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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지은이 정재찬)

Bravery-무용- 2020. 1. 27. 12:59

시를 잊은 그대에게(지은이 정재찬)

작가의 머리말을 요약합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말합니다. 의술, 법률, 사업, 기술, 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 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가는 목적이라고, 듣기엔 꽤 멋진 말이었지만, 아등바등 살아도 모자랄 판에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면서 잊고 지냈을 겁니다.(생략) 

그 땐 다들 청춘이었으니까요. (생략)

그리움들이 여민 가슴 틈새로 툭 터져 나오고 그러면 그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되는 겁니다.시와 아름다움과 낭만과 사랑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여야 한다는 것을,(생략) 

그들은 의학, 법학, 경영학, 공학 등을 전공하는, 대부분 이미 시를 잊은 젊은이, 아니 시를 사랑하는 법을 아예 배워 보지도 못한 젊은이, 그리하여 시를 읽고 즐길 권리마저 빼앗긴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생략)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그들에게 시의 깊은 맛을 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레시피가 필요했습니다. 가요와 가곡, 그림과 사진, 영화와 광고 등 다양한 재료와 스토리에 시를 버무린 일종의 퓨전 음식이라 할까. 그것을 어 떤날은 살짝 추억에 담갔다가 또 어느 날은 역사와 철학에 곁들여 음미해 보도록 하는 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입니다, 시를 잊은 그들 사이에 즐거움과 감동을 느끼는 눈빛들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생략)

아니 시라고는 당최 가까이 해 본 적 없는 그 누구든, 시를 잊은 이 땅의 모든 그대와 함께 나누고파 이렇게 책으로 펴냅니다. 부디 편한 마음으로 즐겨 주시기 바랄 뿐입니다. (생략)그래도 행복하게 지칠 수 있게 해 주어 참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이 땅의 시인과 나의 제자들, 그리고 휴머니스트 출판 관계자 여러분에게 전하며 그럼 이만, 그간 못 다한 아름다움과 낭만과 사랑을 찾아 떠나렵니다.

2015년 6월 한양에서 정재찬


1. - 가난한 갈대의 사랑노래- 13쪽

박일남이 부른 "갈대의 순정"은 남자가 갈대인지 자기가 떠나보낸 여자가 갈대인지 여전히 모호하고 아리송한 것이다. 여자의 마음을 갈대라고 하는 것이 관습의 편에서 보자면 더욱 익숙하기 때문이다.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제3막에 나오는 저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 호색한 만토바 공작이 의기양양하게 부르기를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한다 하지 않았던가 

신경림의 시 "갈대" 갈대가 운다 그것도 소리 내서가 아니다 나직이 흐느껴 운다. 

산다는 것은 슬픔 것이다. 힘든 것이다. 허무한 것이다. 정말 이 시는 조용하다 그 조용하게 노래하는 폼이야 말로 조용히 우는 갈대를 닮았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요정 시링크스가 자신을 사랑하는 목신(牧神), 그러나 흉측한 모습의 반인 반수 신인 판에 쫓기다 갈대로 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판은 이 갈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며 시링크스를 그리워하지 않았던가 펜플루트 관악기의 이름이 거기서 연원 하였다.  

 

2. - 별이 빛나던 밤에- 31쪽

오! 신이시여! 내 평생 그토록 많은 별은 본 적이 없다. 사막 위의 맑은 하늘 탓일까. 말 그대로 별이 쏟아진다. 별빛은 쉼 없이 내 눈 속으로 달려들고 이내 눈이 시려진다. 이러다 무릎이 꺽일라. 

별이 빛나는 그날 밤 나는 가장 위대한 우주의 서사시, 신의 시를 보았다.

