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2010년)

조망에 압도당한 양구 봉화산

Bravery-무용- 2010. 6. 1. 17:57

2010.5.30

양구 봉화산(875M)

심포리-심포삼거리-정상-구암삼거리-국토정중앙점-국토정중앙천문대(도촌리)   약5시간20분

태화산우회

 

인천을 출발하여 경춘고속도로와 굽이굽이 고갯길 46번 국도를 달린다.

양구읍 심포리에서 우측 마을길로 들어서 달리다보면 비포장길이 나오고 버스는 더이상 진입 할 수 없는 곳에서 멈춘다.

조금만 움직이면 산행들머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8시45분 버스에서 내려 산행준비를 마치고 앞에 보이는 봉화산의 줄기를 올려다 본다.

봉화낙월(烽火落月)이라는 말이 있는데 산림이 울창하고 봉화대가 높이 솟아있어 서산에 지는 일몰경(日沒景)은 달과 좋은 대조로 야경이 한폭의 그림같다는 뜻으로 옛부터 양남팔경(楊南八景)중의 하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소양강댐수몰지구로 없어지고 하천정비와 농촌개발로 그 정취를 거의 찿아 볼 수 없다.

봉화산 등산로가 세워져 있고 종합안내판도 세워져있다.

그러나 등산로입구는 철조망이 쳐져있어 남의 과수원 서리하듯 철조망 옆으로 들어서면 산길이 시작된다.

철조망이 쳐져있어도 산문에 들어서니 웬지 모르게 좋은 느낌을 갖는다.

봉화산 주능선에서 갈라진 능선길은 참나무와 소나무가 숲을 만들고 고개를 숙이면 하얀 둥굴레꽃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여 인사한다.

통나무계단도 오르는 완만한 능선길에는 "즐겁고 웃음 넘치는 안전한 산행 하세요~~"하고 화살표방향을 하여주며 길을 알린다.

또 한번 통나무게단을 오르고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의 산기슭길을 걸으면 우측으로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심포삼거리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몇개의 통나무의자가 놓여있고 이정표는 심포리 2.24K, 석현리 선착장 4.54K, 봉화산 정상 1.12K가 표시되여 있다.

함께 올라온 산우들과 골바람을 맞으며 다리쉼을 한다.집을 나설때 부터 날씨가 궂어 빗방울이 떨어질듯하여 가평휴게소에서 일회용 우의를 준비하였는데 오히려 궂은 날씨는 걷히면서 햇살이 비추어 초록의 나뭇잎사이로 내려쬔다.

오히려 예측이 빗나가 다행이다.

좌측 정상방향으로 다시 발길을 옮긴다.

석현리 구 검문소에서 시작되는 봉화산 주능선은 통나무게단을 조금만 오르면 평탄한 능선길이다.

초록의 나뭇잎에 갈색낙엽의 산길에는 햇살이 비추고 소양강에서는 적당히 바람까지 불어주어 허리를 쭉펴고 호흡을 폐부 깊숙히 들여마시며 걷는다.

그렇게 걸으며 참나무숲을 빠져나오니 헬기장이 보이면서 갑자기 시야가 확트인다.

봉화산 정수리가 봉긋히 솟아 반긴다.

숲속만 걸었던 지금까지의 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보여준다.

먼저 도착한 산우들은 멍석까지 깔아놓고 산상에서 진수성찬이 벌어졌다.

모든 산우들의 얼굴은 그렇게도 해맑을 수 가 없다.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정상까지의 능선길은 주위에 군사격장이 있어 산불예방 차원에서 좌우로 나무가 베어져 있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덕유산의 능선길을 옮겨놓은듯 여유가 있어 보인다.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정상 봉우리 뒤로 겹겹히 산줄기가 펼쳐져있는데 아마도 가장 멀리는 설악산 서북능선이리라.

20여분이상을 산상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정상으로 향한다.

밧줄로 등산로를 넓게 만들어 놓은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헬기장보다 높지만 그렇게 힘들이면서 오르지 않아도 된다.

좌측으로는 양구읍내와 북쪽의 산들을 우측으로는 소양호와 서쪽의 산들이 그림처럼 펼쳐져있어 걸음은 자연히 천천히 움직일 수 밖에 없다.

풍경을 보고 가슴에 담고 디카에도 담는다.

작은 헬기장과 바위들이 있는 능선을 지나면서도 풍경이 너무좋아 발길을 멈추기를 수도 없이 한다.

헬기장에서 정상까지 5분도 안걸릴 능선을 20여분을 걸으며 11시15분경 봉수대가 세워진 정상에 도착하였다.

해발 875M.

2시간30여분을 발품하였다.

봉수대를 중심으로 사위가 일망무제로 파란하늘에 전개되고 있는데 끝도없이 아늑하다.

준비한 지도를 펼쳐 들뜬마음으로 사위를 둘러본다.

