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3

지리산 둘레길 3번째(운봉읍에서 주천면)

Bravery-무용- 2009. 12. 2. 11:34

2009.11.29

지리산 둘레길

         운봉-양묘사업소-행정마을-서어나무숲-가장마을-질미재-덕산저수지-노치마을-회덕마을-구룡치-

         솔정자-내송마을-주천면   약 14.3 Km

태화산우회와 함께

 

새벽 4시에 일어나 먼저 날씨를 확인하기 위하여 컴퓨터를 켜고 남원지방의 날씨를 검색한다.

기온은 영상2~3도에 구름이 많고 비가 내릴 확율은 60%다.

어제 꾸려놓았던 배낭에 우의를 추가로 챙기고 아파트를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잔뜩 덮여있다.

비가 내린다는 기상예보였는지 신청인원보다도 적은 인원을 태우고 출발을 한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었다 간다는 안내로 붙였던 눈을 뜨니 차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다.

 

둘레길 출발점인 운봉읍 운봉농협앞에 도착한 시간은 9시50여분이다.

운봉은 해발이 500M높이의 고원분지로 운봉분지라고 일컽기도 하고 읍소재지다.

산우들 모두 우중걷기 준비를 마치고 차에서 내린다.

바로 앞 가게에서 고장의 막걸리 "운봉 생막걸리"2병을 배낭속에 챙기고 화살표 방향따라 둘레길로 들어선다.

지난 2번의 둘레길은 적색의 화살표 따라 걸었지만 오늘은 검정표시의 화살표를 따라 걷는다.

 

 

비구름은 마을에서 부터 지리산 서북능선 산허리 부분까지 짙게 깔려 비가 내리고 능선의 산줄기위로는 또 다른 비구름떼가 덮여 있다.

다행이랄까 굵은 빗줄기가 아니라 비를 맞으며 걷기는 힘이 들지 않지만 모두의 마음에는 비와 구름이 걷히기를 바랄것이다.

고기리로 가는 730번 지방도로 인도길을 걷다가 둘레길 화살표가 남원양묘사업소 정문 방향으로 가리킨다.

양묘사업소로 들어서면 사업소안에도 둘레길 이정표가 세워져있다.

양묘사업소를 나와 둑길위에서 양묘사업소 숲해설가가  간단하면서도 친절하게 지리산 서북능선과 백두대간의 구간설명을하여 준다.

구름이 가리지 않았다면 걷는길 좌측으로는 바래봉에서 고리봉, 정령치를 거쳐 만복대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바라보며 걷는다는 설명과 바래봉철쭉에 관한 설명을 우측으로는  백두대간의 산줄기는 보이질 않지만 마을 뒷산줄기 너머로 고리봉에서 여원재로 이어지는 대간설명과 노치마을에 대한 설명까지 하여준다.

둑방길 우측으로 엄계교가 있지만 건너지를 않고 계속 걷다 보면 멀리 섬처럼 보이는 숲이 보인다.

서어나무 숲이다. 

행정마을로 걷는 둑방길 우측은 람천이 흐르고 좌측은 논밭으로 람천변에 연갈색 갈대줄기의 모습은 겨울로 접어든 하천의 모습이다.

둑방길에서 730번 지방도로로 나와 삼산교를 건너면 주천과 정령치가는 길이다.

도로를 건너면 잔디위에 몇 그루의 멋진 소나무가 있는 운봉체육공원이 보인다.

삼산교 옆으로 오래된 다리가 놓여있는데 행정마을로 들어서는 행정교다.

둘레길은 행정교로 들어서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 두 그루의 오래된 서어나무가 마을을 수호하듯 늠름하게 지키고있고 행림정(杏林亭)모정이 세워져 있다.

모정이란 전라도 말로 정자를 일컫는데 사람들이 쉴수 있도록 지은곳으로 마을사람들이 모여 정담도 나누고 이웃간의 우애를 다지는 마을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곳이다.

행정(杏亭)마을은 창녕 조(曺)씨들이 정착할 무렵 은행나무가 숲을 이루어 풍치가 아름다워 사람들이 이곳을 은행마을이라 부르게 되었고 한문표기로 은행리(銀杏里)가 되었고 이를 줄여 행정(杏亭)으로 고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단다.

오석에 표시된 행정마을 화살표따라 시멘트길을 걸으면 둑방위에서 섬처럼 보였던 서어나무숲에 다달은다,

숲을 들어서기 전 두 그루의 서어나무가 문지기 역활을 하고 있다.

