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3

"설악행각"따라 용대리에서 대청봉 그리고 한계령까지(1)

Bravery-무용- 2008. 3. 4. 20:36

08년 3월 1일 연휴를 맞아 아내와 함께 설악산 1박 2일 산행을 위하여 보름전 인터넷으로 소청대피소(수용인원 120명)에 예약 하였다.

1일 아침 6시 30분 인천터미널에서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10시 30분 속초에 도착하였다.

백담사를 가기 위하여 터널비 포함 택시비 2만원을 지불하고 미시령터널을 지나 용대리에 도착하였다.

겨울 결빙기로 백담사까지 모든 차량을 통제시켜 셔틀버스도 운행이 중지된 상태다.

어차피 소청대피소에서 1박을 하기로 하였으니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용대리에서부터 걷기로 하였다.

주차장 주위 식당에서 이른 점심식사를 끝내고 11시 15분경 설악산 국립공원 안내판을 따라 자작나무가 길게 늘어선 아스팔트길을 걸어 국립공원 백담분소앞에 도착하였다.

 

분소에 인원과 연락처, 주소등을 기재하고 백담사로 향한다.

왼쪽 백담계곡은 하얀눈이 덮어 있고 간혹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가늘게 들린다.

백담계곡은 가야동 계곡과 수렴동 계곡 물이 합쳐진 백담사에서 부터 용대리에 이르는 계곡을 말한다.

백담사 3.0키로 이정표와 강교를 지나면서 얕으막한 고개를 오르니 아름드리 전나무 한 그루가 반긴다.

백담계곡은 넓은 암반에서 돌맹이들이 널려 있는 모습으로 바뀐다.

백담사 1.5키로 이정표를 지나면서 물이 크게 휘돌면서 섬처럼 보이는 은선도가 쭉 뻗은 소나무숲을 만들며 우리가 오르는 언덕 계곡 아래에 보인다.

 

물오름달 첫날 구름 한 점없는 맑고 푸른하늘에 소요하듯 걷다 보니 어느덧 원교를 지난다.

물오름달은 3월의 순우리말로 오늘부터 뫼와 들에 물이 오르기 시작을 하니 봄을 알리는 달이다.

 

계곡은 오른쪽으로 바뀌고 내설악 백담사 일주문에서 오른쪽으로 돌면서 백담사를 가기 위하여 수심교(修心橋)를 지난다.

수심교 다리 이름이 어울린다.  마음을 씻기위하여 건너야할 다리다.

만해 한용운님의 자취가 가득한 곳으로 "님의 침묵"을 탈고한 곳이기도 하고 만해는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애쓰셨던 분으로 지금도 그 분의 불교 대중화론은 유효하다고 한다.

백담사 경내를 조용히 돌아보고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내설악 산봉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곳으로 이끌리듯 발길을 옮긴다.

계곡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돌탑들이 보인다.

 

 

마음까지 시원스럽게 하며 멋을 풍기는 쭉 뻗은 금강소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영산담(影山潭)을 찾기 위하여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서지만 계곡 바위들은 눈이 쌓여 있어 영산담을 찾지 못하고 아쉬움 속에 다시 산길로 들어선다.

노산 이은상 선생은 "설악행각"에 영산담에서 내산(內山)의 제봉(諸峰)을 바라보며 싯귀를 남겼다.

 

영산담 맑은 물에 저기도 내가 있네

누가 참이온지 어느것이 그림잔지

물속에 지나는 구름보고, 웃고 돌아서니다.

 

계곡 언저리에 오랜세월을 지나면서 두 나무가 서로 합쳐진 연리지가 보인다.

연리지는 남녀간의 애뜻한 사랑을 비유한다니 오늘 아내와 함께 산행을 하면서 연리지와 같이 서로 손잡고 의지하며 알콩 달콩 사랑이 가득하고 즐겁게 살고 싶은 소망도 가져본다.

눈쌓인 계곡길을 따라 잘 다듬어진 돌길을, 나무테크 길도 걷고 왼쪽 길골하류에서 흐르는 철다리를 건너면서 낙엽송 눈길도 걸으며 백담사 1.8키로, 대청봉 11.1 키로 표시판 앞에 다달았다.

표시판 왼쪽은 출입이 통제되여 있는데 길골과 저항령으로 가는 길인가 싶다.

다리쉼을 하면서 아직까지 편한 산길에 아내는 연신 즐거워 한다.

또 한번 다듬어진 돌길과 나무테크길을 걷다 보이는 가운데 칩엽수숲 왼쪽 계곡은 곰골에서 흐르는 물이 이곳에서 합수되는 듯 하다.

 

 

갈색낙엽이 깔려있는 산길을 걷기도 하면서 내설악을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영시암에 도착하였다.