 

어릴 적 내 기억 속, 별에 관한 노래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반짝 반짝 작은 별〉. 그 곡이 〈Twinkle, twinkle, little star)라는 영어 노래의 번역이라든가, ABCDEFG'로 시작하는 알파벳송과 멜로디가 같다든가 하는 걸 알게 된 건 나중 일이다. 원곡이 모차르트의 변주곡임을 알게 된 건 더 나중의 일이며, 그 원곡의 멜로디가 프랑스 지방의 민요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 더 뒤의 일이요. 원제가 아,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Ah, vous dirai-je, Maman 라는 사실은 몰라도 좋을 일이었다. 그게 뭐 중요하랴. 어릴 적엔 그저 '반짝반짝' 할 때는 손과 손목을 뒤틀고, '동쪽 하늘', 서쪽 하늘 할 때는 한 손은 허리에 한 손은 삿대질하듯 왼쪽 오른쪽으로 찔러 대며 몸동작을 하는 것이 중요할 따름이었다. 이 곡에 맞춰 누나가 가르쳐 주는 대로 손을 맞잡고 발을 까딱대며 포크댄스를 추었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시, 노래, 무용이 함께한 이 사태를 두고 뭐라 말하라. 고대 제천 행사 때의 원시 종합 예술, 곧 발라드댄스Ballad Dance가 이런 것 아니었을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노래하고 춤춘 그 시절, 그러니 어린 시절 내 영혼의 불꽃은 별빛 이었으리라  36쪽

방정환의 <형제별>은 별을 인격화하되 어린 형제로 의인화 했다. 

별은 밝고 기쁘기도 하며 슬프고 가슴 아프기도  38쪽하다. 왜일까? 별은 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먼 데서 또 빛이 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난 별에는 또 어떤 것이 있었나. <어린왕자>의 소행성 B-612도 있고, 황순원의 <별>도 있고, 이병기 시조<별>도 있고, 그중에서 우리가 잊지 못하는 별 중 하나는 알퐁스 도데의 <별>이 아닐까 싶다. 알퐁스 도데의 <별>은 남녀가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밤을 지새우는데 별 사건이 없었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소설을 이루는 사건인 것이다. 이렇게 순수한 사랑이 있었구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구나 . 이제 독자들은 감동을 안고 돌아 선다. 자신도 조금 순수해진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별은 역시 순수와 순결의 화신이다.  42쪽

 너 하나, 나 하나. 이는 마치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별 하 나 하나, 별 둘, 나 둘 하며 헤아리는 모습 같다. 예전엔 별을 쳐다 보며 이러는 일이 흔했다. 그걸 노래한 것이 가수 윤형주가 부른 대중가요 <두 개의 작은 별〉이다.

별이 지면 꿈도 지고 슬픔만 남아요

창가에 지는 별들의 미소 잊을 수가 없어요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아침이슬 내릴 때까지       - 윤형주 작사·번안곡, <두 개의 작은 별〉

이 곡은 윤형주와 송창식이 결성한 전설의 듀엣 트윈폴리오가 네덜란드 출신 소년 가수 하인체 heintie의 노래 (두 개의 작은 별 Zwei Kleine Sterne)을 번안해 부른 것으로, 1969년 해체한 후 솔로로 독립한 윤형주가 1972년 다시 노래해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곡이다. 이들의 순수는 알퐁스 도데의 별보다 더 독하다. 이것도 우연일까? '별' 하면 떠오르는 시인으로 누구나 첫손가락에 손꼽는 윤동주尹東柱, 1917~1945가 바로 윤형주와 육촌지간인 것은? 그 역시 '저 별은 나의 별'처럼 별 하나하나에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있었던 게다. 윤동주 <별 헤는 밤> 46~47쪽

사람은 누구나 인정(認定)을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때로는 인정(人情)을 저버리기도 한다.

타인으로 부터 인정 받고 싶은 욕구는 인간을 별의 지위까지 이르게 했다. 연에계, 스포츠계는 물론 군 장성까지 포함해서 '스타'라 불리는 이들이 바로 그런 존재다. 51쪽

스타가 스타인 것은 많은 이가 우러러 보아서가 아니다. 저 한 몸으로 많은 이를 비춰 주기 때문에 스타인 것이다. 이를 착각하면 스타가 되고 나서도 불행해 진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는 자식들의 스타가 되어야 하고, 선생님은 학생들의 스타가 되어야 하며, 의사는 환자들의 스타가 되어야 한다.  가까이에서 서로를 비춰 주는 그런 존재, 우린 그것 하나를 갖고 싶은 것이다. 인정(人情)어린 이들의  인정(認定)을 얻는 것이야말로 참행복이 아니겠는가53쪽

알퐁스 도데의 목동도, 윤동주도 하나같이 외로운 사람들이다. 외롭지 않다면 굳이 밤하늘 별을 헤아릴 이유가 없다.

