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27
전남 순천 조계산(884.3M)
선암사 주차장-선암사-대각암-행남절터-정상(장군봉)-배바위-작은굴목재-연신봉사거리-연신봉-토다리 삼거리-송광사-송광사 주차장
태화산우회
전날 밤11시부터 시작된 남아공 월드컴 우리나라와 우르과이의 16강전 경기를 보고 자는둥 마는둥 새벽4시에 일어나 산행준비를 한다.
솔직히 축구를 보면서 마신 술과 장맛비까지 추적추적내려 산행을 포기하고 싶었으나 전날 날라온 문자메세지는 우천중에도 정상적으로 출발한다하여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집을 나선다.
인천을 출발한 태화산우회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비는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고 호남고속도로 승주IC를 나와 10시 조금지나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다행으로 비는 내리질 않고 구름만이 짙게 덮은 하늘이다.
장시간 찻속에 갇혀있던 몸을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며 산행준비를 끝내고 선암사길로 들어선다.
선암사로 들어가는 길은 선암사계곡의 청아한 물소리에 짙은 숲의 향기가 가득하니 한순간 궂은 날씨도 잊는다.
매표소를 들어서기전 선암사(仙巖寺)에대한 설명판앞에 멈춘다.
백제 아도화상의 비로암 창건설과 신라말 도선국사 창건설을 가진 사찰로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중창된 사찰이라 적혀 있는데 선암사는 태고종의 총본산으로 많은 문화재와 보물이 산재해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한다.
실제로 경내를 돌면 보물과 문화재가 아닌것이 없을 정도였다.
또한 선암사는 노승과 동자승이 등장했던 뒷간의 광고 배경이 되었던 곳, 아제아제 바라아제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였던 곳.
매표소를 지나면서도 버스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서있는데 팔을 감기어 보지만 반도 감을 수 없다.
우측으로 곱게 뻗은 삼나무가 숲을 이루는데 삼나무아래에는 의자까지 놓여있어 삼나무
숲향기속에 쉴수 있도록 배려도 하여놓았다.
삼나무숲 위로는 여러개의 부도들도 보인다.
조계산 도립공원 등산로판앞에서 다시한번 대장으로 부터 산행코스를 확인하고 "영원한 중생의 도량 선암사에 오시면 미래가 보입니다"현수막과 대형버스 진입금지판이 세워져있는 철문을 들어선다.
산우들 넉넉하게 세로 줄을 지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데 난데없이 두대의 버스가 천천히 지나가 대형버스 진입금지판이 무색하니 유쾌한 마음은 가질 수 없었다.
선암사를 알리는 입석을 지나면 부도가 또 보이고 목장승을 지나면 승선교가 좌측으로 보인다.
얼마전까지는 승선교를 지나 절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옆길이 생겨 바라만 본다.
승선교(昇仙橋)는 보물제400호로 조선 숙종39년 1713년 호암대사가 축조한 무지개다리 즉 홍예교다.
신선이 승천한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승선교에서 조금만 오르면 이번에는 강선루가 나타난다.
강선루(降仙樓)는 선원교위에 세워져 있는데 신선이 내려온다는 의미를 지녔다한다.
한편으론 승선교와 강선루를 연결지어 선녀들이 강선루에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승선교에서 무지개를 타고 올라간다고 하기도 한다.
강선루를 지나면 우측으로 편백나무숲이 짙푸르고 옆으로는 이끼옷을 입은 바위사이로 계곡물을 흐른다.
삼인당이라는 연못이 보이는데 독특하게 연못안에 섬이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48호인 삼인당(三印塘)은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만든 것이라 하는데 삼인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의 삼법인을 뜻하는 것으로 불교의 중심사상을 나타낸것이라 한다.
수 많은 동전들이 빈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히 박혀있는 고사목앞을 꺽어지면 선암사일주문이다.
선암사일주문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6호다.
마음을 추스리며 경내를 둘러본다.
시인 정승호의 시 "선암사"에 나오는 해우소앞에서 멈춘다.
선암사의 해우소는 "ㅅ간 뒤"다.
<월인천강(99쪽)>에 그 뜻을 풀었다.
