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잡기(雜記)

남우회 부부동반 통영,거제 여행기

Bravery-무용- 2010. 10. 4. 14:46

2010.9.25-9.26(1박2일)

김무용 부부, 김영근 부부, 김 혁부부, 나민식 부부, 박옥진 부부, 이왕진 부부, 최영길 부부(14명)

진행자: 최 영길

인천-분당-통영-미륵산-해저터널-동피랑-거제-김영삼기념관-와현마을-통영-제승당-매물도-성철스님생가-분당-인천

 

 이른 아침 6시30분 인천버스터미널 부근에서 다섯 부부를 태우고 인천에서 소문난 송도에 있는 조샌드위치 커피점 샌드위치를 나누어 먹으며  분당으로 건너가 영길, 혁이 두 부부를 태운 28인승 고속 리무진 버스는 푸른 가을하늘 아래 통영을 향하여 고속도로를 달린다.

참고로 28인승 리무진버스(양지고속 신현갑 010-9179-4190)의 임차료는 도로통행료,주차료,봉사료포함 이틀간 160만원이다.

28인승 리무진에 14명뿐이니 편안함은 더 없이 좋다. 

길게는 9일간의 긴 중추절 연휴중 오늘이 마지막 토요일이다.

여행을 떠난다는 들뜬 기분에 모두들 연휴마지막날 귀경길에 고속도로에서의 차량의 정체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버스안에서 최영길 부부가 정성을 드려 준비한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친구들은 뒷좌석에서 맥주를 마시며 웃고 즐기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에 차가 멈춘다.

간단히 휴식을 갖고 안성휴게소에서 1시간30여분을 달려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덕유산 휴게소에 또 한번 차는 멈춘다.

휴게소 건너편으로 덕유산의 산줄기가 하얀구름과 맞닿아 보이는데 덕유산 그곳으로 달려가고싶은 충동을 느낀다.

여유있는 남우회의 이번  여행 덕유산휴게소에서 출발하여 1시간 30여분을 달려 경남 고성 공룡나라 휴게소에 멈춘다.

휴게소는 "남해안시대를 여는길"빗돌이 세워져있고 공룡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세워져 있으며 기와지붕으로 꾸며논 휴게소는 다른 휴게소와는 다르게 사람도 붐비질 않는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 이른 아침보다도 더욱 높고 푸르르니 이번여행의 즐거움을 예감 할 수 있다.

통영 1,2,3터널을 빠져나와 바닷가에 펼쳐진 양식장의 모습을 보며 달리다보면 어느덧 통영시내로 들어서 버스기사께서 추천한 굴요리 전문점 향토(645-4808)에 도착한다.

굴밥에 굴전과 이슬이 한 잔까지 곁들려 점심식사를 마친다.

오늘 계획은 거제도에서 해금강과 외도를 관광하기로 하였으나 고속도로상에서 운전겸 안내까지하여주는 기사분이 확인한 결과 높은 파도로 유람선이 출항을 할 수 없어 계획을 변경하여 둘째날 일정을 첫째날로 바꾸었다.

점심식사후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기위하여 통영항을 한눈에 바라다보며 충무교를 지나  미륵도 도남동으로 향한다. 

그래도 주말이면 산으로 달려가는 나는 케이블카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미륵산 정상을 오르기로 하고 기사분께 양해를 구하고 용화사 관광주차장에 내리니 민식과 옥진 두 친구 그리고 아내도 함께 걸어서 오르잖다.

혼자서만 걸어서 오르면 친구들 눈치가 보였지만 친구들과 아내와 함께 오르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결국은 무사히 정상까지 올라 안심은 하였지만  몸의 컨디션이 좋지않아 이번여행을 망설였던 아내가 함께 오르는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

미륵산 등산로 안내판앞에서 정상까지의 거리를 확인하니 약1.9Km다.

소나무숲길을 오르면 우측으로 용화사로 들어서는 시멘트계단이 보이는데 주위는 삼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만들었다.

용화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은점선사가 창건하였다는 고찰이다.

또한 용화사는 세계적인 작곡가 고 윤이상선생이 유년기와 청년기를 통영에서 보냈는데  윤이상선생은 그 시절에 자주 찾았던 사찰로 그 영향으로 서양음악에 동양음악을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임도를 가로질러 나무계단을 오르면 임도길을 다시 만나 임도길따라 걸으면서 위를 올려보면 케이블카가 쇠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분주히 위아래를 오르고 내려간다.