행정리 서어나무숲은 제1회 아름다운 숲 대회에서 최고의 상인 대상을 수상한 숲이다.

450평의 서어나무 군락으로 200년이 훨씬 넘었다니 그 규모와 웅장함은 대단하다.

서어나무 수피의 모습은 회색의 검은 무늬가 눈에 띈다.

은행마을의 서어나무수피 모습이 팔뚝 근육처럼 울퉁불퉁 튀어나와 일명 머스트리(Muscle tree) 즉 근육나무라 불리우기도 한단다.

곁들이면 식물의 천이과정 마지막 단계에서 적당한 습도와 온도를 가진 토양위에서 안정된 산림군락을 이루는 것을 극상림이라 한다는데 산림생태계에서는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극상림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가 서어나무로 마을입구에 서어나무숲을 이루고 있는 행정마을은 행운이 가득한 마을이다.

이곳의 서어나무숲은 임권택감독의 "춘향전"에 그네 장면을 촬영하였다 하여 더욱 유명하다.

서어나무에 매달려 있는 그네에 올라 그네뛰기를 하며 어린마음으로 뒤돌아간듯 깔깔댄다.

비닐하우스 서어나무집에서 모락모락 오뎅국물에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며 빗속에 걷는 시름을 잠시 잊는다.

녹음진 서어나무숲을 보지 못한 아쉬움에 나목의 겨울속 서어나무숲을 떠나면서도 몇 번을 뒤돌아 숲을 바라본다.

 

 

 

행정서교를 건너면 안되고 계속 뚝방따라 걷는다.

730번 지방도로가 나오고 가장교를 건너면서 화살표따라 바로 좌측 둑방길로 들어선다.

둘레길을 걸으며 오래되여 보이는 입석도, 홀로 서있는 고목나무등 모든것이 궁금하여 해솔님과 함께 우측으로 내려 논둑따라 몇 그루의 서어나무가 보이고 2개의 돌이 세워져 있는 곳에 가보니 세워져 있는 돌에는 4H마크가 오래되어 희미하게 녹색으로 칠하여져 있다.

6~70년대에 많이 접하였던 4H마크도 어느덧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4H는 나의 머리 head, 나의가슴 heart, 나의 손 hand, 나의 건강 health을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바친다는 뜻을 지녔고 60년대에 민간주도형보다는 정부가 농촌청년들에게 사회교육을 목표로 착수하였고 4H운동이 우리나라 농촌지도사업에 중요한 모체가 되었기에 우리나라 농촌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였다.

되돌아 둑길로 조금만 걸으면 덕산마을 버스정류장이다.

덕산마을은 좌측 덕산교를 건너야한다.

 

 

 

둘레길은 덕산마을로 들어서질 않고 도로를 건너 논둑길따라 가장마을로 들어선다.

가장마을 모정을 지나 마을 어귀로 들어선다.

가장마을의 유래는 풍수지리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화장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하여 가장리(佳粧里)라고 불렀다고 하나 지금은 들녘에 농사짓는 움막터를 뜻하여 농막장(庄)자로 쓰여 가장리라 부른다 한다.

가장리 34-16 가옥을 지나면 순한 순둥이 강아지 두 마리가 개장안에서 낯선 우리를 아무런 표정도 없이 바라보고있다.

문이 닫혀 있는 무인판매점인 콘테이너 박스를 지나면 좌측 아래로 덕산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동복오씨(同福吳氏)묘역앞이다.

묘역길은 다른 둘레길과는 다르게 조용히 걸어가며 길을 허락하신 동복오씨 종친분들과 주민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지난다.

좌측으로 김해김씨 묘동도 보인다.

솔가리 둘레길을 밟으며 걷는 길에 비박을 하며 둘레길을 걷는 일행들을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눈다.

앞선 산우들 질매재 부근에서 비를 맞으면서도 다리쉼을 하며 먹거리를 풀어놨다.

질매란 길마의 사투리로 소등에 얹어 물건을 운반하거나 일할때 쓰는 연장을 뜻하니 소달구지를 몰고 일하러 가던 고개라 질매재란 명칭이 붙여졌나 보다.

옛날에는 소달구지를 몰고 이곳에서 쉬면서 막걸리 한 사발을 마셨을 곳에서 우리는 배낭을 매고 추억을 만들며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킨다.

