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천주교 네아들 사제에게 보내는 91살 노모의 편지(펌)

Bravery-무용- 2015. 3. 27. 09:59

옮겨온 글]


천주교 네아들 사제에게 보내는 91살 노모의 편지(펌)
16년 전 오세민 신부에게 건넨 아기 저고리와 편지.


"사랑하는 막내 신부님! 당신은 원래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1996. 8. 27. 옷짐을 꾸리며…. 엄마가"

 1996년 8월 27일. 일주일 전 사제품을 받은 막내아들 오세민(춘천교구 청호동본당 주임) 신부가 첫 임지인 홍천본당으로 떠나던 날, 어머니 이춘선(마리아, 91)씨는 오 신부 손에 작은 보따리를 들려주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풀어보라"고 말했다.

 오 신부는 그날 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보따리를 풀어봤다. 보따리 안에는 오 신부가 태어난 지 백일 되던 날 입었던 저고리와 세 살 때 입었던 저고리, 그리고 비뚤배뚤한 글씨로 가득한 어머니 편지가 들어있었다. 편지를 읽던 오 신부의 뺨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국교회 최초의 4형제 신부(오상철ㆍ상현ㆍ세호ㆍ세민)를 길러낸 이 할머니는 지난 40여 년 동안 네 아들 신부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썼다. 아들신부의 영명축일과 생일이면 어김없이 편지로 축하했고, 아들이 행여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 같으면 편지를 보내 '참사제'로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이 할머니는 요즘도 아들신부들에게 편지를 쓰며 한없는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생일을 맞은 오세민 신부에게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를 써 전하기도 했다.

 사제 성화의 날(15일)을 앞두고 이 할머니에게 아들신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이 할머니는 편지에서 "성체를 가까이 하면서 겸손하게 사제생활을 하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이 할머니의 구술을 받아 정리한 편지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사랑하는 아들 신부님들에게.

잘 지내고 있는지요?
나는 바다와 가까운 속초 청호동성당에서 막내 신부님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제성화의 날을 앞두고 아들신부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에 적어 띄웁니다.

 늘 성체를 가까이 하십시오! 적어도 하루 한 시간은 성체조배를 하며 예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성체를 항상 가까이 하며 예수님과 친교를 맺고, 예수님과 사랑에 빠져야 행복한 사제로 살 수 있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성체 앞에서 떼도 쓰고, 하소연도 하고 울기도 하세요.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받아주는 분이십니다.

 사제품을 받을 때는 누구나 예수님을 닮은 사제, 신자들을 사랑하는 사제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처음의 약속은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후배 사제들은 선배 사제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닮습니다. 선배 사제들이 성체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후배 사제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친절하신 분입니다. 성체조배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꾸준히 한다면 사제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하루 24시간 중 1시간을 성체와 함께 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신부님이 매일같이 성체조배를 한다면 신자들도 신부님 모습을 보고 따라할 것입니다. 성체조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얼굴에서 빛이 나고 늙지 않습니다.

 성체 앞에서 꼭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없이 성체를 바라보기만 해도 예수님은 큰 은총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늘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늘 하느님 말씀에 따라 사십시오! 하느님 말씀을 굳게 믿고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야합니다. 교회법과 나라 법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야합니다. 또 교회에서 나온 책들을 많이 읽으십시오. 틈틈이 책을 읽다보면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보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제성화는 사제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해야지만 할 수 있습니다. 매일 정성스럽게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조배를 하고, 성무일도를 하고, 묵주기도를 바친다면 항상 예수님 곁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를 하루 일과 중 하나로 여기고 꼭 지키시길 바랍니다.

 또 신자들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대하십시오! 항상 겸손과 온유로 사람을 대하십시오. 신자들을 대할 때면 항상 말 한 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조심하십시오. 신자들이 신부님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훗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훌륭한 신부'가 되더라도 초심을 잃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끊임없이 기도하며 살아가십시오.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들신부님들과 딸 수녀님 한 분 한 분을 생각하며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신자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사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2012년 6월 3일
사랑하는 엄마가

 

 

2011년 이춘선 씨 구순 축하잔치 모습. 왼쪽부터 6남 오세호 신부, 이 씨, 7남 오세민 신부. 평화신문 제공

며칠 전 종교계 소식을 찾다 한 어머니의 편지에 얽힌 얘기를 접했습니다.

11일 94세를 일기로 선종(善終·별세)한 이춘선 씨의 사연입니다. 슬하의 7남 1녀 중 아들 넷이 사제가 됐고, 유일한 딸도 수녀로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교계에 따르면 한국 가톨릭 최초의 4형제 신부죠.

20년 전, 막 사제품을 받고 강원 홍천본당으로 떠나는 막내아들 오세민 신부(속초 청호동 성당 주임신부)는 어머니로부터 작은 보따리를 받았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풀어보라는 당부와 함께.

“사랑하는 막내 신부님! 당신은 원래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보따리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편지와 오 신부가 백일과 세 살 때 입었던 저고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작은 저고리들은 성직자의 권위가 아니라 자신이 이처럼 작은 존재였음을 기억하고 살아달라는 당부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생전 자녀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또 장례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이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두 번 웃겨 드리라는 당부를 남겼답니다. 그래서 오 신부는 미사 중 갑자기 선글라스를 껴 참석자들에게 잠깐의 웃음을 줬다고 하네요.

 

기자 입장에서 네 신부를 만나 어머니의 삶과 자녀들의 신앙에 얽힌 사연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장례미사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웃겨 달라는 이유도 몹시 궁금했습니다. 한 차례 인터뷰 요청을 거절당한 뒤 26일 오전 오 신부와 통화했지만 “이미 알 만한 분들은 아는 이야기”라며 역시 어렵다는 답만 들었습니다.

저는 답을 들을 수 없었던 그 웃음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오 신부의 어머니에게 죽음은 비종교인들이 느끼는 그것과는 다를 듯합니다. 그분은 선종 전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장례미사에 쓸 성가를 직접 고르기도 했답니다. 독실했던 신앙인에게 아들 넷을 신부의 길로 이끈 현실은 행복한 세계였고, 내세 역시 두려움 없는 삶 아니었을까요? 그러기에 장례하면 떠오르는 슬픔과 눈물보다는 웃음꽃으로 자신의 장례미사를 채우고 싶었으리라 추측합니다. 또 평소 ‘아들 신부님’들에게 낮추는 삶을 강조한 것을 보면 참석자들을 위한 배려도 깔려 있을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하루하루 죽음 속으로 다가서면서도 그 단어를 잊은 듯 살아갑니다. 그러다 갑자기 닥쳐온 불행이나 가까운 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보면서 이를 실감합니다.

막내 신부님! 떠나면서도 웃음을 주고 간 어머니의 삶이 부럽습니다. 그리고 웃음 두 번의 비밀도 여전히 궁금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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