸려있는데 묵주기도 54일 운동. 그리고 지향은 마리아관 건립, 코로나 19 종식과 코로나로부터 보호 지향으로 두고 54일 묵주기도를 하자 날짜는 9월 14일부터 11월 6일까지 전 신자가 하면 좋겠다 물론 강제적인 것은 아닙니다. 어떻든 우리가 기도를 하여야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 냉담자도 지향을 하나 더 넣어도 좋을 것 같아요.
우리 카토릭에 묵주기도의 대가들이 있는데 레지오 단원들은 항상 끝에 기도를 마칠 때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합니다. 프랑스 몽포르 지역에 루도비코 신부님이 계신데 그분은 1600년도 중반 사람으로 그 신부님은 어디를 가나 묵주를 전파했어요. 묵주 은혜를 그 신부님은 굉장히 많이 입었기 때문에 묵주를 전파했고, 또 이탈리아 도미니코 성인도 어디를 가나 묵주를 전파했고, 이탈리아의 비오 신부님도 늘 묵주를 전파해서 묵주의 대가 들이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근데 평신도 중에 묵주의 전파자로 아주 유명한 분이 계신데 이분도 이탈리아 분이신데 1926년에 86세로 생을 마감한 분이신데 이름은 바르톨로 롱고라는 변호사입니다. 교황님이 묵주에 대한 글을 쓸 때 제일 밑에 "바르톨로 롱고 복자여 우리를 위해 빌으소서" 이런 말을 자주 써요. 이 분은 성인이 아니고 성인 밑단계 복자 품을 받았는데 나중에는 성인이 될 겁니다. 바르톨로 롱고라는 변호사는 평신도인데 젊었을 때는 점치고 우리 한국으로 말하면 굿하고 이런데에 깊이 빠져 나중에 우울증과 신경쇠약을 겪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공격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미니코 수도회 어느 신부님을 만나서 그 신부님이 묵주를 가르쳐 줬어요. 묵주를 배우고 묵주기도를 하면서 우울증과 신경쇠약 등 여러 질병으로부터 빠져나옵니다. 그래서 이분이 묵주의 은총을 크게 입고... 변호사 일을 했는데 어느 날, 300명이 사는 폼페이 마을이 있어요. 지금은 2만 명이 되는 도시입니다. 300명이 사는 폼페이 마을을 자나 가다 보니까 사람들이 아무도 성당에 안 가고 점치고, 우상 숭배하고, 굿하고 이렇게 빠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롱고 변호사가 너무 안타까웠는데 어느 날 이런 소리를 듣게 됩니다. "네가 진정 구원을 받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여기서 묵주기도를 전파하라"라는 소리를 들어요. 롱고 변호사는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하고 신부님을 찾아가 분별을 하여 달라고 요청하니까 신부님이 묵주를 전파하세요 하고 변호사는 묵주를 전파하게 됩니다. 폼페이 마을의 만나는 사람들에게 묵주를 가르쳐 주고 묵주를 하라고 전파를 합니다. 그리고 마을에 아주 작은 성당이 있었는데 성모님 성화를 하나 갖다 놓고 많은 사람을 불러서 신부님과 같이 묵주를 바쳐야겠다 생각하고 성모님 성화를 구하러 다니다 어떤 수녀원에 가니까 아주 낡은 성화가 하나 있었는데 성모님이 계시고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앉고 있고, 오른손에는 묵주를 들고 있고, 왼편에는 카타리나 성녀, 오른편에는 도미니코 성인이 있는 성화였어요.