서쪽은 푸른계곡아래 소양호가 그리고 멀리는 용화산, 서남쪽으로는 계명산 너머로 가리산이 남동쪽으로는 방태산의 산군들이다.

동쪽으로는 점봉산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가리봉 뒤로는 설악산 서북능선이 운해를 만들며 펼쳐져 있다.

북동으로는 파란하늘과 선을 그으며 가슴이 확트이게 대암산의 산줄기가 이어진다.

북으로는 발아래로는 양구시내와 논과 밭이 평온하게 내려다보이고 멀리는 백석산이다.

서쪽위로는 사명산이 손에 닿을듯하다.

산우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는 푸르름이 가득하다.

이렇게 정상에서 영서내륙 산군들을 볼 수 있는 산이 또 있을까

봉화산을 중심으로 산군들이 빙둘러 있는 것이다.

옛사람들이 이곳에다 봉수대를 설치한 이유를 알 수 있겠다.

삼각점옆으로 봉화대가 세워져있다.

조선시대 1604년(선조37년)에 봉화대를 설치하였고 세종29년 기록에 근거하여 원형을 복원하여 놓았단다.

골짜기마다 푸르른 계곡은 마음도 푸르르게 만들어주고 있다.

들머리에서 올려다 볼때는 특징없이 그저 그런식으로 보였던 봉화산이 정상에서 조망이 너무나 뛰어나 봉화산에게 송구스럽기도 하다.

겉만보고 속을 판단하여서는 안되는 그렇게 좋은 산이다.

끝도 없이 이곳에서 그냥 이렇게 머무르고 싶은 마음 뿐이다.

산행의 기쁨이 클라이맥스까지 이르렀으니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

정상에서 암봉옆길로 내려가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놓은 곳에서 정상에서 나누지 못하였던 먹거리를 나누며 산우들과 함께 또 한번 즐거움을 갖는다.

검푸른 바위사이에 고사목도 풍경을 만들어 준다.

아쉬워 뒤돌아보며 내려가면 참나무가 숲을 만든 숲길이다.

이제는 정상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구암삼거리 안부에 내려왔다.

옛날에는 명곶리 화전민들이 구암리로 넘나들던 고갯길이다.

정상0.66K, 구암리 1.88K, 국토정중앙점 3.44K 표시목이 세워져있다.

숲길을 걷는가 싶으면 오르고 그러면 통나무의자가 놓여있고 이렇게 봉우리를 몇개를 반복하니 모든산우들 힘이 부치나 보다.

아내의 모습도 여간 힘들어 하는게 아니다.

정상 1.62K, 국토정중앙점 2.48K 이정표앞에서는 아에 낙엽에 누워서 쉬기도 한다.

또 한번 오르고 내려서면 안부에 철탑이 세워져 있다.

정상에서 1.96K 내려 온것이다.

철탑에서 좌측으로 바라보면 도촌리마을과 천문대가 내려다 보인다.

하산길에 처음으로 바라보는 풍경이다.

참나무숲을 오르며 뒤돌아 보니 정상은 숲에가려 봉우리만 빼꼼히 보인다.

마지막으로 오르는 봉우리에 올라 모두가 다리쉼을 하고 국토정중앙점 0.7K, 정상 3.4K 표지목을 지나며 산허리를 돌면서 내려가면 좌측으로 정상이 보인다.

이제는 도촌리는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햇볕은 머리위로 따갑게 내려 쬔다.

마사토길을 조심하며 내려오면 들머리에서와 같이 철조망이 쳐져있고 우측으로 조금만 걸으면 대한민국 국토의 정중앙점에 닿는다.

강원도 양구군 남면 산84번지가 국토정중앙점의 주소다.

동경 128도02분02.5초

북위 038도03분37.5초가 대한민국의 정중앙점이다.

정중앙에는 "휘모리"라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휘모리"는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쓰러져 버리고 마는 팽이의 역동성에 미래지향적 상징성을 표현하였고 음양오행원리의 상징언어인 팔괘,삼태극과 우리전통 농악놀이 상모의 생동적 형상을 조형적 언어로 표출하였다 적혀있다.

정중앙점에서 민족 통일을 염원하며 기를 온몸 깊숙히 받아 드리며 온몸을 바닥에 엎드려 솟는 샘물을 경건하게 내 몸속으로 들이킨다.

국토정중앙천문대로 내려가며 좌측으로 올려보면 봉화산 정상과 걸었던 능선길이 푸르다.

약1Km에 이르는 천문대까지 가꾸어놓은 조경길을 내려오면 봉화산 등산안내판과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국토정중앙천문대 주차장에 내려와 산행을 마친다.

이마을의 이름은 국토정중앙 도촌리 배꼽마을이다.

우리나라에 가장많은 산이름이 봉화산이라는데 이곳 봉화산의 명칭을 중앙산이라든지 국토정중앙산이라든지 다른이름으로 불리였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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