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잡기(雜記)

제18기 영농기초(귀농)과정 개강식(김천시, 2018. 2. 20)

Bravery-무용- 2018. 2. 22. 18:44

제18기 영농기초(귀농)과정 개강식(김천시, 2018. 2. 20)

<"한 처음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세상은 이제 막판에 이르러 무법천지가 되었다. 너는 전나무로 배 한 척을 만들어라..... 목숨 있는 동물들이 너와 함께 살아남게 하여라! 죽지 않으려거든 떠나거라. 살려거든 어서 달아나거라. 있는 힘을 다해 산으로 피해라. 뒤를 돌아다보면 죽는다."

나는 지금 서울을 떠나고 있다. 서울을 빠져나오고 있다. 충북 단양의 산 위의 마을로 향하고 있다. 떠나야 한다.>

위의 내용은 천주교 신부이신 이기호 신부께서 쓰신 책 "산 위의 신부님"의 첫 번째에 나오는 글입니다. 생애 처음 농부가 되어 산 위의 마을에서 흙을 밟고 살아온 6년간 생활하면서 썼던 글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가 살며 흙에서 얻는 노동의 가치를,

니어링 부부의 책"조화로운 삶"에서는 독립된 경제, 건강,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사는 것이 도시를 떠나는 목표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니어링 부부는 버몬트에서 진정한 조화로운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68년을 살았지만 마음에는 항상 농촌의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나훈아의 "고향역"이나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 등은 노래는 부르지 못하지만 가사내용이 마음에 들어 흥얼댈 정도이지요.

 

김천에 땅을 마련하였습니다.

집을 짓고 주말에나 찾아가는 그런 집이 아닌 주민등록에 주소지까지 옮겨 정착을 염두에 두고 구입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기호 신부의 글이 마음에 닿는 것입니다. "도시를 떠나거라, 도시를 달아나거라, 뒤를 돌아다보면 죽는다."

그리고 영농교육을 받기 위하여 서둘러 접수를 하였고 합격 안내 문자를 받았습니다.

 

2월 20일 8시 30분 조금 서둘러 집을 나서 10시 30분 용산에서 KTX 열차를 타고  11시 58분 김천구미역에 도착합니다.

인터넷에서 김천구미역에서 농업기술센터 방향 대중교통을 꼼꼼히 챙겼는데도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갔습니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버스 타는 위치를 찾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택시를 타고 농업기술센터에 도착합니다. 약 50여분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2018년 2월 20일 

오후 2시 김천농업기술센터에서 제18기 영농기초(귀농) 과정 개강식에 참석합니다.

농촌지도과 오은경 지도사의 사회로 진행이 되었고 전인진 소장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전인진 소장의 인사말이 형식적인 인사말이 아니라 실질적 인사말을 하였기에 귀담아 듣게됩니다.

농업의 "농"자도 아닌 "농"의 "ㄴ"자도 모르는 나에게는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요약하면 심도 있는 교육보다는 폭넓은 교육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며 1979년도에 공무원에 발을 내디뎠는데 현제의 농업은 1979년도와 별 차이가 없다고 하면서 농사는 공장에서 나오는 물건처럼 똑같지는 않기 때문에 철저한 경영과 응용과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표고버섯 등과 같은 재배가 쉬운 농산물은 제값을 받지 못하며 현제 우리나라에는 모자라는 농작물이 없는 것에도 주목을 하여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제는 주먹구구식 농사로는 살아날 수 없기에 작목 선택이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농업시설투자가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가용 노동력 등을 따져 투자를 최소화하여야 한다는 말도 하였습니다.

원 농민은 판로를 찾을 수가 없어 수확한 농산물을 공판장에만 출하하기에 값이 낮아진다. 그런데 귀농인은 도시와 연결이 가능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더욱 값을 높이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말도 하였습니다.

인사말이 끝날 때 나는 정말로 큰 박수를 쳤습니다.

 

2015년 10기 출신인 김천시귀농연합회 이응재 회장의 격려사에서는 "귀농인의 재산은 농업을 모른다."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참고로 오은경 지도사께서 귀농연합회가 운영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설명에 교육생으로서는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김철환 교육인력 계장의 간단한 설명과 김만철 농촌지도과장의 간단한 인사말도 있었습니다. 현제까지 748명이 수료하였다지요.

70시간의 교육을 받으면 어느 정도 궁금증은 풀리겠지만 교육을 받은 748분의 근황이 매우 궁금합니다. 

 

개강식이 끝나고 연암대학교 교수이며 "시골살이 궁리書"의 저자 채상헌 교수의 <귀농귀촌 문답풀이> 시간입니다.

강의를 하기 전 "시골살이 궁리書"를 받습니다. 우선 서문을 읽어 봅니다. 귀농,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눈앞의 안개를 걷어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저자의 서문을 읽으며 집에서 차근차근 읽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빈 수레를 끌고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심정"이 귀농, 귀촌인의 심정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시작하여 2시간여를 진지하면서 현실성 있는 강의를 하였습니다.

귀농인과 귀촌인은 생활비의 조달 방법으로 구분을 나눌 수 있지만 공통점은 "나대로 살고 싶다"는 것이라는 겁니다.

당구대를 비유하여 도시 생활이 당구대 틀 안에서만 살다 지쳤기에 당구대 밖으로 나와 틀 밖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 귀농귀촌인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귀농귀촌을 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첫째, 이유 찾기, 둘째는 소득원 찾기라고 설명을 합니다.

첫 째 이유 찾기는 배우자 등 가족의 동의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며 귀향(歸鄕)이 유배 가듯 귀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소득원 찾기에서 농업을 6차 산업으로 발전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계약재배를 한다든지 가공을 하여 마을 소득으로 발전하여 가치를 확산시켜아 한다고 강조합니다.

1964년도와 지금을 비교하여 설명을 곁들이는데 1964년에 20원 하던 쌀 한 되 값이 지금은 3,000원인데 반해 10원하던 이발비가 지금은 10,000원으로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농촌과 도시에서는 수입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은 수입의 격차를 느끼면서도 농촌을 지킨 농촌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중요하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이 일어난다 하여도 이해를 하며 손잡고 걸어가겠다는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고 설명을 합니다. 동감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가장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관계를 하며 겸손하되 호락호락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교수께서 많은 자료를 준비한 흔적이 역력히 나타났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성공한 농가들을 화면에 보여주며 6차 산업의 중요성을 가장 크게 다뤘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농업, 농촌이야기  짧은 시간이었지만 농업에 "농"자도 몰랐던 나에게는 값지게 느꼈습니다. 

그렇게 첫날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일정을 마쳤습니다.

 

김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농업기술센터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삼각 로타리에 하차, 다시 김천구미역까지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KTX. 개강식에 들었던 내용이 머릿속에 맴돌아 눈도 못 부치고 용산역에 도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