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6
소백산, 비로봉(1439.5M) 국망봉(1,420.8M)
을전(어의곡)- 5.1K - 비로봉 - 3.1K - 국망봉 - 2.1K -늦은맥이재 - 5.8K - 을전(어의곡) 약 16.1KM
태화산우회
우리나라 12명산 가운데 하나인 소백산.
이중환의 택리지에 "산허리위에는 돌이 없기 때문에 산이 아무리 웅장해도 살기가 적다.
먼데서 바라보면 봉우리와 묏부리가 솟아나지 않고 엉기어 있는 듯하다.
구름가듯 물 흐르듯하며 하늘에 닿아 북쪽이 막혔고 때때로 자색구름과 흰구름이 그 위에 떠 있기도 한다.
옛날에 술사 남사고가 소백을 보고는 갑자기 말에서 내려 넙죽 절을 하며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하였다고 적혀있다.
5시 연수동을 출발하여 송내에서 마지막 산우들을 태우고 8시 50분 충북 단양군 어의곡리 을전마을에 도착하였다.
을전마을은 남한강으로 흐르는 하일천의 가장 상류에 있는 마을이다.
몇 대의 산악회 버스와 많은 승용차들이 세워져 있다.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맑으니 마음 또한 가벼워진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어의곡 탐방지원센터로 발길을 옮긴다.
비로봉 5.1K, 국망봉 7.4K 표지목이 보인다.
어의곡 계곡 다리를 건너면 지원센터다.
오전 9시 6분 지원센터앞에 비치된 3무(無)서명 캠페인에 동참하기 위하여 서명을 한다.
3무란 환경정화, 위법행위금지, 안전사고예방을 말한다.
짙푸른 6월의 숲속 공기를 들여마시며 계곡에는 이끼옷을 입은 바위의 모습도 보면서 오르면 지원센터에서 1.6키로지점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면서 돌게단을 오른다.
지원센터를 지나면서 해발 460미터 표지목을 보았는데 어느덧 해발 830미터까지 올라왔다.
통나무게단을 오르면 이제는 어의곡보다 비로봉까지의 거리가 더욱 가깝다.
좌측은 잡목의 교목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우측으로는 잣나무가 숲을 이루는데 이곳의 잣나무는 식목을 하여 울창한 숲으로 만든것이다.
지금까지는 계속 오르막을 올랐다면 지금은 어느정도 완만한 능선길이다.
해발 1,170미터 표시점을 지나면 능선길은 더욱 완만하여 지고 고개를 숙이면 낮게 조릿대가 반긴다.
푸른 나뭇잎사이로 소백의 산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껍질과 잎이 자작나무와 비슷한 사스레나무 군락지를 거쳐 해발 1,310미터 지점을 지나면 앞으로 하늘이 열린다.
우측으로는 단양이 내려다 보이고 앞으로는 주목관리소가 올려다 보이면서 시야가 확 트인다.
숨을 고르면서 밧줄로 경계선을 만들어 놓은 넓은 등산로를 오르면서 좌측으로는 오늘 우리 산우들이 걸을 국망봉 능선길이 푸른 숲에 지그재그로 이어져 있고 고개를 더 돌리면 신선봉과 민봉의 산줄기도 보인다.
하산길은 이곳에서 보면 국망봉과 신선봉 가운데 계곡으로 내려 갈 것이다.
앞으로는 비로봉으로 오르는 등산객들이 줄을 서서 오르듯 점점히 보이는데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다.
힘들게 오르던 표정들이 사라지니 디카에 얼굴도 담는다.
어의곡 4.7키로, 비로봉 0.4키로, 국망봉 2.7키로 세갈래길에 닿았다.
먼저 도착한 산우들 초원의 넓은 능선에 모여 산상의 잔치가 벌어졌다.
산우들과 어울려 먹거리를 나누면서 지도를 펼쳐들고 사위를 돌아 본다.
산우들 낌새를 보니 비로봉을 오를것 같지 않아 아내와 함께 슬그머니 빠져나와 비로봉으로 향한다.
지금 걷는 능선길은 높고 바람도 세찬곳이라 산등성이에는 키큰 나무들이 자라질 못하여 초원길을 걷듯 넓은 테크길 따라 오른다.
2005년 12월에 이 길을 오를때 매섭게 부는 칼바람에 겨울장비로 완전무장을 하였는데도 맥을 못추웠던 기억이 난다.
주목군락지와 제1연화봉, 연화봉, 제2연화봉의 봉우리와 능선길이 장쾌하다.
