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2010년)

4년만에 다시 찾은 영남알프스(간월,신불,영축산)

Bravery-무용- 2010. 12. 9. 12:03

2010.12.5

배내고개-배내봉(960M)-간월산(1,083M)-신불산(1,209M)-영축산(1,059M)-비로암-통도사

태화산우회

 

전날 밤10시 인천 연수구를 출발하여 송내에서 마지막 산우들을 태운 버스는 새벽4시25분경 배내터널을 지나면서 고갯마루에 곧바로 멈춘다.

배내고개다.

배내터널은 2006년12월에는 보이지 않았던 터널이다.

원동과 언양을 연결하는 터널로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와 덕현리를 이어주기도 하는 69호 지방도다.

태화버스는 조심스럽게 도로를 돌아 터널위쪽에 태화산우들을 내려놓는다.

위쪽으로 조금만 움직이면 영남알프스 산행 안내판이 세워져있고 이곳에서 모두들 산행준비를 한다.

새벽 찬바람에 겨울모자로 바꿔쓰고 랜턴에 장갑까지 준비완료하고 하늘을 올려다 본다.

캄캄한 하늘에는 별들이 촘촘히 박혀 반짝이는 것이 마치도 우리 산우들에게 격려 박수를 보내주듯 하다.

새벽 4시30분 산우들 일제히 힘차게 발을 내딛는데 약7~8시간의 긴 산행이니 모두가 각오를 단단히 하였을 것이다.

방부목재로 만들어 놓은 게단을 오르는데 등뒤에서 부는 차가운 새벽바람이 몸을 움추리게 한다.

15분여 방부목재게단을 오르면 배내고개와 오두산방향을 알리는 표지목이 나타나는데 배내봉을 기기위하여는 직진을 한다.

가지만 남아있는 철쭉의 능선길은 좌측으로는 언양시내의 불빛과 앞에는 길을 밟혀주는 랜턴의 불빛 그리고 하늘은 별빛만이 보이는 캄캄한 능선길이다.

 

배내고개에서 30여분을 발품하여 배내봉에 닿았다.

배내고개에서 배내봉까지의 등산로는 2006년도12월에 오르던 등산로와는 사뭇다르다.

2006년에는 들머리에서 부터 방부목계단이 없었고 산비탈길과 밧줄을 잡고 오르고 내려가기도 하였고 헬기장도 보였는데 그러한 산길이 보이질 않았다.

느낌에 새로 만든 등산로는 구등산로보다 빠른 지름길로 만들어 놓은듯 하다.

정상 봉우리에는 오석의 정상석에 배내봉 966M를 알리고 배내고개와 간월산,신불산 이정표가 세워져있고 119구급함도 비치되여 있다.

정상석앞에서 사진만을 찍고 바로 나뭇잎이 떨어진 철쭉의 숲길을 렌턴을 밟히며 들어선다.

아직도 캄캄한 산길 좌측으로 언양과 울산시내의 불빛을 내려다 보며 걷는 능선길에 등뒤에서 불던 바람이 이제는 우측에서 불면서 얼굴을 차갑게 스친다.

2번째 구급함이 비치된곳을 내려가면 렌턴의 불빛에 간간히 소나무들의 모습이 비치는데 모양은 제각기 다르다.

 

능선길에서 다리쉼도 하면서 119 간월산 248표지목을 지나며 관목의 능선길을 빠져나오면 간월산 정상에 다다른다.

들머리에서부터 2시간20여분을 걸었다.

해발 1,083M 간월산(肝月山).

"간"은 곰등과 함께 신성스런 뜻을 가진말이며 "월"은 넓은 평원을 뜻하기도 하니 신성스럽고 넓은 곳임을 뜻한다.

산 정상 표지석이 2개가 세워져 있는데 모두가 산악회에서 세운것으로 오석으로 되어있다.

먼저 동해를 바라본다.

어둑한 하늘 한줄기의 노란색이 비추기 시작하지만 해뜨는 시각이 아직도 2~30분이 남아 있을것 같기도 하고 서쪽에서 부는 바람이 제법 차가워 산우들 배내봉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상석앞에서 얼굴만 담고 간월재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발길을 옮기기전에 수평선에 비추는 노란색의 해뜨는 노을을 바라보며 폐부 깊숙히 숨을 들여 마신다.

