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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에서 읽은 계절(봄,여름,가을,겨울)

Bravery-무용- 2015. 1. 28. 15:42

피천득수필 "봄"

"인생은 사십부터"라는 말은, 인생은 사십까지라는 말이다. 그러니 사십부터는 여생인가 한다. 사십 년이라면 인생은 짧다. 그러나 생각을 다시 하면 그리 짧은 편도 아니다.

녹슬은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건을 못 사는 사람에게도 찬란한 쇼윈도는 기쁨을 주니, 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왕궁에 유배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아- 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워 오는 봄!

 

이상 수필"권태"

너무나 더웁다. 나뭇잎들이 축 늘어져서 허덕허덕하도록 더웁다. 이렇게 더우니 시냇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어 보는 재간도 없으리라.

겨울이 오면 초록은 실색(失色)한다. 그것은 남루를 갈기갈기 찢은 것과 다름없는 추악한 색채로 변하는 것이다.

 

김진섭 수필"백설부(白雪賦)

나는 겨울을 사랑한다. 겨울의 모진 바람 속에 태고의 음향을 찾아 듣기를 나는 좋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어라 해도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시는 백설

온 천하가 얼어붙어서 찬 돌과 같이도 딱딱한 겨울날의 한가운데, 대체 어디서부터 이 한없이 부드럽고 깨끗한 영혼은 아무 소리도 없이 한들한들 춤추며 내려오는 것인지, 비가 겨울이 되면 얼어서 눈으로 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손광성 수필"아름다운 소리들"

겨울은 무채색의 계절. 자연은 온통 흰색과 검정으로 수렴된다.

 

이양하 수필"신록예찬"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박연구 수필"신록의 여인"

덥지도 춥지도 않은 5월이야 말로 내게는 가장 좋은 달에 속한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신록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네 번 꽃을 피운다. 첫 번째는 물어볼 것도 없이 문자 그대로의 꽃이요, 두 번째는 잎이라는 꽃을 피우고, 세 번째는 단풍이란 꽃이고, 마지막 네 번째는 겨울의 잎 없는 가지의 눈꽃(雪花)를 말함이다. 우리가 신록 속에 있으면 영원히 젊음을 간직할 것 같은 안정을 얻는다. 이 맑은 물과 푸른 숲에서 하루를 즐긴다는 것도 그만큼 행복을 소유한 셈이 된다. 나는 그 여인의 옷 빛깔보다도 더욱 밝고 아름다운 신록의 미를 여인의 마음에서 보는 것만 같았다.

 

고재종 수필"감탄과 연민"

눈 들어 산을 바라보면 연두 초록 마구 번지는 사이로 산벚꽃, 철쭉꽃, 조팝꽃이 제 황홀을 터트린다. 보리밥 서리서리 물결치는 그 곁에 자운영, 민들레, 제비꽃은 또 꽃수를 놓고,

산벚꽃의 휘황함이요, 철쭉꽃의 정열이요, 조팝꽃의 떨림이라 했던가, 민들레의 미소요, 자운영의 유혹이요, 제비꽃의 교태라 했던가, 무릇 영산홍의 출중함과, 금낭화의 붉은 입술과, 홍도화의 귀기어린 관능을 보아라. 그 색깔과 향기의 길에 한번쯤 푹 빠져본다 한들 부처님이라도 어디 나무랄쏜가.

 

김훈 수필"가을 바람소리"

가을에는 오리나무 숲을 흔드는 바람소리와 자작나무 숲을 흔드는 바람소리가 다르다. 오리나무 숲의 바람은 거친 저음으로 폭포처럼 흘러가고 자작나무나 은사시나무 숲의 바람은 잘 정돈된 고음으로 흘러간다.

겨울의 바람은 사람을 낮게 움츠리게 하지만, 가을의 바람은 사람의 마음을 이 세상과 마주 서게 한다.

바람 부는 가을날, 모든 잎맥이 바람에 스쳐서 떨릴때, 나는 내 몸속의 바람을 가을의 바람에 포개며 스스로 풍화를 예비한다. 악기가 없더라도 내 몸이 이미 악기다. 가을에는 그러하다.

 

반숙자 수필" 쑥 뜯는 날의 행복"

나물도 조급하게 뜯으면 재미가 없다.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뜯어야 나물 뜯는 삼매경에 접어든다. 고운 꽃을 아픔 없이 본다는 게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바람이 청정해서 호흡선을 해 본다. 그리고 어느 선승처럼 조용히 뇌어 본다."숨을 들이마시면서 내 몸을 안정하고, 숨을 내 쉬면서 웃음을 띠웁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순간이 경이로운 순간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최운 수필"바람 부는 날의 산조"

정작 견디기 어려운 것은 추위가 아니라 바람이다. 미운 작부처럼 속속들이 파고드는 바람, 그것은 마음을 저미는 비수요,가슴을 후비는 송곳이다.

방향감각을 잃은 겨울 바람은 프로빈시아의 오후를 마냥 흔들어 마음의 안정을 못내 방해란다.

 

김유진 수필"7월을 닮은 남자"

7월은 살아 있는 그 어떤 것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초록은 보다 원숙해 지고 열매는 더욱 단단해지며, 곤충이나 동물들은 부지런히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허물을 벗는다. 1년 중 생명력이 절정에 이르는 시간, 바로 7월이다.

 

손광섭 수필"이 가난한 11월을

11월은 가을이 아니다. 겨울도 아니다. 11월은 늑가을과 초겨울이 만나는 그 언저리 어디쯤이다.

11월이 되면 마음이 먼저 길을 떠난다. 무엇을 잃을 것 같아 차표를 사고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밤차에 몸을 싣는다.

추수가 끝난 빈 들판, 로버트 오웰의 우수어린 눈빛 같은 하늘, 조금은 수철해 보이지만 슬퍼 보이지 않는 ㅇ 가난한 11월을 나는 사랑한다.

12월은 언제나 후회속에 보내야 했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이룬것이 없는데 시간은 벌써 저만치서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정월과 2월은 너무 추웠다. 3월은 언제나 스산한 바람, 4월과 5월은 1년 가운데 제일 아름다운 달이요 기대와 희망의 달이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불안한 달이었다. 4.19와 5.16이 들어 있는 달,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달, 4월과 5월은 꽃이 피게도 하고 또 지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