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이야기

(귀촌 생활 3번째 이야기) 귀촌이 우정도 되찾게 하여 주었다

Bravery-무용- 2018. 9. 12. 10:43

3. (귀촌 생활 3번째 이야기) 귀촌이 우정도 되찾게 하여 주었다

 

교칠지교(交)아교(阿膠)와 옻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아주 친밀하여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우정을 이르는 사자성어입니다.

당() 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白居易 자는 낙천)와 시인 원진(稹 자는 미지)의 관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두 사람 다 시골로 좌천되어 떨어져 있음에 서로 그리워지자 백낙천이 원미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4월 10일 밤에 낙천은 아뢴다. 미지여, 미지여. 그대의 얼굴을 보지 못한 지도 이미 3년이 지났네. 그대의 편지를 받지 못한 지도 2년이 되려고 하네. 인생이란 길지 않은 걸세. 그런데도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하니 말일세. ‘하물며 아교와 옻칠 같은 마음으로 북쪽 오랑캐 땅에 몸을 두고 있으니 말일세.’ 나아가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물러서도 서로 잊을 수 없네.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떨어져 있어, 각자 백발(髮)이 되려고 하네. 미지여, 미지여. 어찌하리, 어찌하리오. 실로 하늘이 하는 일이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귀촌 5일 후, 7월 17일 고교 동창 단체 카톡방에 문석주 아들 결혼식에 귀촌으로 참석 못한다는 내용을 올렸더니 7월 19일  "귀촌이라니? 여행 다녀오시는 건가? 정착을 위해 내려가신 건가?"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식(植)이 올린 것이다. 그가 답글을 달았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다. 2, 3년 전에 동창 아들의 결혼식 때 식장에서 잠깐 어색한 만남이 있었을 뿐 30년 가까이 만남이 없었다.

 

집이 강화(江華)였던 친구는 인천에서 자취를 하였는데 고교시절 2, 3학년 때 우리 집 옥상에서 백열등 켜놓고 형설지공(螢雪之功)의 노력으로 대학을 진학하여 교육자의 길로 들어섰고 교감, 교장, 교육장을 엮임하고 들은 바로는 교장으로 정년 퇴임을 하였다. 

이런 연유로 우리 둘의 관계는 아주 특별한 관계의 친구였다. 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는 지금 나의 아내를 강화군 모 학교에  교사로 제직 할 때 나에게 소개하여주었다. 그리고 몇몇 친구들과 모임도 함께하였었다.

사회생활의 길이 각각 달라서 일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소원해진 원인에 대하여 나의 생각을 이렇게 이렇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이 글에서 밝힌다는 것은 소원해졌던 것에 대한 서로의 생각도 다를 수 있기도 하고 한편으론 나의 핑계가 되고, 나의 일방적 주장만 내세울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 이 글에서 밝히지 않는 것이 옮다고 생각하며 더 나가 나의 머리와 가슴에서 이 글을 쓰는것과 동시에 영원히 지우기로 했다. 

 

19일 식(植)의 카톡 문자 내용을 읽고 내가 어떤 방법으로 식(植)에게 연락을 하여야 하는 것이 좋을까 꼬박 하루를 고민하였다.

귀촌 생활을 즐거운 휴식 중에 나눔, 느림, 비움을 실천하기로 하였기에 마음을 비워야겠다는 생각 속에 20일 오전 직접 통화를 하기로 하고 어쩌면 손이 떨렸는지 모르지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받지 않는다.

그런 후,  오후 늦게 동창 단체 카톡이 아닌 개인 카톡으로 식(植)이 문자를 보내왔다.

<전화를 못 받은 이유와 무엇 때문에 소원해졌는지 모르지만 내면에는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면서 본인도 강화에 작은 집을 마련하여 송도와 강화를 오간다며 마음의 평화를 잃지 말자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친구가 교육계에 있으면서 친구에게 좋은 일이 있었다는 소식을 타인으로부터 들을 때마다 기뻐했으며 마음으로는 송무백열(松茂柏悅)했었다>고 카톡으로 답을 보냈다.

 알렉산더 대왕이 얽히고설킨 매듭을 단칼로 내리쳐 풀듯 이쯤 되면 서로 직접 얼굴을 맞대지는 않았지만 심하게 꼬였던 우정의 문제는 서로 한 번만의 카톡을 주고받으므로 단 번에 풀렸다고 생각한다.

성서 집회서에 "친구와 다투었다고 걱정하지 말아라, 다시 화해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러나 모욕과 멸시와 비밀 폭로와 배신행위, 이런 것들은 친구를 영영 잃게 된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30년간 소원했지만 친구를 영영 잃게 될만한 행동은 없었으며 친구의 표현대로 내면에는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은 더욱 굳어진 듯 우리의 우정은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라고 확신하며 귀촌이 우정이라는 보물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함석헌  선생님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를 적어보며 진정한 친구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본다.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방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는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