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이야기

덕산리, 휴락산방(休樂山房)에서 귀촌 한 달

Bravery-무용- 2018. 8. 13. 15:36

2. 대덕면 덕산리, 휴락산방(休樂山房)에서 귀촌 한 달

2016년 5월 28일 땅을 답사했습니다. 전면으로 보이는 겹겹이 이어지는 산너울의 아득한 풍경에 홀딱 반했습니다. 땅이 길다는 것이 흠이라는 것은 풍경에 반하여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 아울러 땅은 백두대간 대덕산 아래 해발 600M가까이 자리 잡았기에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침 2016년 6월 5일 태화산우회에서 대덕산, 초점산 산행이 있었고 대덕산 정상에서도 답사하였던 땅이 정확히 내려다 보이기에 구입하기로 마음을 굳힙니다. 김천시청과 농업기술센터, 면사무소를 방문하여 집을 지을 수 있는지 확인한 후 6월 13일 계약하고, 7월 31일 잔금을 지불하였습니다.

 

서두르는 아내 때문에 2017년 4월 8일 옥천 충북농원에서 20여 종의 나무를 구입하여 심었는데 이번에 집을 짓고 주변 정리를 하면서 살아남은 묘목은 산수유 1그루, 꾸지뽕 1그루, 사과나무 3그루, 블루베리 3그루, 매실 2그루뿐입니다. 그러나 다시 옮겨 심었기에 몇 그루나 살아 남을지 모릅니다.

 

5개월 가까이 공사(경량목조주택)를 하였고 드디어 2018년 7월 12일 태어나서 68년간 한 번도 벗아나질 않았던 인천을 떠나 김천시 대덕면 덕산리로 이사했습니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떠나는 마음속에서는 읽었던 책들이 떠오릅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가 살며 흙에서 얻는 노동의 가치를, 니어링 부부의 책에서는 농촌에서의 조화로운 삶의 방법을 느꼈고 느림과 비움을 실천하며 살겠다는 각오를 하여 봅니다.

인천을 뒤로하고 대덕면 덕산리가 가까워지면서 이기호 신부님의 "산 위의 신부님"의  글이 자꾸만 떠오르며 한편으론 다짐에 다짐을 합니다. 롯과 그의 가족이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는 창세기 19장이 떠오르는 문구입니다.  "도시를 떠나거라, 도시를 달아나거라, 뒤를 돌아다보면 죽는다." 

 

정리하지 못한 이삿짐으로 주위는 어수선 하지만 첫날의 저녁식사는 잊지 못합니다. 도시의 아파트 식탁에서 식사하는 것과는 격이 다릅니다. 식탁에 앉으면 창밖으로 가야산, 월매산, 수도산 등의 산줄기는 잔잔한 물결의 선을 그리고 뭉게구름은 멈추어있듯 하여 느림을 가르칩니다. 식사가 끝날 즈음에는 노을에 뭉게구름이 노을빛으로 물들어 갑니다.  풍경을 즐겼던 눈(目)과, 맛을 즐겼던 입(口), 해발 600미터 맑은 공기를 마시는 코(鼻), 귀(耳)로는 인터넷과 TV가 아직 설치되어 있지 않아 라디오 레인보우를 듣습니다.  탐 존스의 틸(Till) 등 옛 팝송을 들으며 즐거운 식사를 한다는 것 우리 부부에게는 지나친 호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호사는 계속되겠지요.

 

귀촌하여 새 집에 살림을 시작하는 첫 날의 이른 아침 5시 쯤, 닭 회치는 소리와 경운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덕산리 마을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후 마을 뒤 신선봉 정수리위로 태양이 떠오릅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첫 날의 자체 만으로도 특별하여 기분 좋은 느낌을 느끼면서 어제저녁의 호사스러운 식사와 오늘 아침 일출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도시를 떠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가지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타올 < "김무용, 정미영 인사드립니다. 2018년 7월 12일">을 준비하고 마을 회관을 찾아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 마을 몇 분들의 방문도 있었고 찾아오시면 양파를 한 자루씩 가져오고 옥수수, 감자도 가져 오십니다. 노인회 주최 마을 행사에도 참석하여 정식으로 우리 부부 덕산리 사람이 되었다고 인사를 드립니다. 요즘 도시인들이 농촌에 집을 짓고 주말에만 내려왔다 가는 그런 부류가 아닌 주민등록까지 옮기었기에 좋아들 하시는 것 같습니다.