비를 맞으면서도 넉넉하게 쉬고 출발을하면 논과 논사이 수렛길따라 좌측으로 덕산저수지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덕산저수지의 수계는 섬진강으로 식량생산을 목적으로 농업용저수지로 1945.1.1 준공되었단다.

우리들의 날머리인 주천면에서 부터 이곳까지는 20년전까지만 하여도 운봉,산내사람들이 남원장을 보러다니던 옛길이었단다.

저수지 주변의 넓은 들판에는 농사용 비닐하우스로 덮여있다.

 

 

 

시멘트길따라 걸으면 마을입구에 돌탑이 세워져있고 둘레길 이정표는 노치마을을 알리고 전면의 담벼락에는 백두대간 노치마을을 알리는 벽화가 눈에 확 들어온다.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은 해발 500m의 고랭지로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을 한가운데 백두대간이 지나는 딱 한군데 노치마을

갈대가 엄청많이 자라서 갈대마을이라 했었다가 갈대 노(蘆), 언덕 치(峙)를 붙여 노치마을아라 부른다.

고리봉에서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위에 있어 비가내려 왼쪽으로 흐르는 빗물은 섬진강으로 오른쪽으로 흐르는 빗물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비가 내리는 지금 백두대간을 어림잡고 빗물의 흐름으로 구분을 지어본다.

마을 당산나무같은 거대한 고목나무 옆에는 우리나라지도에 백두대간과 14정맥을 새긴 석조물과 백두대간을 지나는 노치마을에대한 설명이 오석에 쓰여 있다.

먼 옛날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

이제는 둘레길을 걷는 사람이나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꾼들이 모이는 마을이다.

모정앞에서 마을 주위를 둘러보아도 걷히지않는 짙은 안개로 마을 뒷산의 작은 봉우리만 보일 뿐이다.

마을회관옆 모정으로 들어서 넉넉하게 시간을 갖으며 점심식사를 한다.

읍내에서 준비하였던 운봉막걸리도 배낭에서 끄집어 내고 떡라면에 만두국등 푸짐한 먹거리를 나누며 한 시간여를 노치마을에서 머물렀다.

주민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지만 훈훈한 마을의 정을 느낄 수 가 있다.

노치마을을 떠나기 앞서 조형물앞에서 얼굴을 담는다.

그치지 않는 빗줄기에 우의를 입고 마을 어귀를 벗어난다.

모정앞 고목나무를 뒤돌아보며 주민들의 고마움을 마음속으로 전한다.

논과 논사이의 시멘트도로를 15분정도 걸어 지방도로에 들어서면 회덕마을 정류소와 청심후원회에서 세운 회덕마을을 알리는 빗돌이 세워져 있는 곳에 다달른다.

빗돌에는 애향심이 가득한 글귀가 쓰여있다.

 

고 향 산 천

포근한 부모님품이 있고

의지할곳 정이 있어 좋은

우리의 고향산천

산,계곡,맑은물,넓은 들판

수놓여있는 우리의 고향땅

나무내음,풀내음에 도취되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수있는

우리의 보금자리

수많은 추억들 살아 숨쉬고

고향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우리의 고향산천을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리라! 

이곳에서 해솔님과 함께 회덕마을로 들어선다.

 

 

 

회덕마을은 임진왜란때 밀양박씨가 피난하여 살게 된것이 마을을 이룬 시초라 한다.

원래의 마을 이름은 남원장을 보러 운봉에서 오는 길과 달궁쪽에서 오는길이 모인다 해서 "모데기"라 불렀다 한다.

마을회관앞에 세워진 회덕마을사(史)를 읽어보면 "영산 지리산의 정기어린 칠봉산(七峯山) 기슭에 위치하였으며 해발500M의 고원지대로서 산세가 유순하고 농토가 비대한 향리로 300여 인구가 주거하여온 육백여년의 고촌"이라고 적혀 있다.

서울자원봉사센터에서 그려논 벽화도 보이는데 운무속에 산과 학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것이 마치 신선이 사는 동천의 모습이다.

해솔님과 회덕마을로 들어선 이유는 갈대이엉집을 보기위해서다.

평야보다 임야가 많기 때문에 볏짚보다는 억새를 이용하여 지붕을 만들었다.

지금은 두 가구만이 남아있다.