아주 낡아서 그것을 잘 닦아서 제대 밑에 놔두고 많은 사람들이 와서 같이 묵주를 바치게 했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당 성화 앞에서 묵주를 바친 사람들 중에 불치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이 치유가 일어나게 됩니다. 소문이 소문의 꼬리를 물고 전파되어서 전국에서 이곳에 와서 기도하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롱고 변호사가 보니까 성당이 너무 작아서 묵주기도의 모후라는 큰 대성전을 짓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성모님께 기도하고 성전을 지으려고 신부님과 같이 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계속 성모님이 돈을 모아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돈이 떨어지면 들어오고, 떨어지면 들어오고 그래서 한 10년 넘게 성당 짓는 일을 했어요. 근데 그 마을에서 24Km 떨어진 나폴리라는 도시가 있는데 지금은 한 백만 명 삽니다. 나폴리에 군 사령관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불치병에 걸렸어요. 일 년 내내 누워서 생활했어요. 딸의 이름이 아그렐리라는 소녀였어요. 그래서 엄마와 가족들이 병이 낫도록 묵주 기도를 하자하고 9일 기도를 바쳤어요. 그런데 3월 3일 소녀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셨어요. 무릎에 아기 예수님을 앉고 오른손에 묵주를 쥐고, 왼쪽에는 카타리나 성녀, 오른편에는 도미니코 성인하고 같이 장미에 둘러 싸여가지고 소녀에게 나타나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딸아, 너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나를 불렀고 언제나 나의 총애를 입었단다.
너는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사리오의 모후라고 불렀으니 네가 간원하는 은혜를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구나. 이 이름은 나에게 가장 보배롭고 즐거운 이름이란다.
앞으로 세 번의 9일 기도를 바쳐라. 그러면 네가 원하는 것 모두를 얻을 것이다." 이렇게 하고 사라지셔요.
9일 기도를 한 번은 했는데 3번을 하라고 하니까 너무 기쁘고 흥분되고, 그리고 9일 기도를 3번을 바쳤는데 또 한 번 성모님이 나타나셔 "누구든지 나의 도움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청원의 9일 기도 세 번 바치고,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믿고, 감사의 9일 기도 세 번을 바쳐라" 이렇게 했어요.
그게 54일 기도의 시초가 됩니다. 그래서 소녀가 성모님 말씀대로 하니까 정말 병상에서 완치되어 일어나게 됐던 거예요. 군사령관의 딸이니까 인근 폼페이라는 마을에 묵주도 바치고 성전도 짓는다고 하니까 가 보자고 해서 이 소녀가 갔어요. 그리고 작은 성당에 들어갔는데 자기에게 나타났던 똑같은 성화가 제대 밑에 전시되어 있는 거예요. 소녀가 저렇게 나타나셨는데 하면서 소녀가 너무 감격하고 놀랐다고 하지요. 사령관의 딸이니까 사령관이 성전을 짓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나중에 묵주기도의 모후라는 대 성전에 폼페이라는 마을에 건립됩니다. 그래서 소녀에게 나타났던 성모님이 부탁했던 청원의 9일 기도 3번을 바치고, 감사의 9일 기도 3번을 바쳐라 이것이 54일 이거든요. 여기서부터 지금까지 54일 묵주기도가 전파되어서 바치고 있는 겁니다.
저도 올해 지금 3번째 바치고 있는데... 우리 사무장도 2번째 바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묵주기도가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매일 5단씩 지향을 두고 그래서 하루도 안 빠지고 27일 바치고, 28일째부터는 내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믿고 감사의 마음으로 또 5단씩 바치면 됩니다. 쉽지 싶어도 어느 날 깜빡하여 전 10일 바쳤는데 1일 안 바치면 허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려 54일 하루도 안 빠지도록 해야 되는데 이게 좀 희생이 들어가요. 희생, 좀 힘들어요. 그래도 바치면 참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저도 3번째 바치고 있는데 상당히 좋은 일들이 밝힐 수는 없지만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은혜가 대단하구나고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제가 3번째 바치고 있는 거지요. 효과가 없다면 제가 바치지 않았겠지요.