덕산리는 김령 김씨 집성촌으로 자칫하여 갈등을 일으키면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갈등을 푸는 것도 우리 부부가 사는 지혜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을 분들께 다정한 인사와 살갑게 다가서기 일 것 같습니다. 문제는 아내의 건강이지요. 척추 디스크와 엉덩이 부분의 통증, 그리고 음식을 많이 가린다는 것이지요. 마을분들께 이해를 구하는 것도 우리 부부의 몫입니다. 이사 후 한 달을 돌아보면 반갑고 다정하게 맞아주는 마을분들의 행동으로 보아 큰 갈등은 없을 것 같습니다. 덕산 1리 마을은 경상북도로부터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되기도 하였기에 안심하고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

 

며칠을 TV 없이 생활을 하였더니 굳이 TV를 거실에 설치할 필요가 없어 TV는 2층에, 거실에는 컴퓨터를 설치하였습니다. 도시에서는 일어나면 보든 안보든 우선 TV를 켜고 생활을 하였지만 TV를 멀리하고 한 달 동안 생활해 보니 TV가 없다고 전혀 불편함을 모르겠고 거실에서의 생활이 자유로워졌고 오히려 아내와의 많은 대화, 음악과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지붕 추녀 끝과 끝에 물고기 모양의 풍경을 달았습니다. 물고기는 기독교에서는 오병이어(魚)의 기적과 그리스도인의 비밀 암호로 사용되었고, 불교에서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감지 않아 수행정진(進)의 의미가 담겨있고, 우리 문화에서는 출세와 신분 상징의 뜻을 지녔는데 우리 부부에게는 욕심을 내려놓고 느림과 비움을 잃지 않는 자세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의미로 갖고 싶습니다. 

 

집 주위에는 작은 달팽이는 기둥 위를 올라가고 풍뎅이도 땅강아지도 보이고, 올챙이도 청개구리 등 몇 종류의 개구리들, 그리고 도롱뇽도 살고 있습니다. 어느 사이 지붕에는 거미줄이 쳐있고 어느 날은 뱀도 보았습니다. 테라스에서 마당을 바라보면  고추잠자리 등 여러 종류의 잠자리들이 비행을 하고, 하얀 나비, 노랑 나비, 검정 무늬의 나비들은 집 주위를 나풀거립니다. 어떤 때는 참새는 물론 물총새도 보이고 물까치는 때로 나타납니다. 새들의 지저귐은 이른 아침부터 어둑 저녁까지 끊이질 않습니다. 분명 이곳은 공기 좋은 청정마을 대덕면 덕산리입니다.

 

풍경을 항상 같은 장소 집 앞에서 바라보지만 매일매일 다르게 다가섭니다. 동남 방향의 집 앞에서 날씨가 맑은 날에는 가장 멀리 보이는 합천의 가야산이 암봉의 흰 부분까지 조망이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운무가 끼면 가장 가까운 산은 모습을 숨깁니다. 구름의 변화무쌍한 모습은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데 뿌옇게만 보였던 하늘이 뭉게 구름이 되어 떠있고 회색 구름이 가득하다가는 높고 옅은 구름으로 바뀌면서 노을이 질 때는 구름은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출과 일몰의 풍경도 매일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녁 노을빛이 구름을 비치어 온 산이 불길에 활활 타오르는 듯한 풍경을 보았을 때는 모든 것을 잊고 그 풍경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 적도 있습니다. 아주 큰 한 덩어리의 구름이 떠있고 구름 위에는 붉은 달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데 구름 아래에서는 번개가 번쩍이는 풍경도 보았습니다. 약간의 비가 내렸던 날에는 아랫마을 연화리에서 지례 방향으로 무지게가 보일때도 있었습니다. 대덕산과 초점산 뒤로 하얀 구름이 대덕산과 초점산 보다는 조금 높게 떠있으면서 모양은 대덕산과 초점산과 같은 모양이기에 마치 하얀 눈이 덮여 있는 설산의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었습니다. 어둠이 깔린  하늘에는 가장 붉게 보이는 화성을 비롯하여 많은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고 한줄기 별똥별이 떨어지는 광경도 보입니다. 우리 부부에게 얼마 만에 보았던 별똥별인지요?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글이 떠오릅니다. <아름다운 유성 한 줄기가 그들 머리 위를 같은 방향으로 스쳐간다. "저게 무얼까?"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목동에게 묻는다. 목동이 대답한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이지요">

