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2010년)

여름휴가를 성삼재에서 피아골까지

Bravery-무용- 2010. 8. 7. 21:47

2010.8.2

성삼재-노고단데피소-노고단고개-피아골삼거리-피아골대피소-직전마을

약8시간   25,400보

 

아내와 함께 할 올 여름휴가는 아내의 체력을 감안하여 성삼재에서 반야봉오르고 다시 성삼재로 되돌아 오거나 반야봉에서 되돌아 피아골 삼거리에서 피아골로 내려가는 두가지 코스중 산행을 하면서 결정을 짓기로 계획하였다.

인터넷으로 코레일에 예약을 하였다.

8월1일 저녁 22시58분 영등포에 구례구까지 무궁화호 1인 22,000원

8월2일 오후 3시19분  구례구에서 영등포  무궁화호  1인 21,100원

 

8월1일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승용차를 이용하여 영등포 인쇄골목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에 오른다.

달리는 기차 소리로 깊게 잠은 들지 못하고 다음날 새벽 3시20분경에 구례구역에 도착하였다.

구레구역에 내리는 승객은 거의가 배낭을 맨 산행객들이다.

역앞에서 1인당 10,000원을 지불하고 7인승 콜벤을 타고 성삼재에 새벽 4시10분경에 도착하였다.(5년전보다 1인당 5,000원이 올랐다) 

성삼재는 해발 1,102M.

명칭의 유래는 진한군에 밀린 마한왕조는 가장 중요한 요충지였던 이곳에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토록 하여 성삼(性三)이다.

5년전 이맘때 아내와 함께 이곳 성삼재에 도착하였을때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쏟아져 내릴듯 반짝이었는데 오늘은 반달의 모습만이 구름속에 가리여 희뿌옇게 보이다가 구름에 숨기를 반복한다.

곧바로 노고단으로 향한다.

렌턴을 준비 못하였지만 몇사람의 산행객들과 어울려 넓은 도로인 노고단가는 어둑한 길을 별 어려움없이 걷는다.

해발 1,255M지점을 지나고 조금만 걸으면 전망대에 닿는다.

구례읍과 섬진강 멀리는 무등산이 보이는 곳이지만 어둑하고 구름까지끼여 불빛 조차도 보이질 않는 암흑이다.

성삼재에서 부터 계속 완만하게 오르는 길이라 그래도 숨이차다.

화엄사 내려가는 이정표를 지나며 노고단대피소에 닿았다.

짙은 운무 속에서도 대피소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붐비고 있다.

야외용 나무식탁에 앉아 집에서 준비한 냉콩국물에 열무김치로 아침식사를 하며 내심 운무가 걷히기를 기다리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30분이상을 기다렸지만 오히려 운무는 더욱 짙어져 운무가 걷히는 것을 포기하고 새벽5시50분이 지나 노고단대피소를 출발한다.

노고단고개 0.4Km 방향으로 오른다.

돌계단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결국 오늘산행중 이곳 오름길이 가장 힘들게 올랐다.

길섶에 들꽃들이 없었다면 안개속에 무미건조하게 올랐을 것이다.

돌을 깔아 놓은 넓은 노고단고개는 돌탑만이 운무속에 묵직하게 서있다.

돌탑주위는 원추리꽃이 흐트러지게 피여있고 노고단 정상은 출입을 통제하였고 운무에 보이질 않는다.

신라시대 지리산의 산신 선도성모를 모시는 남악사가 있어 제사를 모셔왔다는 전설이 있는 노고단.

30만평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원추리 군락지로 신라시대에는 화랑국선의 연무도장이 잇었다는 것은 드넓은 고원으로 짐작이 간다.

5년전 노고단고개에서 무등산이 구름바다위에 섬처럼 신비스럽게 보였던 모습은 지금도 잊지를 못하고 있는데 오늘 아쉬움이 너무크다.

지리산 종주능선길 조망판앞에서 천왕봉까지 25.5Km의 장엄한 종주능선을 바라볼 뿐이다.

노고단고개에서 능선길로 내려가면 중간중간에 경계목위에 산새들의 먹이를 올려놓아서였는지 갖가지 산새소리가 지저귄다.

안개자욱한 능선길에 여러 들꽃들과 함께 걸으면 헬기장을 지나고 노고단에서 1.5키로지점을 지나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기상대예보만을 믿고 우의를 준비하지못한 아내는 비닐돗자리를 뒤집어 쓰고 나는 일회용 우의를 입고 부지런히 걷는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며 2번째, 3번째 헬기장을 지나면서 반야봉오르기를 포기하고 곧바로 피아골삼거리에서 피아골로 내려간다.

피아골삼거리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피아골대피소까지 소요시간 1시간20분이 적혀있다.

나무테크계단도 돌계단도 밟으며 내려오면 피아골대피소까지 1키로가 남았고 빗방울은 멈췄다.

계곡사이에 긴철다리를 건너면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나와 아내뿐인 산길이다.

안내판에 적혀있던 소요시간과 비슷하게 걸리어 해발789미터 피아골대피소에 닿았다.

대피소 옆으로 봉우리 하나가 솟아 있는데 지도상에는 표시되여 있지 않지만 항상구름이 덮여있어 이곳에서는 은둔봉이라 부른다고 산장관리인이 일러준다.

산장주위는 숲속에 넓은 공터로 돌들이 널려있고 여러곳에 작은 돌탑들이 쌓여있다.

