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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에서 읽은 일상적 내용

Bravery-무용- 2015. 1. 27. 11:33

정진권 수필"짜장면"

짜장면은 좀 침침한 작은 중국집에서 먹어야 맛이 난다.

그 방은 퍽 좁아야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깨끗이 못해야 하고, 칸막이에는 콩알만한 구멍들이 몇 개 뚫려 있어야 어울린다.

식탁은 널판으로 아무렇게나 만든 앉은뱅이어야 하고, 그 위에 담뱃불이  탄 자국들이 검게 또렷하게 무수히 산재해 있어야 정이 간다.

고춧가루 그릇은 약간의 먼지가 끼어 있는게 좋고, 금이 갔거나 다소 깨져 있으면 더욱 운치가 있다.

그리고 그안에 담긴 고춧가루는 누렇고 굵고 억센 것이어야 한다. 식초병에도 다소 때가 끼어 있어야 가벼운 마음으로 손을 댈 수 있다.

방석도 때에 절어 윤이 날 듯하고, 손으로 잡으면 단번에 쩍하고 달라붙을 것 같은 것이어야 앉기에 편하다.

 

이효석 수필"낙엽을 태우면서"

낙엽 타는 냄새같이 졸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얼굴을 붉게 태우면서 긴장된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내 꼴은 흡사 그 귀중한 선물을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막 받았을 때의 그 태고적 원시의 그것과 같을지는 모른다.

**프로메테우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하늘에서 제우스를 속여 불을 훔쳐 인류에게 줌. 그죄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코카서스의 큰 바위에 묶어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게되었으나 후에 헤라클레스에 의해 구출됨

 

김소운 수필"가난한 날의 행복"

가난은 결코 환영할 것이 못 되니, 빨리 잊을수록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하고 어려웠던 생활에도 아침 이슬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회상이 있다.

지난날의 가난은 잊지 않는 게 좋겠다. 더구나 그 속에 빛나던 사랑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행복은 반드시 부와 일치하진 않는다"는 말은 결코 진부한 일편의 경구만은 아니다.

 

여기에 적는 세 쌍의 가난한 부부(夫婦) 이야기는, 이미 지나간 옛날 이야기지만, 내게 언제

나 새로운 감동(感動)을 안겨다 주는 실화(實話)들이다.


에피소드 1

그들은 가난한 신혼 부부(新婚夫婦)였다. 보통(普通)의 경우(境遇)라면, 남편이 직장(職場)으로 나

가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겠지만, 그들은 반대(反對)였다.

남편은 실직(失職)으로 집 안에 있고,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어느 회사(會社)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쌀이 떨어져서 아내는 아침을 굶고 출근(出勤)했다.

"어떻게든지 변통을 해서 점심을 지어 놓을 테니, 그때까지만 참으오."

출근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점심 시간이 되어서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은 보이지 않고, 방안에는 신문지로 덮인

밥상이 놓여 있었다.

아내는 조용히 신문지를 걷었다.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쌀은 어떻게 구했지만, 찬까지는 마련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수저를 들려고 하다가 문득 상위에 놓인 쪽지를 보았다.

"왕후(王侯)의 밥, 걸인(乞人)의 찬……. 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 두오."

낯익은 남편의 글씨였다.

순간(瞬間), 아내는 눈물이 핑 돌았다.

왕후가 된 것보다도 행복(幸福)했다.

만금(萬金)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감(幸福感)에 가슴이 부풀었다.



에피소드 2

다음은 어느 시인(詩人) 내외의 젊은 시절(時節) 이야기다.

역시 가난한 부부였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은 세수를 하고 들어와 아침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시인의 아내가 쟁반에다 삶은 고구마 몇 개를 담아 들고 들어왔다.

"햇고구마가 하도 맛있다고 아랫집에서 그러기에 우리도 좀 사 왔어요. 맛이나 보셔요."


남편은 본래 고구마를 좋아하지도 않는데다가 식전(食前)에 그런 것을 먹는 게 부담(負擔)스럽게

느껴졌지만, 아내를 대접(待接)하는 뜻에서 그 중 제일 작은 놈을 하나 골라 먹었다.

그리고, 쟁반 위에 함께 놓인 홍차(紅茶)를 들었다.

