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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애플 CEO가 조기 은퇴하는 이유

Bravery-무용- 2014. 3. 7. 12:45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빌 클린턴 정부의 노동장관으로 일하던 1996년 어느 날 출근길에 어린 아들의 방을 찾았다. 아들은 잠에 취한 상태에서도 “오늘 퇴근하면 아무리 늦어도 절 깨워주세요”라고 거듭 부탁했다. 이유를 묻자 “그냥 아빠가 집에 있는지 알고 싶어서요”라고 답했다. 충격을 받은 라이시는 다음 날 사표를 내고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직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미국 글로벌기업 애플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피터 오펜하이머 선임부사장은 지난 10년간 회사 곳간을 책임진 핵심 임원이다. 올해 51세인 그는 1996년 애플에 입사한 뒤 2004년부터 CFO로 실적발표 설명회를 주재했다. 오펜하이머가 CFO를 맡은 10년간 회사의 연간 매출액은 80억 달러에서 1710억 달러로 급증했다. 애플의 전현직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와 팀 쿡의 신임도 두터웠다.

▷승승장구하던 오펜하이머가 루카 마에스트리 부사장에게 CFO 자리를 넘기고 9월 말 자진 은퇴한다. 오펜하이머는 “이제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한 시간을 가질 때가 됐다. 은퇴 후 세계여행을 하고, 비행기 조종사 면허를 취득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3월까지 재직하면 스톡그랜트(주식성과급) 7만5000주를 받지만 포기했다. 그가 조기 은퇴와 맞바꾼 주식의 시가는 4000만 달러(약 428억 원)에 이른다.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많은 돈을 벌어도 가족과의 관계가 깨지거나 개인적인 공허감을 느낀다면 명예나 돈을 위해 아등바등하는 삶의 끝은 허망하다. 명예나 돈은 고무구슬이지만 가정은 유리구슬이어서 손에서 놓쳐 깨져버리면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있다. 우리 주변에도 젊은 시절 일이나 다른 것에 ‘미쳐’ 가정을 소홀히 했다가 나이가 들면서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 다만 오펜하이머는 여유 있는 노후를 보내기에 충분한 재력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직장인들이 섣불리 흉내 내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