띠밭등에 닿는다.

띠밭은 사전적 용어로는 띠가 잡초와 함께 무성하게 난 땅으로 띠밭등은 산능선따라 잔듸와 잡초로 이루어진 공터란 뜻이다.

주위는 간단한 휴식시설과 잔듸를 잘 가꾸어 놓았다.

띠밭등에서 돌계단을 오르면 편백나무숲길이 나오고 나무계단을 천천히 오르면 미륵산정상 500M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약간은 가쁘게 오르며 위를 올려다 보면 나무테크가 길게 보이는 정상밑에 다다른다.

나무테크길따라 돌아서면 다도해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테크계단을 오르면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친구들을 만난다.

용화사 주차장에서 1시간정도를 걸은 것이다.

동양의 나포리라 불리우는 통영이 그림처럼 다가선다.

항구를 배경삼아 사진도 찍으면서 봉수대 아래를 지나 미륵산 정상에 닿는다.

미륵산 정상의 높이는 461M.

봉수대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210호로 지정되어 있다.

봉수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제도이다.

이곳 미륵산 봉수대는 남쪽으로 거재의 가라산 봉수대와 북쪽으로 도산면 우산 봉수대와 연결이 되어있다.

미륵산이름이 붙여진 유래는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미륵존불이 장차 강림할곳이라는 전설에 의해서다.

높은 하늘에 흰구름도 떠다니는 청명한 가을날씨에  큼직한 화강암 정상석에서 부부끼리 친구끼리 그리고 모두함께 어울리며 디카에 얼굴을 담으니 모두가 환한 얼굴이다.

이제 어디를 봐도 아름답다는 말뿐이 안나오는 산과 바다, 그리고 항구와 섬들 모두가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폭의 수채화를 그리고있는 한려수도 다도해를 가슴에도 디카에도 담고 또 담는다.

조망판을 돌아가며 하나하나 풍경을 둘러본다.

달마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조망판앞에서 좌측 오곡도부터 우도, 사랑도까지 한려수도에 산재되어 있는 섬들을 천천히 휘둘러 본다.

한려수도란 한산도와 여수에 이르는 300리 바닷길로 1968년에 국내 최초로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받았다.

두번째 조망판 앞에서는 우측 멀리 지리산 천왕봉까지 보인다니 몇번이고 지리산 방향을 바라보고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광양의 백운산, 사랑도와 통영의 장군봉이다.

또다른 세번째 조망판앞에서 넓쩍한 봉수대 너머로 한산대첩지서부터 제승당 그리고 아스라히 보이는 거제도, 홍도와 매물도, 비진도를 한도 끝도없이 무한히 바라보며 홍도뒤로 대마도는 상상으로 그려본다.

봉수대 아래를 돌아 발길을 조금 옮기면 4번째 조망판앞인데 고성군과 통영시내를 내려다 보기에 좋은 곳이다.

조망판이 세워진 곳은 미륵산에서 내려다 보기에 가장좋은 뷰포인트였다.

나무테크의자에서 친구들 모두모여 단체로 얼굴을 담는데 그 모습들은 높고 아름다운 가을 날씨와같이 모두가 밝고 맑다.

당포해전 전망대앞이다.

조선수군이 당포에 정박해 성안에 들어가 분탕질을 하고 조선함대에 총을 쏘아댔던 왜선 21척을 모두 격침시켰던 당포가 이제는 가을색으로 물들어가는 논과 밭이 어우러 평화롭게만 내려다 보인다.

발밑에는 박경리공원이다.

통영에서 태어난 박경리선생은 한국문학의 중심에 계실것 이며  "김약국의 딸들""토지"등 수 많은 작품을 남기셨는데 2008년에 돌아가셨다.

공원에는 선생의 묘가 있다.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으로 가기위하여 내려가는 테크계단은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야생화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꽃은 지고 꽃명만 적혀있는 푯말만이 세워져 있다.

케이블카를 기다리며 위를 올려보면 직벽위가 한산대첩 전망대이고 앞으로는 한산대첩의 현장이었던 다도해의 섬들이 내려다 보인다.