"하나면 정이 안 간대요. 한 개만 더 드셔요."


아내는 웃으면서 또 이렇게 권했다. 남편은 마지못해 또 한 개를 집었다.

어느 새 밖에 나갈 시간이 가까와졌다.

남편은

"인제 나가 봐야겠소. 밥상을 들여요." 하고 재촉했다.

"지금 잡숫고 있잖아요. 이 고구마가 오늘 우리 아침밥이어요."

"뭐요?"

남편은 비로소 집에 쌀이 떨어진 줄을 알고, 무안(無顔)하고 미안(未安)한 생각에 얼굴이 화끈했다.

"쌀이 없으면 없다고 왜 좀 미리 말을 못 하는 거요? 사내 봉변(逢變)을 시켜도 유분수지."

뿌루퉁해서 한 마디 쏘아붙이자,

아내가 대답했다.

"저의 작은아버님이 장관(長官)이셔요. 어디를 가면 쌀 한 가마가 없겠어요?

하지만 긴긴 인생(人生)에 이런 일도 있어야 늙어서 얘깃거리가 되쟎아요."

잔잔한 미소(微笑)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아내 앞에,

남편은 묵연(默然)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가슴 속에는 형언(形言) 못 할 행복감이 밀물처럼 밀려 왔다.



에피소드 3

다음은 어느 중로(中老)의 여인(女人)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여인이 젊었을 때였다. 남편이 거듭 사업(事業)에 실패(失敗)하자, 이들 내외는 갑자기 가난 속에

빠지고 말았다.

남편은 다시 일어나 사과 장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사과를 싣고 춘천(春川)에 갔다 넘기면 다소의 이윤(利潤)이 생겼다.

그런데 한 번은, 춘천으로 떠난 남편이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어도 돌아오지를 않았다.

제 날로 돌아 오기는 어렵지만, 이틀째에는 틀림없이 돌아오는 남편이었다.

아내는 기다리다 못해 닷새째 되는 날 남편을 찾아 춘천으로 떠났다.

"춘천에만 닿으면 만나려니 했지요. 춘천을 손바닥만하게 알았나 봐요. 정말 막막하더군요. 하는 수

없이 여관(旅館)을 뒤졌지요. 여관이란 여관은 모조리 다 뒤졌지만, 그이는 없었어요.

하룻밤을 여관에서 뜬눈으로 새웠지요.

이튿날 아침, 문득 그이의 친한 친구 한 분이 도청(道廳)에 계시다는 것이 생각나서, 그분을 찾아 나

섰지요. 가는 길에 혹시나 하고 정거장(停車場)에 들러 봤더니……."

매표구(賣票口) 앞에 늘어선 줄 속에 남편이 서 있었다.

아내는 너무 반갑고 원망(怨望)스러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트럭에다 사과를 싣고 춘천으로 떠난 남편은, 가는 길에 사람을 몇 태웠다고 했다.

그들이 사과 가마니를 깔고 앉는 바람에 사과가 상해서 제 값을 받을 수 없었다.

남편은 도저히 손해(損害)를 보아서는 안 될 처지(處地)였기에 친구의 집에 기숙(寄宿)을 하면서,

시장 옆에 자리를 구해 사과 소매(小賣)를 시작했다.

그래서, 어젯밤 늦게서야 겨우 다 팔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보(電報)도 옳게 제 구실을 하지 못하던 8·15 직후였으니…….

함께 춘천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차 속에서 남편은 아내의 손을 꼭 쥐었다.

그 때만 해도 세 시간 남아 걸리던 경춘선(京春線), 남편은 한 번도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아내는 한 손을 맡긴 채 너무도 행복해서 그저 황홀에 잠길 뿐이었다.


그 남편은 그러나 6·25 때 죽었다고 한다.

여인은 어린 자녀(子女)들을 이끌고 모진 세파(世波)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커서 대학엘 다니고 있으니, 그이에게 조금은 면목(面目)이 선 것도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춘천서 서울까지 제 손을 놓지 않았던 그이의 손길,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여인은 조용히 웃으면서 이렇게 말을 맺었다.

지난날의 가난은 잊지 않는 게 좋겠다. 더구나 그 속에 빛나던 사랑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행복은 반드시 부(富)와 일치(一致)하진 않는다."는 말은

결코 진부(陳腐)한 일 편(一片)의 경구(警句)만은 아니다.

