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선생과 대덕면 덕산1리 어의정(御醫井)
덕산 1리 마을, 버스 정류소와 망덕정 정자에서 조금 오르면 재실(齋室)인 상덕재(尙德齋) 그리고 위로 마을회관이 나옵니다. 마을회관 건너편에 마르지 않는 샘물 어의정(御醫井)이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어의정은 조선 중기의 의학자로 선조와 광해군의 어의(御醫)를 지냈으며 의서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저술한 구암(龜巖) 허준(許浚) 선생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샘물터입니다.
허준 선생은 1569년에 내의원이 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450년 그 전보다 멀리 어의정과 관계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새롭게 단장한 어의정은 3면을 석축으로 쌓아 올리고, 슁글 지붕은 화강암 초석위에 4개의 나무기둥이 받쳐주어 샘물에 비가 들이치지 않게 하였고, 한 평 반 정도의 샘물 안은 화강암으로 바닥과 벽을 돌려 산뜻하게 꾸며놓아 단장하기 전에 약간은 우중충하게 비쳤던 우물 안의 물이 아주 깨끗하게 보이고, 물은 일정한 양으로 우물에서 넘쳐흐르는데 우물의 물만 보아도 저절로 함지박으로 한 모금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한편 주위는 시멘트로 바닥을 깔아 깨끗하고, 쉴 수 있는 벤치도 2개가 설치되었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단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의정의 소중함을 일고 있는 마을 주민들이 어의정 가꾸기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고 김월환 이장과 김수환 구 이장의 무던한 노력으로 가꾸기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새롭게 단장을 하면서 스테인리스로 만든 안내판에는 어의정(御醫井)의 유래(由來)가 쓰여 있는데요.
내용을 읽어보면 구전(口傳)으로 내려온 이야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구전으로 내려온 이야기를 그 시대를 더듬어 다시 한번 나름대로 정리하여 봅니다.
동의보감의 저자로 조선 한방의 대가 구암 허준 선생께서 젊었을 때 경남 산청에서 한방에 필요한 약초와 의술을 배우고 있던 중, 28세 때인 선조 1년(1567년)에 의과 시험에 응시하기 위하여 산청을 출발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산청, 거창, 지례, 부황 등에서 한양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덕산재를 넘어가야 하는데 대덕 덕산리 마을을 거쳐야 덕산재에 닿습니다.
그래서 덕산리 마을에는 길손들이 쉬어가는 주막집도 있었고 이곳에서는 주막집을 주막담이라 불리는데 그런 주막담(酒幕談)이 근대까지 있었답니다.
지금도 상덕재 도로 건너 약간은 비탈진 곳 안쪽을 마을에서는 주막담이라 부릅니다.
산청을 출발한 허준이 덕산재를 넘어 한양을 가던 중 무풍 부근에서 삼남(三南), 즉 영남(嶺南)·호남(湖南) 및 충청(忠淸) 지방에 병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질이 창궐하여 모든 백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허준은 그런데 왜 지나온 덕산 마을 사람들은 괴질에 걸리지 않고 모두가 건강하게 생활하는가에 의문을 갖습니다. 그래서 다시 덕산마을로와 원인을 찾았는데 단새암 우물에서 찾았습니다.
지독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풍부한 수량의 물이 일정하게 우물을 채우고 그 어떤 우물물보다 물맛이 유독 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그 샘물을 감칠맛 있게 입에 맞아 단새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였습니다.
단은 감칠맛 있게 입에 맞는 좋은 단맛을 가리키며, 새암은 샘의 비표준어입니다.
허준 선생은 백성들을 고쳐야겠다는 마음이 앞서 본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의과 시험을 포기하고 덕산리 마을에 상주를 하여 괴질에 걸린 인근의 대덕, 무풍의 마을 사람들에게 단새암의 물을 마시게 하여 치료하였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허준은 이듬해인 선조 2년(1568년)에 의과 시험에 등과 하였고, 32세 때인 선조 4년(1571년)에는 궁중의 의약(醫藥)을 맡아보는 내의원(內醫院)이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단새암이라는 이름도 샘물의 맛과 어울리는 명칭인데 허준 선생께서 한양 가던 길을 멈추고 덕산마을에 머무르며 괴질 환자들을 돌보며 치료를 하였고, 그 후 어의(御醫)가 된 것을 기리기 위하여 단새암을 어의정이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의학서 "동의보감" 등 많은 의서들은 약식동원(藥食同源) 즉,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다’라고 하였으며, 서양 의학 선구자인 히포크라테스도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음식도 몸을 보호하고 병을 치유하는데 동일한 효과가 있다는 거죠. 제철에 나오는 식재료는 몸에 기운을 일으켜 병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덕산 1리 마을은 어의정의 깨끗한 물과 식재료는 해발 500m 이상 고랭지 청정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이기에 히포크라테스와 허준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지요.
결혼 후 줄 곳 50년 이상을 덕산리 마을에 시시는 이종철 어르신 부인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샘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양의 물이 솟는다고 전해 줍니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이든 계곡의 수량이 줄어들고 특히 샘물은 많은 곳에서 메말라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어의정의 샘물은 현재도 그 양의 물이 솟는 것으로 보아도 그만큼 좋다는 것이지요.
허준 선생께서 많은 백성들을 치료하여 준 우리 마을의 자랑 어의정 더욱 아끼고 가꾸여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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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30일 낮 12시 어의정 현판식
새롭게 단장된 어의정 현판식을 가졌습니다.
현판은 御醫井의 글씨를 선명하게 보이기 위해 흰색을 덧칠한 목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글쓴이는 송곡(松谷) 이도영(李道永)
면장, 농협조합장 등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하여 주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바쁜 하루 틈을 내여 참석하여 축제의 하루를 보냈습니다.
윗 글에는 미쳐 올리지 못한 어의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의정 물은 추운 겨울에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여 물이 차지도 않고 얼지도 않는 답니다.
상수도가 설치되기 전에는 마을 모든 집에서 어의정 물을 이용했다고도 합니다.
祝願文
때는 단기 사천 삼백 오십 이년 시월 삼십일
김천시 대덕면 덕산1리장 김월환
개발위원장 김수환은 삼가 소상하게 아뢰나이다.
덕산우물지신이시여!
만추지절(晩秋之節)에 수백년 동안 덕산마을 주민들의 생명수이자 젖줄이며,
성스러운 단새암에서 지난 9월에 단장을 새로 하고 어의 정이라 이름을 짓고
오늘 이같이 신령께 고함은 유사 이래로 이 고장과 역사를 함께한 덕산의 생명수 우물이
마르거나 넘침이 없게 하시고,
혈맥과 같은 지류를 널리 관장하시어 덕산 유역민이 태평하고 백곡이 풍년들며
산업과 문화가 거침없이 발전하기를 믿고 바라오며,
부족한 예물을 정성으로 드리오니
부디 신령께서는 감응(感應)하시어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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