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1년. 김천 덕산리 휴락산방(休樂山房) 생활
<도시를 떠나다>
2018년 7월 12일.
"도시를 떠나거라, 도시를 달아나거라, 뒤돌아보면 죽는다."
이기호 신부님의 "산 위의 신부님" 책 속의 창세기 19장이 연상되는 글을 떠오르며 68년 동안 살았던 인천을 떠나 해발 520M 높이에 있는 김천시 대덕면 덕산 1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느림의 삶 속에서 즐거움을 찾기 위하여 휴락산방(休樂山房)이라 이름을 지었고, 심원(深元) 김영국(金英國)께서 예서체로 직접 쓰고 목각까지 하여 주셔 정문 입구에 설치하였습니다..
첫날, 이삿짐을 대충 정리하고 식탁에서 하는 저녁 식사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인천을 떠나기 전날 친구 류춘근 부인이 바라바리 준비하여 준 밑반찬으로 차려 놓은 식단이기에 맛은 그 어느 때 보다 값졌습니다. CBS 레인보우에서는 탐 존스의 틸(Till) 이 흘러나오고 거실 밖으로 보이는 산너울과 뭉개구름에 노을빛이 물든 풍경을 바라보면서 하는 식사는 세상에서 가장 클래식하고 아름다운 레스토랑 휴락산방이었습니다.
어느덧 1년이 되었습니다.
정든 인천을 떠날 때 누구는 얼마나 견딜 것인가 하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습니다.
<텃밭과 정원 만들기>
집을 구분하여 좌측은 채소 등을 가꿀 텃밭을, 우측은 꽃들로 수놓을 정원으로 꾸미고 있습니다.
일 년 동안 텃밭과 정원을 가꾸는 일이 우리 부부에게 가장 힘이 들었고, 어려움도, 다툼도 많았습니다. 허리가 안 좋은 아내는 너무 무리하여 보름 만에 통증 완화 주사도 맞고, 6개월째에는 인천까지 가서 허리 통증 치료를 받았는데 이제는 허리를 구부리고, 쪼그리고, 앉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더욱 조심을 합니다.
하여튼 일 년 동안 두 손으로 삽질과 괭이질을 하며 텃밭을 가꾼 보람은 대단합니다.
꽃을 심는다든지 농작물을 심을 때마다 거기에 맞는 땅만 삽질과 괭이질을 하여 돌을 캐내면서 퇴비도 주며 일구었는데 이제는 텃밭과 정원의 모든 땅이 자기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지요.
작년에는 김장 배추와 무를 심어 수확을 하였는데 현재 텃밭에는 들깨, 방울토마토, 대파, 부추, 고추, 상추, 도라지, 더덕, 두릅, 달래 등이 심어져 있습니다.
무공해 고랭지 상추와 고추는 매일 식단에 올라오고 우리 부부 매일 갈아서 먹는 방울토마토는 반은 마트에서 구입한 것, 반은 우리가 재배한 방울토마토입니다.
우측 정원에 세워져 있는 23개의 아치에는 흑장미, 빨간장미, 백장미 등 넝쿨 장미를 심었습니다. 몇 송이의 장미꽃만 피어 있는데도 강열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데 2, 3년 후에는 더욱 강열하고 아름다운 장미 아치가 되겠지요.
정원에는 수선화, 작약, 튤립, 백합, 칸나, 꽃잔디, 붓꽃, 독일붓꽃, 송엽국, 국화, 꽃양귀비, 각시 패랭이, 겹 패랭이, 매리골드, 카네이션, 글라디올러스, 분꽃 등 을 심었습니다.
나는 귀촌하여 정원을 가꾸기 전에는 위에 적혀있는 꽃 중에 국화와 붓꽃, 꽃양귀비, 칸나, 백합 정도만 알고 다른 꽃은 전혀 모르는 꽃이었습니다.
마늘은 작년 11월에 파종하고 6월에 수확을 하였습니다. 1접을 파종하였는데 3접 반을 수확했습니다.
<가꾼다는 즐거움>
정원과 텃밭을 가꾸는 것이 이렇게 즐겁다는 것을 70 나이 다 되어야 알게 되었다는 거죠.