[출처] 수필감상 : 가난한날의 행복 (김소운)|작성자 모닝

김소운 수필"외투"

내스승에게 물러받은 프랑스제 "콩크링" 요즈음 "파카"나 오터맨"따위는 명함도 못 내놓을 최고급 만년필이다. 일본 안에도 열 자루가 없다고 랬다.

 

주요섭 수필"미운 간호사"

정(情)! 그것은 인류 최고의 과학을 초월하는 생(生)의 향기이다.

 

민태원 수필"청춘 예찬"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신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과 갚은 힘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이상! 우리의 청춘이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이상! 이것이야말로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이다. 사람은 크고 작고 간에 이상이 있음으로써 용감하고 굳세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석가는 무엇을 위하여 설산(雪山)에서 고행을 하였으며, 예수는 무엇을 위해 황야에서 방황하였으며, 공자는 무엇을 위하여 천하를 철환(轍環)하였는가? 밥을 위하여서, 옷을 위하여서, 미인을 구하기 위하여서 그리하였는가? 아니다, 그들은 커다란 이상, 곧 만천하의 대중을 품에 안고 그들에게 밝은 길을 찾아주며, 그들을 행복스럽고 평화스러운 곳으로 인도하겠다는 커다란 이상을 품었기 때문이다. 

이상! 빛나는 귀중한 이상! 그것은 청춘이 누리는 바 특권이다.

피천득  수필"송년"

새색시 김장 삼십 번만 담그면 늙고 마는 인생. 기쁨과 슬픔을 많이 겪은 뒤에 맑고 침착한 눈으로 인생을 관조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나는 일입청산만사휴(一入靑山萬事休)라는 글귀를 싫어한다.

****一入靑山萬事休 한 번 청산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만사가 다 끝이란 뜻

"할아버지"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를 처음 듣고 나는 가슴이 선뜻해졌다. 그러나 금방 자연에 순응하는 미소를 띠었다. 나는 "노대가(老大家")는 못 되더라도 "호호옹(好好翁)이 되겠다. 

 

정진권 수필"비닐우산"

차가 M 정류소에 설 때였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는데 정류소엔 우산꽃이 만발해 있었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들딸들, 오빠나 누나를 기다리는 오누이들, 남편을 마중 나온 아낙네들일 것이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용하게도 그를 맞으러 나온 우산을 찾아네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60,70년대에 이런 풍경도 이제는 찾을 수 없다.전화도 흔치 않았던 시절 때맞추어 마중나가는것도 쉽지는 않았을 텐데)

 

장영희 수필"약속"

태어남은 하나의 약속이다. 나무로 태어남은 한여름에 한껏 물오른 가지로 푸르름을 뽐내라는 약속이고, 꽃으로 태어남은 흐드러지게 활짝 피어 그 화려함으로 이 세상에 아름다움을 더하리라는 약속이고, 지믕으로 태어남은 그 우직한 본능으로 생명의 규율을 지키라는 약속이다. 그 중에서 인간으로 태어남은 가장 큰 약속이고 축복이다.불가에서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 인간으로 태어날 가능성은이야말로 넓은 들판 가득히 콩알을 널어놓고 하늘 꼭대기에서 바늘 한 개를 떨어뜨려 콩 한 알에 박히는 확률과 같다고 한다.

미움 끝에 용서할 줄 알고, 비판 끝에 이해할 줄 알며, 질시 끝에 사랑할 줄 아는 기적을 만드는 일이다. 

 

김국자 수필"고려장"

동물의 세계를 보면 늙고 병들면 자연히 무리에서 도태되어 혼자 조용히 죽음을 맞고 있다. 인간만이 늙어 가는 부모를 돌보며 죽음의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효도라기보다는 사랑의 의식이라고 보고 싶다.

 

맹난자의 수필"산책"

예순 살을 인도에서는 "산으로 가는 나이"라고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나이가 된 것이다. 스스로 하나의 자연이 되어야 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휴지기休止期를 맞아 온 산의 물을 퍼내고 숨을 고르는 저 겨울산처럼 가쁘지 않은 호흡으로, 조용히 숨결부터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하리라.

몸이 늙으면 마음도 몸의 속도를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