길이가 1975M로 국내에서 가장긴 케이블카는 8명이 탈수 있는데 쇠밧줄에 달랑달랑 매달려 내려가지만 한폭의 그림을 내려다보듯 한려수도와 미륵산, 통영의 풍경을 보며 내려가면 어느새 하부 승강장이다.

리무진버스는 케이블카주차장을 떠나 통영해저터널앞에 선다.

일제가 동양최초로 바다밑 도로를 뚫은 해저터널로 1932년에 건립하였으며 등록문화재 제201호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에서도 해저터널이 나온다. 

용문달양(龍門達陽)현판이 오석에 흰글씨로 터널입구 위에 붙여있다.

시공당시 통영군수였던 일본인 야마구치아키리의 필적이라하고 뜻은"용궁의 문으로 들어가면 빛고을 산양에 이른다"

근대문화유산이지만 오래전에도 걷고 지금도 매일 걷는 일상적인 길로 봉평동,미수동과 당동,도천동을 연결하는 길이다. 

터널을 걸어서 왕복하고 리무진 버스에 올라타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몽 마르트로라고 불리우는 동피랑으로 향한다.

동피랑이란 동쪽벼랑을 뜻하는 것으로 강구항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나 어느 고장이든 언덕진곳은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의 터전이듯 이곳 동피랑도 일제 강점기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판자촌을 이루고 살았던 곳이다.

주민들과 뜻이 있는 시민단체 그리고 통영시가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낸것이다.  

서민들이 사는 담벼락의 벽화를 보러 언덕길을 올라간다.

경상도 사투리의 글이 여럿보이는데 한가지를 적어보면 <쌔끼오이소! 동피랑 몬당꺼지 온다꼬 욕봤지예! 짜다리 뵐 볼 끼 엄서도 모실 댕기드끼 어정거리다 가이소> 표준말로는 "어서오세요! 동피랑언덕까지 오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별 볼거리가 없어도 마실 다니듯이 천천히 둘러 보셔요" 

동피랑 꼭대기에서 강구안과 남망산공원을 내려다 보며 동피랑에 살고있는 서민들의 삶이 더욱 나아지기를 기원한다.

동피랑UCC우체국과 구멍가게 커피점을 지나 골목길을 내려와 버스에 오른다.

리무진버스는 거제도로 달린다.

김영삼대통령 기념관에 닿는다.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1383-3번지 김영삼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

생가 옆으로 기념관이 지어져 있고 생가는 목조기와와 건물3동과 석축및 석장 130M가 축조되어 있다.

시간이 늦어 기념관은 관람할 수 가 없어 생가만 둘러보고 와현마을로 달린다.

한시간여를 달렸나보다 이제는 날도 어둑하여 졌다.

와현마을은 해수욕장과 와도를 들어가는 선착장이 있다.

선착장앞 와현횟집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오랜만에 맥주컵에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2번씩이나 돌아가며 마신 친구들은 모두가 얼굴은 벌겋고 시끌법석 떠들며 취기를 느꼈지만 모두가 더욱 깊은 정을 느끼며 버스를 타고 수 백미터 떨어진 숙소로 이동한다.

여자분들은 속소로 들어 갔지만 친구들은 버스에 남아 노래방기기에 따라 노래를 부르며 얼싸앉고 껴앉고 주거니 받거니 음주와 곁들여 가무가 한판 벌어진다.

30여분간 가무를 즐기고 숙소로 들어가 고스톱도 한판 벌리고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 혼자서 해변 산책에 나선다.

와현마을 해변에 "서시유숙지徐市留宿地" 빗돌이 세워져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기원전 219년 진시황의 신하 서시가 불사약을 구하러 남해 금산을 거쳐 거제 해금강에 이르렀는데 이때 유숙한 곳이 "누우래"마을이다. 그래서 "누우래"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이곳을 신선이 바다를 향하여 누워있는 형상이라하여 와현臥峴마을이라 부른다 한다.

와현해수욕장의 길이는 510M, 폭은 30M.

까마기때들과  아침인사를 나누며 조형물과 조각상이 있는곳으로 가면 수평선을 바라보는 뒷모습의 여인상을 지나 한달전까지만 하여도 젊음이 넘쳐났던 백사장으로 들어선다.

