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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산은 김천 삼산이수(三山二水)의 명산

Bravery-무용- 2019. 12. 26. 08:52

 대덕산은 김천 삼산이수(三山二水)의 명산


대덕산(大德山 1,290m)

전북 무주군 무풍면()과 경북 김천시 대덕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에 위치한 산입니다.

덕산재 등산로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면 정상을 대덕산(투구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산 모양이 모자처럼 생겨 투구봉이란 이름도 갖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투구봉이란 명칭보다 그냥 대덕산 정상으로 부릅니다.

대덕산이 예전에는 다락산(多樂山), 다악산(多惡山), 투구봉, 오금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다락산(多樂山)과 다악산(多惡山)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한자로 많을 다(多)를 앞에 세우고, 뜻이 전혀 다른 즐거울 락(樂)과 악할 악(惡)을 썼기 때문입니다. 

樂은 어떤 의미로 쓰느냐에 따라 읽는 법이 3가지로 구별되는데요. 

첫 번째, 즐거움을 뜻 할 때는 낙 혹은 락으로 읽어 매우 기쁘고 즐거울 때 희희낙락()한다고  하고, 

두 번째, 노래나 풍류 등 음악을 뜻하면 악樂으로 읽습니다. 악보(樂譜), 악기(樂器), 악사(樂士) 등 이죠,

세 번째, 좋아함을 뜻하면 요樂로 읽어 산수의 경치를 좋아한다고 할 때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읽습니다.

우리나라 산 이름에 "악"자가 들어 있는 산은 모두가 큰 산으로  관악산(冠岳山), 치악산(雉岳山), 월악산(月岳山), 설악산(雪嶽山) 등이 대표적입니다.

높은 산의 뜻을 가진 악(岳, 嶽)을 썼지 미워야 할, 악할 악(惡)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산 이름에 미워야 할, 악할 악(惡) 자가 들어있는 산은 한 곳도 없으며, 어머니 품과 같은 대덕산을 다악산(多惡山)으로 불렀다는 것에는 더욱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보통 이름에 쓸 때는 노래나 풍류를 뜻하는 악은 잘 쓰지 않으니 즐거움이 많다는 뜻의 다락산(多樂山)이 예전에 불리었던 이름으로 생각됩니다.

 

한편, 오금산은 언제부터 그렇게 불리게 된 근원은 모르겠으나 덕산재에서 무풍 방향으로 제일 가까운 부평(富坪) 마을 입구에는 마을의 유래가 쓰여있는 빗돌이 오석에 세워져 있는데 그 빗돌에 오금산이 나옵니다. 

"부평마을은 조선왕조 13년 1580년에 경주 이 씨가 풍동면(豊東面) 오금산(대덕산) 밑에 정착하였다." 고 적혀있습니다.

덕산리 마을에서는 대덕산 정상을 "만데이"라고도 부릅니다. 만데이는 그 산의 명칭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경상도 방언으로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을 가리키는데 마을에서 볼 때 초점산에서 대덕산, 덕산재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에서 대덕산 정상이 가장 높습니다.

 

대덕산 서쪽 계곡물은 금강의 발원지며, 동쪽 얼음골 폭포는 낙동강의 발원지입니다.

서쪽은 여려 개의 작은 계곡물이 무풍천을 거쳐 금강으로 흘러들어 갑니다. 

덕산재에서 40여분을 오르면 해발 약 850m 그 지점에 낙동강 발원지 얼음폭포가 있으며, 얼음골 악수터는 얼음폭포보다 더 높은 약 1,100m쯤에 있습니다. 

대덕산 얼음골 약수터와 얼음 폭포에서 발원한 물은 덕산리 방아골로 흘러내려 덕산천을 거쳐 김천 이수(二水) 중 한 곳인 감천 상류를 형성하고 직지천과 합류하여 낙동강으로 흘러 국토를 적시며 기름진 땅으로 만듭니다.

