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2011년)

예향천리 금강변 마실길(서면마을에서 하굴암마을까지)

Bravery-무용- 2011. 9. 22. 11:58

2011.9.18

서면마을-늘목삼거리-요대마을-잠두마을-벼룻길-굴암삼거리

태화산우회

 

예향천리 백두대간 마실길은 장수군은 뜸봉샘에서 오암까지 50Km를 무주군은 서면마을에서 마암마을까지 42Km를 말한다.

오늘 태화산우회와는 예향천리 백두대간 마실길중 예향천리 금강마실길로 그 중에서도 일부구간을 걷는 계획을 잡았다.

 

전북 무주읍 대차리 서면마을에 9시10분경에 도착하였다.

앞에는 비단을 닮은 강 금강이 흐르는데 강 건너는 충남 금산군 방우리다.

서면마을은 무주에서 금산으로 가는 대로와 연결되는 소이진 나룻터가 있었던 유서깊은 곳으로 용포교가 가설되기 전에는 버스와 우마차를 싣고 건너는 진풍경을 볼수 있었던 곳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높은 명망을 우러러 본다는 뜻을 지닌 망풍정(望風亭)이 금강을 내려다 보고 있고 물레방아아래는 섶다리가 놓여있는데 섶다리놓기의 풍습은 지금까지도 전해오고있다 한다.

서면애향비와 마을의 주요 연표도 세워져있으니 서면주민들의 마을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1600년경 금산군수 이안눌이 이곳 풍광을 담은 <땅은 그윽하고 산은 더욱 기이하고 아름다워>로 시작되는 "소이진 에서"시구가 화강암에 석각되어 세워져 있다.

 

일부러 도로에서 내려가 섶다리위를 걷고  다시 도로로 올라와 마실길로 들어선다.

금강과 함께 걷다가 도로가 휘어지면서 남대천과 함께 걸으면 멀리는 통영 대전고속도로 교각이 보인다.

남대천은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구천동 계곡 33경을 이루며 흘러내려 무주를 거쳐 금강으로 흘러든다.

가을과 함께 과수원에서는 사과가 논에서는 벼이삭이 영글어가고 있다.

남대천위 서면교를 지난다.

강둑위를 걷는 길은 넓은 비포장도로다.

마을주민에게 금강 건너의 앞산의 이름을 확인한다.

멀아우산이다.

멀아우산 뒤로는 보이진않지만 금산의 갈선산이란다.

금강과 남대천이 만나는 가장 가까운 두물머리에서 바라보면 강폭은 아주 넓어지고 강가에는 잡풀이 무성하고 강 중간에는 자갈과 모래가 쌓여 모래등을 만들어 놓았다.

멀아우산이 버티고있는 두물머리에는 두 강이 만나 산을 휘돌며 북으로 흘러간다.

어느덧 서면마을은 강건너 멀리 달아났다.

4륜바이크를 즐기는 한무리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교각아래를 지나면 늘목삼거리에 닿는다.

장수,무주와 진안,안천 그리고 금산으로 갈라지는 새로운 37번 국도상에 있는 삼거리다.

삼거리에 금강식당이 있는데 막걸리 한 사발씩만 마시기로 하였던 것이 부침개가 맛있어 5명이 막걸리 한 병씩을 마셨다.

용포교다리를 건넌다.

용포(龍浦)의 지명은 부남면을 거쳐 내려오는 금강물이 용처럼 꿈틀거리며 흐르는 곳으로 옛적에는 금산으로 건너가는 나루가 있어 지어진 지명이다.

새로운 37번국도 용포교다리를 건너면서 중간쯤에서 좌측을 보면 지명이름에 걸맞게 산따라 용처럼 휘어져 흐르고 우측 아래로는 옛37번 국도다리가 내려다 보이고 높게는 대전통영간고속도로 다리가 보인다.

더 멀리는 서면마을이 보일듯하나 안개때문에 보이질 않는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우측으로 안요대마을 내려가는 길이다.

사과밭은 빨갛게 감나무에는 노랗게 물들어 가는 풍경을 보며 37번국도따라 걸으며 외요대버스정류소를 지나면 요대마을이다.

요대(要垈)마을의 유래는 "늘목"나루와 "소이진"나루가 모두 이 마을에 닿아 있었고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서 큰물이 내려와도 금산을 왕래하는 행인들이 안심하고 건널수 있었던 요긴한 땅이었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검정차광막이 질서있게 펼쳐진 인삼밭도 보이고 길섶에는 들국화가 흐트려 피어있다.