파도는 밀려왔다 밀려가며 쏵쏵 소리를 내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맑은 공기를 폐깊숙히 들여 마시며 걷는다.

방파제까지 걷다 뒤돌아 보니 친구 김영근이 다가선다.

함께 호텔 뒷길을 걸으며 아침산책을 즐기고 숙소인 "외도숲 펜션"에 도착하여 약간의 휴식을 갖고 아침식사를 위하여 다시 와현횟집에 들른다.

외도 출항이 아직도 결졍되지도 않았지만 친구들 모두가 매물도 관광을 원해 식사를 마치자마자 다시 통영으로 달린다.

달리는 차중에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FIFA17세이하 여자 월드컵을 후반기와 승부차기를 보며 우리나라 우승의 기쁨을 맛본다.

어린 여학생들이 추석연휴 마지막날 대미를 멋지게 보여주어 차안이 떠나갈듯 더욱 큰 박수를 보낸다.

9시45분경 통영 유람선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추석연휴내내 풍랑주의보로 출항을 못하였는데 오늘 처음으로 출항을 할수 있어 매물도 관광을 할 수 있는 행운을 갖는다.

10시에 유람선은 출항하여 주위의 섬들과 거북등대, 한산대첩비, 상.하죽도등을 유적지해설가 뺨치는 선장의 설명을 들으며  15분정도를 항해하여 한산도 유적지선착장에 내렸다.

거북등대는 1963년 시민들의 성금으로 한산대첩의 해전지였던 암초위에 세운 것이며 문어포 산정위에 우뚝 서있는 한산대첩비는 1979년에 세워졌다.

두개의 작은섬 상,하죽도는 임진왜란당시 시누대가 많이 자생하여 섬의 시누대를 베어 활로 썻다 한다.

선착장에서 우측으로 들어서면 유적지 빗돌이 세워져있고 유적지 해설판앞에서 내용을 읽는다.

<충무공 이순신장군께서 1592년(선조25)임진왜란때 세계해전사상 길이 빛나는 한산대첩을 이루신후 운주당을 세우시고 1593년부터 1597년까지 삼도수군의 본영을 삼으시어 국난을 극복한 유서깊은 사적지다. 1975년 박정희대통령때 살신구국의 높은 뜻을 후손만대에 전하도록 지시함에 따라 1976년에 오늘의 모습으로 정화되었다>

관람권을 구입하고 경내로 들어서는데 사당출입은 중간계단이나 중간문은 그 사당에 모셔진 혼백이 드나드는 곳이라하여 사용하면 안된다하여 한산문 오른쪽 좁은문으로 들어선다.

하트모양의 좁은 만의 바닷물결은 잔잔한 호수의 물결과 같고 소나무가 가득한 숲속의 향기를 깊이 들여 마시며 활처럼 휘어진 길을 따라 걸으면 좌측으로는 멀리 미륵산도 보인다. 

느릿느릿 걷기 좋은 길이다.

1340일동안 이순신 장군께서 머물면서 군사들과 함께 사용했던 우물앞에 다달으고 좌측으로는 대척문이다.

해설가로 부터 이 충무공 정신등 해설을 듣고 조선시대 병사 복장을 한 두명의 밀랍인형이 지키고 있는 대척문을 들어서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충무문이 나오고 충무문을 들어서면 경내는 넓어진다.

큰고목나무 옆으로 행적비들이 있는데 이충무공의 후손으로서 통제사,부사등을 역임한 분들의 선행을 기념하여 세운 비이다.

수루앞에서 해설자로 부터 설명을 듣고 수루에 올라서는데 신발을 벗어야 한다.

수루(戍樓)는 망루로서 임진왜란때 충무공이 이곳에 올라 왜적의 동태를 살피면서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여 달라며 기도하며 우국충정의 시를 읊기도 한곳으로 충무공의 "한산도가"가 편액되어 걸려있다.

문무를 겸비한 장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임진왜란당시의 해전을 그리면서 조선수군의 승리의 함성이 한산도 전체를 뒤흔드는 느낌을 가지며 한산도앞바다를 내려다 본다.

