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3.13 윤세영의 따뜻한 동행, 가지 않은 길
십여 년 전 비슷한 시기에 한 회사에서 퇴직 권고를 받은 두 사람이 있었다. 최근에 그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억울하게 회사를 그만둔 후 한참 동안 분해서 잠도 자지 못하며 울화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렇게 폐인처럼 보내다 마음을 다잡고 밑바닥 장사부터 시작했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회사에서 전문직에 근무하던 그가 길거리에서 “골라, 골라”를 외칠 때는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고 혹시 아는 사람이 볼까 두려워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고 한다. 보다 못한 옆집 상인이 나서서 소리를 질러 호객을 하는 시범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그를 격려했다.
“그런데 점점 돈이 벌리기 시작하니까 창피한 게 사라지고 재미가 붙더라고요. 빨리 내일 아침이 밝아서 또 돈 벌러 나가고 싶어지는 거였어요.”
그렇게 장사의 재미를 익힌 그는 1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반면 한 사람은 퇴직 권고에 응하지 않았다. 명분 없이 쉽게 사람을 내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그랬더니 회사에서는 그를 한직으로 발령내버렸다. 자존심이 상했다. 더구나 회사의 의중을 아는 담당부장이 그 부서에서도 가장 실적을 올리기 어려운 일을 맡겼다.
“이대로 물러나면 평생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전문성을 새로운 업무에 접목해가며 열심히 창의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마침 운도 따라주어 그가 올린 실적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렇게 3년 동안 엄청난 실적을 올리자 그를 밀어내려 했던 회사의 태도가 변했다. 결국 그는 그 회사가 새로 만든 자회사에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이제는 어떤 경우를 만나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똑같은 경우에 두 사람은 상반된 선택을 했다. 한 사람은 회사에서 나갔고, 한 사람은 버텼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절치부심하여 최악의 경우를 성공의 기회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가지 않은 길’로 들어섰지만, 가던 길만이 최선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들은 익숙한 자리에서 안주하다 지금쯤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을 것이다.
긴 인생길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정답은 없다. 가다가 막다른 길을 만나거나 혹은 길을 잃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최선을 다한다면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세영 수필가
2014.3.6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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