빈센트 반 고흐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 이듬해 또다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다. 돈 매클레인의 <빈센트> 노래

별은, 밤하늘에 쓴 신의 시니까


3. 떠나는 것에 대하여 59쪽

전성기 때 떠나기란 진짜 힘들고 또 힘든 일이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인용되는 시가 바로 이형기의 <낙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로 시작한다.


4. 눈물은 왜 짠가 81쪽

가난은 슬픔이고 고통이다. 그것이 가장 기초적인 진실이다. 90쪽

우리 각자가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슬픔의 시인 정호승도 우리에게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이렇듯 살뜰히 권하지 않았던가.

<생  략>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정호승,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중에서

희망이 시가 되고, 시가 노래가 된다. 그리고 노래가 다시 희망을 준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들이라면, 출세하지 않아도, 돈이 많지 않아도, 병들어 늙어도, 정녕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우리라.

안치환이 곡을 붙인 정지원 시인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원시를 감상하여 보라. 99쪽

빛이 없어 어두운 것이지 어두워서 빛이 없는 건 아니기에, 빛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어도 어둠이 빛을 몰아낼 수는 없는 것이기에, 우리의 절망과 슬픔은 끝내 소망과 기쁨에 무릎을 꿇으리니.  101쪽


5. 그대 등 뒤의 사랑 103쪽

가정으로 돌아가기 전 효자동에서 하숙 생활을 하던 목월은 <효자동>이란 시를 남기거니와 그 시에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마태복음>5장과 <고린도전서>13장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는 구절이 나온다. <마태복음>5장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로 시작하는 이른바 '산상 설교'의 첫 부분이다. 이 장의 27절부터 32절까지는 간음과 혼인에 관한 석교가 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고린도 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로 유명한 이른바 '사랑 장'이라 불리는 부분이다. 그리하여 역시 하숙 시절에 쓴<뻐꾹새>라는 시에서는 '기도가 눈물처럼'이 아니라 '눈물이 기도처럼 흐른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121쪽

박목월 시, 김성태 작곡의 <이별의 노래>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 리....... 이 시는 어느 여인과의 사랑과 헤여짐  123쪽


6. 기다리다 죽어도, 죽어도 기다리는 131쪽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엔 과연 어떻게 연애를 할 수 있었나....

짧으면 기다림이 아니다, 기다림은 기다랗다. 134쪽

기다림이란희망과 불안의 교차잠이란 것을.... 136쪽

시인은 착어(着語)를 덧붙였다. 착어란 불가에서 공안(公案)에 붙이는 짷막한 평(評0을 가리킨다. 연인을 기다리는 듯한 시를 읽고 난 후, 그것을 화두 삼아 생각을 좀 해 보자는 것이렷다. 136쪽

소망이 있는 한, 기다린다는 것은 정녕 행복한 일이다.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피천득 <기다림>  138쪽

하지만 어릴 적에는 누구나 힘든 게 기다림이다. 동네 야구를 하더라도 사구四球를 기다리느니 휘두르다 삼진 먹고 죽는 편이 나았다. 혹시라도 어쩌다 엄마가 늦게라도 들어오시는 날이면 형제끼리 손을 맞잡고 정거장에 나가 기다려야 했다. 그건 기다림이 아니라 도저히 더 기다릴 수만은 없기에 취한 행동일 뿐이다. 그러니 어릴 때 이런 노래를 듣는 건 슬픈 일이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 한인현 작사 · 이흥렬 작곡, 〈섬집 아기〉 중에서  139쪽

아름답지만 슬펐다. 아니 무섭기도 했다. 엄마가 없는 집도 그럴 판인데, 엄마는 굴 따러, 그것도 섬의 그늘에 가고, 어린이도 아닌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그러다가 결국 혼자 잠이 든다니, 그것도 아기가 제 팔을 베고 잔다니,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쓸쓸하고 불쌍하고 왠지 불안함을 느끼기가 일쑤였다. 엄마를 기다리느라 아기는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까? 아마도 지금 같으면, 이 시의 정황은 부모가 보호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동 유기에 해당하는 죄에 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1절만 알아 그 진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 노래의 압권은 2절에 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 한인현 작사 · 이흥렬 작곡, 〈섬집 아기〉 중에서

