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2010년)

노인봉에 오르고 소금강을 걷다

Bravery-무용- 2010. 2. 4. 13:03

2010.1.31

노인봉(1,338M), 소금강

보행거리 약24,000보

태화산우회

 

새벽5시 연수구청앞을 출발한 태화산우회버스는 주안과 송내에서 산우들을 태우고 8시55분경 진고개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넓은 주차장에는 1대의 산악회버스와 몇 대의 승용차만이 주차되여있고 하늘은 구름이 가득차있고 바람까지 스산하게 불어 황랑한 느낌을 갖는다.

해발960M의 진고개는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연곡면을 경계하는 고개며 백두대간을 구간별로 종주할시 보통 이곳을 기점으로 동대산,두로봉으로 뻗어가는 북쪽 방향과 노인봉,소황병산,매봉으로 이어지며 남으로 뻗어가는 방향으로 구분짓는 곳이기도 하다.

질퍽거릴만큼 땅이 질어서 붙여진 진고개가 1991년 국도 6호선이 개통되면서 굽이굽이 고갯길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주차장 위쪽으로는 경찰전적비가 세워져있다.

먼저 도착하였던 다른 산악회 산꾼들은 도로를 건너 동대산 방향으로 일제히 오른다.

국립공원 안내판에 노인봉 3.9키로, 소금강 13.5키로거리 표시를 확인하고 9시12분 돌로 다듬어진 넓은 등산로를 들머리로 삼고 태화산우회 산꾼들 일제히 발품을 시작한다.

많은 산꾼들이 다녀 눈이 단단히 다져진 산길은 나목의 층층나무가 쓸쓸히 반기고 우측으로는 오기피나무재배단지 옆길을 따라 오르면 진고개휴게소는 저 멀리 멀어져있다.

테크계단을 10여분이상 오르면 의자까지 마련되여 있어 가뿐숨을 고르기 위하여 쉬었다 가기좋게 되여있다.

오늘 산행중 오름길로는 지금오른 테크계단이 가장 힘들게 오른구간이었다.

누군가 현위치 표시목에 힘들게 올라왔던지 616계단이라 표시하여 놓았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박달나무,참나무,자작나무등이 어우러진 넓은 산길을 오르면 노인봉2.4K 이정표앞에 선다.

산우들과 어울려 다리쉼을 하고 또 발품을하다 노인봉 1.8K지점부근에서 잠시 쌓여있는 백설을 배경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어렵지않게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오르막 내리막을 몇번하면 해발 1,306M 노인봉 갈림길이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며 노인봉정상으로 향한다.

벌써 정상에서 내려오는 산우들도 있다.

갈림길에서 표고높이로 32M를 높게 올라 노인봉 정상표시목앞에 섰다.

표시목에서 화강암 암봉으로 되여있는 정상을 아이젠을 착용하고 오르니 돌과 쇠의 부딛치는 소리가 귀를 거슬른다.

백두대간에 우뚝솟은 노인봉(老人峰) 해발1,338M.

정상석 앞면은 한문으로 뒷면은 한글로 노인봉이라 쓰여있는데 투박하면서도 힘이 넘쳐보인다.

주위는 몇 그루의 구상나무도 보인다.

노인봉이라 이름지어진 유래가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계절 멀리서보면 백발노인처럼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

두번째는 주변의 봉우리에 비하여 이 봉이 높은 까닭에 산정상에 오르면 모든것이 어리게 보인다하여 붙여진 이름

세번째는 심마니가 산삼을 캐러왔다가 꿈에 가르쳐준곳에 산삼이 많아 산삼을 캣다하여 붙여진 이름

오대산 국립공원 안내판에는 명칭의 유래를 첫번째내용으로 적혀있다.

주머니에서 지도를 펼쳐들고 나침판으로 방향을 확인하며 백두대간을 그려본다.

물론 옆에는 백두대간을 종주하였던 오늘의 선두대장 길잡이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사위를 둘러본다.

잔득낀 구름이 가까이 백마봉도 황병산도 동대산도 보이질 않지만 머릿속으로 그린다.

서쪽으로 동대산이 북으로 뻗으면서 두로봉을지나고 동쪽으로는 소황병산과 매봉, 남으로 흘러 곤신봉,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사위가 구름에 가려져있어도 진고개에서 느꼈던 황랑한 마음은 겨울바람이 잦아들면서 사그라지니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마음만으로도 산우들 웃음이 만발하다.

정상석앞에서 사진을 찍고 또 찍는다.

갈림길로 되내려와 좌측으로 내려서 무인대피소에 도착한다.