간월산 정상에서 간월재로 내려가는 능선길 우측으로는 구절양장 모양의 굽잇길이 내려다 보인다.

 

헬기장과 전망대가 설치된곳에 도착하였다.

아직도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다.

전망대 아래에 두 개의 돌탑이 보이는데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으로 카메라 삼각대를 고정시키고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포토아티스트가 보인다.

포토아티스트가 카메라를 고정시킨 시점이 태양을 맞이하기에는 가장 좋은 뷰포인트 일것이다.

주머니속에 디카를 만지작대며 인사를 나누고 삼각대옆에서 기다리지만 함께한 산우들 빨가자고 재촉하는 바람에 간월재에서 홍류폭포로 내려가는 사행하듯 보이는 굽잇길과 삼남면 동네만 내려다 보고 아쉬움속에 전망대를 출발하여 간월재로 내려간다.

결국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지 못하였다.

간월재로 내려가는 길은 주위의 억새를 보호하기 위하여 밧줄로 경계를 하여놓았다.

억새의 꽃잎은 지고 줄기만이 골에서 부는 바람에 한쪽으로 비스듬이 누워져 있지만 그래도 드넓게 황금 물결을 연출하고 있다.

 

간월재에 내려왔다.

간월재 주변의 땅바닥은  박석을 하여 놓았고 조망대와 식탁이 같이 연결된 의자까지 놓여있어 억새를 감상하기에 불편함없게 하여 놓았다.

넓은 전망대에서는 비박을 하는 산꾼들의 텐트도 보인다.

간월산에서 내려오면 좌측으로는 홍류폭포,등억온천으로 우측은 자연휴양림 가는 길이고 곧바로 가면 신불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큰 돌탑앞에 간월재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산행안내판도 큼직히 설치되여 있어 산행코스를 다시한번 확인 한다.

"간월재는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에 속하고 낙동정맥의 산군중 가장수려하고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해발 920~960M의 능선부에 약29ha면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간월재에서 신불산으로 오르는 길은 방부목계단을 밟고 올라가는데 좌우로 펼쳐진 억새와 함께 오른다.

좌측으로 추모비도 보이는 오르막을 꽤나 오르면서 첫 번째 방부목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뒤돌아보면 우측으로 재왕산과 천황산줄기가 하늘과 맞닿아 보이는데 시원스럽다.

간월재는 벌써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간월산 정상에서 간월재로 이어지는 능선과 산비탈이 태양이 비추니 더욱 짙은 황금빛을 내고있다.

또 한번 방무목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면 오른 높이가 높아져 운문산과 가지산의 봉우리가 파란하늘아래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등산로폐쇄 안내판앞에서는 4년전 이곳에서 나뭇가지에 피어있던 얼음꽃에 모두가 감탄을 하며 떠날줄 모르던 일이 떠오른다.

멀리 가지산 정상은 상고대가 덮여 있었고 철쭉에 핀 빙화는 투명하고 소나무에 핀 빙화는 초록색을 만들고 반기었었다.

오늘처럼 푸른하늘에 하현달까지 떠있었고 온 산이 얼음꽃으로 만발하였었다.

그래서 표현을 황홀난측(恍惚難測)이라 하였다.

 

검푸른 암릉길을 오르고 헬기장을 지나면 능선위에 올라선다.

파래솔 폭포와 신불산 정상으로 갈라진다.

비바람에 옆으로 누워있는 소나무 앞에는 긴 의자가 놓여 있는데 4년전 그 자리 그대로다.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산상의 기쁨을 가졌던 곳이다.

전에는 없었던 전망대도 설치되어 있다.

멀리 영축산이 보이는데 오늘 우리산우들이 가야할 마지막 봉우리다.

바람은 새벽보다 많이 잦아들어 춥다는 느낌을 못느끼니 나무의자에 앉아서 다리쉼을 하면서 영남알프스 산군을 바라보며 풍경속에 빠져든다.

 

이제 앞에 보이는 신불산 정상으로 발길을 옮긴다.

신불산 정상까지의 능선길은 풍경을 바라보며 시나브로하게 걷는 길이다.

 

4년전 이 능선을 걸으며 떠 올랐던 이해인 수녀의 시"12월의 시"가 또 다시 떠오른다.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 하기 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 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중 략

 

12월엔 묶은 달력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 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걷다가 뒤돌아보면 긴 의자가 있었던 봉우리가 펑퍼짐하고 넉넉한 모습으로 잘가라고 손짓한다.