자는 아이는 세상모르고 자는 법이다. 울다 잠들어도 일단 곤히 잠들면 아이는 평화롭다. 하지만 엄마 맘은 그렇지 않은 게다. 엄마는 집에 두고 온 아기 때문에 갈매기 울음소리마저 불길하고 거기서 아기의 울음소리를 환청처럼 듣는다. 일할까, 갈까, 일할까, 갈까,., 이런 설렘은 잔인하다. 일을 안 하면 먹여 살릴 수 가 없고, 일만 하면 잘 키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140쪽


7. 노래를 잊은 사람들 155쪽

8. 아버지의 이름으로

소월 김정식의 아버지 김성도는 소월이 두 살 때 철도를 부설하던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몰매를 맞았고 이로 인해 정신 이상을 일으켜 평생을 실성한 사람으로 지냈다. 이런 아버지를 둔 어린 소월의 생활, 그 심정은 어떠했으며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또 어떠했을까? 어린 소월은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생략> 남편을 대신할 자식, 소월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의지는 맹목에 가까웠으리라.  195쪽


-신경림, (아버지의 그늘)

(생략)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중략)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엾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 신경림,< 아버지의 그늘>

이 시에는 아무래도 시인의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 있는 것 같다. 204쪽

아무리 부인해도 내 안에 아버지가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노라 하던 친구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 해도 결국 닮고 만 인생.  207쪽

"아빠!" 그리고 펑펑 눈물이 터졌다. 또 부르고 또 울고, 아버지의 이름을 실컷 불렀다. 죄송해서 한참 슬펐고 감사해서 한참을 행복해 했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고, 어리석게도 우리는 늘 뒤늦게야 이를 깨닫는다.  211쪽


9.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213쪽

10. 겨울, 나그네를 만나다 235쪽

굳이 겨울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쓸쓸하게 비만 뿌려도, 혹은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뭉클거릴 때면, 창밖을 바라보며, 혹은 눈 감고 뮐러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겨울 나그네>를 듣는다.

<겨울 나그네>가 발표된 1827년에 서른셋의 나이로 뮐러가 세상을 떠나고, 바로 그 이듬해 슈베르트도 외로이 눈을 감는다. 237쪽


억울하고 허무하고 속 답답할 때는 이 시를 읽자  251쪽

<귀 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인은 1951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소재였다. 하지만 1952년 문단에 등단하고 1954년 학교를 그만둔 그는 세속적인 소유 개념을 초월한 채 가난하면서도 궁색하거나 비겁하지 않게 술을 얻어 마시면서 자유롭게 살아갔다.

시립 정신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행려병자로 끌려가 수용되어 있었는데 정작 천상병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253쪽

그러려면 무엇보다 우리네 삶을 소풍처럼 살아야 한다. 소풍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기억으로 남는다. 소풍은 노는 것이기 때문이다. 논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속적인 욕망을 초월해야만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행위가 아닌가? 세속적인 욕망을 초월해야만 삶은 그 자체로 유희가 되고 즐거운 소풍이 된다, 모든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나야만 이승에서 행복한 소풍이 이루어지고, 그러한 삶은 천상의 삶과도 다를 바 없이 아름답지 않겠는가?  256쪽

인기 가수 최희준의 <하숙생>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천상병의 <소풍>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

이것이 나그네의 방랑과 소풍의 차이다. 둘 다 집 떠나는 것은 같다. 하지만 전자는 오고 감에 정처가 없고 후자는 분명하다. 그래서 전자는 새로움에 대한 도전의 매력이 있는 반면, 먹을거리 조차 스스로 구해야 하는 고달품이 있고, 후자는 김밥 도시락까지 싸 가는 즐거움이 있는 반면,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만다는 아쉬움이 있다. 나그네에게 소풍은 없다. 257쪽


11. 한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259쪽

12. 깨끗한 기침, 순수한 가래 281쪽

***시와 대중가요, 시와 클레식 음악, 시와 그림 등을 함께 설명하고 해석을 하였고, 모르고 있었던 시인의 성장과정 등이 시를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