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

축령산, 시샘달 마지막 해날에 오르다

Bravery-무용- 2007. 2. 25. 18:13

2007. 2. 25 산행은 남양주시 수동면에 위치한 축령산.

 

태조 이 성계가 사냥을 왔다가 한마리도 잡지 못하였는데 제(祭)를 지낸후 멧돼지를 잡아 이때부터 고사(告祀)를 올린 산이라하여 축령산(祝靈山)으로 불리어지게 되였다 한다.

 

자연휴양림이 조성된 산으로 축령산 자연휴양림 빗돌이 세워진 매표소에 입산료(1인당 1,000원 주차료 3,000원)를 지불하고 제1주차장에 아내 그리고 류춘근 부부와 함께 도착하였다.

주차장 바로 위가 휴계소면서 산행 들머리로 축령산 2.74키로, 서리산 2.64키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축령산으로 다리품을 시작하는 산길은 잣나무가 숲을 이루고 숲에는 숲속의 집이 세워져 있다.

앞에는 산악회에서 온 산님들이 무리져서 오른다.

시멘트로 포장된 산책로를 지나면서 좌측은 간단한 체력단련장도 있고 우측에는 잣나무숲아래 긴 나무의자가 있는 야외교실도 있다. 

 

 

유경환님의 "산노을"를 비롯하여 몇분의 시가  야외교실 주위에 세워져 있다.

휘~~~~익 휘익 맑은음의 새소리가 들리는 돌무더기 산길을 올라간다.

이파리가 떨구어진 낙엽숲길과 푸른 잣나무숲이 어우러진 산길을 오르며 우측에는 물한방울 없는 암벽약수에 멈추어 선다.

숨고르기를 하고 오르는 길은 통나무 계단길로 차근차근히 올라 수리바위 능선길로 올라 섰다.

 

정상 1.99키로 이정표가 세워져있고 능선 멀리 수동면의 마을들이 평온하게 보인다.

평탄한 능선길을 걷다가 동앗줄을 잡고 바위를 오르기도 하면서 앞에 나목(裸木)사이로 수리바위가 보이는데 영락없는 독수리부리와 똑같다.

 

바위를 돌아 수리바위 위로 올라서니 바위와 바위사이에 홀로 서있는 소나무의 모습이 한줄기는 고사(枯死)되여있고 다른 한줄기는 힘겹게 서 있으면서도 소나무의 자태를 잃지않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독수리가 많이살던 곳으로 독수리의 두상을 닮았다하여 수리바위.

 

바위아래는 깊은계곡이 펼쳐져있고 먼 산은 잿빛하늘에 희뿌옇게 보인다.

독수리 머리위에 너무오래 머물렀다 독수리 날아오르면 떨어진다 .

가자 남이바위로... 

몇차례를 동앗줄을 잡고 오르는 암능길에는 겨울산의 푸르름을 바위 틈사이로 한껏 멋을 부리는 소나무들이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준다.

 

 

밑둥서부터 두줄기로 뻗은 노송에 팔을 감아 보기도하며 어느듯 제1주차장, 축령산정상 그리고 좌측은 홍구세굴로 내려가는 삼거리능선길에 다달았다.

 

홍구세굴은 조선조 홍씨성을 가진 판서가 이곳에서 제단을 쌓고 발원기도를 하여 후세를 잇고 가문이 번창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능선길 가는길에 갈색 이파리가 떨어지지않은 나뭇잎을 흔들어대며 빰을 살짝스치는 남실바람도 불어댄다. 

능선길 너럭바위에서 배냥을 내려놓고 류춘근 부부와 우리는 다리쉼을하며 따스한 겨울산의 정취에 흠뿍 빠져든다.

 

능선길 좌측 산기슭은 아직까지 잔설이 남아있다.

남이바위에 도착하니 앞에는 까마득하게 깊은 골짜기고 조심스럽게 남장군의 의자에 앉아본다.

 

 

 

 

 

탁트인 전망에 수동면 일대가 보이고 천마산도 한눈에 와닿는다.

 

남이장군이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국난을 대비하기 위하여 이곳에 올라 지형지물을 익혔고 이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다.

 

남이장군은 여진을 토벌하고 26세에 병조판서에 올랐으며 유자광의 모함에 의하여 28세에 처형을 당하였다.

남이장군은 이곳에 올라 장군의 넓고 큰 기개를 키웠겠지?

남이장군은 기개가 넘치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의 물은 말에게 먹여 없애네

남아20에 나라를 평안하게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

 

정상을 바라보니 많은 산님들이 모여있다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듯 하다.

다시 다리품을 시작하는 능선길은 깍아지른듯한 절벽위을 걷기도하면서 안전장치된 시설물을 이용하며 헬기장에 도착하였다.

 

정상까지는 150미터 이정표를 보며 우측사면 위험한구간은 안전시설을 설치한 산허리를 돌면서 정상에 도착하였다.

 

태극기가 휘날리는것이 가장먼저 보인다.

 

 

 

 

 

1950년에 전사한 수동면 외방리,내방리 반공희생자 24명의 희생을 보답하고 후세에 역사적 교훈으로 계승하고자 애국, 화합, 전진을 위하여 태극기를 계양 하였다는 설치 배경이 동판에 적혀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산촌마을 주민일동의 현수막도 걸려 있다.

 

오석(烏石)으로 되여있는 정상석은 886.2미터표시 되여 있고 돌탑이 오석뒤에 쌓여 있다.

 

 

산과 산사이에는 청평호가 보이고 용문산, 천마산이 반대편에는 운악산, 명지산, 화악산이 구름이 듬성듬성 떠있는 희뿌연 하늘이지만 시야에 들어온다.

 

시산제를 올리는 산악회도 보이고 산님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면서 정상의 즐거움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서리산 이정표방향으로 내려서야 절곡으로 가는 길.

가팔진 내리막이고 북쪽 기슭이라 아이젠을 착용하고 나무가지를 잡으며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절고개 안부에 내려왔다.

 

이일대는 억새밭으로 이루어진곳이며 분지형일대는 잣향기 푸른교실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자연학습장을 만드는 곳이기도하다.

세갈래길로 직진은 서리산가는 길 좌측 잔디공원가는 내리막으로 아이젠을 벗고 내려선다.

솔가리가 쌓여있는 울창한 잣나무 숲길이다 들숨과 날숨을 깊이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내려오는길 좌측 작은 골짜기에는 아직까지 얼음이 얼어있다. 

잔디광장에 내려왔다 석간수 한 모금을 시원하게 마셔본다.

제1주차장 가는 길은 시멘트로된 임도로 진입하는 길과 산책길로 두군데다.

직진 산책길로 방향을 잡고 발길을 옮긴다. 낙엽송이 주종인 좌측은 돌들이 널려있다.

임도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계곡으로 내려가 흐르는 계곡물에 손을 담근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버들강아지가 피여있다.

 

홍구세굴입구를 지나 날머리에 내려오니 옆에는 오늘의 들머리였던 휴게소 입구.

류춘근 부부와 같이한 약 6키로에 이르는 산행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