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2011년)

장수대에서 대승령 그리고 십이선녀탕 가을을 느끼며 걷다

Bravery-무용- 2011. 10. 8. 18:24

2011.10.2

설악산, 장수대-대승폭포-대승령-십이선녀탕-남교리

태화산우회

 

9시 조금 못미쳐 인제군 북면 한계리 장수4교앞 설악산국립공원 장수대 분소에 도착하였다.

해발480M.

장수대(將帥臺)는 1959년 옛 한계사가 있던 절터에 한국전쟁때 전사한 국군병사들의 명복을 빌고 넋을 달래기 위해 지어진 산장이름이다.

소나무숲에 둘러 쌓여있는 장수대분소는 많은 차량들로 붐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높고 맑은 푸르른 가을하늘이다.

좋은 산행을 예감한다.

주차장에서 차량을 정리하고 있는 국립공원 직원으로 부터 한계천건너로 보이는 봉우리에 대하여 설명을 들으며 주걱봉을 확인하고 주걱봉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가리봉과 우측으로 삼형제봉이 있지만 보이질 않는다 한다.

대승령을 향하여 장수대분소옆 입구로 들어선다.

소나무숲에 돌길따라 오르며 다리를 하나 건너면 좌측으로 옥색의 작은 소(沼)를 만나고 조금만 더 오르면 사중폭포다.

돌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면 주걱봉이 선명히 보이는데 주걱봉은 대승폭포 전망대까지 계속 보였다.

소나무숲사이 테크계단을 오르다 힘이들면 계단참에서 다리쉼도하며 쉬엄쉬엄 오른다.

앞에 보이는 전망대 뒤로는 천길직벽의 뼝대에는 소나무들의 모습이 보이는 경관이다.

뒤를 돌아보면 보이질 않았던 가리봉과 가리능선이 가을하늘과 선을 긋고있고 주걱봉은 당연히 보인다.

뒤돌아 풍경을 바라보며 한걸음씩 계단을 올라야 힘이 덜 부친다.

테크계단까지 뻗어내린 소나무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며 오르면 전망대에 닿는다.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테크계단이 보이고 더 아래로는 장수대분소와 계곡과 계곡사이 굽잇길은 한계령가는 길이다.

위를 올려보면 깍아지른 암벽옆으로 소나무에가려 대승폭포는 윗부분만 보인다.

전망대에서 위부분만 보이는 대승폭포를 향하여 테크계단을 오르면 두 송이 바위구절초가 바위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해발 780M 대승폭포앞이다.

장수대보다는 300M가 높고 장수대에서 900M지점에 있다.

산악회에서 당초에 계획했던 무박 산행이었다면 새벽4시 조금지나 이곳에 도착하였을 텐데 어둑하여 가리봉, 주걱봉과 대승폭포의 모습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2007년5월에는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을 걷고 대승령에서 내려오면서 만났던 대승폭포 오늘 두 번째 만남인데 떨어지는 물의 수량은 많이 줄어 들었다.

폭포의 높이는 88M며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 천마산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폭포다.

 

2007년도 산행기에도 대승폭포에 대하여 적혀있지만 다시 옮겨보면

이중환의 택리지에"한계산(설악산)에는 만 길 되는 큰 폭포가 있있는데 옛날 임진년에 당나라 장수가 보고서 여산폭포보다 훌륭하다 하였다" 고 적혀있다.

 

노산 이은상선생의 "설악행각(雪嶽行脚)"에서 대승폭포에 관한 글이 쓰여져 있는데  옮겨본다.

 

<어허! 장엄(莊嚴)한 자여.

어허! 웅려(雄麗)한 자여.

어허! 천장 신교(天匠神巧)로라도 애쓸대로 애써 된자여.

어허! 열민 중생(熱悶衆生)으로 하여금 지도론(智度論)의 소위(所謂)"랭연청료무복열뇌(冷然淸了無復熱惱)"를 맛보게 하는 자여.

그래 네가 누구? 네 이름이 무어?

가로되 "설악산"

그리고는 또?

가로되 "대승폭"

과연 만장(萬丈) 대승폭이 천심(千尋)에 허락(虛落)하는 신비(神秘)한 대광경(大光景)을 대안(對岸) 암상(岩上)에서 건너다 보는 때에, 그대로 광희(狂喜)에 몸과 마음 둘 곳을 모릅니다.(1933년 가을)

 

만장 저 암벽이 솟아 어디 닿았는고

떨어져 오는 근원 우러봐도 모를러니

천심에 운림이 어려 밑을 또한 못 볼러라.

 

흰 허리 문득 끊여 연기되고 구름되고

날려 저 흩뿌릴제 비 되고 바람 되고

그 속에 산무지개 들어 춤을 추며 돌더라.>

 

안내판에는 죽어서도 아들 대승이의 위험을 가르쳐준 어머니의 외침이 매아리 친다하여 대승폭포라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전설내용이 적혀있다.

