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 2

지리산 남부능선 청학동에서 백무동

Bravery-무용- 2007. 7. 9. 20:37

2007. 7. 8 새벽 3시30분경 경남 하동군 청암면 청학동에 도착하였다.

이른 새벽의 청학하늘은 구름이 별들을 가리고 어둠과 적막함만이 가득할 뿐이다.

지금의 청학동은 1900년을 전후해서 일심교도들이 들어와 살면서 이루어진 마을로

우리의 정통 생활을 고수하여 흔히들 도인촌이라 부르기도 한다.

몇 백년의 세월을 거쳐 내려온 도인촌은 아니다.

지금은 음식점과 상가들이 생기면서 옛 모습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10여분 정도 산행준비를 하고 청학시인마을 탐방지원 센터를 지나면서 삼신봉으로 향하여 용왕매진하는 태화산우들.

좌측 계곡에서는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고 새벽 안개비에  산죽 이파리는

물방울이 맺혀 렌턴의 불빛에 반짝거린다.

오르는 너덜길은 온통 안개가 뒤덮혀 수미터 앞서 가는 산우들의 모습도 희미하게 보인다.

새벽 산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오르는 산우들의 가뿐 숨소리와 스틱소리만 들렸을 것이다.

새석대피소 8.0K, 청학동 2.0K 표시판이 세워져 있는 언덕에 올라 다리쉼을 한다.

이번에는 청학동, 쌍계사, 세석대피소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세 갈래길에서

세석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걷기 편한 능선길을 10여분 걸으며

삼신봉 봉우리로 오르기 위하여 우측으로 움직인다.

바위를 잡고 오르는 바위 틈사이에는 앙증스러운 돌양지꽃이 반긴다.

 

 

 

청학서 약 1시간 20여분을 다리품하여 삼신봉 정상에 도착하였다.

오석으로 세워진 정상석에 앞면은 한문으로 三神峰 1,284 M, 뒷면은 한글로 삼신봉, 

옆면은 일천구백구십년시월구일이 석각되어있다.

표지석뒤에는 돌무더기를 쌓아 놓았고 지리산 종주능선 조망판이 세워져 있다.

노고단에서 써리봉까지의 긴 능선의 주요 봉우리들이 표시되여 있으나

오늘은 짙은 안개가 지리산 모두를 덮어 주위의 나무들만 보일 뿐이다.

지리산 주능선의 조망, 굽이치는 섬진강변, 남해바다의 일망무제한 탁트인 조망은 마음속으로만 그려본다.

오늘의 삼신봉정상은 산새의 지저귐과 안개 그리고 바람뿐이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국립수산진흥원 산악회에서 세운 동료 산악인의 추모비가 보인다.

지리산 남부능선은 세석위의 영신봉에서 이곳 삼신봉을 거쳐 내삼신봉, 내원재, 형제봉까지를 일컫는다.

이제 남부능선길로 들어섰다.

온산을 덮은 안개로 능선길에서의 조망은 포기하고 잡목으로 우거진 좁은 산길을 걷는것 뿐이다.

길섶에 보이는 들꽃들이 없었다면 더욱 음음적막한 산길이었을 것이다.

청학동 3.8K, 세석대피소 6.2K 이정표를 지나며 그리 어렵지 않게 내려갔다 올라서면서 30여분을 다리품하여 한벗샘 40M 표시판앞에 도착하였다.

이곳을 수곡재 또는 박단재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부개동 안영섭님과 한벗샘으로 발길을 옮긴다.

산죽이 키보다도 큰 좁은 산길이다.

 

바위옷이 덮여 있는 암반에서  샘물이 솟아 흐르고 있다.

샘 앞에는 야영을 할수 있을 정도의 좁은 평지가 있다.

지리산의 정기를 들이키듯 정성드려 한모금씩 마시고

다시 한벗샘 이정표로 올라서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니 헬기장이다.

진달래와 싸리나무가 울창한 오솔길을 몇번에 걸쳐 힘들지 않게

오르락 내리막하며 안개속 능선길을 걷는다.