오늘 복음에 예수님이 마음으로부터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라 하지만 우리가 용서가 잘 됩니까,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합니다 말은 그러하지만 며칠 지나면 내일모레 지나면 또 불현듯이 그 사람에 대한 증오와 미움이 일어나잖아요. 우리가 생각하고 마음먹는다고 용서가 안돼요. 생각하고 용서가 다 될 것 같으면 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로워지겠습니까? 전부 물어뜯고 싸우고 욕하고 증오하고 시기 질투하고 온 세상이 그렇잖아요. 우리 생각하고 입으로 내뱉는다고 용서가 안 되는 거예요. 기도를 해야지요.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여러 가지 나쁜 상처와 나쁜 기억들과 나쁜 생활들을 전부 몰아줍니다. 나도 모르게 자꾸자꾸 몰아내 줘요. 그러니까 자꾸자꾸 미움도 적어지고 증오도 적어지고 그래서 자꾸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의 힘이라는 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남을 용서할 수 있단 말입니까. 기도는 참으로 놀랍고요. 기도중 에 제일 위대한 기도는 미사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이 묵주기도나 다른 기도가 있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래요.
여러분들 마음을 부여잡고 54일 묵주기도, 여러분 똑같이 전부 동참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기도에 대해 묵상해 보시고 다시 한번 마음을 부여잡고 나태한 신앙을 다시 한번 끌어올릴 기회를 삼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2020년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 24)
복음 루카 9,23-26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지례 성당 구기석 안드레아 신부님 강론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가도록.. )
찬미 예수님!
날씨가 참 좋네요. 어제 고구마 수확을 하였는데 많은 분들 34명이 나오셔서 고생하셨고, 내 마음 같아서는 좋은 고구마 한 박스씩 가져가세요 이러고도 싶은데, 봉사하고도 돈 주고 사 가시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이 안타깝고 그러는데... 너무 감사하고 , 아무런 사고도 없고, 바람이 부는데 바람이 안 불었으면 얼마나 더웠겠나 싶어서 바람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제 속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 누구나 있지요. 자신이 처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늘 불평하고 힘들다고 한탄하고 그러기보다는 "하느님이 제게 주어진 현실을 감사합니다.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러면서 십자가를 지면 주님이 여러모로 도움을 주시고... 그게 바로 십자가지요.
현실에 처한, 내가 처한 이 고통스러운 현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아닙니까. 우리 본당에는 병자들이 참 많습니다. 연세가 드셔 어르신들이 많아 그렇고 나이도 우리가 40~50 넘어가면 몸에 병이 한 가지 이상 다 있어요. 그러니까 병이라는 것은 십자가지요. 내가 좀 더 활기 있게 생활하고 싶지만 병 때문에 축축 쳐지고 우울하고... 근데 병은요 하느님께서 천국으로 들어오라고 주시는 하나의 십자가이다. 육신을 정화시켜주는 그지요. 내가 병이 없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는 병을 지니면서 내가 육신을 이 세상에 살 동안 계속 정화를 할 겁니다. 연옥에 가면 연옥 불이 지옥불만큼 고통스럽다는데 그 불의 고통을 연옥에서 정화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 정화받는 것을 안 받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육신의 병을 통해서 계속 고통을 당하면서 정화를 하고 있고... 이것은 제 말이 아니고 많은 대 성인들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병이 들 인자 들은 이 세상에서 이미 보석을 채우고 있고 연옥에서 받아야 될 정화의 불을 이 세상에서 이미 정화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그런 표현을 대 성인들이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병을 앓고 세상을 돌아가신 분들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으로 들어갈 확률이 많다고 이야기하죠. 어쨌든 병이라는 것이 나에게 십자가이고 나에게 처한 어려운 현실이 십자가이고 그렇습니다. 오상 비오 신부님이 양손에 구멍이 낫잖아요. 못 자국... 예수님 성은을 받아가지고 매일 붕대를 감아 가지고 죽을 때까지 피를 흘렀어요. 얼마나 구멍이 뚫려 아프겠습니까 육신이... 양 발톱 위에도 못이 찍혀 가지고 그지요. 하느님이 주신 성은인데 매일 고통스러운 육신을 가지고 50년을 사셨는데 자기의 고통을 전부 죄인 회개를 위해 바친다고 그분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자기에게 다가오는 모든 고통들을 한 사람의 죄인이라도 회개하도록 제가 바칩니다. 십자가 그것을 이렇게 지고 가시는 모습들이 성인 중에 있습니다.