낙수구위쪽 가운데에 솟은 봉우리의 모습도 폭포와 어울리고 적갈색의 직벽에서 물의 양은 적지만 거침없이 곧바로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전망대 너럭바위에는 조선시대 명필가인 양 사언의 구천은하(九天銀河)가 새겨져 있는데 하늘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은하수와 같다는 뜻이란다.

 

폭포 전망대에서도 가리봉과 주걱봉은 뚜렷히 보이나 삼형제봉은 산줄기 너머에 있기에 보이질 않는다.

대승폭포에서 대승령까지는 1.8Km 남았다.

계속 가팔지게 오르지만 적당히 불고있는 바람에 땀방울은 많이 흐르질 않는다.

돌길도 걷고 돌계단을 오르며 계곡의 다리를 몇 번 건너면 해발952M 지점을 지난다.

숲은 전나무숲으로 바뀌면서 대승령까지는 0.9Km남았다.

아내에게 0.9Km남았으니 힘을 내라하니 산에서 900M가 얼마나 먼지 아느냐며 투털대면서도 잘 오르고 있다.

오를수록 낙엽송의 이파리들은 조금씩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고있다.

해발 1,132M표시점을 지나면 대승령까지는 78M를 오르면 된다.

마지막 힘을낸다 감투꽃도 격려를 하여주고 있다.

드디어 해발 1,210M 대승령이 올랐다.

장수대에서 부터 약2시간을 발품하였다.

먼저 올라온 산우들 그늘에 자리잡고 먹거리를 즐기고 있는데 뿌리치고 먼저 사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 공원직원으로 부터 설명을 들으며 나침판으로 지도보는 법도 배운다.

올라왔던 남쪽방향은 나무에가려 잘 보이진 않지만 가리봉과 주걱봉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서북능선상의 귀때기청봉이 앞봉우리 뒤로 보이고 북으로는 백담지구가 그리고 멀리는 황철봉이다.

서쪽으로는 바로앞 둥그스름한 봉우리 뒤로 안산의 암봉이 빠꼼히 보인다.

쉬고있는 산우들이 자꾸만 부른다 내몫의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대청봉 12.7Km, 장수대 2.7Km, 남교리 8.6Km 이정표에서 남교리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오르는 숲길에는 초록의 나뭇잎사이로 붉게 물든 단풍나무도 보이고 뒤돌아보면 귀때기청봉에서 중청 그리고 대청봉이 보인다.

대승령에서 안산앞에 보였던 둥그스름한 봉우리위에 섰다.

대승령에서 이곳까지 1.0Km인데 오르막길이라 30분을 걸었다.

왼쪽으로는 안산가는 길이지만 출입금지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내려가면 좌측으로 안산 봉우리가 보인다.

능선끝 쉼터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해발 1,360M에 대승령에서는 1.3Km거리상에 있다.

능선끝 쉼터가 대청봉에서 시작되는 서북능선의 끝지점인 셈이다.

대청봉에서 중청, 귀때기청봉 그리고 대승령지나 안산을 이어지는 약 18Km의 능선을 설악산 서북능선이라 한다.

.

능선끝 쉼터에서 이리저리 전망좋은곳을 찾아 서북능선의 봉우리를 바라보며 대청까지 이어진 능선길을 벅찬가슴으로 바라본다.

중청 좌측으로 뻗어내린 용아장성도 가늠할 수 있다.

 

능선끝 쉼터에서 부터는 내려가는 길이다.

내려가는 길 좌측으로는 안산 봉우리가 보였다 숨었다를 반복하는데 파란 가을하늘아래 고사목과 울굿불굿 물들어가는 단풍나무 그리고 초록잎의 나무들 위로 보이는 안산의 암봉은 가을의 정취가 가득 담겨져 있다.

돌계단은 조심조심 내려가야 한다.

이곳 저곳 작은 골짜기의 물이 흐르고 내려 갈수록 골짜기는 넓어지며 계곡을 만들고 있는데 계곡의 검푸른바위는 이끼옷을 입고 자연 그대로 흐트러져 있다.

검푸른 바위에서 두줄기로 쏟아진 물이 작은 소를 만들고 있는데 햇살이 비치어 윤슬이 반짝이며 물속도 훤히 들여다 보인다.

대승령에서 2.6Km걸었고 12선녀탕입구까지는 6Km가 남았다.

가을햇살이 나뭇잎사이로 떨어지는 돌길을 내려가다 짙게물든 단풍나무앞에서는 걸음도 멈추고 둥치속이 텅빈 거목앞에서는 둥치속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다리도 건너고 테크계단도 내려가니 산우들 너른바위에서 배낭도 내려놓고 다리쉼을 하고있다.

대승령에서만 보였던 아내도 함께있다. 