2016년 6월 산행 때 얼음골 약수터에는 다음과 같은 좋은 글귀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는데 금년 10월 다시 찾아갔을 때는 그 좋은 글귀가 많이 퇴색하여 보이질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 얼음골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는 길손이시여!>

사랑 하나 풀어 던진 약수터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 한 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우리는 한 모금의 샘물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이 산임을 인식합니다.

우리는 한 모금의 샘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이 산임을 인식합니다.

<대덕산 얼음골 약수터를 사랑하는 사람들>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의 백두대간 종주기 "희망을 걷다"에서 백두대간 길을 걸으며 만난 얼음골 약수터 앞에서 샘과 샘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고 하였습니다.

 

덕산재에서 올라가면서 정상에 약간  못 미쳐 해발 1,270m쯤, 등산길에서 좌측으로 약간 비껴가면 산꾼들에게는 전망대로 알려진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우리 덕산 마을이 가장 잘 내려다 보입니다. 물론 휴락 산방도 선명합니다. 

 

대덕산은 전체적으로 특이한 형태의 기암괴석이나 넓은 암반의 계곡이 있어 물이 흐르며 소(沼)가 만들어졌고 폭포가 있어 돌확이 만들어졌다든지, 아니면 어떤 식물의 군락지가 있다는 등 특이하게 느끼는 경관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상에서는 서쪽은 덕유산 국립공원, 남동쪽은 가야산 국립공원, 남쪽은 지리산 국립공원 주능선 등 세 곳의 국립공원이 보이고, 북쪽은 황악산,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 등 산 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동쪽으로는 금오산, 팔공산, 비슬산 등 먼산들의 수많은 봉우리들과 가까이는 월매산, 수도산, 단지봉 등의 봉우리들도 끝없이 솟았다 내려앉았다 보이는 풍광은 그지없이 평온하여 호연지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썩 좋은 산입니다.

정상은 지적도상으로는  무주군으로 되어 있는데 정상석은 김천시에서 세워놓았습니다. 영호남 화합의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정상에는 2개의 정상석이 있는데 하나는 오석으로 되어 산의 높이가 적혀있는 작은 정상석과 다른 하나는 묵직하게 큰 화강암의 정상석입니다. 그 큰 정상석 뒷면에는 "대덕산은 남서쪽의 삼봉산(1,253m), 덕유산(1,614m), 북쪽의 민주지산(1,242m) 등과 함께 높이 솟아 있는 산으로 영호남의 분수령이며 덕을 품고 있는 산으로 거대한 봉황이 날아가는 현상이다. 지금까지 이 산에서 기를 받고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2013. 8. 20 김천시장"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좀 과장된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없다'는 내용은 있지만 1,290m를 올라와서 이 글을 읽었다면 잠시만이라도 원대(大)한 생각을 가져 볼 수 있을 겁니다.

 

정상 주위에는 키 큰 나무들이 없어 새근발딱 힘들게 정상을 올라온 산꾼들은 그늘에서 숨을 고르기는 어렵습니다.  

정상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는 경비대와 통신부대가 주둔하였던 곳으로 초원과 같이 드넓고 헬기장이 있습니다.

 

산 능선 따라 서쪽으로 구분되는 무주군 무풍면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에 속했었고, 지리적으로 경상북도 김천시와 붙어있어 언어 및 풍습이 지금도 경상도에 가깝습니다. 

무주 설천면과 무풍면 경계에 있는 나제통문 (羅濟通門)은 아주 오래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로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경계하였던 문으로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바위를 뚫어 만든 굴문입니다.

 

3년 전, 귀촌을 위하여 무풍에 있는 부동산을 찾아 대화를 나눌 때 여기가 경상도인가 할 정도로 경상도 말씨를 써 혼란스러웠었습니다.

 

대덕산은 김천에서 볼 때 제일 서쪽에 위치한 산입니다.

 예부터 김천을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삼산이수(三山二水)란 세 개의 산과 두 개의 물을 뜻하는데 산과 물로 대표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빗대어 설명한 것입니다. 김천시를 대표하는 삼산(三山)은 황악산, 금오산, 대덕산이며, 이수(二水)는 감천과 직지천을 말합니다.