밖에서는 빈집처럼 느꼈으나 대문에서 안쪽을 들여다보니 마루에는 물건을 담은 여러개의 비닐봉지가 보이고 인기척이 들린다.

인사를 드렸더니 오늘이 남원 장날이라 장을 보고왔다며 집주인과는 인척관계로 현재는 서울에 거주한단다.

텔렌트 김혜자씨가 출연한 미풍광고가 이곳에서 촬영하였다는 설명을 하여 주시며 일부러 자물쇠를 열고 곡간에 있는 농기구를 가리키며 동학혁명때 동학군이 사용하였다는 설명까지 하여 주신다.

뒤안에는 장독대와 처마밑에는 땔감나무가 쌓여 있고 본채 맞은편에는 외양간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에 정겨움이 넘쳐난다.

정중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마을을 나와 둘레길 화살표따라 논둑으로 내려서면 바로 징검다리를 건너고 소나무숲길을 오른다.

안개와 빗속으로 시야는 흐릿하지만 솔가리 숲길에 옛 서민의 애환을 느끼며 걷기에 전혀 지루함을 못느낀다.

 

 

 

사무락다무락 표시목앞이다.

사무락다무락은 사망(事望)다무락(담벼락의 남원말)이 운율에 맞춰 변천된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휘어져 있으면서도 멋을 부린 소나무 한그루 주위는 작은 돌멩이로 여러개의 돌탑들이 쌓여 있다.

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돌들을 한쪽으로 치워야만 걷기가 편하여 치우다보니 사람마다 돌을 쌓으면서 일이 잘 풀리기를 기원하며 여러개의 돌탑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구룡롱주(九龍弄珠) 장흥고씨 묘동을 지나 소나무숲길따라 15분정도 걸으면 구룡치 표지목이 나타난다.

구룡치는 해발580M로 오늘 둘레길중에 가장 높은 지점이다.

주천마을의 여러마을과 멀리 달궁마을에서 남원장을 가기위하여 지나야하는 길목이었단다.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백중(은력7월15일)이 지나고 마을별로 구간을 나누어 길을 보수 하였다 한다.

나중에 주천면까지 내려와서 느꼈지만 주천면에서 둘레길을 시작하면 구룡치까지는 계속 오르는 길이라 땀깨나 흘려야 할것이다.

구룡치에서 내려가면 둘레길 주천,운봉14표시점이 나타나는데 누군가 좌측으로 빠른길을 표시하였다.

정상적인 화살표따라 내려가는 숲은 소나무향기가 더욱짙어 소나무에서 내뿜는 피톤치드를 폐 깊숙히 들여 마시며 걷다보면 약간을 내려섰다가 오르면 고개위에서 자연적으로 다리쉼을 하게된다.

국립공원 경계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리산 국립공원 서쪽끝자락에 닿아있는 것이다.

이제는 작은 오름길도없이 소나무숲길따라 내려가다보니 지도상에 표시된 솔정자는 지나쳤다.

 

 

 

개미정지앞이다.

이파리 떨어진 고목의 서어나무가 몇 그루가 반기고 나무 아래에는 평상까지 놓여있어 쉬어가기에는 좋은 곳이다.

개미정지 뜻은 모르겠다.

개미정지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주천면의 마을들이 짙은 안개속에 내려다 보이고 우측으로는 저수지가 있다.

시멘트길따라 내려오면 내송마을 표시점앞이다.

내송마을은 약600년전에 한양 조(趙)씨들이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내송마을은 안솔치라고 부르는데 소나무고개 안쪽을 뜻하는지 모르겠다.

도로건너 마을은 바캍솔치다.

주천면 시내쪽 마을이 가까이 보이지만  둘레길이정표에는 주천면까지 1.6Km 남았다.

시멘트길따라 내려와 넓은 지방도로앞에 서면 내송마을과 행정마을을 알리는 표시판이 큼직히 세워져 있다.

넓은 들판 너머로는 짙은 안개사이로 지리산 자락들이 희뿌옇게 보인다.

육모정과 구례,남원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음식점 비부정(沸釜亭)앞에 선다.

비부정 현수막에는 신라시대에는 함양을 거쳐 경주로 통하였고 조선시대에는 한양가는 유일한길에 있었다는 주막터였단다.

남원호텔 못 미쳐 원천천이 흐르고 호정교를 지나 장안교앞에서 기다리는 태화산우회 버스에 도착하여 3번째 지리산 둘레길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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