아에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진수성찬이 되었다 30여분을 머물렀다.

 

계곡따라 내려오다 조그만 소를 만나는데 어쩌면 그리 맑은 옥색을 띨수 있을까.

햇살이 비치니 옥색의 물은 아름답게 춤을 춘다.

 긴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 중간쯤에서 위로 보이는 계곡과 아래로 보이는 계곡의 모습을 담는다.

아름드리 고사목이 길위에 쓰러져있는 돌길을 내려오면 12선녀탕입구가 5.0Km남았다.

12선녀탕계곡과 산비탈면사이의 긴 테크길을 내려가면 투박하면서 검푸른색의 계곡바위가 매끈한 흰색의 암반으로 바뀌면서 두문(杜門)폭포앞에 닿는다.

매끈한 암반에서 거침없이 떨어진 폭포수는 탕을 만들고 있는데 용탕이다.

해발 920M에 있는 용탕은 남교리에서 올라오면 제일 위에 있는 마지막탕으로 십이선녀탕이란 명칭이 붙여진 마지막 탕이다.

선녀가 목욕하는 곳이니 누구나 들어가서 목욕하고 싶은 곳 그러나 몇 년전 폭우의 영향으로 탕안에는 잔돌이 보인다.

수많은 세월동안 하상작용에 의해 바위를 깍고 깍아 오목하고 깊은 구멍의 탕이 만들어진 것이다.

용탕에서 조금만 걷다보면 탕중에 탕 복숭아탕에 도착했다.

위에서 흘러내린 물이 복숭아모양의 탕에 잠겼다가 다시 아래로 흐른다.

선녀가 목욕하는 물이니 당연히 탕안의 물이 옥색을 띠고있다.

 

십이선녀탕계곡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내용은 이렇다.

<십이션녀탕 계곡은 열두개의 물웅덩이와 열두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개수는 계절,수량,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며, 노산 이 은상은 8폭8탕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예전에는 암반이 패여 만들어진 물웅덩이나 소(沼)가 많다하여 탕숫골,탕수돈(湯水洞)이라 불리었으며, 여러 물웅덩이중 하나인 "용탕(龍湯)"은 뒷벽의 큰바윗굴(龍穴)에서 용이 나왔다하여 가뭄이 계속되면 기우제를 올렸던 곳으로, 그 모양이 복숭아와 비슷하다하여 "복숭아탕"이라고도 불린다.>

보통 폭포아래 고인물을 담(潭), 연(淵)이라 하는데 이곳에서는 큰 반석이 둘러패어 큰 항아리 모양으로 확을 만들어 탕이라 부르는것 같다.

 

노산 이 은상 선생은 설악행각에서 이곳의 탕모양을 보며 다음과 같은 시구를 남기셨다.

 

천만년 큰 공들여 탕을 여기 파내시고

사람 짐승 다 못들게 하시거늘

눌 위해 이 맑은 옥수(玉水) 밤낮 괴어두시는고.

 

송림에 높은 달이 하늘 먼길 가올ㅅ적에

이탕에 잠깐들어 쉬어가라 하심이리

원컨대 이 허울벗고  나도 달이 되옵고자.

 

떠도는 구름 송이 떠오고 떠가다가

뜬채로 여기들어 근심없이 춤추나니

차라리 이 허울 벗고 구름이나 되옵고자.

 

공산(空山) 나무나무 떨어지는 마른잎도

마지막 거두어서 고이 씻어 보내시네

슬프다 사람된 한을 예와 다시 알것구나. 

 

십이선녀탕 직벽위의 테크계단따라 내려가다 또 한번 넓은 반석에서 계곡의 물소리를 안주삼아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반석에 앉아 위를 올려보면 능선 너머로 둥그런 암봉이 보인다.

다리쉼을 끝내고 다시 다리를 건너고 얼마쯤 내려가면 응봉폭포가 보인다.

미끈한 암반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면 아래는 옥색의 소를 만들고 있다.

십이선녀탕계곡과 함께 내려가는 길은 수 없이 계곡위 다리를 건너다 산길을 벗어나 우측으로 들어서면 1968년 10월에 7명의 산우들이 잠들었다는 위령비가 있다.

나 고등학교 2학년때 일이다.

잠시 고개를 숙인다.

위령비에서 15분정도 내려오면 설악산남교리분소에 도착하여 산행을 끝낸다.

오후 3시40분이다. 6시간40여분을 장수대에서 대승폭포, 대승령, 십이선녀탕계곡과 함께하였다.

꼭 가보고 싶었던 십이선녀탕 푸른 가을하늘에 울긋불긋 물들어가고 있는 설악의 정취에 흠뿍 빠졌던 산행이었다.

 

산행 후 음식점 십이선녀탕 쉼터에서 더덕을 안주로 강냉이막걸리로 산행의 피로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