또 십자가는 다르게 생각하면은요. 우리가 자신을 버리고 낮은 자세의 모습으로 남을 위해 봉사하고 하느님을 위해 희생하는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의 옥좌에 앉아 천사들을 거느리고 계실 분이 이 세상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아주 가난하게 30년 동안 사시고, 3년을 또 공생활을 하는데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치유해 주고... 발 부르트게 예수님은 돌아다니셨지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늘 편한 것만 찾고, 재미난 것만 찾고, 높은 자리 찾고, 대우받기만을 바라는 그런 마음이 가득하면 십자가의 의미를 전혀 몰라요. 그런 사람은 십자가가 뭔지도 모릅니다. 그냥 오로지 편한 것, 대우받고, 날 알아주나, 이런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십자가가 없어요. 십자가 없이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께 나서서 들어가야 되는 거지요.
예수님도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자기를 버리고 낮추고 죽어야지 좋은 하느님의 영광에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도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나는 종의 신분으로 섬기러 왔다 이렇게 하셨지 않았습니까. 그래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나가셨습니다.
십자가를 너무 사랑한 성인 한 명이 있는데... 작년 유럽에 갔을 때 파티마를 거쳐서 스페인을 지났는데 스페인에 성인, 성녀가 있는 곳을 방문했는데 아빌라의 데레사 제일 유명하니까 거기에 맨발 가르멜 수녀원이 있어요. 그분이 가르멜 수녀원 원장이거든요. 아빌라 데레사가... 그리고 가르멜 수도원의 남자 수도원장이 누구냐면 십자가의 성 요한이라는 분입니다. 십자가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항상 이름 앞에 십자가의 성 요한..... 그래서 십자가 성 요한과 아빌라 데레사 성녀와 같이 유물도 보고, 시신도 참배도 하고 이러는데... 사제들이...
특이한 것은 유리관 유리안에 나무의자가 하나 전시가 돼있어요. 500년 된 의자 그리고 4백8, 9 십 년 된 의자라는데 이 의자가 십자가 성 요한이 앉았던 나무 의자예요. 왜 나무의자를 전시하나 했더니 설명하기를 십자가 성 요한은 가르멜 남자 수도원의 남자 원장이었어요. 원장이었지만 남에게 떠받음을 받고 추앙받고 이런 것을 너무나 싫어했고 늘 자신을 버리고 더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살려고 했고 죽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 수도원에서 죽기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사막 같은 곳에서 죽고 싶다 이렇게 생각한 분이에요. 이 분이 너무 십자가를 생각하고 십자가를 지고 사니깐...
어느 날, 다리를 다쳤는데 가르멜 수녀님들이 이 분의 다친 다리에 붕대를 감아주고 했는데... 나무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내놓고 수녀들이 치료하고 있는데 나무의자 하고 십자가 성령이 공중 부양이 되는 거예요. 공중으로 떠 오르니깐 수녀님들 전부 기절초풍하는 거예요. 공중에 붕 뜨니까 "하느님 왜 이렇게 하시는 겁니까,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신비스러운 인물로 보이게 합니까, 제발 이 의자를 바닥에 내려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했어요. 그러니까 의자가 내려오고요. 그런 일이 빈번히 발생했던 거예요. 하느님이 그 기적을 자주자주 보였던 것 같아요. 하느님이 십자가 성 요한을 얼마나 사랑하면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의자하고 통째로 공중에 올렸다가 내렸다가 했겠어요. 그런데 십자가 성 요한은 재발 앞으로 하느님 내게 이런 기적을 일으키지 마세요 하면서 재발 부탁입니다 하고 기도 했어요.
이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 의자가 지금도 전시돼있고 그 옆 성화에 수녀님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그래요.