 

어느덧 신불산 정상이다.

해발 1,209M

신령이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을 지녔단다.

신불산 정상은 경상남도와 울산광역시를 경계하는데 오늘 우리가 걸을 영축산까지가 경계를 이룬다.

바위에는 태극기와 신불산1,209M정상표시가 붙여져있고 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도 있다.

4년전에도 신불산 정상의 상징으로 보였던  돌탑이 세워져 있는데 오늘 보니 일부가 무너져 있다.

이곳 전망대에서도 비박하는 산꾼들이 보인다.

파란하늘 아래에서 사위를 둘러보는 즐거움은 더욱 크다.

동쪽은 깍아지른듯한 산비탈 아래로는 언양과 울주군이 평온하게 내려다보이고 경부고속도로도 내려다 보이고 가까이는 가천저수지다.

동쪽의 반대 서쪽방향은 정상 아래로는 펑퍼진 고원지대와 뒤로는 능선들이 줄지어 보이는데 바라보는 풍경의 모습은 일품이다.

정상을 떠나기 싫어 몇 번이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내려가면 2000년1월1일 삼남면민들이 정성을 모아 세운 신불산 빗돌이 큼직하게 세워져 있는데 아친햇살을 받아 화강암의 빗돌은 더욱 하얗게 빛난다.

빛돌 아래를 내려다 보면 영남알프스의 공룡능선이 꿈들댄다.

 

산우들 바람을 막아주는 동쪽 양지바른곳에 멍석을 깔고 다리쉼을 하며 새벽부터 시작된 산행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하여 먹거리도 나누는데 나뭇꾼과 선녀님 두부부가 준비한 음식에 모두가 반해 버렸다.

 

반주도 곁들여 배를 든든히 채우고 넓은 능선길을 내려오면 신불평원이라 불리우는 신불재에 닿는다.

60만평에 이르는 평원으로 간월재와 만찬가지로 큼직한 조망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꽤나 많은 산꾼들이 비박을 하고 있다.

신불산에서 내려와서 좌측으로는 삼남,가천리 방향이고 우측으로는 신불산 자연휴양림방향이고 곧바로는 영축산 오르는 길이다.

 

드넓게 펼쳐진 억새밭의 고원을 조망대를 돌며 바라보고 테크길따라 영축산으로 향한다.

힘들이지 않고 20여분을 오르면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고 좌측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는 능선길을 걸으면 소나무 몇 그루가 우리를 반긴다.

4년전에도 반겼던 소나무다.

4년전 푸른소낭구님의 음식솜씨를 맛보았던 곳으로 오늘은 빨간모자가 솜씨를 발휘한다.

9시30분 영남알프스에 들어온지도 어느덧 5시간이 흘렀다.

바람은 불지만 그래도 멍석까지 깔고 오늘 산행중 두 번째 먹거리가 펼쳐지니 20여분이 훌쩍지나며 산우의 정은 더욱 깊어진다.

 

자!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영축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꽃술이 떨어졌지만 유난히 높게솟은 갈대앞에서는 걸음도 멈추고 유유자적 걷다보면 신불평원및 단조성터를 알리는 안내판앞에 선다.

앞에는 영축산 정상이 손짓하지만 산길 우측으로 고원습지가 보이고 몇 개의 돌탑이 보이는 단조성터로 발길을 옮긴다.

억새밭 좁은 길따라 꼬불꼬불 내려가 습지를 가로질러 단조성터에 닿았다.

단조란 붉을 단(丹)자와 새조(鳥)자로 봉황의 머리위에 붉은 점이 있어 봉황을 말한다.

성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많은 돌더미들이 쌓여있고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져 있다.

단조성(丹鳥城)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던 곳이었으나 당시 이 성을 지키던 의병들이 왜군의 기습으로 수 많은 전사자가 발생하였던 슬픈 성터다.

이곳에 돌더미들이 쌓여있는것은 임진왜란때 여인들이 치마폭에 돌을 담아 옮겨 놓았다는 애기가 있다.

성터에서 영축산과 신불산방향이 올려다 보이며 멀리는 재약산,천황산도 그리고 운문산, 가지산도 뚜렷히 조망된다.

