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3

다시 찾고 싶은 남해 금산

Bravery-무용- 2009. 4. 17. 16:13

2009.4.12

열우물산악회

경남 남해군 금산(錦山) 701 미터

                 상주면금산탐방지원센터-쌍홍문-상사바위-단군신전-정상-보리암-                쌍홍문-금산탐방지원센터

 

4월 둘째주 산행은 열우물산악회와 함께 경남 남해군에 위치한 금산이다.

서울이나 인천등 수도권에서는 무박산행을 하여야 하는 곳이나 차안에서 불편한 수면으로 피로등이 더하여 조기출발을 하기로 집행부에서 결정하였다.

어제 늦게 아내와 딸과 함께 부활절 전야 미사를 드리고 새벽 4시 못미쳐 일어나  출발장소인 십정동에서 새벽5시 조금 지난 시각에 인천을 출발하였다.

산악회에서 나누어준 김밥으로 고속도로 금산휴게소에서 우동을 곁들여 아침식사를 하고 9시 50분경 창선 삼천포대교를 지난다.

창선 삼천포대교는 사천시와 남해군을 연결하고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에서 대상에 선정되기도 하였던 아름다운 다리다.

차창 밖으로 남해와 섬들 그리고 유채꽃이 반겨주는 다리를 건너 상주해수욕장을 지나 금산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장장 5시간이상을 달려왔다.

넓은 주차장에는 벌써 2대의 다른 산악회 버스가 주차 되여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가운데 유일한 산악공원인 금산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는 안내판이 세워져있다.

원래는 보타산 이었는데 원효대사가 신라문무왕 3년(663년)에 이 산에 보광사를 창건하면서 보광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고려말 이성계가 입산하여 백일기도로 영험을 얻어 조선왕조를 세우고 은혜에 보답하고저 산에 비단을 내렸다는 뜻의 비단금(錦)자를 붙여 금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산으로 사연도 많고 전설도 많은 산이다.

이성계와 관련된 또 다른 산이 경기도 양평에 용문산이 있는데  용문산은 이성계가 등극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내판의 설명을 읽으며 화강암의 기암괴석들이 파란하늘과 선을 그으며 솟아 있는 모습을 올려다 본다.

주차장 건너편의 가로수 벚꽃들은 꽃눈이 내리듯 도로와 주차장에 흩날리며 떨어지고 있다.

인천의 대표적인 벚꽃축제장인 인천대공원은 벚꽃이 만개가 되여 어제부터 축제가 시작되고 있는데 남쪽지방 남해는 벚꽃이 지고있다.

남해의 산과 바다의 맑은 공기를 힘껏 들여마시며 금산정상 2.2키로 이정표따라 산문에 들어선다.

 

 

돌계단을 오르면서 분홍빛 겹벚꽃과 소나무 숲이 반기는 지원센터 시인마을을 지난다.

나뭇가지마다 새순이 돋아나고 사이로는 햇살이 비치고, 길섶에는 갈색낙엽을 비집고 노란양지꽃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산길이다.

지원센터에서부터 금산정상까지 중간지점인 도선바위 약수터앞이다.

오름길 중간중간에는 산에 대한 설명만이 해설판에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해상국립공원에 걸맞게 해양생물에 대하여 설명한 해설판도 세워져 있다.

계속되는 오름길에 힘이 부칠때쯤이면 중턱마다 공원에대한 해설과 싯귀가 씌여 있어 걸음을 멈추며 숨도 고르고 싯귀도 감상하고 오른다.

 

고두현의 "산 할 미 꽃"

 

먼바다 청명한 날엔

남해 금산을 다시가네

가는 길엔 홍진의 세월

눈 감고 귀도 닫고 잔가지에

솔잎 꼳히는 소리만 들으라네

묵은 옷 발 아래 벗고

하늬바람 산 그늘 따라

흔들릴 때도 군 말 없이 그 별빛

푸를때까지 고개 들지 말라하네

살아 가파른언덕

억새풀 뿌리 뻗듯 질기게 올랐다가

쌍홍문 돌틈바귀 산정을

저 만치 두고 머리 하얗게

멈춰 섰는 그 사람 보라하네

 

들머리에서 부터 30여분을 오르면서 금산 정상 1.2키로 지점을 지난다.

아내의 오르는 모습이 힘이 들어 걸음은 더뎌지고 허리는 점점 숙이며 오른다.