평생을 시멘트 바닥만 밟았던 70년의 세월이 몸도 마음도 시멘트 바닥처럼 메말라 있었던 것이지요.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웠던 식물들에게 눈빛 한 번 보내주지 않았고 오히려 동절기에는 베란다에 내놓았던 화분들을 거실로 옮길 때는 일을 한다는 자체로 귀찮았을 정도였습니다. 아내의 거듭된 요청만 아니면 옮기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귀촌하여 노지에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고, 구근을 심고, 산에서 치수(稚樹)를 소중히 모셔와 심고,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떤 때는 빨리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으면 하는 조바심까지 납니다.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성어를 만들어 놓은 어리석은 농부와 같은 심정이었지요.
식물도 자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곱게 예쁘게 잘 자란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만남을 갖도록 노력을 하였습니다. 꽃봉오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뿌린 씨에서는 새싹이 돋아나고, 죽은 듯이 뻣뻣해 보였던 어린나무에서 새순이 틔울 때의 기쁨. 그 기쁨 때문에 잡풀을 뽑는 일이, 흙을 고르는 일이 힘이 든다, 하기 싫다는 생각을 가져 볼 틈도 없습니다.
이제 스스로 나는 정원사 가드너(gardener)이다고 하면서 정원사로서 흙의 주인이 되어 기쁘게, 즐겁게 노동을 할 수 있다는 노동의 가치를 느끼는 삶속에 생활하고 있습니다.
체코작가 카펠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 달"에 <훌륭한 정원가나 농장주인은 보통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바른생활 사나이>라 하였고, 헤르만 헤세는 "정원 일의 즐거움"에서 <땅과 식물을 상대로 일하는 것은 명상과 마찬가지로 영혼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쉬게 해주는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오지(奧地)는 아니었다>
처음 땅을 구입하였을 때는 적막강산 같았었는데 이제 1년을 살면서 우리 마을이, 우리 집이 두메로 느끼질 않습니다.
자동차로 10분만 내려가면 면사무소, 우체국, 파출소, 농협, 24시간 편의점, 식당, 하나로 마트 등이 있습니다.
30번 국도가 덕산 1리 마을을 지나고 있어 KTX 김천(구미)역이 있는 혁신도시는 자가용으로 40분, 버스는 하루 5편이 무주와 대덕, 무주와 김천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운행하고 있습니다. 지례에서 김천까지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더욱 편리합니다.
눈 내리는 겨울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국도이기에 국토관리청에서 눈이 내리기가 무섭게 제설을 하여 다른 도로에 비하여 도로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도시인들은 주말이면 힐링을 한다는 목적으로 산, 강, 바다를 찾아 도시를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그와는 반대입니다. 주말이 되면 김천시내로 나갑니다. 마트도, 재래시장도 들르고, 영화관도 찾아갑니다.
<귀촌을 망설이는 세 가지>
귀촌을 하고 싶지만 선뜻 못하는 이유 중에 문화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도시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문화생활이 어떤 것일까요?
오페라, 클래식 연주회, 유명 연예인의 디너쇼 등을 본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이해력 부족과 함께 비싼 관람료로 감히 엄두도 못 내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문화생활은 도서관 이용, 가수들의 리사이틀, 연극, 영화 관람 등 이겠지요.
우리 부부는 주말이나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극장을 찾아갑니다. 김천에는 메가박스와 CGV가 있고 김천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으며 도서관은 문화강좌도 실시합니다.
김천시립미술관, 김천 세계 도자기 박물관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문화생활은 언제든 즐길 수 있는 것이죠.
귀촌을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몸이 아팠을 때입니다.
치아가 나빠 치과를 찾았었습니다. 시설은 인천에서 단골로 다녔던 치과보다 더 좋고 의사의 상세한 설명과 실력(?)도 월등히 좋았습니다.
아내 역시 중이염으로 김천의료원에서 치료를 받았었는데 큰 어려움 없이 완치시켜 줍니다.
도시인들은 지방 병, 의원은 시설과 진료에 많은 의심을 갖고 있는데 편견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마을 주민들과의 마찰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몸에 밴 도시생활을 농촌에서도 똑같이 적용하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비유하고 싶습니다.
정원에 새로 심은 나무는 토양에 맞지 않지만 나무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하여 이파리도 떨어 뜨리며 몸을 가볍게 합니다. 그러면서 땅속의 뿌리는 흙과 다툼을 하지 않으며 흙에게 비위를 맞추며 자기의 뿌리를 내리고 적응하여 때가 지나면 정말 정착하여 튼튼하게 성장을 합니다.
귀촌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튼튼하게 하려면 귀촌한 마을의 풍습과 주민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도록 내가 먼저 노력해야 합니다.