고정관념으로 읽으면 '깐뒤'다. 오줌 누고 똥누는 곳의 문패가"깐뒤' 바지를 깐 뒤에 볼일을 보라는 뜻인가하여 실없이 웃지만, 실상은 '뒷간'을 한자 흐름대로 적어놓은 것이다.
해우소도 '순천 선암사 측간'으로 문화재자료 214호다.
이제 선암사 경내를 나와 장군봉2.7키로, 작은굴목재1.9키로 이정표앞에 섰다.
몇몇 산우들은 정상을 오르질 않고 작은굴목재로 먼저 출발하고 마지막 산우들과 어울려 돌계단을 오르면 삼나무가 숲을 이루고 좌측 산길을 조금 벗어나 암벽위에 음각된 선암사 마애여래입상앞으로 발길을 옮긴다.
높이가 무려5미터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전라남도문화재이다.
대각암앞에서는 좌측으로는 비로암과 보리밥방향이고 우측으로는 향로암터와 장군봉방향이다.
우측 향로암터방향으로 들어선다.
참나무가 숲을 이룬 고요한 산길은 우리들의 거친 숨소리와 맑게 들리는 새소리 뿐이다.
키큰 죽순의 길을 가파르게 오르면 점점 안개는 자욱하여지고 온몸은 습기와 땀에 범벅이 된다.
옛 절터인 향로암터에 오르면 샘터가 있는데 물컵만 놓여있을 뿐 물은 말라있다.
향로암터는 선암사의 말사였는데 임진왜란때 불타고 말았다 한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우측 산길로 들어서며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때쯤 길섶에 앉아 또다시 다리쉼을 한다.
나무에 매달려있는 글귀다.
"교만이 많으면 사람을 잃고 외식이 많으면 진실을 잃나니라"
돌계단을 오르면 구급함이 보이고 곧바로 조게산 정수리인 장군봉이다.
주차장을 출발 2시간10여분을 발품하여 12시20분경에 도착하였다.
정상에서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남도삼백리 이정표로 좌측 남쪽방향은 작은굴목재 0.8키로, 보리밥집 2.1키로가 우측 북쪽방향은 장박골 1.8키로, 송광사 6.0키로 표시되여 있고 올라온 동쪽 방향은 선암사 2.7키로가 표시되여 있다.
둥글게 넓은 정상에는 돌탑과 바위위에는 농협 승주군지부 산악회에서 세운 오석의 정상석이 884M를 알리고 있다.
짙은 운무에 사방은 전혀 보이질 않고 빗방울도 떨어지고 있어 먼저 도착한 산우들 서둘러 내려가 쉬는둥 마는둥 사진만 담고 산우들 뒤를 부지런히 따라 내려간다.
운무속에 풍경은 바라 볼 수 없어 밧줄이 매달려있는 매바위도 지나치며 20여분을 내려가 작은굴목재에 닿았다.
호남정맥은 남으로 고동산, 깃대봉, 선암사 굴목재를 따라 작은 굴목재에서 장군봉을 거쳐 오성산, 유치산으로 뻗는다.
즉, 장군봉에서 20여분을 내려온 길은 호남정맥구간 이다.
작은굴목재에서는 네갈래로 갈라지는데 장군봉에서 내려와 곧바로 가면 큰굴목재, 좌측은 선암사, 우측은 송광사가는 길이다.
의자까지 놓여있어 배낭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고 연산봉을 가기위하여 우측 송광사 방향으로 내려간다.
돌게단을 100여미터 내려가면 송광사, 보리밥집과 연산사거리로 갈라지는 세갈래길에서 연산사거리 방향으로 꺽어진다.
정상에서 떨어지던 빗방울은 멈추었지만 안개는 걷히지않고 있는 산길이 그나마 숲이 짙어 위로를 삼는다.
장박골물소리를 들으며 죽순과 참나무숲을 걸으면 어지럽게 여러방향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지점에 닿는다.
연산사거리 0.9키로 방향으로 꺽어져 들어서 게곡을 건너면 돌밭 오름길이 시작된다.