또한 간월재에서 올라서면 능선위에 의자가 놓여있던 봉우리부터 신불산 정상까지의 능선과 신불재, 소나무쉼터까지 걸었던 능선이 이어져 보인다.

성터에서 습지로 내려와 너덜길인 옛길로 들어서 영축사방향으로 부지런히 오른다.

 

산행시간 6시간만에 해발 1,081M 영축산 정상에 닿았다.

암봉위에 큼직한 정상석이 세워져있다.

영축산은 신령스런 독수리가 살고있는 산이라고도 하고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법한 산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4년전에는 4개의 정상석이 취서산,영축산,영취산등 다른 명칭과 높이도 다르게 세워져 있었는데 이제는 양산시에서세운 세로운 정상석만이 있다.

 

먼저 걸어온 능선을 바라보면 넓은 억새평원에 다리쉼을 하였던 소나무쉼터 봉우리가 보이고 능선길따라 신불재는 잘룩하게 들어가 보링듯 말듯하고 위로는 신불산정상이 보이고 좌측 능선길이 길게 이어지며 나무의자가 있는 봉우리까지 한눈에 닿는다.

걸었던 그 산길이다 스스로 대견스럽다.

영축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신불산 정상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쪽과 서쪽방향의 산의 모습이 확연히 구분된다.

능선을 구분으로 동쪽 즉 울주군방면은 깊은 낭떠러지의 절벽이고 서쪽은 펑퍼짐한 고원지대를 이루고 있다.

서북방향으로는 가지산,운문산이 서쪽으로는 천황산,재약산이 한눈에 시원하게 보인다.

 

정상 아래 능선길 좌측에 있는 간이매점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고 이정표에 표시되어있는 사살등(3.9K)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사살등의 명칭이 붙여진 유래가 있다.

의병들이 단조성을 왜군에게 내주고 최후의 항쟁을 벌렀던곳이 사살등이고 등성에 올라 활을 쏘았다하여 "사살등"이라 부른다한다.

키큰 죽순숲길을 지나 뒤를 돌아보면 어느덧 영축산 정상은 저 멀리보이고 다시 조그만 암봉에서도 뒤돌아보면 신불산능선에서부터 영축산정상까지의 모습이 펼쳐진다.

자갈길도 걸으며 좌측을 내려다보면 통도사가 내려다 보이는데 통도사는 우리나라 3대사찰로 불보사찰이다.

신라 선덕여왕15년(646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고찰이다.

추모비가 있는 능선을 지나고 밧줄을 잡고 바위를 내려와 능선으 걷다보면 우뚝솟은 직벽에 발길을 멈추기도 한다.

백운암,배내골,영축산표시판앞에서 백운암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이제부터 하산길이 시작된다.

선바위를 힐끔 바라보며 내려가면 좌측으로는 직벽이고 더덜길이 계속되는 내리막이다.

깔려있는 돌들이 박혀있질 않아 한 발을 내디딜때마다 아주 조심하여야 하는데 낙엽이 쌓여있는곳은 더욱 조심스럽다.

거리는 얼마되지 않는 비로암까지의 하산길을 2시간동안 내려왔다.

지금시간 1시15분. 배내고개에서 부터 8시간45분 걸렸다.

 

비로암은 고려 충목왕1년(1345년)에 영숙스님이 창건한 암자다.

주불(법당에 모신 부처가운데 가장 으뜸인 부처)은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은 "연화장 세계에 살며 그 몸은 법계에 두루차서 큰 광명을 내비치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 "라 한다.

비로암 주차장에서 콜택시를 불러 통도사를 지나 영축산문입구를 나와 주차장이 있는 위락단지에 도착하였다.

택시요금은 7,000원.

몇몇 산우들은 이곳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위락단지에서 올려다본 영축산의 모습은 하나의 성벽을 연상시키듯 직벽의 바위가 들쑥날쑥 솟아 있다.

산체비빕밤에 맥주 한 잔으로 긴 산행의 피로를 잊고 출발예정시간(오후2시30분)에 정확히 인천으로 출발하였다.

 

오늘 걸었던 영남알프스를 정리하면

들머리인 배내고개에서 간월산, 신불산,영축산까지의 능선길은 낙동정맥에 속하는 능선길이며 배내고개에서 신불산정상까지는 행정구역이 울산광역시, 신불산에서 영축산까지의 능선은 경상남도와 울산광역시를 구분하고 통도사 위락단지는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