오늘 영시암은 한 낮인데도 인적이 없어 적막함이 감돌고 채마밭은 흰눈이 쌓여 있을 뿐이다.

<삼연 김창흡은 숙종15년(1689년)에 일어난 장희빈 사건으로 그의 아버지 김수항이 죽음을 당하자 세상을 끊고 전국 산수를 즐기다 이곳에 정사를 짓고 은둔 생활을 하였던 곳으로 6년이 지난후 선생의 식비가 이곳 암자 뒤 골짜기에서 범에게 물려간 일이 있어 선생은 그 인정을 생각하고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설악행각 중)

영시암을 지나 소나무, 전나무숲을 걸으면서  모처럼 오르막을 오르기도 하고 나무계단도 오른다.

오세암 2.5키로, 백담사 3.9키로, 봉정암 7.1키로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공원지킴터가 있는 봉정암 가는길 계곡 뒤쪽으로 내설악 첨봉들의 모습이 드러내기 시작한다.

 

 

얼음두께가 얇은 얼음판 숨구멍사이로 물흐르는 소리가 나지막히 들린다.

이제는 계곡보다 높은 산길을 걷는데 눈이 녹지않아 조심스럽다.

왼쪽 가야동계곡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2개의 다리를 건너 수렴동 대피소 앞에 도착하였다.

옛 백담산장에서 수렴동대피소까지를 수렴동 계곡이라 부른다.

산장에는 동곡 김재화의 수렴동산장이 편액되어 걸려있는데 동곡은 인천 부평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이곳도 영시암과 같이 인적이 없다.

구담도 꽁꽁얼어 눈이 쌓여 있다.

"설악행각"에서 구담(龜潭)을 설악의 심장이라할 이 수렴동의 첫 문이라 하였다.

겨울산행이라 내설악 계곡의 청아한 물소리도 옥색의 맑은물을 바라보며 산행 할 수는 없다.

그저 계곡은 눈이 덮여 둥근 모습의 계곡 바위들의 모양만이 보일 뿐이다.

이곳부터 봉정암까지는 구곡담계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름 그대로 아홉번을 굽이 칠것이니 산길도 이와 같으리라.

수렴동 산장을 지나 나무계단을 오르면서왼쪽에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옥녀봉이다.

 

"설악행각"에 옥녀봉을 위치로나 그 모양으로나 그 기품으로나 이 동곡에 단연 여왕으로 군림한줄은 의심하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점점 경사도가 높아지니 우리 부부는 더욱 깊은 내설악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쓰러져 흙으로 돌아가는 나무도 차곡히 쌓아 놓은듯 한 바위도 바라보며 눈길을 밟으며 암벽과 계곡사이의 테크길을 에돌면서 계곡 건너 첨봉의 푸른나무를 바라보면서도 오른다.

 

오늘 산행은 계곡에는 쌓인 눈뿐이라 위를 쳐다보며 푸른하늘과 선을 맞 닿고 있는 기기묘묘한 첨봉들의 모습을 올려다 보며 걸어야 제맛이 난다.

계단을 오르면서 큰 바위에 만수담이라 쓰여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만수담 주위 계곡은 얼음과 눈이 쌓여 있으니 어디가 담이고 어디가 소인지 분간이 안된다.

백담사 6.5, 대청봉 6.4키로 이정표앞을 지나는길 왼쪽은 절리가 된 바위를 따라 계곡을 걷기도 한다.

오른쪽 직송과 어우러진 서북능선의 암봉들이 맑은 하늘 겨울 햇살속에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테크길을 걷는데 왼쪽 직벽 가장 높은 곳에서 큼직한 고드름이 바위를 부딛치며 요란스럽게 우리 앞으로 쏟아져 내려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뛰면서 테크길을 지난다.

건너편에 큰 계곡이 보인다. 철계단들이 휩쓸려 계곡에 뒹굴러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해발 730미터로 귀때기청봉과 서북릉에서 시작하는 백운동계곡이다.

게속 이어지는 계단 오르막으로 발길은 더뎌지고 힘이 부친다.

왼쪽으로 책을 겹겹이 쌓아놓은 듯한 바위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다리를 건너면서 왼쪽으로 용아장성의 모습이 나타난다.

 

 

연갈색의 수많은 내설악의 첨봉들이 파란하늘과 선을 긋고 직벽사이로는 소나무의 푸름이 멋을 더욱 자아내고 잇다.

쌍폭앞에 도착하였다.

왼쪽은 봉정암 오른쪽은 쌍폭골에 물이 내려 오는곳이다.

그러나 오늘은 모두가 얼어 있어 폭포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오로지 연비취색의 얼음덩어리만 폭포에 붙어있다.