연산봉사거리 고갯마루에 올라 먼저 도착한 산우들과 좌측 좁은 산길로 들어서 10여분을 걸어 연산봉 정수리에 도착하였다.
연산봉정수리는 헬기장역활을 하여 넓은데 이곳도 장군봉과 같이 짙은 운무로 사방을 모두 거려 놓았다.
순천 팔마산악회에서 세워놓은 화강암의 조그마한 정상석과 표시목이 연산봉 851M를 알린다.
1시30분이다 장군봉에서 부터 1시간 10분을 걸었다.
불순한 일기에 장군봉을 거쳐 연산봉까지 오른 산우는 15명.
모두가 태화의 정예멤버라며 한바탕 떠들기도 한다.
운무속에서도 정상의 먹거리가 펼쳐지니 궂은 날씨와는 상관없이 모두가 즐겁다.
산우들 즐거움을 가지며 20여분을 머물고 송광사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연산봉에서 내려가는 길도 죽순에 잡목의 숲길로 의젓하게 보이는 바위앞에서는 안개속에서도 포즈를 취한다.
20여분을 내려가고 내려가 연산봉보다 131M아래인 해발 720M 송광굴목재에 내려왔다.
송광굴목재는 네갈래로 선암사방향, 장군봉방향, 천자암방향, 송광사방향으로 갈라진다.
송광굴목재 표지목에는 남도삼백리(천년불심)길이라 쓰여있는데 순천시에서 남도삼백리길을 약222K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성하고 있는데 남도문화길, 한양옛길, 생태치유길 3개태마로 구성되어 있고 생태치유길 코스인 천년불심길은 약16K로 송광사에서 선암사구간을 일컫는다.
송광사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물기를 머금어 더욱 노란 피나물도 만나며 돌게단을 내려가면 우측으로 대피소가 있다.
홍골과 함께 내려가는 산길은 계속된 돌계단이라 한걸음을 내디딜때마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내딛는다.
전설이 깃든 걸친바위주변은 단풍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복과 행운을 상징하는 두꺼비 한마리가 아주느리게 내앞에서 움직인다.
홍골을 가로지르기 위하여 나무테크다리를 건너면 토다리 이정표앞에 닿는다.
흙을 돋아 길을 놓았던 자리였는지 명칭이 토다리다.
이곳은 세갈래로 갈라지는데 송광사와 선암사 그리고 장군봉으로 구분된다.
가파르게 내려왔던 돌밭산길이 점점 평탄하여지고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서 보소라는 명칭을 가진 소(沼)가 깊게 내려다 보인다.
피아골의 물과 홍골의 물이 만나면서 물소리는 더욱 커지니 계곡안으로 들어서 보기도하고 점점 산길은 넓어지고 걷기도 편하다.
다리아래에서 많은 산우들 족탕을 즐기며 땀을 식히고 있다.
천자암으로 갈라지는 수석정 삼거리를 지나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삼나무숲과 대나무숲을 나오면 송광사가 나타난다.
주소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신라말기 혜린선사가 창건한 송광사는 조계종의 발상지이며 고승대덕을 많이 배출한 승보사찰로 보조국사, 진각국사등 16분의 국사를 배출한 대사찰로 팔만대장경을 소장한 법보사찰인 해인사,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인 통도사와 함께 우리나라 삼보사찰을 이룬다.
최근에는 법정스님의 다비식이 열렸던 곳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알려진 사찰이다.
경내를 둘러보면서 전각들의 웅장함과 고색창연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불자가아닌 나도 자비로운 부처의 마음을 가져본다.
특히 연못위에 홍교를 가설하고 그위에 세운 단아하면서도 고풍스런 우화각.
우화각은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신선이 된다는 의미를 가졌단다.
송광사의 첫관문인 조계문을 나선다.
삼나무숲을 끼고 걸어서 내려가는 길로 내려가면 산새가 날개짓을 하며 잘가라 한다.
매표소를 나와 식당가에 도착하여 산행을 끝낸다.
오후 3시45분, 선암사 주차장에서 10시10분에 출발하여 약5시간30분을 조계산과 함께하였다.
막걸리 한사발에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른다.
2보1원 20,000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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