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2010년)

절개산, 가파르게 오르고 스키타듯 내려가고

Bravery-무용- 2010. 5. 23. 13:06

2010.5.16

평창군 평창읍 절개산(876.1M)

천동리2반마을-하도마치-상도마치-도마치-863.5봉-정상-하도마치-천동리2반마을

인천산지기 산악회와 함께

 

인천을 출발한 인천산지기 산악회버스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31번국도를 평창강과 함께 굽이굽이 휘돌며 달린다.

평창읍 천동리 천동교다리앞에 멈춘다.

버스가 곧바로 우회전을 하여 다리를 건널 수 없어 몇번을 움직여 가까스로 평창강위 천동교를 통과한다.

버스 한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마을도로다.

9시40분 조금지나 마을 넓은 시멘트포장 공터위에 버스는 멈추고 산우들은 내려 산행준비를 한다.

앞에는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74호 평창 지동봉 가옥이 있다.

알려지지 않은 오지의 산으로 들머리를 찾기위하여 몇사람이 헤매다 겨우 들머리인 도마치길 입구를 찾았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 한 점없으니 오늘 산행의 즐거움을 기대하여 본다.

불한증막 연구소와 금성사등 몇 개의 시설물을 알리는 입간판이 세워져있는 도마치로 향한다.

우측으로는 절개산 정상의 봉우리가 높게솟아 우리 산우들을 기다린다.

풍산지씨 사당과 몇 채의 민가를 지나며 시멘트길로 이어지는 길을 계속 걸어 엘리에셀 장애인 시설을 지난다.

다리를 건너  비포장 자갈길도 걸으며 들꽃들과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눈다.

불한증막 연구소인 첨성대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무주공산의 비포장길을 산우들과 함께 걷는 길에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로 계곡을 내려다 봐도 계곡은 숲이 가려 보이질 않는다.

오르면서 뒤돌아보면 먼 산의 산줄기는 파란하늘과 맞닿아있고 한대의 비행기는 하얀퀘적을 그리며 파란하늘을 가로 지르고 있다.

상도마치에 거의 이르러 예전에는 청명사라 불리었던 금성사는 좌측으로 자리 잡고있는데 뒷산에 둘러있는 산사의 모습은 아담하고 조용하다.

금성사에서 조금만 오르며 참나무 아래에 성황당과 김희수 공덕비가 있는 도마치에 닿았다.

들머리였던 샘골의 표고가 278M, 도마치의 표고는 553.4M니 275.4M의 표고차를 약1시간여를 걸었고 거리는 약3.5KM다.

도마치는 영월 북면 공기리 주민들이 평창장을 보러 다녔던 큰고개였다.

김희수 공덕비는 김희수씨가 사비를 들여 길을 닦고 넓힌 공덕을 기려 마을사람들이 세웠다 한다.

뒤쳐진 산우들을 기다리는데 고갯마루로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시원하게 식혀준다.

 

 

 

 

 

이제 숲속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숲속산행이 시작된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종인 숲은 희미하게 흔적만이 있는 등산로를 찾아 오르고 드문드문 아주 오래된 산악회리본에 따라 오른다.

도마치 못미쳐 상도마치에서 가로질러온 산우들을 만난다.

지천에 널려있는 나물들을 케느라 분주들하다.

나물케는 일에는 관심도 없고 젬병이라 슬그머니 선두가 매달아 놓은 산지기 리본따라 오른다.

낙엽아래는 잔돌이 깔려있어 오르면서 미끄러지기를 수도없이 하고 나뭇가지와 나무뿌리를 잡고 오른다.

헉헉 숨을 내쉬며 오르다가도 간간히 들려오는 꾀꼬리 울음소리와 고개를 숙이면 갓시붓꽃이 반겨 위로를 삼으며 오른다.

863.5봉 능선위에 올랐다.

아주 가파르게 올랐던과는 다르게 능선은 어느정도 펑퍼짐하고 능선 전체가 멧돼지들의 생황터전으로 바닥은 성한데 없이 모두가 파헤쳐져 있다.

여러줄기로 뻗어 유독 눈에 띠는 키큰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정상으로 착각하였다,

숲이 가려 앞봉우리도 뒷봉우리도 보이질 않는다.

아직도 만개되지 않은 철쭉과 참나무숲 능선을 걸으면서 좌우로 바라보면 처음으로 나뭇잎사이로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우리 산우들을 축하라도 하듯 솎아베기하다 꺽어져 아치를 만들어놓은 소나무가 반기는데 아치를 통과 하여야만  정상이다.

저절로 입에서 휴하고 길게 숨을 내쉰다.

12시30분이다 3시간여를 발품하였다.

잘리어 둥치만 남은 나무에 절개산 876M가 정상을 알린다.

맑고 푸르고 높은 하늘에 소백산도 아득하게 바라볼 수 있지마는 참나무가 숲을 이루어 사위를 모두 가려 놓았다.

 

조망을 할 수 없어 실망을 하며 나뭇 그늘에 앉아 늦게오는 산우들을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려 정상오른 산우들과 산에 대한 예를 지내고 먹거리를 나누며 정을 나눈다.

서쪽 능선따라 하산하는데 수북히 쌓인 낙엽에 45도보다도 더 가파른 내리막이라 모두가 스키를 타듯이 미끄러져 내려가다 몇몇 산우들은 엉덩방아 찧기를 여러번 한다.

30분이상을 정신없이 미끄러지듯 내려와 봉우리 하나가 앞에 보이고 우측으로는 하도마치에 올라오는 안부에 닿는다.

좌측으로 평창강이 휘감아 돌고 매화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더 멀리는 좌측 산밑으로 응암마을도 보인다.

산행코스를 확인하고 우측방향 하도마치 방향으로 내려간다.

이제부터는 내려가는 길이 그렇게 가파르지가 않다 .

낙엽송 조림지대를 지나면 산길은 전혀 보이질 않아 드문 드문 보이는 낡은 리본이 보이면 리본을 목표로 내려간다.

하도마치임도로 내려서니 마음이 놓인다,

불한증막 연구소 첨성대를 지나 풍산 지씨 사당 못미쳐에서 마을 주민으로 부터 응암동굴은 겨울에 평창강이 얼어야지만 들려 볼 수 있다는 설명과 주민들이 등산로를 만들어 앞에보이는 봉우리로 내려올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아쉬움을 갖는다.

응암동굴도 들려보고 절벽위에서 바라보는 휘돌아 흐르는 평창강의 풍경을 보기위하여 산행신청을 하였다.

응암동굴에 대한 설명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평창군수 권두문이 휘하 장졸과 백성들을 이끌고 이곳을 본부로하고 1592년8월7일부터 5일간 적군과 혈전을 벌엿던 유적지며 군수의 부인 강소사는 왜군에게 포로가 될때 절벽에서 투신하여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림으로 절개를 지켰다 한다.

이러한 연유로 이산의 이름이 절개산이 아닐까 

들머리었던 지봉동 가옥앞에 도착하여 절개산 정상을 다시 한번 올려보며 산행을 끝낸다.

 

 

13,000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