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개정판이다. 시대를 응시하는 처절하고도 뜨거운 언어로 한국 문단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이 시집은 지금껏 5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며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시인은 세편의 시「지하철에서 6」 「마포 뒷골목에서」 「귀거래사(1992)」를 덜어내고 과도한 수식어를 쳐내는 등 손톱을 다듬는 마음으로 젊은 날의 시편들을 일일이 손보았다.
최영미
1991년 겨울의 어느 날. 대학원 학기도 끝나고 취직도 안돼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최영미는 할일없이 일기장을 뒤적이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기장에 시를 써 온 사실을 발견했다. 망설임 끝에 일간지 문화부 기자로 있던 한 선배에게 열대여섯 편 되는 시들을 보여주었다.
시가 될는지 안될는지 반신반의 하는 가운데, 선배는 그것들을 한 출판사에 보냈다. 1992년 봄, 그 출판사의 주간이 한번 보자고 하여 갔더니. `재능이 있다`면서, 날마다 시를 써보라고 권했다. `한 스무 편 정도 모이면 다시 가져오라`는 소리와 함께.
주간의 말대로 날마다 시를 써서 두번에 걸쳐 주간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주간은 `갈수록 좋아진다`면서도 `1년 정도만 습작을 더 하면 좋겠다`며 등단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오기가 발동된 최영미는 그 시들을 들고 창작과비평사를 찾아 갔다. 여기서부터 일이 풀리기 시작해 그 해 겨울 등단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고, 다시 이태 뒤 시집 한 권만으로 일간지 1면의 6단 통광고를 내는 파격을 보이며 문제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출간되었다.
최영미의 시는 쉽고 솔직하게 읽히는 것이 장점이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를 써내기 위해 시인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는가는, 시를 통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때로는 문장에 마침표를 찍을까 말까 하는 문제로 밤을 새워 고민하며,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다. 퇴고가 끝난 후에도 다시 친구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한다. 친구들의 의견을 들을 때는 직접 보여주거나 전화기에 대고 시를 읽어준 후 의견을 묻는다. 소리 내서 읽을 때와 눈으로 볼 때, 시의 운율에 대한 느낌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직설적인 최영미의 시어들은 충격적이기도 하다. 처음 시집을 내자마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는 성당의 신부, 수녀에게 자랑스레 책을 돌렸다고 한다. 그 날 밤, 집에 돌아와서야 시를 읽게 된 어머니는. 컴퓨터 앞에서 두 손 들고 말았다는 생각에 복수심에서 쓴 「퍼스날 컴퓨터」를 읽다가 경악했다. `아아 컴-퓨-터와 씹할수만 있다면!`
어머니는 다음날 새벽같이 성당에 가서 시집을 뺏다시피 도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딸에게 말했다. `동네 챙피하니까, 앞으론 집에 오더라도 밤에만 와!` 그러나 이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책 한 권 보내달라고 청하는 친척들을 몰라라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퍼스날 컴퓨터」의 `문제 부분`을 검정 매직펜으로 그은 뒤 책을 보내고는 그것도 모자라 확인전화까지 했다. `「퍼스날 컴퓨터」는 읽지 마세요.`
1980년 서울대 인문대 입학. 학생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고전연구회`에 가입하여 세미나에 참석하고, 2학년 때 학내시위에서 훤칠한 키가 눈에 띄어 경찰서로 연행되었다가 구류 열흘에 무기정학을 맞았다. 졸업 후 민중당 초기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했고, 한 급진적 운동조직의 외곽에서 『자본론』 번역에 참여했다. 적극적인 운동권은 아니었으나, 상당히 충실한 `동조자`였다고.
80년대가 지나가고 90년대를 거치며 최영미는 많은 것을 회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것들이 있다. 그의 글은 변한 것을 속속들이 드러냄과 동시에 아직도 그들 세대의 마음 속에 변치 않고 남아 있는 그 어떤 갈망을, 그로 인한 아픔과 우수를 어루만져 준다.
[알라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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