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리, 장푸골(장풍골 長風 - )은...>
덕산리 마을에서는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휴락산방(休樂山房)을 장푸골이라 부릅니다.
위치는 경북 김천시 대덕면 덕산 1리입니다.
귀촌하고 마을 분들이 첫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눌 때면 장푸골 바람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고 들려주었는데 겨울에는 바람도 매섭지만 눈 또한 많이 내려 무릎까지 쌓일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람은 계절과 관계없이 어떤 때는 대덕산 정상에서부터 높바람이 휘몰아 내려오고, 어떤 때는 덕산재에서 된바람이 휘몰아치고, 또 동남향 아래 골짜기에서부터 마파람이 거침없이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푸골이라는 명칭을 얻었다는 것이죠. 경상도 발음상 장푸골, 장푸골하지만 표준어로 장풍골입니다.
인터넷 지도에는 장푸고들로 표시되어 있는데 고들은 들, 평야를 뜻합니다.
해발 500미터 이상 산악지대에 위치한 마을이기에 넓은 평야는 아니고 산 골짜기 비탈진 땅을 화전으로 일구어 계단식으로 논과 밭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있는데 그런 곳을 고들이라 부릅니다.
장푸고들 말고도 하들, 후들이 있습니다.
장푸골에는 우리 휴락 산방과 아랫집 김동칠 댁, 2채뿐이며 나머지 땅은 계단식 논과 밭으로 되어 있습니다.
장푸골 위쪽은 바랑골, 장푸골옆 덕산재 오르는 곳은 우뚝골, 장푸골 우측 계곡은 처당골, 장푸골 아래는 주막담이라 부릅니다.
귀촌 2년이 다 되어오는데 마을분들의 이야기처럼 바람이 거세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바람이 텃밭에 심어져 있는 들깨, 대파를 모두 쓰러뜨리고, 정원에 글라디올러스 꽃대가 부러지기도 하였는데 그나마 이런 것은 괜찮은 편입니다. 물통이 날아가 아랫집으로 떨어지고, 손수레가 뒤집히고, 컨테이너 지붕을 받혀주는 시멘트 기둥이 바람에 흔들린 때도 있었습니다.
산책을 하다 보면 장푸골 바람이 다른 곳보다 세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산책길 덕향의 숲 길만 들어서도 바람의 세기가 현격히 줄어드니까요.
바람만 생각하면 살만한 곳이 못된다 하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바람이 항상 세게 부는 것도 아니고 장푸골은 동남 방향으로 양지바르고, 전면으로 보이는 풍경은 언제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은데 매일 그 풍경의 느낌은 다릅니다.
누가 봐도 장푸골 지형은 배산임수(背山臨水)입니다. 풍수지리설에서 주택이나 건물을 지을 때 이상적으로 여기는 지세이지요. 대덕산을 등지고 양 옆으로는 30번 국도와 처당골 골짜기 물이 흐릅니다. 요즘에는 도로를 물이 흐르는 강이나 하천으로 본다고 합니다.
또한 산세로 보면 좌청룡, 우백호(左靑龍, 右白虎)의 형상입니다. 주산인 대덕산을 기점으로 바라보면 왼쪽이 청룡이고, 오른쪽이 백호가 되는데 청룡은 신선봉이며 백호는 초점산입니다.
오늘날에는 사람이 살만한 명당은 풍수지리를 떠나 전면이 꽉 막혀 답답하지 않고, 확 트인 풍경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한데요 아무리 보아도 장푸골은 풍수지리설로 보든, 풍경으로 보든 모두 맞아떨어져 명당 중에 명당입니다.
장푸골의 뜻을 풀이하면 더욱 매력 있습니다.
장푸골을 표준어로는 장풍골(長風 - )입니다.
장풍(長風)의 뜻을 찾아보면 "멀리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뜻"하는데 "씩씩하고 기운찬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국어사전에 적혀있습니다.
또한, 장풍파랑(長風波浪) 고사성어가 있는데 유래는 이렇습니다. 중국 남조 송(南朝宋) 때 예주자사와 옹주자사를 역임하였던 종각(宗慤)이 어렸을 때 그의 숙부가 장래의 포부를 묻자 "장풍을 타고 만리의 물결을 헤쳐 나가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는데 그는 후에 장군이 되어 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양후에 봉해졌습니다.
장풍파랑(長風波浪 긴 長, 바람 風, 물결 波, 물결 浪), 멀리 불어 가는 큰 바람을 타고 끝없는 바다 저쪽으로 배를 달린다는 뜻으로 대업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아내는 이순(耳順)이 지났고, 나는 종심(從心)의 나이, 젊은이와 같은 장풍파랑의 의지를 불태우며 큰 꿈을 꾸지는 않지만 장푸골 바람을 등지고 먼 가야산 상왕봉을 바라보며 분수에 넘치지 않고, 탐욕과 욕심은 내려놓고, 오로지 휴락 산방에서 작은 텃밭과 정원을 가꾸며 소소하고 소박한 즐거움, 그리고 신앙 속에 이것이 참 행복이구나를 느끼며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영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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