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마지막 소풍

Bravery-무용- 2014. 8. 29. 21:30

                                                   마지막 소풍

 

제가 봉사하러 다니는 호스피스 병동에 할아버지 한 분이 새로 오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하신 장애인이고 할머니는 청각 장애인 입니다. 평생 불편한 몸으로 가난하게 살아왔고, 나이 들어 병으로 또 오랜 시간 누워 계시다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진 지금은 계속 진통제를 맞으며 버티고 계십니다.

기도가 완전히 부어서 음식물을 삼키지도, 소리도 내지  못할뿐더러 스스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지만 청각 장애인 할머니는 초점 없는 할아버지의 눈빛만 보고서도 할아버지가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아십니다.

 

그닐은 날이 좀 찼습니다. 햇볕은 따뜻했지만, 바람이 차서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옷을 낮 시간에 맞춰야 할지 아침시간에 맞춰야 할지 늘 고민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정신이 든 할아버지께서 눈빛으로 아내에게 밖에 나가고 싶다고 하신다는 거예요. "바람이 차요....." 우리는 바람이 차서 안 된다고 했지만, 사실은 전문가가 아니 제 눈에도 할아버지 상태는 아주 나빠 보였습니다. 금방이라도 이별하실 분 같았습니다.

하지만 몇 번이나 할아버지의 의사를 전달하는 할머니의 간절한 눈빛에 우리는 담당 간호사의 허락을 받고 할아버지와 함께 외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랜 병수발에 지쳐 계신 할머니는 그 사이 좀 쉬시라 하고 할아버지를 이동 침대에 옮기고 담요로 꽁꽁 싸매기 시작하니 할아버지는 벌써 눈치를 채고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는 듯 했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사실 지금의 모습이나 조금 전의 모습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오늘은 못 넘기겠다 싶었던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설렘과 희망, 기쁨이 가득한 모습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병실을 빠져나와 병원 긴 복도를 지나니 병원 유리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할아버지는 눈을 감으며 또 웃으셨습니다. 병원 건물 뒤 작은 공원으로 나오니 걱정했던 것보다는 바람이 차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공원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벚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로 침대를 옮겨 맑고 파란 하늘과 만발한 벚꽃을 할아버지께서 잘 보실 수 있도록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벚꽃을 따다가 할아버지 코에 갖다 대며 향기를 맡도록 해드리고, 할머니께 선물하시라고 봄꽃들을 꺽어 할아버지 가슴에 얹어드리며 즐거워 하니 할아버지도 입을 더 크게 벌리시며 자꾸 웃었습니다. 

 

바람이 살랑일 때마다 하얀 벚꽃 잎들이 할아버지 침대 위로, 얼굴 위로 떨어졌습니다. 할아버지 눈위에 떨어진 벚꽃 잎을 살짝 치우니 벚꽃 잎에 할아버지 눈물이 함께 묻어나왔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 아파서 제가 "할아버지 노래 불러드릴까요?"했더니, 함께 봉사하는 자매가 "그래요, 성가 한 번 부르세요."하더군요. 노래엔 영 소질이 없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잘 들으실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의외의 노래에 눈을 동그랗게 뜨던 자매가 씩 웃었습니다. 벚꽃 만발한 나무 아래, 병원 이동 침대를 빙빙 돌며 두 여자가 어깨를 들썩이고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자, 바람이 불어 꽃비가 하얗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공원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지만,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고 동백아가씨를 부를 때는 할아버지가 느낄 수 있도록 침대를 통통 두드리며 박자까지 맞추었습니다. 만개한 벚꽃을 멍하니 바라보시던 할아버지 눈에 굵은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습니다.

나는 노래를 잘 못합니다. 하지만 제 평생 최선을 다해 정말 마음을 다해 불렀던 "동백아가씨"였습니다.

 

`다음에 우리 또 소풍가요 할아버지, 저희 다시 올 때까지 잘 지내세요.` 병실을 나오기 전 할아버지 손을 꼭 쥐고 눈을 맞추는 우리를 향해 할아버지가 해맑게 또 웃었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아마도 이것이 할아버지와 우리가 나누는 마지막 인사가 될 것임을요.

 

글쓴이; 김준희 구델리아 / 제주교구 조천성당

 

 "이냐시오의 벗들" 8월호에 실렸던 글을 컴퓨터자판기로 옮겨온 글입니다.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주교 네아들 사제에게 보내는 91살 노모의 편지(펌)  (0) 2015.03.27
성가정  (0) 2014.12.29
수태고지  (0) 2013.09.29
성서속의 여성 유디스(Judith)  (0) 2013.09.16
코린토서 7장3~4절(혼인)  (0) 2011.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