친구들 수루 마루바닥에 앉아 한산문 입구에서 부터 다른 관광객팀들을 인솔하며 해설을 하여주고있는 해설자의 설명을 듣는데 왜장 와키자키의 수군을 크게 쳐부수었다는 한산대첩 이야기부터 학익진에서 47척, 안골포에서 40여척의 왜선을 불태웠다는 이야기, 북진하던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였다는 이야기를 자세하고 재미있게 설명을 하여주니 친구들 학창시절 수업받을때의 졸린 눈동자는 찾을 수 없고 진지하고 또렷하게 듣고있다.

한산대첩은 김시민장군의 진주대첩, 권율장군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으로 불린다.

해설자의 명해설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 듣다가 우리들의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서둘러 수루에서 내려와 제승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제승당(制勝堂)은 운주당 자리로 임진왜란때 삼군 수군을 지휘하시던 곳으로 1976년에 중건된 것이다.

당내에는 우국충정도등 이충무공의 전적을 그린 5폭의 벽화와 총통,거북선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충무사로 들어가는 홍살문을 지나면 바닥은 화강석으로 박석되어 있고 우측으로 1948년 광복을 기념하여 학생들이 성금을 모아 세운 비석 한글비가 서 있다. 글은 위당 정인보선생이 쓰고 글씨는 일중 김충현 선생이 썼다.

내삼문을 들어서고 이순신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앞이다.

몇몇 친구는 영전앞에 분항을 한다.

충무사에서 되돌아 나와 선착장을 향하여 부지런히 걷는다.

선착장에서 유람선에 승선하여 한산대첩비와 거북등대의 마중을 받으며 배는 매물도로 향한다.

주변 섬이름과 유래등을 선장의 방송을 들으며 항해를 하다 우측 멀리는 비진도가 보이고 용초도르 지나면서 바다는 더욱 검푸르고 파도도 높아지는데 선장의 맨트가 들린다.

이 지점부터가 일기예보를 할때 말하는 앞바다와 먼바다를 구분짓는다 한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지면 먼바다는 항해를 할수 없단다.

좌측으로 보이는 장사도는 제2의 외도를 꿈꾸며 한참 공사중이라는 설명도 한다.

앞으로 아주멀리는 몇개의 갯바위가 서있고 뒤로는 홍도가 가물거린다.

소매물도의 기암괴석들이 검푸른 파도위에 점점다가선다.

소매물도 앞에서는 속력을 늦추면서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등대섬을 천천히 돌면서 설명을 하여준다.

기암괴석에서 바닷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두개의 큰기둥에 박혀있는 바위의 모습도 특이하고 등대섬에서 홀로 떨어진 촛대바위는 일출때나 일몰때에 태양이 바위에 비추면 그모습은 황홀한 장관을 이룰 것 같다.

직벽과 직벽사이를 엔진소리를 크게 내며 들어가듯하다 되돌아 나오면서 재치를 부리는 선장의 입담까지 곁들여 등대섬을 돌면 소매물도 뒤쪽으로 나오는데 선착장이 보인다.

우리가 승선한 유람선은 선착장에 닿는 일정이 아니기 때문에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돌면서 통영으로 돌아간다.

새들의 안식처라는 조그만 돌섬옆으로 지나면 점점 멀어저가는 매물도를 바라보다보면 먼바다에서 앞바다로 들어선다.

유람선 앞쪽 멀리는 10여대의 요트가 물위에 떠있다.

이제는 배에서 미륵산도 보이고 오후1시25분경 유람선터미널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약 3시간 30여분을 제승당과 매물도를 둘러본 것이다.

인근의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여성분들은 건어물등을 구입하고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성철 스님 생가를 방문한다.

"상대유한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절이라는 의미의 겁외사(劫外寺)경내를 둘러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로 온 국민의 불심을 일깨웠던 큰스님 성철스님.

경내는 가운데 성철 스님 동상이 서있고 보기드문 백송,금송,반송등이 단정히 보인다.

불자는 아니지만 조용히 경내를 둘러보고 버스에 올라 인천으로 달린다.

예상했던 고속도로는 전혀 정체가 되질않아 인천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8시30분경이었다.

이번 남우회 통영,거제여행은 높고 푸른하늘의 전형적인 가을 날씨,

미륵산 산정에서의 한려수도 조망, 

한국 소녀들의 축구우승,

연휴기간중 처음으로 출항하여 제승대와 매물도 관광,

빠른 귀가에

가장소중한 친구들의 우정이 더욱 깊었던 만점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