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물지으면서 읽은 세계의 명시!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50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담론을 형성시킨 최영미 시인이 《내가 사랑하는 시》에 이어 펴낸 세계의 명시 선집 『시를 읽는 오후』. 2016년 7월부터 약 11개월간 《서울신문》에 연재한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를 한데 모으고 수정 보완해 44편의 시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3부 3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서고금의 명시들 중 저자가 특히 아껴 읽었던 작품들을 골라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개성 있는 목소리로 번역해 옮기고 해설해 작품 원문을 함께 담았다. 원문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으면서 한글로 매끄럽게 번역하기 위해 시인은 고치고 또 고치며 노력했다. 시인의 생애와 작품에 얽힌 일화가 더해져 더욱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읽을 수 있다.
저자가 철없던 시절에 읽었던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연애시, 독재와 관습과 위선에 맞서 싸운 유럽 최초의 ‘아이돌’ 바이런의 시부터 1980년대 대학가에 울려 퍼졌던 밥 딜런의 노랫말, 입시에 시달리는 수험생들을 보며 떠오른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기탄잘리까지, 치열하고 아름다운 시대의 궤적을 함께해 온 기록을 만나볼 수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시인은 2018년 초에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미투운동(#me too 나도 당했다)에 괴물이란 시로 문학계에 운동을 확산 시켰다.
2018년 3월 9일 읽다
(괴 물)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빡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최영미
<황해문화>
2017 겨울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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