좌측으로는 철쭉꽃 아래 소백산의 작은 봉우리 그리고 더 아래로는 영주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화간반개한 철쭉을 보며 비로봉 정상에 닿았다.
12시다. 어의곡에서 3시간여를 발품하였다.
정상주위에는 등산객들이 시끌벅적대며 즐기고 정상석앞에서 사진을 찍는것도 줄을 서서 기다린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세군데로 이정표에는 여러곳의 명칭이 적혀 있는데 크게 구분을 짓자면 남으로는 삼가 매표소 서로는 천동매표소 북으로는 어의곡매표소로 구분짓는다.
비로봉은 백두대간 한가운데 솟은 소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해발 1,439.5미터.
비로봉(毘盧峯)은 "모든곳에 두루 비치는 부처의 몸의 빛"이라는 "비로나사"에서 유래 되었단다.
화강암의 정상석 뒷면에는 조선초기의 학자 서거정의 시"소백산"이 석각되여 있다.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사이 솟앗네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바람도 불지않는 맑은 하늘이니 사위를 둘러보며 끝없이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기에는 그지없이 좋다.
연화봉 방향의 백두대간 산줄기에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서쪽으로는 주목군락지와 천동계곡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서북으로는 멀리 단양군이 아래로는 어의곡방향이 깊게 내려다 보인다.
뒤로 돌아 서남으로는 풍기 방향의 산군들이 하늘과 선을 긋고있다.
남으로는 순흥면의 금계호가 소백산 금선정게곡의 물을 담고있다.
금선정계곡에는 욱금리가 있는데 택리지에는 욱금동은 천석의 휼륭한 경치가 수십리라고 적혀있다.
북으로는 국망봉은 손에 닿을 듯하고 신성봉은 봉긋하다.
몇번을 정상을 돌면서 풍경을 담고 되돌아 국망봉 방향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면서도 철쭉꽃앞에서도 바위위에서도 풍경을 담는다.
산우들과 어울렸던 어의곡, 국망봉 세갈래에서 국망봉 2.7키로 화살표 따라 앞으로 쭉 뻗어진 국망봉 가는 능선을 바라보며 발길을 옮긴다.
철계단을 내려가고 숲길을 걷는가 하면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에서 국망봉은 손짓하지만 철쭉꽃앞에서 산우들 얼굴을 담는다.
헬기장에서 뒤돌아보면 비로봉 정상에 서있는 사람들이 조그맣게 다닥다닥 붙여 있듯이 보인다.
산상의 철쭉터널을 지나면 앞에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나고 철쭉터널이 또 시작되고 고개를 숙이며 터널을 걸으면 붉은색 꽃모양이 앵두나무 꽃과 비슷하여 앵초라는 이름이 붙은 앵초꽃도 그리고 연 령초도 줄기를 꺽으면 붉은 유액이 나오는데 이것이 피가 나오는 것과 피슷하여 이름 붙여진 피나물이 반긴다.
국망봉 1.5키로 이정표를 지나 약간을 오르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며 바위를 에돌면서 봉우리와 봉우리사이의 능선위에 오르면 저 아래로 순흥면이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서는 골바람이 땀을 식혀주니 당연히 다리쉼을 한다.
햇살을 나뭇잎이 가려주는 숲길을 걷다가 올라서면 우측으로는 초암사로 내려가는 세갈래 지점에 닿는다.
몇년전 7월에는 대오이풀 천국이었는데 계절이 이른지 꽃은 아직 보이질 않는다.
능선길옆 듬성듬성 보이는 바위를 돌면 국망봉 정상이 보인다.
좌우로 철쭉꽃따라 나무테크 계단을 올라서면 하안 화강암의 국망봉 정상석이 산우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오후 1시 35분이다 비로봉에서 부터는 1시간30여분, 어의곡에서는 4시간30여분만에 닿았다.
국망봉 정상의 높이는 해발 1420.8미터로 비로봉 보다 18.7미터가 낮다.
소백산3대 봉우리는 비로봉, 국망봉, 연화봉을 가리키는데 오늘 우리산우들은 2개의 봉우리에 오른 것이다.
국망봉의 주소는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산 60-1
국망봉(國望峰)에 대한 전설이 있다.
신라의 마지막왕인 56대 경순왕은 나라를 왕건에게 빼앗기고 왕자인 마의태자가 신라를 왕건으로 부터 회복하려다 실패하자 개골산으로 가는길에 이곳에 올라 옛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국망봉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선생은 "유소백산록"에서 <맑게 갠날 햇볕이 밝게 비치면 여기서 용문산과 나라의 수도인 서울이 보인다>하였다.