 

 

세석의 관문이라고 일컫는 남부능선의 명물 석문앞에 도착하였다.

높이는 약 10M, 폭은 약 3M 정도의 석문이다.

구한말때 학자며 순국지사인 송병선의 1,879년 "두류산기"에서

석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일행은 거림동으로 가자는데 나는 세석평을 보고 싶었다.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는데 어떤곳은 바위 절벽이

움푹하여 길이 없는것 같았고,

비틀거리다가 기어가다 하여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큰바위 하나가 나타나는데 그 바위를 뚫어 문을 만들었다.

기세가 매우 기이하고 장대하여 따르던 사람들이 놀라 크게 외치니 메아리가 울린다"

하늘나리와 같이 석문 가운데에서 와와 하고 소리쳐본다.

세석대피소 2.7K 이정표를 지나면서 얕은 오르막인데도 헉헉대며 넓은 언덕위에 올라섰다.

참나무등 잡목이 우거진 초록의 이파리가 힘들게 걷는 능선길을 위로하여 주고있다.

대성교 6.9K, 삼신봉 5.3K, 세석대피소 2.2K 새갈래길을 지나면서 산길 좌측에

우람한 바위가 보인다.

능선길을 걷다가 길섶옆 넓은 바위에 올라섰다.

안개를 원망하면서 보이지 않는 지리산의 연봉을 상상하며  바로 앞 작은봉우리만 바라본다.

 

거림쪽 산기슭에 있던 안개가 힘차게 산능선을 넘어 대성리로 넘어간다.

그러더니 안개 밑으로는 오늘 처음으로 햇살이 산기슭을 비추니

안개와 햇살 그리고 구름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실루엣을 연출하고 있다.

세석 1.7K 이정표를 지나면서 꼬불한 산길과 돌들이 깔려있는 약간은 넓은 산길을 지나  해발 1,410M 음양수앞에 도착하였다.

 

음양수(陰陽水) 검은바위뒤에서 흐르는 음지의 물이

햇볕이 드는 앞쪽의 양지 물과 합쳐진 바위틈에서 나온 석간수다.

송병선의 "두류산기"에서

음양수 부근을 외세석이라하여 석문에서 4, 5리를 걸어 이곳에 도착하였으나

날이 저물어 쌀을 씻어서 밥을 짓고 바위에 의지하여 잠을 잤다 한다.

이곳에서 부개동 안영섭부부, 하늘나리, 아트빅일행들을 만나 한참을 머물렀다.

음양수위 넓은 바위에 오르니 가운데는 평편하게 되여 있으며

돌을 둥그렇게 쌓아놓은 모습도 보인다.

세석 0.5K, 거림 5.5K 갈림길에서 세석으로 발길을 옮긴다.

나무테크로 설치된 다리도 지나는 길에는 여러 종류의 들꽃들도 보인다.

 

 

 

30만평에 이르는 세석평전이 키작은 관목의 푸르름이 가득 채워진채  눈앞에 펼쳐진다.

해발 1,545M 세석대피소에 도착하였다.

청학동에서 약 5시간 30분 다리품을 하였다.

송병선의 "두류산기"에

"길을 돌려 내세석으로 들어가니 산기슭이 성첩마냥 둘려쳐 밖은 험하고 안은 평탄 하였다.

3층으로된 대(臺) 있었는데, 너비가 수천호가 들어설 만하였다.(생략)

누대의 뒤에는 촛불같은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나 있었다.

바위위에는 다음과 같은 율시 한 편이 새겨져 있었다.

 

두류산 저 멀리 저녁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으니

만개의 골짝과 천개의 바위가 회계산 같구나

지팡이를 짚고 청학동을 찾아가려 하는데

숲 너머로 부질없이 흰 원숭이의 울음소리만 들리네.

누대에선 아득히 삼신산이 가깝고

이끼 낀 바위에는 어렴풋한 네 글자가 새겨져 있네.