 

쌍폭을 지나면서 계단을 오르기도 다리를 건너면서 백담사 9.0,봉정암 1.6키로 이정표를 지나면서도 계속되는 가팔진 오르막  다리쉼을 하니 산새들 옆에서 재잘거린다.

다리에 쌓여 있는 눈의 높이가 50센치 이상 되는것 같다.

 무너져 내리면 어쩌나 괜한 걱정도 한다.

해발 1,050미터 봉정골 입구와 봉정암 0.5키로 이정표를 지나면서도 계속되는 오르막길.

사자바위 고개를 오르기 위하여 또 한번 어기적대며 오른다.

해발 1,180미터 사자바위 고개에 올랐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지만 아내의 안스러운 모습에 내가 힘들다는 얘기는 끄낼수도 없다.

이제 봉정암 200미터.

눈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는가 싶더니 돌계단과 나무계단을 오른다 봉정암 깔닥고개 란다.

다리쉼을 하면서 위를 올려다보니 햇살받은 중청 축구공이 보인다.

17시 13분경 해발 1,244미터 봉정암에 도착하였다.

아내는 암자에서 신도와 등산객의 편의를 제공하여 주는 휴식소에 들어서자 바로 배낭을 내려놓고 누워버린다.

봉정암은 자장율사가 창건하였고 우리나라 5대 직멸보궁중에 한곳이다.

여러 요사채가 있어 왠만한 사찰보다도 크다.

암자 뒤편의 암봉들의 모습은 기기묘묘하다.

 

 

 

"설악행각"에 암봉의 이름을 하나씩 나열 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암을 정중앙에다 놓고 후면의 괴암기봉으로 둘렀는데 암의 우편인 동측의 것은 기린봉, 할미봉, 범바위라하고 거기에서 암의 좌후인 북측의 것은 독성나한봉, 지장봉, 가엽봉, 아난봉 그다음으로 가장 귀걸 장대한 거암을 석가봉>이라 한다.

아내와 아무리 바라보아도 우리로서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노산 이은상선생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마침 추석 달빛아래 시를 ?었다.

 

깊은 밤 이 산골에 들리는 저 물 소리

구구 절절이 오묘한 진리로다

인간에 귀똥 설법은 모두 헛것 이었다.

 

물 소리 마음속을 긴 골 이뤄 흐르나니

밝으신 달이마저 마음 위에 비쳤나니

이대로 지녀 돌아가 고이고이 잠 들리라

 

충분히 다리쉼을 하였나보다.  출발하잔다.

오늘 1박 할 소청대피소로 향한다.

풍경소리를 들으며 종무소뒤 소청으로 오르는 길로 들어선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않는 많은 양의 눈이 쌓여 있고 급경사 오르막이다.

아이젠을 착용하여야 하나 배낭 깊은곳에 있어 끄집어 내기도 그렇고 빨리 오르겠다는 마음뿐 이다.

힘은 점점 부치고 다리는 천근만근이니 비슬비슬 걸어 오르기도 힘들다.

스틱으로 지탱하며 오르다가 넘어지면서 손이 눈에 빠졌는데 어깨까지 쑥빠진다.

바짝 긴장을 하고 앞서 가는 아내에게 발자욱만 밟고 오르라고 몇번을 당부한다.

아내는 목에 메고 다녔던 디카와 스틱까지도 무겁다고 나에게 건네고 거의 탈진하다시피 오르고 있다.

다 오른듯하여 고개를 들면 또 오르고 너무 힘이 들면 단내 난다고 하는데 지금이 그 상태다.

봉정암에서 50여분을 올랐나 보다.  오후6시12분경 소청대피소에 올랐다.

용대리에서 부터 7시간 29,000보를 걸었다.

넌더리를 내면서 산장에 도착하였지만 잠시 숨을 고르니 순식간에 힘든 시간은 잊고 주위를 조망하면서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을 바라본다.

2008년3월1일 태양은 나뭇가지 사이 가리봉으로 점점 숨고 있다.

해넘어간 공룡능선의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다.

 

 

 

 

 

가리봉으로 넘어가는 태양, 공룡능선의 붉은 하늘, 멀리 속초시내등 멋진 풍광을 바라보며 소청대피소의 밤은 깊어간다.

산장지기로부터 방을 배정받고 1인에 숙박비 5,000원 이불 2,000원을 지불하고 준비하여온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끝내고 보일러 시설이 잘 되여 있어 따뜻하게 몸을 녹인다.

밤 9시에 소등은 하였지만 잠이 오지 않아 밖을 나서니 하늘에는 별빛이 초롱하게 빛나고 멀리 속초시내의 불빛이 비친다,

그래도 내일을 위하여 숙소로 들어가 눈을 감는다.

공원입구 - 백담사  6.5 키로,  백담사 - 소청대피소 12.0 키로    계  18.5 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