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이면 돼(‘좋은생각’ 중에서)
흔히 사람들은 ‘1분’이라는 시간을 가볍게 여긴다. 그런데 일본 메이지대 교수이자 경영자들의 멘토로 활약 중인 사이토 다카시는 “1분을 꽉 잡아라.”라고 말한다.
그는 스무 살 무렵 집중력을 높이는 훈련을 하던 때였다. 규칙적으로 음악의 박자를 나타내는 메트로놈을 이용해 1분 안에 얼마나 많은 음을 셀 수 있는지 연습했다. 1분에 100번의 음을 헤아리는 건 쉬었지만 200번이 넘는 음을 세는 건 어려웠다.
그는 반복 훈련했다. 그러자 1분이 꽤 길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 ‘시간을 잘 인식하면 얼마든지 시간을 제어할 수 있다.’라고 깨달았다. 그때부터 그는 여러 일에 이를 적용해 보았다.
그는 책을 읽을 때도 특별한 1분을 제시한다. 그는 무조건 ‘속독’하라고 하지 않는다. 책 한 권을 다 읽는 게 아니라 어느 부분을 읽을지 1분 안에 골라내라는 것이다. 중요한 구절을 밑줄 그은 뒤 그 페이지의 귀퉁이를 접는다. 그런 작업을 거친 뒤엔 접은 페이지로 돌아와 중요 문구의 앞뒤를 훑으며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다. 본문 외에도 머리말, 맺음말, 차례 등에서도 핵심을 찾아내 전체 흐름을 추측할 수 있다.
잔소리할 때도 1분이 효과적이다. 지나치게 긴 잔소리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을 말할지 미리 정해 두고 1분 안에 이야기하면 듣는 입장에서도 나쁜 감정이 남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두세 가지로 좁히거나 종이에 적어 건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시간을 줄임과 동시에 상대가 뜻깊게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 조절 역시 1분을 활용할 수 있다. 부정적인 생각에 젖었을 때 꺼내 볼 수 있는 목록을 만들어 보자. ‘우울할 때 보는 영화 열 편’, ‘기분 전환할 때 듣는 음악 열 곡’ 등을 써 두는 것이다. 1분 동안 그 목록을 보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진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지금 이 순간 흘러가는 1분에 집중해 시간의 축복을 맛보는 건 어떨까.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할 일들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1분이라는 시간이 짧은 줄 알았는데, 그 정도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편견을 버리세요.
친구가 보내 준 글입니다.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인 것 같아서 이렇게 올려봅니다.
몇 년 동안 필리핀에서 사업을 한 한국인이 있었다. 세 명의 동료와 한 집에서 살았는데, 필리핀 출신의 가정부를 두었다. 가정부는 청소와 요리를 해 주었고, 그녀가 해주는 일은 마음에 쏙 들었다. 한 가지만 빼고...
사업가와 그 동료들은 집에 있는 술병의 술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걸 눈치 채고는 가정부가 몰래 홀짝홀짝 마시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진상을 밝히기 위해 남은 술이 얼마나 되는지를 술병에다 표시를 해서 술이 줄어드는지를 확인했다. 분명히 술은 줄어들고 있었다.
어느 늦은 밤에 그들은 골프 모임을 마치고 좋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자기 전에 한잔 더 할 생각을 하다가 술병에서 술이 자꾸 줄어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취기가 좀 돈 상태라 그들은 가정부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술이 남은 병 안에 오줌을 눠서 채워 넣었다. 술 냄새는 변함이 없었다. 그걸 선반 위에 도로 갖다 놓고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았다. 며칠이 지났는데 술병 속의 술은 여전히 줄어들고 있었다.
그들은 가정부에게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정부에게 자기들 술을 마셨냐고 물으니까, 가정부가 대답했다.
“전 마시지 않았습니다. 음식 만들 때 썼는데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있다면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서 풀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야기 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편견을 가지고 판단한다는 것이지요. 그 나쁜 결과는 자기 자신에게 그대로 되돌아오고 말 것입니다.
편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가져다주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편견은 어디로 튈지 모를 무시무시한 무기입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퍼스트 펭귄, 용기있는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존재
펭귄무리는 바다에 뛰어들때 모뭇거리는 습성이 있는데 한 마리가 뛰어들면
다른 펭귄들도 두려움을 잊고 따라 뛰어든다.
자본주의를 수술하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그런 시도들이 만든 사회들은 한결같이 정의 롭지 못하고 효율적이지도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재산권을 보장하지 못하면 정의도, 자아의 실현도, 효율도 기대할 수 없다. 도덕이란 개념이 자본주의 사회와 전체주의 사회에서 다른 뜻으로 쓰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덕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정의감에 바탕을 두고 도덕률과 법이 만들어 진다. 여기서 어긋나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이 마련한 재산을 자신이 원하는 목적에 쓸 수 있다.
하지만 전체주의 사회에선 지도자가 제시한 사회적 목표에 모든 자원들이 동원한다.
개인들의 재산권이란 있을 수 없다. 자연히, 도덕도 성격이 바뀐다. 지도자가 제시한 목표에 도움이 되면 어떤 행위든 도덕적이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부도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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