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들
- 여강
속세의 나이와 산을 찾는 횟수는 정비례한다는 이야기가 맞는 듯 하다.
주 5일제
근무가 실시되면서 주말아침이면 습관처럼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직장과 학교로 간 뒤 덩그러니 집에 혼자남아 침대신세를
지기 싫어서다. 간단한 간식거리와 시집 한권을 챙기고 전철에 몸을 싣는다.
관악산이나 북한산등 수도권에 소재한 산에 다니면서 발견한 현상들이 있다. 우선 주말에 산들 찾는 연령대가 대부분 살아 갈 날보다 지나간 날들이 더 많은 중년이상이라는 점이다. 또한 많은 남자들은 혼자 산에 오르는 반면 여자들은 삼삼오오 오른다. 남자들은 무언으로 자신의 처지를 강변(强辯)하는 반면에 누이들은 연신 신변잡기를 풀어놓으면서 생활속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있다. 주중(週中)에는 그러한 모습을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운동중독증에 걸린 사람들이 있듯이 등산중독에 걸린 사람들도 꽤있는 듯 하다. 그래도 인체에 이롭지 못한 기호식품이나 잡기(雜技)에 빠져 흐느적대는 사람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총각 때는 회사에서 단합대회로 산행을 하는 경우를 빼고는 산을 찾는 일이 거의 없었다. 건강에 자신이 있고, 모래를 삼켜도 소화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제 불혹을 좀 넘긴 인생이 되다보니 자의반 타의반에 의해 자주 산을 찾는다. 자의(自意)는 거개가 성자(聖子)의 말씀을 듣기위해 도량(道場)을 찾는 경우고, 타의(他意)는 호연지기를 명분으로 내세운 죽마고우나 문인(文人)들과의 정을 나누기 위한 산행이다. 산행의 결미는 텁텁한 곡주(穀酒)로 염분이 빠진 육신에 수분과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을 채운다.
관절이 단단하지 못한 까닭에 고봉준령(高峰峻嶺)을 찾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명산대천을 찾아 홍진(紅塵)의 때를 벗겨 잠시라도 신선한 공기로 스스로 기분을 전환시킴으로서 생활에 활력을 찾고 대자연의 기상을 느껴 복잡다다한 문명의 홍수 속에서 주눅 든 심신을 달래보고 싶었다. 나의 작은 소망 하나는 산사람이 되는 거였다. 그러나 희망사항일 뿐, 몸은 늘 도량형(度量衡)과 문명의 이기(利器)와의 전쟁 속에 있다. 갈수록 진정한 산사람이 되기는 그른 듯 하다. 대출금 이자, 관리비, 세금, 지인들의 관혼상제, 아내의 투정, 커가는 아이들의 눈빛, 휴대폰의 문자, 자동차 경적 이러한 세파(世波)에서 잠시라도 자유로움 만끽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나무가 되는 일이다.
중용(中庸)의 화이불류(和以不流)라는 구절을 참 좋아한다. 산을 찾는 사람은 산에 가면 산이 되어야하고 바다에 가면 바다가 될 일이다. 나는 물과 불 그리고 바람과 흙에서 이 세상에 나왔다. 그래서 물 불 가리지 않고 가는 곳이 그 어디든 쉽게 동화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주 융화가 되면 곤란하다. 심장이 멈춰 바람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때 까지는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명분은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산을 찾는 사람들의 목적은 다양하다. 푸른 시절 건강에 대하여 자신만만했던 이들은 신체에 이상 징후를 느끼고나 서야 산을 찾는 경우도 있고, 속세(俗世)의 소리와 색깔에 싫증을 느껴 산새들이나 수목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 찾는 이도 있으며, 자연 속에서 깊은 사색을 즐기기 위하여 찾는 시인묵객들도 있다.
산은 흙으로 돌아갈 우리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이다. 그러한 진리를 일찍 깨달은 이들이 산을 많이 찾는다. 그러나 일부 편협한 산사람들도 있다. 가끔 도봉산을 오르면서 그러한 광경을 목격한다. 산을 마시고 놀기 위한 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휴일이면 서울 근교의 산에는 산새들이 없다. 새들은 모두 먼 곳으로 날아가고 대신 집안에서 기르다 버린 들 고양이들이 산새들의 위치를 대신하고 있다. 새들이 없는 산, 인파(人波)로 뒤덮인 산, 점점 삭막해져 가는 이웃 아저씨 같은 산이 신음하는 것을 보면서 내 가슴 한 편도 무너져 내린다. 앞으로 나 한 사람만이라도 가슴에 새겨진 산의 이미지를 차차 지우고 발길을 바닷가나 제3의 장소로 돌리려 한다. 언젠가 TV에서 에베레스트에 버려진 쓰레기를 방영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인간의 발길이 닫는 곳에는 곧 죽음뿐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려보기도 했지만.
산을 찾는 사람들이 가고 싶은 곳은 쓰레기로 뒤덮인 산이 아닌, 태고의 신비가 고이 간직된 어머니 젖가슴 같은 산이다. 이제는 그러한 산을 몽유도원도에서나 볼 수밖에 없음에 가슴이 저리다. 이번 주말에는 어디를 가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2005. 10. 20. 01:25
_()_ 문우님, 고맙습니다.
늘 평안하소서
여강 최재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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