이번 중턱에는 태조 이성계와 충무공 이순신, 구운몽의 김만중등 한려해상 국립공원지역에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해설이 세워져 있고 그 곳에서 다리쉼을 한다.

테크계단과 너덜길을 오르면서 좌측 나뭇가지사이로 기암들의 모습이 다가선다.

위를 올려다보니 쌍홍문이 보인다.

여인의 눈동자같기도하고, 쥬라기시대의 거대한 맘모스의 두 눈 같기도, 커다란 해골의 두눈 같기도 산우들의 표현이 각기 다르다.

그러나 바위의 명칭은 쌍홍문이다.

금산의 15경으로 금산의 관문이며 옛날에는 천양문으로 불러왔다가 원효대사가 두굴이 무지개같다하여 쌍홍문(雙虹門)으로 부르게 되었다.

쌍홍문 오르기 바로 옆으로는 동서남북에 흩어져 있는 네신선이 이 암봉에서 놀았다하여 붙여진 이름 사선대(四仙臺)가 보인다.

사선대는 금산 16경이다.

사선대를 좌측에 두고 돌계단을 오르면 쌍홍문 바로 못미쳐 좌측으로 송악이 휘감고 있는 장군암이 쌍홍문의 수문장인양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은 그 이름과 썩 잘 어울린다.

송악밑에 있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어 장군봉을 휘감고 있는 송악밑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들머리에서부터 이곳까지는 계속 이어진 계단길로 가뿐숨을 몰라쉬며 올라왔다.

쌍홍문 굴속에 들어서니 남해의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뒤를 돌아 장군봉 직벽사이로 야트막한 산등성과 너머로 상주해수욕장과 남해는 바다 안개가 끝없이 펼쳐져 작은 섬들은 바닷안개가 숨겨놓았고 해면위에 또 다른 안개가 바다를 만들고 있으니 심원은 헤아릴수 가 없고 그 모습 또한 신비함이 가득하다.

아마도 이러한 풍경을 보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신비한 남해의 풍경을 보기위하여 1시간 이상을 발품하였다.

어찌보면 금산의 관문인 쌍홍문에서 바라본 남해의 모습은 시작에 불과하다.

 

 

 

 

 

 

쌍홍문굴 뒷편 단군성전 0.3키로,보리암 0.3키로,도선바위 0.8키로 이정표에서 단군성전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대나무숲을 지나 우측 산길 옆으로 일월봉이 직벽으로 우뚝하게 보인다.

두 개의 바위가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일자형(日字形)을 이루고 멀리서는 월자형(月字形)으로 보여 일월봉으로 불리운다.

산길을 벗어나 일월봉 앞에서 고개를 젖히고 일자봉을 올려다 본다.

쌍홍문 0.2 좌선대 0.1키로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곳 좌측으로는 금강 19경 제석봉이다.

불교에서는 제석천은 부처를 좌우로 모시는 불법을 지키는 신인데 제석천이 내려와 놀고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제석봉에서 바라본 일월봉은 日자와 月자의 형상이 일월봉 앞에서 보다 더욱 뚜렷이 닮아 보였고 일월봉 뒤로는 화엄암이 솟아 있고 아래는 암자인 보리암이 보인다.

제석봉에서 일월봉을 시작으로 고개를 돌리면 해무 속에  남해와 상주해수욕장이....  또 다시 고개를 돌리면 층암절벽의 상사바위가 손짓을 한다.

금산의 숲바다를 내려다 보면 숲은 산벚꽃이 만발하여 마치 온 산을 흰색으로 점점히 찍어 놓은 듯 하다.

일월봉 꼭대기에 까마귀 한 마리는 망중한을 즐기듯 떠날줄 모르고 있다.

한 없이 산의 정취에 빠져들었던 제석봉에서 내려와 금산산장을 지나 신라시대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등이 수도좌선 하였던 자리라고 전해지는 금산20경인 좌선대(坐禪臺)를 지난다.

길섶에는 각시붓꽃이 반겨 주어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누며 산길을 걸어 좌측 상사바위로 향한다.

테크계단을 오르면서 제석봉에서는 보이질 않았던 우측의 섬들이 해무속에 내려다 보이고 계단을 다 올라서면 상사바위 넓은 암반으로 남해의 모습이 훤히 들어난다.