노고단대피소에서 아침식사후 처음으로 배낭에서 먹거리를 꺼낸다.

15분정도를 대피소앞 바위에서 쉬고 신선교를 지나면서 햇살까지 비친다.

지독한 너덜지대가 계속되는데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물이 만나 계곡은 점점 넓어지고 물소리 또한 우렁차다.

한도 씉도없이 내려가는 너덜지대 발걸음을 내디딜때마다 힘이 드는데 물소리와 새소리가 리듬을 맞춰주지 않았다면 덥석 주저앉았을 것 이다.

이끼가 덮여있는 직벽의 어마한 바위을 끼고 철계단을 올랐다 내려가면 깊은계곡아래로 옥색의 소가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도 내려왔는데 아직까지도 직전마을은 3.1키로가 남았다.

너덜길에 죽순숲을 내려오면 해발700미터 구계포(九階泡)계곡 표지목앞이다.

아홉번에 걸쳐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계곡물로 구계포란 이름이 붙여졌나 보다.

넓은 진갈색암반에서 미끄러지며 하얀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데 떨어지는 높이가 엇비슷하여 마치 층계를 이룬듯이 보인다.

구계포게곡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구계포교를 건넌다.

철다리로 동그란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위를 이리저리 흔들리며 걷는데 그래도 다리 한가운데서 구계포 계곡의 모습을 담는다.

다리를 막건너고 꺽어저 드는데 원쪽다리가 따금하여 직감적으로 벌에 쏘였다 생각하고 뒤돌아보니 2마리 벌이 내 주위를 맴돌고있다.

우선 아내에게 말벌인지를 확인한 후에야 안심을 하고 내려간다.

해발600미터 삼홍소(三紅沼)앞이다.

구계포다리와는 다르게 흔들리지 않는 삼홍교 철다리를 건넌다.

구계곡계곡의 암반이 진갈색인데 반해 삼홍교위에서 바라보는 계곡의 바위는 검정빛의 암반으로 되여있다.

삼홍소라 불리우게된 뜻은 단풍에 산이 붉게 타는 산홍(山紅), 붉은 단풍이 물에 비추어 물까지 붉게 보이는 수홍(水紅), 산홍과 수홍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붉어 보이는 인홍(人紅). 산홍과 수홍 그리고 인홍이 합쳐진 뜻이다.

계곡에서 다리쉼을 하고싶어도 계곡이 깊어 터덜터덜 내려오다 그래도 가장낮은 계곡으로 내려가 계곡물에 얼굴만 씻었는데도 피로가 풀리듯 하다.

남부 학술림 지리산지역 안내판에서 피아골 명칭에대한 설명을 읽는다.

남부군, 빨지산등 질곡된 단어로만 떠올랐었는데 피아골에대한 뜻은 다른 이유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연곡사 승려들이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에 천박한 토양에서도 잘자라는 오곡(쌀,보리,조,콩,기장)중에 하나인 피(기장)를 많이 심어 배고품을 다랬다는데서 피밭골이라 부르던것이 점차 변하여 피아골로 불러지게 되었단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 마을이름이 기장직(稷), 밭전(田)을 써서 직전마을이라 한다.

철다리를 건너면 해발496미터 표고막터이정표 앞이다.

표고막터는 일제 강점기때 이 일대가 표고버섯을 재배하였던 곳이다.

이곳부터 길이 넓어져 차량도 다닐수 있을 정도다.

이제는 편하게 피아골계곡과 함께 내려간다.

계곡으로 들어서기 좋은곳에서 비닐돗자리를 깔아놓고 아내와 함께 족욕을 즐기며 배낭속에 꼭꼭 지니고온 막걸리로 피로를 잊는다.

중요한것은 술은 입에도 대지못하는 아내가 한컵을 마셨다는 것이다.

탐방로 안내판을 나오면 "산아래 첫집"이나오고 아스팔트 도로가 시작된다.

피서철에는 버스가 이곳까지 운행을 하지않아 연곡사 주차장까지 내려가야 한다고 마을주민이 일러준다.

내려가도 끝도없는 아스팔트길이다.

피아골계곡과 함께하는 아스팔트길은 나무가 만들어 놓은 그늘을 찿아 내려가면 대나무숲도 지나고 서굴암입구를 지나면 연곡사 일주문이 보인다.

산아래 첫집에서부터 아스팔트도로를 40여분을 걸어내려와 12시10분경 연곡사 매표소앞에 닿는다.

약8시간의 산행을 하였다.

지리산 국립공원 안내도를 보며 왕시루봉을 확인하기 위하여 연곡사매표소 여직원에게 물어보니 국립공원직원이아니고 연곡사직원이라 모르겠다고 답하는데 아주 퉁명스럽다.

조금더 내려가 천주교 피아골 피정의 집앞에서 12시 35분에 구례로가는 버스에 오른다.

섬진강따라 달려 구례터미널에서 택시로 갈아타 구례구역에 내렸다.

구례구역은 행정구역상 순천시에 있으며 철도를 건설할 당시 구례유림들이 철로가 구례를 통과 하는것을 반대하여 지금위치에 역사를 세웠는데 입구(口)자를 지명뒤에 붙여 구례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구례구역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는 애기를 택시기사로부터 듣는데 역사(驛史)에대한 설명이 구례구역 대합실에 적혀있다.

예정된 출발시간인 3시19분보다 조금늦게 구례구역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