 

덕산리에서 첫 번째 손에 잡은 책은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입니다. 그 책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농부가 된다는 것은 재미로 할 때는 멋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습관이 되고 일이 점점 많아지더니 급기야 의무가 되어 버리자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다." 우리 부부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이유는 귀농이 아닌 귀촌입니다. 만만 하지는 않겠지만  약 200 여평의 텃밭과 정원을 가꾸면 됩니다. 하기야 200 여평의 밭을 가꾼다는 것도 힘은 들겠지만 생산을 하여 소득을 올리려는 농사짓기는 아닙니다. 8월 9일은 아직 정지작업을 끝내지 못한 밭에 쪽파 40여 개를 파종했습니다. 집 위 밭에서 쪽파를 파종하던 마을 여자분이 아내에게 심어 보라며 간단히 심는 방법을 설명하여 줍니다. 쪽파 파종은 귀촌 후 우리 밭에 처음으로 농작물을 심은 것이기에 아주 특별합니다. 가장 더운 여름인 요즈음 터를 가꾸는 일을 아내와 의논하여 정하였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힘들이지 않는 방향으로 일을 하기로 하고 오전에는 9시 전까지 1시간 30분, 오후에는 해가 그늘을 만들어 주면 1시간 30분 만입니다. 귀촌을 하여 매일 삽과 갈고리를 만지며 육체 노동을 하는 것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삽질과 갈고리질을 하고 뒤를 돌아보면 거칠었던 땅이 가지런히 바뀌는 모습에서 나와 아내의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니 노동에서 기쁨과 행복을 발견한 것입니다.

 

8월 10일은 지례성당 대덕공소 40주년으로 지례성당  본당 신부님이신 구기석(안드레아) 신부님께서 공소 행사에 참석하시고 저희 집을 방문하시어 축복을 주셨습니다. 15분의 공소 형제님, 자매님께서 함께해 주셨습니다. 신앙생활 속에 느림과 비움, 나눔의 귀촌 생활을 다시 약속을 합니다.  

 

 김(金)과 정(鄭)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면서 즐거움이 가득한 곳, 휴락산방(休樂山房)은 김천시 대덕면 덕산리 우리 집의 이름입니다.

 

 

땅을 답사 했을때

 

대덕산 정상 못미쳐에서...도로 우측 집 한채 위의 긴 밭

 

공사 중

 

경량목조 주택

 

설계상은 다락 실질적으론 2층

 

집모양이 완성되어 가고...

 

이사 후, 아직 정리가 안되어 있습니다. 테라스에는 냉장고, 에어 콤퓨레사, 음식물 처리기를 설치

 

 

 

 

좌; 초점산, 우; 대덕산

 

 

2층(다락) 창틀에서 풍경, 좌측 마을 뒤 신선봉

 

집 앞에서 풍경

 

가장 먼 하얀 암봉은 합천 국립공원 가야산

 

우리 부부에게 느림과 비움과 나눔의 마음을 다스려 줄 풍경

 

달과 구름

 

저녁 노을 풍경, 대덕산 넘어 무주군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