그러나 퇴계선생이 국망봉에 오른날은 운무가 끼어 먼곳을 볼 수가 없었고 흐릿한 중에서도 저 남쪽으로는 팔공산과 학가산등 여러산이 있을 것이고 그 북쪽으로는 오대산과 치악산등 여러산이 구름사이에서 출몰하였다고 적혀있다.
퇴게선생은<산에 오르는 맛이란 꼭 눈으로 먼곳을 보는데만 있는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날씨가 졸아 일망무제로 펼쳐진 충북일대와 영남일대를 조망하기 위하여 정상석뒤에 널려있는 큰바위로 오른다.
먼저 비로봉방향으로 눈을 돌린다.
비로봉뒤로는 연화봉의 봉우리만 봉긋이 보이고 비로봉에서 국망봉까지의 산줄기가 푸르고 푸르게 이어져 있는데 저 능선길을 걸은 것이다.
비로봉에서 국망봉까지는 3.1키로.
발아래로는 어의곡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는 단양이다.
북으로는 늦은맥이재로 갈라지는 봉우리가 버티고 동으로는 영주가 내려다 보인다.
남쪽으로는 풍기읍과 순흥면의 보우리들이 길게 이어져 보인다.
늑은맥이재로 발길을 옮기다 넓은 초원에 멍석을 깔고 또 한번 산상의 먹거리를 펼친다.
누군가 막걸리 한병을 꺼낸다 배낭이 무거웠을 텐데 용케도 메고 다녔다.
염체도 불구하고 먼저 마신다.
꺼내논 떡과 사과 그리고 부침게에 든든히 먹고 마시고 출발을 한다.
철쭉의 능선길을 걸어 특이한 모습으로 세워져있는 선돌있는 암봉앞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며 철쭉의 터널로 들어선다.
이정표에는 고치령 10.2키로, 국망봉 0.9키로가 표시 되여있다.
이 지점이 어의곡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중에 가장 구분이 어렵다.
200여미터 철쭉터널을 지나면 국망봉 1.1키로, 비로봉 4.2키로, 늦은맥이재 1.0키로 이정표가 나타나고 관목의 철쭉숲길이 키큰 교목나무숲으로 바뀐다.
산행을 시작한지 5시간이 넘었다 아내의 평균 산행시간은 넘은지 오래다.
모두가 지쳐서 인지 평탄한 능선길에서도 다리쉼을 하는데 아내는 아에 땅바닥에 주저 앉는다.
해발 1,272미터 늦은맥이재에 내려왔다.
느직미기재라고도 부르고 새밭(乙田)에서 영주시 단산면 웃좌석으로 가는 재다.
비로봉에서 국망봉, 늦은맥이재까지는 백두대간길이며 충청북도와 경상북도를 경계하기도 한다.
우리 산우들은 비로봉에서 국망봉, 늑은맥이재 백두대간구간 5.2키로, 2시간30분여를 걸었다.
늦은맥이재에서 곧바로 오르면 마당치와 고치령가는 길로 백두대간이 이어진다.
5.0키로 남은 을전을 가기위하여 좌측으로 내려간다.
이제부터는 게속되여 내리막길로 오르는것보다 더욱 조심을 하여야한다.
6월의 짙은 수림은 더욱 울울창창하고 산새소리가 들리고 이골짜기 저골짜기에서 만난 물들이 내려갈수록 넓은 게곡을 만들고 물소리도 들리고 작은 소들도 만들어 놓았다.
이끼옷을 입은 바위는 원시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내려 왔는데도 1.5키로 내려왔다.
누구랄것도 없이 계곡으로 내려가더니 족탕을 하며 산행의 피로를 푸는데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오래 물속에 발을 담길 수가 없다.
숲길과 계곡을 건너기를 반복하다 4번째 계곡을 건너니 바로 충북 단양군 가곡면 을전마을 시멘트도로가 나타난다.
벌바위골과 어의계곡, 황정계곡의 물이 만나 넓은하천위인 새밭교를 지난다.
새밭교에는 단양의 캐릭터인 온달장군과 민중의 삶과 함께 하며 자연재해를 막아주며 수호신역할도 하는 도깨비가 지키고 서 있다.
좌측으로는 벌바위골답게 바위밑으로 많은 벌통들이 놓여 있다.
시멘트길따라 내려와 어의곡 주차장에 닿아 힘들었지만 잊을 수 없는 소백산 산행을 마친다.
약16.1키로를 7시간30여분 동안 걸었고 보행수는 25,800보다.
25,800보는 2010년 22번째 산행중 가장 많이 걸은 보행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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