오늘 걷는 길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의 교각을 여러번 만난다.

37번국도에 용포리와 벼룻길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우선 용포리로 들어선다.

금강위 오래된 잠두교 다리위 중간쯤에 선다.

산그림자가 소리없이 도도히 흐르는 금강위에 비친다.

강을 경계로 좌측으로는 잠두마을이고 우측 초록의 숲사이로 흑갈색의 바위들이 보이는 산봉우리들 길게 이어져 있다.

다리를 건너면 나무둘레가 6M나되는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보호받고 있는데 새끼줄이 둘러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당산나무같다.

느티나무의 수령은 300년에 높이는 16M다.

또한 느티나무옆으로는 국토의 높이(표고,해발고도)를 측량하기위한 수준점이 표시되어 있는데 표고는 181M다.

잠두교 빗돌은 35년전에 세워진 것으로 육지속의 섬마을이 잠두교가 준공되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적혀있다.

또한 잠두(蠶頭)마을을 알리는 빗돌에는 누에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잠두마을은 뒷산인 조항산에서 북으로 뻗어내린 능선이 일곱개의 봉(峰)을 이루며 마치 누에모양을 하고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사실적으로 잠두마을은 가난한 마을이었는데 누에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부촌으로 탈바꿈 되었다 한다.

버스정류소를 지나 아스팔트도로를 걷다 벼룻길이 아닌것 같아 몇몇 산우들 되돌아 잠두1교를 지난다.

잠두1교를 지나며 보면 늘목삼거리와 같이 3개의 다리가 있는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다리는 높게 세워져 있고 옛 잠두교는 잠수1교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강물과 가장 가까이 설치된 옛 잠수교의 모습은 정취가 감돈다.

잠두1교를 건너면 금강변마실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제대로 벼룻길을 찾은 것이다.

벼룻길은 강가나 바닷가의 낭떠러지로 통하는 비탈길을 이르는 말로 무주사람들은 보똑길이라 부른다 한다.

조금전 잠두마을을 들어서면서 잠두교에서 바라보았던 우측의 산봉우리들이 길게 이어졌던 곳의 산비탈길이 벼룻길인 것이다.

벼룻길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잠두강변길 표시도 하였고 차량은 진입을 못하도록 쇠파이프로 길을 막았다.

벼룻길을 실감 할 수 있다.

좌측 아래는 금강이 흐르며 강 건너는 잠두마을이 보이고 우측 위를 올려보면 산은 직벽에 낭떠러지 비탈길을 걷는 것이다.

잔뜩 구름이 낀 날씨로 산과 강이 어우러진 풍광을 즐길 수 없는 아쉬움을 가지며 걷는다.

4륜바이크를 탄 젊은 무리들이 달려 나오는데 소음기에서 뿜어대는 기름냄새와 연기로 코를 막아야 할 지경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앞이다.

휴식처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벼룻길중 뷰포인트중 한 곳이다.

대표적인 반딧불 탐사지로 벚꽃,복사꽂등과 어우러진 옛길로 아름다운 금강상류의 원형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산우들 등에 지고있던 봇짐을 내려 놓는다.

안개와 구름이 풍경을 숨겨놓았지만 그래도 사진도 찍으면서 먹거리를 나누며 한참을 머물렀다.

이곳에서 7분여를 걸으면 차량도 보이고 금강변 마실길 안내판에 세워진곳에 닿고 벼룻길 굴암삼거리 방향으로 걷는다.

하굴암마을을 알리는 빗돌이 서있는 곳을 지나 굴암교를 지나고 용포리,벼룻길,가당리가 표시된 금강변 마실길 25번표지목에서 벼룻길방향으로 걷는다.

오후1시20분이다.

오늘 걷기는 여기서 끝내야 한다.

오늘 일정으로는 부남면 소재지까지 였지만 지난 9월3일 결혼한 대장과 장미께서 점심식사를 준비하였는데 2시까지 잠두마을에 도착하여야 한다.

앞선 몇몇 산우들은 일정대로 부남면까지 걸었다.

버스를 기다리기 위하여 강변으로 내려가 휴식을 갖는다.

강변에 비치된 식탁겸용의 긴의자에 모여 소맥파티를 열며 버스를 기다리지만 늦어 마을 주민의 소형차를 만원을 지불하고 2번 이용하여 잠두마을에 도착한다.

식당에 모두 모여 장미께서 대접하는 매운탕으로 점심식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