그리고 그 옆으로 조금만 더 가면 가르멜 수녀원 안에는 아빌라 데레사 성녀가 있는데 이 분도 원장이에요. 이 분은 기도회 수도원을 스페인 전역에 돌아다니면서 수 십 개의 기도회 수도원을 세웠는데 욕을 얼마나 얻어먹었는지 모릅니다. 여자가 돌아다닌다고 하고 우리 스페인에 성당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무슨 기도회 수도원을 세우느냐고 막 욕을 하고... 신자들이 욕을 해요.
근데 데레사 수녀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계시를 받고 하는 건데 욕을 하도 많이 하니까 나를 죽여 달라고 기도하는데 그때 예수님이 또 나타나십니다. 나타나시어 "데레사 야 너의 손에 쥐고 있는 묵주를 나에게 달라" 나무 묵주를 데레사 수녀가 쥐고 있었는데 데레사 수녀가 예수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데 묵주를 달라니까 묵주를 에수님께 드리니까..... 묵주의 끝에 가면 십자가가 있잖아요. 그 십자가를 예수님이 손에 딱 잡고 다시 받아라 하면서 되돌려 줬는데 딱 보니까 그 나무 십자가 네 군데에서 이 세상의 다이아몬드와도 견줄 수 없는 네 가지 보석이 빛나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것은 이 세상의 보석이 아니다."
천국의 보석인데 예수님 십자가 네 군데에서 천국의 보석이 데레사 수녀의 눈에 보이는 거예요. 너무나 좋은 이 보석을 보면서 "네가 나를 위하여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희생을 했으니까 앞으로 너는 죽을 때까지 이 묵주를 볼 때마다 이 십자가가 네 가지 천국의 보석으로 도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 눈에는 아무도 그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사라지셨고...
묵주를 할 때 나무 십자가를 우리가 친구(親口)를 하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천국의 보석으로... 눈에 빛나고 또 자기가 하는 일에 예수님이 고통받는다는 것을 다 안다는 것을 알고 그다음부터 죽여 달라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내게 십자가를 더 주세요. 당신을 위해서, 하느님을 위해서 고통을 막을 수 있습니다. 내게 이런 좋은 보상이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더 고통을 당하겠습니다. 이러면서 십자가를 계속 더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던 거예요.
두 성인, 성녀를 보면서 많은 사제들이 그 길을 거쳐오면서 묵상도하고 했는데 십자가라는 것은요 정말로 신세 한탄하고 그런 것이 아니고 그것이 있어야지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십자가 없이 뚜벅뚜벅 천국에 아무도 못 들어가요. 그래서 여러분이 처해 있는 현실, 고통스러운 현실, 또 내 몸에 질병 등 어려운 여러 가지 상황, 또 하느님을 위해서 하는 여러 가지 일들 속에서 당하는 고통, 오해, 박해, 멸시 이런 것들이 전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아요. 옆에서 예수님이 도와주십니다. 십자가가 가볍도록 도와주셔요.
오늘 예수님 말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이 말씀 묵상하면서 십자가 기쁘게 지고 가도록 여러분 기도 하면 좋겠습니다. 아멘
2020년 9월 27일 연중 제26주일, 이민의 날
"그는 '싫습니다.'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마태 21,29)
복음 마태 21,28-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지례 성당 구기석 안드레아 신부님 강론 (겸손에 대해 묵상해 보세요 )
찬미 예수님!
벌초 다 했습니까?
오늘, 예수님이 수석 사제들과 백성 원로들에게 말할 때 나이 차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30살에서 33살 사이었을 테고, 백성의 원로들은 나이가 많았겠지요. 원로들은 최소 60, 70세에서 80세 그 정도는 안 됐겠습니까?