먼저 도착한 산우들 벌써 대피소옆 공터에 마련되여있는 나무식탁에 먹거리판이 벌어졌다.

몇 일전 임프란트를 하여 마시고 싶은 정상주를 꾹꾹참으며 안주만 축내고 대피소안을 엿본다.

원탁의자에 2층으로 나무침실이 마련되여 있다.

짙은 구름이 어느정도 걷히니 대피소 공터에서 어슴프레하게 소황병산이 보인다.

15분정도를 무인대피소에서 머물고 스금강 9.3K이정표따라 발품을 시작한다.

비탈길을 내려가기도 오르기도하면서 오를 수 없는 암봉 좌측으로 비집고 들어서 북쪽방향의 풍경을 바라본다.

낙영폭포방향따라 내려가는 비탈길은 가파르기도 하지만 눈얼음이 깔려있어 조심조심 내려간다.

낙연폭포 위지점이정표를 지나며 나뭇가지사이로 노인봉을 올려다 보기도 한다.

참나무에 겨우살이도 보며 낙영폭포언덕 테크계단을 내려서면 바위들이 널려있는곳에서 다리쉼을하고 낙영폭포위지점에 도착한다.

소금강에서 가장위에 있는 계곡으로 소금강계곡이 시작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폭포아래로 떨어져야할 계곡물은 꽁꽁 얼어있다.

철계단을 내려와 빙벽으로 바뀐 낙영폭포앞에 선다.

산우들 빙벽을 오르기도하며 한동안을 낙영폭포앞에서 머물고 주위는 점점 곧게뻗어 자라는 적송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산길을 내려오면 해발 658M 사문다지 이정표앞이다.

사문다지는 소황병산 안쪽자락에 있어 사문다지이정표지점은 사문다지계곡 입구로 봐야 할 것이다.

사문다지는 볼수가 없지만 100m이상되는 절벽기둥에 돌쩌귀가 보이는듯 하다고 하여 붙여진이름이다.

돌쩌귀는 문짝을 문설주에 달아 여닫는데 쓰는 두개의 쇠붙이를 말한다.

사문다지이정표를 지나 돌계단과 철게단을 내려오면서 얼어있는 계곡의 물은 조금씩 숨구멍이 보이며 물이 흐르는 소리도 들린다.

점점내려가는 길이 가파르지 않으면서 소금강의 비경이 하나씩 펼쳐지기 시작한다.

산우 왕서방과 빨간모자 두분이 알탕장소를 찿아내고 옷을 벗더니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광폭포앞을 지나 철계단을 건너고 햇살이 스며드는 산길을 걷다보면 삼폭포를 지나 해발 503M 백운대앞이다.

먼저내려온 산우들 평탄하고 넓은 화강암 암반위에서 배냥까지 내려놓고 다리쉼을 하며 소금강경치에 빠져있다.

백운대에서 휴식을 나누며 화제는 단연 두사람의 알탕애기다.

요즈음 건강에 조심하는 산행대장을 이곳에서 만난다.

산행대장은 우리와 반대로 소금강입구에서 올라온 것이다.

구름이 가득하였던 하늘이 파란하늘로 바뀌고 바람도 불지않아 모두들 고어자켓과 아이젠을 벗는다.

암벽을 끼며 설치된 철계단을 걸으면 직벽에서 뻗어오르는 소나무의 모습에 신기하듯 바라보며 내려가면 점점 그모습은 기기묘묘하게 바꾸고있으니 풍경에 빠져 걷다가 멈추어 감탄하기를 수도 없이 한다.

풍경을 그려가며 소요하듯 걷는 소금강 만물상의 모습들이 펼쳐지고 있다.

해발440M에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기암들이 다른형태를 갖추고 제각기 전설도 깃들여있는 만물상.

일월암은 암봉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 낮이면 해같고 밤이면 달같다고 붙여진 이름.

괴면암은 험상궂은 얼굴에 소금강의 파수꾼 모습을 하고있어 뿥여진 이름이고 탄금대는 선녀가 바람과 구름을 찬미하여 음율이 천년을 두고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촛대모양을 하고있어 촛대바위

선녀들이 노닐었다는 선녀탕.

만물상의 기암과 화강암의 물소리가 걸음을 더디게 움직여 구룡폭포앞에 멈춘다.

해발360M, 노인봉에서 6.6k내려왔고 소금강분소까지는 3.0K남았다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구룡폭포는 노인봉이나 백마봉지류에서 만들어진 폭포가 아니라 천마산 자락인 구룡폭계곡에서 흘러 내린다.