정월대보름 행사가 있었습니다. 꽹과리와 북, 징을 치며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마을을 돕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카톨릭 신자인 나는 민속 신앙이 아닌 우리의 전통 세시 풍속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모든 마을 분들이 북과 괭가리를 치며 집을 찾아왔을 때 함께 춤도 추며 어울려 주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마을 어른께서 어울려줘 고맙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까지 젖어 있던 도시 생활의 자만심을 벗어내야 합니다. 도시에서 왕년에 나는~~ 했는데 라는 말은 삼가야 합니다. 마을분들과 거리를 두지 말고 살갑게 다가서야 합니다. 마을 행사에는 빠지지 말아야 하고 혹시 찬조할 일이 생기면 조금만 더 찬조를 하여주어도 마을분들은 고마워합니다. 한편 마을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는 성별과 나이에 구분 없이 경청하여 주어야 합니다. 그분들께서 마을에 정착하여 사는데 필요한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농업인>
농업인 등록에 필요한 농지가 300평이 안되어 마을 분에게 임차를 받아 면사무소에 농업인 등록을 하고, 농협에는 조합원 가입을 하였고,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 경북지원 김천사무소에 경영체 등록을 하였습니다.
농업인 등록이 되면 평생 납부하여야 하는 건강보험료가 50% 감액되어 귀촌 생활에서 가장 크게 경제적 부담을 줄여줍니다.
농협 조합원이 되면 농협에 출자할 수 있으며 농협에서 판매하는 농자재 등 모든 물품은 경영체 등록을 하여야 구입할 수 있습니다.
<산책길>
매일 하는 산책길은 우리 집에서 더 깊이 들어갑니다. 약 7 천보의 보행 거리입니다. 산골짝 우리 집도 청정한데 더 깊이 들어 갈수록 숲 냄새는 더욱 짙어지고 계곡에서는 물소리가 걷는 걸음을 상쾌하게 하여 줍니다. 길섶에는 큰 금계국, 하늘나리, 큰 까치수염 등 야생화들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꾀꼬리, 종달새 등 새들의 지저귐은 걷는 걸음을 가볍게, 다람쥐는 먼발치에서 재롱부리다 가까이 가면 숲 속으로 몸을 숨깁니다. 오디, 산딸기는 지천에 널려 있어 걷다가 따먹고, 풍경은 걸음걸음 달라집니다. 그 길을 "덕향(德香)의 숲길"이라고 우리 부부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풍경>
매일 맞이하는 풍경은 늘 다른 느낌으로 다가서지만 그래도 가장 인상 깊은 풍경은 남쪽 가야산 방향의 아침노을과 서쪽 방향에 위치한 대덕산, 초점산의 아침 햇살.
붉게 구름을 색칠한 저녁노을. 하얀 구름이 그려내는 여러 가지 모양이지요.
아랫마을 연화리는 구름 속 갇혀 있지만 우리 마을은 구름 위에 있고, 그곳 연화리에서 구름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마을 신선봉을 연하게 감싸는 풍경을 비스듬히 비껴서 바라보면 그림을 스케치할 수 없는 나에게도 한 폭의 산수화를 머릿속에서 멋들어지게 그려냅니다.
김형석 교수께서는 '하늘과 구름' 그 속에는 무한에 가까운 예술품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를 머금은 매지구름만 아니라면 구름은 아침과 저녁 노을빛에 어우러져 화려한 색상으로 물든 꽃구름, 산 봉우리에 걸려있는 삿갓 구름, 새털처럼 보이는 새털구름 등 그 모습에 따라 산의 모습도, 하늘의 모습도 모두가 달라집니다.
어떤 날, 우연히 저녁노을이 질 때 대덕산 위에 떠있는 구름덩어리 모두가 붉게 물들어 온 산이 불타 오를듯한 풍경을 보았을 때는 넋을 한동안 잃었고, 비가 내리다 그친 후 검은 구름장 위에서 햇살이 구름을 뚫고 남쪽 방향의 모든 산에 비치는 빛 내림(틴들현상 Tyndall phenomenon)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듯이 느껴 경이롭기까지 하였지요.
해 뜨는 위치도 아주 느리게 매일매일 변합니다.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면서 일출 시간이 빨라지는 하지(夏至) 때가 되는 6월 22일쯤에는 정동(正東)에 가까운 곳에서 해가 떠오릅니다. 집에서 볼 때 신선봉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조금 내려온 것에서 태양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날짜가 지나면서 우측으로 이동하는데 7월 20일쯤에는 신선봉 정수리 위에서 비추면서 남쪽으로 움직입니다.