어른에게 젊은 예수가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나무라는데 수석 사제가, 백성 원로들이 하느님이 자기 앞에 있는데도 눈에 안 보이는 겁니다. 뭐 이런 젊은이가 나타나서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구마(驅魔)를 하고, 치유를 하고 종교를 분열시키고... 이런 인간을 빨리 죽여야 된다 이 생각밖에 없는 거죠. 하느님이 지금 자기 앞에 나타나서 말한다는 것을 감히 깨닫지를 못하는 겁니다. 왜 그런가 하면 내가 어른이고, 내가 종교의 지도자고, 내가 율법을 달달 외는... 내가 얼마나 학식도 많은데 목수 같은 미천한 인간이 와 가지고 나에게 설교하고, 무시하고... 사제들과 원로들은 교만이 꽉 찼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가 자기 앞에서 하느님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못 알아본 겁니다. 그래 생각을 바꾸지 않고 마음속으로 죽여야겠다는 생각밖에 없고... 그래 종교 지도자들이나 백성의 원로들은 마음속에 교만이 가득한 거예요.
오늘, 필리서 2장에서 바오로 사도가 필리인에게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라 바오로 사도가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이게 참 어렵지요. 이게 겸손입니다. 겸손이라고 하는 게 뭐냐하면 "예, 예" 이렇게 하는게 겸손이 아니고 마음속으로 저 사람이 나보다 낫다고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겸손이지요.
고개 숙이고 "예, 예"하면서 속으론 하나도 안 받아들이고 내가 최고인데 내가 너보다 못한 게 뭐 있는데 이렇게 하면 그것은 그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마음속으로 내가 잘난것 없다, 저 사람이 나보다 낫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 이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겸손한 자를 하느님은 지극히 사랑하시는데요.
바오로 사도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라"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바오로 사도가 셋째 하늘까지 올라갔다고 고린도서에 기록되어 있어요. "내가 육신을 지니고 셋째 하늘까지 들어갔는지, 내 영혼만 들어 갔는지 그건 난 모르겠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쨌든 셋째 하늘까지 올라가서 하늘에서 굉장한 계시를 받고 다시 정신을 차렸는데 근데 하느님이 너무나 놀라운 것을 보여주고 계시를 줌과 동시에 바오로 사도를 겸손하라고 몸에 가시를 찌르는 듯한 병을 줍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고린도 2서 12장에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은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게 너무 놀라운 계시와 놀라움을 봤으니까 네가 대단한 존재인것처럼 생각하지 말라고 몸에 병을 줬던 거예요.
그래 성바오로 사도가 교만할려하면 몸이 아픈거예요. 가시가 막 찌르는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세번인가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주님 재발 가시가 찌르는 듯한 병을 거두어 주십시요", 세번이나 기도를 했는데 하느님은 그것을 안 들어 주세요. 응답이 어떤 응답이었나면 "나의 약한데서 완전히 드러났다 네가 약한 가시를 찌르는 듯한 고통을 네가 지니고 살아라 약한데서 네 힘은 완전히 들어났다." 그러니까 하느님이 얼마나 교만함을 싫어 하시면 그런 병을 바오로 사도에게 줬겠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손만 대면 남들은 다 치유가 됐어요. 마귀도 쫒겨나고... 근데 정작 자기는 병이 치유가 안 됐어요. 하느님이 겸손하라고 그 병을 주셨고 바오로 사도는 늘 죽을때까지 가시를 찌를듯한 병을 지니면서 겸손에 대해 굉장히 깊이 묵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라, 내가 셋째 하늘까지 갔다오고 굉장한 계시를 받았고 내가 손만대면 사람들이 치유되지만 내가 남보다 나은게 하나도 없구나, 하느님의 은총이 떠난다면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구나라는 것을 바오로 사도는 깊이 깊이 깨닫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남들 앞에서 낮췄어요. 그게 겸손이야요.
겸손이 뭐냐 나 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겸손이다.
