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리 이곳저곳

아름다운 집, 방초당(芳艸堂)

Bravery-무용- 2019. 8. 30. 14:34

방초당(芳堂) 

꽃다울 방(芳), 풀 초(艸), 집 당(堂)

향기로운 풀이 무성한 집, 즉 아름다운 집

 

 

김천시 대덕면 사무소에서 30번 국도 무주 방향으로 가다 보면 덕산재 못 미쳐에 덕산 1리 마을이 있습니다.

전북 무주에서 넘어올 때는 경상북도 김천시 첫 번째 마을이며 김녕 김 씨 집단 성촌입니다.

방초당은 부락이 형성된 도로 건너편 KT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시멘트 길로 들어서면 휴락 산방(休樂山房)이 나옵니다. 산방 정문 옆을 지나 좌측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처당골 계곡 다리를 건너고 모퉁이를 돌면 좌측에 추자(호두) 밭이 나옵니다. 추자 밭 안쪽에 계곡을 감싸 앉고 있는 곳에 방초당(芳艸堂)이 세워져 있습니다.

7~8평 정도로 기와지붕에 막돌 쌓기를 한 기단 위 초석위에 둥근기둥으로 세워져 있고 마룻바닥과 온돌방 1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량식 때 올린 마룻대에 적혀있는 내용의 뜻을 모두 알 수는 없으나 다음 내용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孔夫子誕降 二千四百八十六年 乙亥二月二十八日) 공부자탄강 2486년 을해 2월 28일 

즉, 1935년 2월 28일에 상량식을 한 것입니다. 83년 전입니다.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되어 있으며 마루 벽에는 여러 선비들의 경차(敬次), 차운(次韻), 원운(原韻) 등의 시문이 걸려있는데 나의 실력으로는 뜻을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3개의 시문 중에 글씨가 가장 선명한 차운을 인터넷 지식 방에 한자음만이라도 알고 싶다고 질문을 하였는데 고맙게도 처음새(翰軠한님)께서 답변을 하여주셨는데 한자음뿐만이 아니라 한자를 판독하고 번역까지 하여주셨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敬次芳草堂韻>

<경차방초당운>

雲翁以今趣能成  此一堂中見士生  聞善人來千里近  分書童曬百家明

운옹이금취능선  차일당중견사생  문선인래천리근  분서동쇄백가명

窓前鳥語催春夢  枕下泉鳴和讀聲  勝日尋芳看竹樂  應傳世世子孫榮

창전조어최춘몽  침하천명화독성  승일심방간죽악  응전세세자손영

秋齋 金輔林 安東人

추재 김보림 안동인

 

<삼가 차운하여 방초당 운을 떼다>

운옹(주희)이 지금에 뜻을 이루었으니

이 당() 가운데 선비들을 보라.

착한 사람 듣고 오니 천리가 가깝고

공부하는 아이 나누어 볕 쬐니 모든 집이 밝네.

창 앞에 새들이 재잘대며 봄 꿈을 재촉하고

베개 아래 샘 소리는 글 읽는 소리와 화합하네.

좋은 날 경개(景槪) 찾고 대나무 보는 즐거움을

마땅히 대대로 자손에게 전하여 영화롭게 하리.

*雲翁(운옹) : 호가 운곡노인(雲谷老人)인 주희(朱熹)를 말함.

 

 

위의 시문이 마루 벽에 편액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에게는 글을 가르쳤고(分書童曬百家明)  선비들은 모여 학문과 휴식을 취하였던 (枕下泉鳴和讀聲) 장소로 이용하였으며, 손님도 맞이하였던 (聞善人來千里近) 곳으로 추측합니다.

한편으론 준공 해인 84년 전 1935년은 일제강점기였기에 뜻있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에 대한 걱정과 독립을 위한 토론도 하였겠지요.

지금은 국도로 깔끔하지만 40~50년 전에는 사람과 우마차 등이 다녔던 길 부근에 주막담이 있어 무주로 넘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마지막으로 쉬어가기도 하였던 곳으로 주막담 주위는 7채 정도의 집이 있었으며 방초당은 주막담이 있었던 마을 위에 세워진 것이지요.

방초당에서 보이는 풍경은 옆으로는 대덕산에서 발원한 물이 방애골과 처당골을 거쳐 흐르며, 길 건너편에는 신선봉이 봉긋한 모습으로 마을을 내려다 보고, 방초당 뒤로는 초점산과 대덕산이 큰 덕을 품고 마을을 감싸 앉고 있는 풍경이기에 산천의 아름다움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마을 분들에게 방초당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주 쉽게 이야기하여줍니다. 돈 많은 마을 부자가 방초당을 짓고 글을 가르쳤다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지금은 방초당 주위로 크게 자란 단풍나무, 전나무 등 아름드리나무들에 둘러싸여 있고, 계곡은 태풍 등으로 많이 유실되어 계곡이 많이 깊어져 사람이 계곡을 내려갈 수 없습니다. 또한 주막담이 있던 곳의 가옥은 도로 건너편으로 옮겨 지금은 3채의 집만이 남아있습니다.

 이제 방초당은 사람의 발길도 끊겨 여닫이 문 한 짝은 떨어져 있고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어 계곡도 신선봉도 보이질 않아 아름답던 옛 풍치를 느낄 수 없습니다.

마을에서 관심을 가져 관리를 하였으면 하는 생각을 갖는 방초당입니다.

 

 

경차(敬次) 공경하며

차운(次韻); 남의 시운(詩韻)을 써서 지음

원운(原韻); 차운할때 운자를 딴시. 차운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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