금산27경 상사바위는 금산에서 가장 웅장하고 멀리서보면 마치 왕관모양을 하고 있으며 아주 낭만적인 사연을 지니고있는 넓은 바위다.

 

 

 

 

전라남도 돌산에 사는 청년이 남해에 머슴 살러와서 자태가 빼어난 과수댁 주인에게 반하여 애간장을 태우다 상사병에 죽어가고 있었는데 죽음 직전 과수댁이 청년을 금산으로 불러내 이 바위에서 상사를 풀어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는 낭만적 야화가 깃들어 있는 바위다.

넓은 상사바위에서 나의 눈이 닿는데 까지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금산과 바닷안개속에 신비스럽게 내려다 보이는 남해의 풍광에 푹빠졌다.

양옆으로 해운산과 천황산 자락 깊숙히 들어와 만곡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상주해수욕장은 해무가 깔려있다.

좌측으로는 하얀 암봉의 모습으로 제석봉,일월봉과 화엄봉이 나란히 보인다.

모든 산우들 시간 가는줄 모르고 즐겼다.

배낭을 메고 되 내려와 단군성전 방향 능선길에 그 많은 나무중에 노각나무의 매끄러운 수피에 눈길이 가고 넓은 능선위에는 채마밭도 보인다.

헬기장에 세워져 있는 양심거울앞에서 나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을 소중히 아끼면서 이 산길을 걷고 있는지 생각을 하여본다.

산신재단 빗돌주위에는 얼레지가 반겨주고 넉넉하게 큰 편백나무 그늘에서 산우들 먹거리를 펼치며 오손도손 앉아 여유있게 휴식을 갖는다.

금산정상 이정표 따라 발길을 옮긴다.

 

 

 

 

 

 

대나무 숲길과 바위길을 지나 금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해발 701미터 망대(望臺)에 도착하였다.

망대는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 최남단 봉수대로 사용하였으며 현존하는것 중 가장 오래 되었단다.

망대를 오르면 그 안에 또 다시 조그마하게 돌을 둘러 쌓았는데 이곳이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던 곳인가 보다.

다도해의 모든곳을 보여주는 곳이다.

아래로는 보리암이 내려다 보이고 저 끝으로는 상주해수욕장도 내려다 보인다.

쌍홍문에서 처음으로 내려다 보았을때의 남해의 짙은 해무는 많이 걷혔지만 여전히 바다의 수면위는 보얀해무가 깔려 있다.

정상 표시석은 망대에서 조금 비껴 암봉에 세워져 있는데 화강암에 남해산악회에서 세워놓았다.

정상표시석에서 또 한번 다도해의 풍경을 담고 내려와 테크계단길을 내려가면 정상에서 300미터 거리에있는 보리암으로 내려간다.

연등이 양옆으로 매달려 있는 운치가 돋보이는 보리암뒷편 돌계단길을 내려가면 경내에 들어선다.

 

 

 

 

 

보리암, 한국의 3대 관세음보살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신자들과 산행객들로 경내가 북적인다.

화엄암 아래 자리 잡고 남쪽바다를 바라보며 절벽에 세워져 있는 보리암.

종각의 추녀와 요사채의 추녀가 맞닿아 있으며 그 사이로 화엄암이 조화를 이루어 모습도 보기가 좋다.

보리암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해수관음보살상앞에는 수 명의 불자들이 기도드리는 모습도 보인다.

보리암전 3층석탑은 탑에 나침반을 놓으면 자기난리가 일어난다.

나침반을 놓은 곳에 따라 북쪽을 가리켜야 할 나침반이 놓은 방향에 따라 동서남북이 모두 나타난다.

TV에 방송되어 더욱 유명하여졌다.

이곳에서 다시 한번 다도해를 바라 보고 쌍홍문으로 내려간다.

쌍홍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아쉬움속에 바람을 맞으며 해무의 다도해를 바라보며 쌍홍문을 내려간다.

 

 

 아내는 돌계단에 앉아 다도해를 바라보며 풍경에 빠져 일어설줄 모른다.

가뿐숨을 토해내며 올라왔던 길을 삼나무와 해송, 산팥나무등을 벗삼아 쉬엄쉬엄 내려온다.

오르면서 미쳐 보지못하였던 돌탑도 마주치며 시인의 마을을 지나 산행을 끝내고 재두장식당(055-862-6022)에서 싼 음식값에 소박하면서도 맛갈스런 정식백반으로 점심식사를 끝내고 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