추분 때인 9월 22일쯤에는 신선봉 산허리가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짐작하건대 팔공산 방향에서 떠 오릅니다,
11월 중순에는 태양이 남으로 더 이동하여 독용산에서 햇귀가 비치다가 태양의 고도가 가장 낮아지며 일출시간이 가장 느려지는 동지 때인 12월 22일쯤에는 정동에서 남쪽으로 가장 많이 내려가 해가 떠오릅니다. 집에서 보이는 위치는 정면에 보이는 가야산 상왕봉 못 미치는 능선입니다.
그때 동지를 전후하여는 붉은 아침노을이 남쪽의 산들을 붉게 물들이며, 해는 주황색을 띠며 떠오르는데 그때가 가장 장관입니다. 이때쯤 대덕산, 초점산 아침 모습은 아침 태양의 빛으로 온 산이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눈이 내린 겨울.
평원(平遠)의 풍경을 보여주는 남쪽 방향 가야산, 수도산, 월매산 등 모든 산 능선이 솟았다가 가라 앉기를 반복하며 모두가 흰백의 모습으로 보일 때,
서쪽으로는 상고대가 하얗게 피어있는 순백의 대덕산, 초점산 모습도 잊지 못하는 풍경입니다.
<자연을 소중히>
자연 속에 집을 짓고 살면서 가장 안타가운 것은 집 한 채를 지으면 집을 지은 것보다 더 많은 자연의 모습은 잃어가는 것입니다.
새들이 우리 집 유리에 부딪히는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물총새가 물까치가 그리고 배가 노란 이름 모를 새가 우리 테라스 유리를 받고 그 자리에서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집이 없었다면 마음껏 날을 수 있는 공간에 새들이 보았을 때는 공간을 위장한 유리에 부딪친 것이지요.
집을 지을 때 웅덩이에 개구리와 올챙이, 개구리알 들이 무수히 살아 있었는데 웅덩이를 메꾸면서 그 많은 개구리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하여튼 우리 집이 있으므로 그만큼의 식물과 파충류, 들짐승들, 새들의 놀이터는 사라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 부부가 자연 속에 함께 살고자 한다면 농약을 자제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농약을 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을 분들이 제초제를 뿌려라 해충제를 뿌려라 하여도 마을분들이 하라는 데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그대로 실천하면 매일 성분이 각기 다른 농약을 뿌려야 할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친환경적 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식탁에 매일 올라오는 상추, 고추 등은 고랭지 무공해 채소이지요.
<전통주를 배우다>
아내는 금년 1월부터 4월까지 부항면 하상훈에게 전통주를 사사(師事)했습니다. 그 후 아내가 모든 것을 직접 만들었고 하 선생으로부터 완벽하다는 품평을 받고는 재미로 빚는 전통주가 아닌 판매까지 생각을 하면서 김천시에 귀촌정착지원금 신청을 계획서와 함께 제출하였는데 일단은 통과되었습니다. 현재는 아내와 함께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 향기 빚는 정여사 - 덕향주> 블로그도 만들었습니다. 덕향주(德香酒)는 대덕산(덕산리)에서 "덕"과 향기에서 "향"을 따온 고유 이름입니다.
<앞으로>
귀촌 후 우리 부부는 약속을 했습니다. 텃밭과 정원 가꾸기의 첫 번째 원칙은 절대 서두르지 않고, 하루 노동은 3시간 이상 하지 않기, 아침에 일어나서는 1시간 이상 산책, 2~30분은 낮잠 자기이며 음악 듣기와 책 읽기를 통하여 두뇌를 활성화시키자는 것이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계속 이어져야겠지요.
귀촌, 쉽지도 않았지만 결코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귀촌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염경보 덕분에 영화 라이온킹을 보다 (0) | 2019.07.30 |
---|---|
귀촌 아홉 번째 이야기 (귀촌한 정여사, 장푸골에서 생애 첫 술을 빚다.) (0) | 2019.07.25 |
강인한 송엽국(松葉菊) (0) | 2019.07.04 |
바위솔을 노지에 심고... (0) | 2019.06.26 |
휴락산방이 있는 덕산리에서 복분자 수확하기 (0) | 2019.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