구약의 모세도 출애굽기, 신명기에 보면 모세의 인품에 대한 기록이 아주 짧게 나오는데 "이 땅에 모세보다 겸손한 자가 없었다" 이렇게 적혀 있어요. 모세가 80살에 부름 받아서 120살에 돌아 가셨죠. 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는데 모세보다 겸손한 자가 이 땅위에 없었다고 적혀져 있어요. 모세도 하느님과 1대1 대면을 하고, 십계명을 받고, 기적을 엄청나게 이루는 노인이었지만 늘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걸, 깊이 모세도 깨달았기 때문에 겸손을 죽을때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또 구약에 다니엘 예언서를 보면 다니엘 이 사람도 남의 나라에 이끌려가서 네 번이나 대제국 총리를 합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을 꿨는데 해몽을 아무도 못하는데 다니엘이 전부 다 해몽을 다하고 미래의 일에 대해서 일러 주는걸 보고 네가 우리나라의 총리하라고 총 감독관으로 임명을 하는데... 다니엘에게 엄청난 지위를 줬습니다.
다니엘이 워낙 지혜롭고 능력이 뛰어나 줬는데 다니엘은 왕 옆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내는 것이 아니고 대궐 문간에 머물렀다 이렇게 적혀 있어요. 다니엘 2장에 보면은요.... 대 제국의 위대한 직책에 앉았으면서도 다니엘은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어 대궐문간에 종들이 기거하기도 하는 그런 방, 그런데 자기는 머무르게 해달라해서 거기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다니엘도 겸손하게 자기를 비우고 하니까 하느님이 다니엘에게는 모든 걸 비추어주시고 미래에 일어 날 일까지 모든 신비를 볼 수있는 그런 지혜를 주셨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예수님 시대나 이렇게 보면요, 하느님은 정말 겸손한 자들에게 은총을 주고 하느님의 신비를 보여주고 그렇게 합니다.
본당에서 보면요, 그렇게 조용하고 얌전했던 사람이 무슨 "장"자리에 앉으면 목에 힘을 주고 신자들에게 명령하고 심지어 신부님이 보고를 안 한다고 그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교만입니다. - 중략 - 그것은 세상에도 똑같아요 무슨 장자리 하나 맡아봐요 최고의 것 처럼 행동해요. 겸손이 없을 때 그런 겁니다.
겸손한 사람은 장자리에 있든, 돈을 많이 벌든 대단한 위치에 있던 항상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깊이 느끼고 그래서 늘 겸손을 유지해야 되는 겁니다.
마귀라는 존재는 타락한 천사입니다. 하느님이 능력을 많이 줬지만 자기 위에 창조주 하느님이 있는 것을 싫어했어요. 내가 누구에게 명령받고 지시받는 것이 싫다 하고 내가 최고여야 되는데 그래서 하느님께 순종을 안 하여 다른 천사들을 데리고 뛰쳐나온 존재가 마귀입니다. 그래서 마귀의 습성은 교만입니다. 첫째는, 둘째는 불순종이에요. 순종을 하기 싫다 내 뜻대로, 내 멋대로 하고 싶다. 이것이 마귀의 특성입니다.
성모님이 세계 곳곳에서 발현하는데... 파티마, 루드르 등등 보면 성모님이 지구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묵주를 손에 드시고 지구를 밟고 딱 밟는데 근데 지구 위에 뱀 대가리가 있어요. 뱀이 지구를 칭칭감고 대가리를 탁 쳐올리려하는 것을 성모님이 발로 뱀대가리를 밟아 버려요. 탁 눌러가지고 묵주를 손에 들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 뱀대가리 영향을 받아 전부 교만에 차 있다는 거예요. 성모님의 순종으로서 이 마귀의 대가리, 교만의 대가리를 누르는데 많은 사람들이 교만과 불순종에 빠져 살고 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어쨌든 오늘 예수님도 그렇고, 바오로 사도도 그렇고... 바오로 사도는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고 겸손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 겸손하지 않으면 하느님이 그 기도를 물리칩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신비나 빛이나 이런 것을 감춰버려요. 겸손해야지 우리가 많은걸 미사의 신비도 알 수 있고 성체의 신비, 또 내가 기도할 때 하느님이 언제든지 들어주시고 그런거죠.
오늘 겸손에 대해 묵상해 보시고 나는 내 성향은 남보다 낫고 내가 최고고 이런것이 가득하지는 않는가? 또 남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고 이런것이 없는가? 한 번 생각해 보면서 겸손에 대해서 여러분 잘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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