시험 삼아 선원이 어디나고 물어보노니

떨어진 꽃 흐르는 물이 사람을 미혹케 하네.

 

미수 이인로의 고적古迹이며, 대개 청학동이 이 산에 있었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학자 이인로가 쓴 "파한집 상"에도 청학동을 찾지 못하여 바위돌에 시를 남겼다고 쓰여 있다.

 

 

세석대피소에서 바라보는 촛대봉은 구름과 숨박꼭질을 계속한다.

세석대피소에서 충분한 휴식을 하였다.

백무동을 가기위하여 세석갈림길에서 좌측 백무동 6.5K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무계단을 약간 오르다  계속 내리막 길이다.

너덜길도 내려가고 나무테크 계단길도 내려간다.

원시림에 가까운 울창한 숲길은 이끼낀 아름드리 나무도 바위옷도 널려있다.

세석에서 700M를 내려 왔다.

 

갑자기 좌측에서 쏴쏴 대며 물떨어 지는 소리가 들린다.

장장 10K에 걸쳐 흐르는 한신계곡을 알리는 폭포다.

이 물줄기는 염천으로 흘러 남강상류를 이룬다.

이끼낀 검푸른 암반에서 떨어진 낙수는 다시 두 줄기로 갈리어 떨어지고

다시 합쳐지더니 힘차게 아래로 흘러 내린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려오다 힘이 들면 고개를 들어 녹색의 숲을 바라보기도 한다.

나무계단도 철계단도 내려오며 세석대피소 2K로 이정표를 지난다.

좌측에서는 한신계곡에서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길섶에는 산죽이 자라는  내리막길.

나무테크다리로 계곡을 넘으며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미끄러운 암반에 흘러 내려가는 물줄기를 바라본다.

백무동 3.7K 이정표가 세워진 한신폭포 앞이다.

그러나 폭포를 바라볼수있는 위치를 찾을수가 없다.

안전지대 표시를 하여 숲을 헤치고 바라볼수도 없다.

오른쪽에서 지금까지 들었던 물소리 보다 더욱 크게 물소리가 들린다.

 

 

 

 

오층폭포가 시작되는 곳이다.

부개동 안영섭님과 바위아래로 내려가 조망하기 좋은곳을 �기 위하여 폭포 가까이 다가섰다.

낙수점이 깊어 많은 수량의 물이 하얀포말을 내품으며

진갈색암반에서 큰 돌확에 떨어지며 출렁거린다.

돌확에 물은 다시 흘려 낙수점이 넓어지면서 다시 한번 쏟아져 떨어진다,

옥색의 소沼는 출렁거리며 물은 다시 낙수지점으로 흘러 간다.

한참을 머물렀다.

산명수청하니 번뇌는 물소리에 사라지고 귀는 더욱 밝아지는 듯하다.

 

                         폭   포

                                                      김 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다시 산길로 들어서 수십미터를 걷다  위에 있는 소보다도 더 넓은 소로 떨어지는 물소리에 안영섭님과 다시 한번 암반으로 내려섰다.

위쪽 소보다 더넓은 소는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모든물을 받아들이며

백색의 돌확은 더욱진한 옥색의 소를 만들고 있다.

오층폭포는 해발 855M다.

 

지나칠뻔 하였다 가내소앞에 도착하였다.

안영섭님과 수풀을 헤치고 가내소의 전설이 깃든 폭포를 살짝 훔쳐본다.

가내소 산길에서 바라본 한신계곡은 오층폭포 위치보다도 더욱 깊다.

출렁거리는 다리를 건너 계곡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백무동2.1K이정표 지점을 지나 해발 630M 첫나드리폭포에 도착하였다.

백무동에서 오르면 첫번째 맞이하는 폭포다.

길섶에는 잔돌을 쌓아놓은 돌탑에서 부터 백무동까지는 900M가 남았다.

해발 540M 백부동야영장을 지나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였다.

태화산우회와 청학동에서 세석 그리고 백무동까지 9시간이상의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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