마치 용이 꿈뜰 거리듯 힘이 넘치는 구룡폭포.

아홉게의 크고작은 폭포가 줄지어있어 구룡폭포.

제8폭포 왼쪽 넓고 평평한 바위에는 조선중기시대의 학자 미수 허목의 구룡연(九龍淵)이 음각되여 있다하는데 출입을 금지하여 볼 수는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폭포는 9개의 폭포중 3개만이 볼 수 있다.

구룔폭포의 힘찬 물줄기도 꽁꽁 얼어 빙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이두박근 삼두박근의 하얀근육질을 보여주고 있다.

구룡폭포에서 암벽아래 철난간을 따라 걷고 철다리를 건너면 해발300M 삼선암이정표앞이다.

식당암 바로위에 솟아있는 삼선암은 기암괴석에 노송이 어우러져 산수화를 그리고 있는데 세분의 부처님이 닮았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삼선암아래를 지나 식당암(食堂巖)이다.

넓고 긴 너럭바위로 옛날 신라 경순왕의 태자인 마의태자가 신라가 고려에 항복하는 울분에 군사를 양성하면서 군사들에게 점심을 먹였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다.

율곡선생은 "유청학산기"에서 식당암을 비선암(秘仙巖)이라 부르고 바위아래 있는 못을 경담(鏡潭)이라 하며 산 전체를 청학산(靑鶴山)이라 하였다.

금강사 바로 못미쳐 앞쪽 산길아래에 적갈색의 집채만한 바위에 이능계(二能契)라는 글씨가 암각되여있다.

이능계를 조직하면서 계원의 이름과 소금강(小金剛)글씨를 암각하였는데 "이능"이란 술과 글 두가지에 능하다는 뜻으로 선비들의 계조직이었나 보다.

바위에 쓰여진 소금강은 율곡선생께서 쓰신것으로 소금강입구에 쓴 표지석이 이 글씨를 석본하여 옮겨놓은 것이다.

금강사앞 약수터에서 물 한모금을 마시고 연화담앞에 선다.

청학동 주계곡과 아미산성쪽에서 흘러내린물이 만나는 곳이다.

얼음 숨구멍에 비치는 물의 색갈이 진한 비취색을 띠고있다.

작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의 일렁임이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연화담에서 5분여를 걸으면 십자소다.

화강암 절벽이 십자형으로 길게 갈라져 사방에서 물이 흘러들어 폭포와 못을 형성하여 붙여진 이름.

계곡위로난 탐방로를 걸어 구청학산장터에 도착하였다.

울창한 소나무숲속에 있는 청학산장은 이전에는 대피시설이었지만 현제는 이용가치가 없어 폐쇄를 시키고 화장실이 들어섰다.

철다리를 건너면 자연탑방로답게 오대산에 대한 설명과 숲과 오대산에서 만날수 있는 각종식물과 동물에대한 설명판에 곳곳에 세워져있다.

탑방계수대를 나오면 무릉계다.

해발 270M.

계곡 일대가 산복숭아와 산벗나무가 많아서 봄에 꽃이피면 그 정경이 무릉도원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

무릉계를 기준으로 오늘 걸었던 상류를 내소금강,  금강문,취서암,비봉폭포등이 있는 하류를 외소금강이라 구분 짓는데 외소금강이 개발이 많이되고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만원을 이루어 외소금강 구실을 잃었다.

무릉계에는 소금강 큰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율곡선생께서 이곳의 산수와 자연경관이 뛰어나 금강산 못지않다해서 소금강이라 이름을 붙이셨다.

식당암앞에 세겨놓은 친필을 석본한 것이다.

대한민국 1호 명승지로 지정되었다는 빗돌도 보인다.

소형주차장이 있는 무릉계를 나오면 차량도 다닐 수 있는 브럭이 깔려있는 넓은도로를 내려와 소금강 분소를 지나고 상가지역과 대형주차장이 있는 곳에 내려와 산행을 끝낸다.

노인봉에서 소금강에 이르는 약13.5키로 보행수 24,000보 약6시간30여분을 숨가쁘게 오르기도 소금강의 풍광에 빠져 소요하듯 풍경과 어울리며 걸었다.

율곡선생의 "유청학산기"에 쓰여있는 소금강의 비경을 되새기며 버스에 오른다.

<오대산이나 두타산등은 여기에 비유하면 그 품격이 낮은데도 오히려 이름을 떨치고 아름다움을 전파하여 관란하는 자가 끊이지 않는데, 이 산은 중첩된 봉우리와 동학(洞壑)속에 그 광채를 감추고 숨겨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하물며 그 웅성 깊은 고 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