삼산이수(三山二水)에서 산과 물이 모두가 연관되어있는 대덕산은 김천에서는 무척 중요하게 여겨 등산로에는 김천시 대덕면 이장협의회에서 대덕산 탐방로 개설을 한 흔적의 리본이 간간히 나무에 매달려 있습니다.

 

또한, 무주군 홈 페이지에서도 대덕산 설명이 있습니다. 옮겨 보면

<대덕산은 무주군의 최동단에 위치한 1,290m의 대덕산은 가야산을 향해 뻗은 능선을 사이에 두고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을 갈라놓은 삼도 분기점, 즉 해발 1,250m의 초첨산을 옆에 둔 명산으로 옛날에는 다락산, 다악산으로 불리었고 정상에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전하는 명산이다.

경상남·북도와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선조 31년(1598)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는 전라병사(全羅兵使) 이광악(李光岳)이 왜적을 물리친 곳이며, 영조 4년(1728)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亂)의 난 때에는 이 지역의 의병들이 반란군을 물리쳐 국난이 있을 때마다 고장을 지켜 주었던 명산이다.

부드럽게 생겼으면서도 우직한 남성다운 덕기가 어린 이 산은 예부터 수많은 인걸들을 배출했고 또한 국난이나 이산이 있는 무풍동은 남사고의 십승지 중 하나로 천재지변이 생길 때마다 이주해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더욱 유명하다.>

 

덕산리 마을에서는 대덕산에 대하여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덕산은 암컷과 수컷을 아울러 이르는 뜻의 암수에서  암컷, 즉 여자를 닮은 산이라고 하여 암산이라 하는데요. 그 암산 대덕산이 무풍에서 바라볼 때는 여성의 젖가슴을, 덕산에서 바라볼 때는 여성의 생식기를 닮았다는 것이지요. 

엄마의 젖가슴은 어린 자식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서 저고리를 풀고 젖꼭지를 꺼내야 되기 때문에 젖가슴을 보여주지만, 여성의 생식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부위입니다.

그래서 능선을 경계로 무풍 방향 서쪽은 여성의 젖가슴을 닮아 산삼 등 약초가 많이 발견되고 채집하는데, 남쪽 방향 덕산에서는 여성의 생식기를 닮아 산삼 등 약초가 눈에 띄지 않고 아주 드물게 찾을 수 있다고 덕산리 주민들은 믿고 있습니다. 

그렇듯 하게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산세를 보면 꼭 만들어 낸 이야기도  아닌 것 같습니다.

무풍면 쪽은 경사가 완만하면서 도로의 굴곡도 그렇게 심하지 않아 약초를 캐는데 큰 어려움이 없겠지만  대덕면 쪽은 가파른 경사에 올려다보면 너덜지대가 많아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또한, 대덕산에는 금광(金鑛)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에는 번성하였다가 60년대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주막담, 큰골 등 몇 군데 폐쇄된 금광 입구 흔적이 그 번성했던 시절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산림청', '블랙야크', '한국의 산하', '월간 산' 등 4곳에서 100명산을 발표하였는데 4곳에서 발표한 100대 명산이 모두 같지는 않습니다. 4곳을 비교하면 40여 개 이상의 산 이름이 다른데 대덕산은 140여 개의 명산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포함되지 못한 요인 중에 하나는 오랫동안 군부대가 주둔하여 접근을 못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며 이제는 충분히 100대 명산에 포함되어야 할 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확 트인 정상 주위를 자연을 살리면서 특색을 갖추면 더욱 좋겠지요. 

예를 들면 넓은 정상을 억새밭으로 조성한다든지, 아니면 야생화 단지로 만들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천체 관측자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어두운 밤하늘인데 대덕산 넓은 정상에서 밤하늘은 어둠이 막힘없이 높게 보여 최적의 관측 장소로 이용하여도 좋고, 한편 일출, 일몰, 자연경관 등 풍경을 담는 사진작가(photographer)를 위한 장소로도, 아니면 야영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정상에서 비바크(Biwak)를 할 수 있는 공간을 꾸미는 것입니다. 단,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자연을 벗 삼으며 즐기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게끔 꾸몄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