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책,읽을책 메모

달의 궁전(폴 오스터)

Bravery-무용- 2018. 6. 10. 13:20
저자 폴 오스터|역자 황보석|열린책들

 

 어떤 책 안에서 또 다른 책을 만난다는 일은 다른 어떤 만남보다도 기분 좋은 일이다.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과, 나는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책 안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저 느낌만으로, 무작정 도서관 한편에서 바래진 색의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전까지는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서는 폴 오스터라는 작가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그는 독자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수많은 모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잠자고 있던 어린 시절을 건드리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동화'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많은 책으로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신나는 일이다. 책과 나의 일상이 하나가 되어 삶이 되는 것. 주인공 포그의 삶이 그러했다. 책은 주인공인 포그에게 빅터 삼촌이 물려주신 유일한 유산이자 일상생활, 그리고 생계수단이다. 빅터 삼촌에게서 물려받은 1492권의 책들은 읽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난 때문에 그 1492권의 책은 가구가 되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식탁에서 냄비 받침대로 책을 쓰는 용도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일상이다. 당장 시급하여 찾다가 우연히 사용되는 것과 언제나 그 자리를 고수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최악의 가난에 부딪혀 최후 수단으로 일상과도 같던 책을 하나씩 팔 수밖에 없던 상황과 마주했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에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었다. 가치 있는 책들이 헌책방의 주인의 값 매김에 따라 헐값에 돈으로 바뀌는 것도 마음 아팠다. 우리 현실에서도 모든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가치와는 다르게 돈에 의해서만 평가되는 일이 다분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늘 '내가 누구인가'라고 자신에게 묻는다. 포그는 아버지가 없는 사생아이기에 더욱 그 대답이 절실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어머니와 삼촌을 모두 잃고 성질 괴팍하고 이상한 노인네인 에핑과 만난 것은, 바로 그 정체성 찾기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에핑의 아들을 찾는 것을 도와주다가 결국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므로.

그 와중에 많은 돈으로 충분히 행복하게 산 괴팍한 노인네 에핑은 포그와 함께 그의 돈을 길가의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돈을 그들 나름의 기준에 따라 선택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행위는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이 멋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그리고 비가 오는데도 밖으로 나가 비를 맞는 장면은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멋지게 그려진다.

그의 소설은 마지막에서 허탈함을 주며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던 포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지만 그 전보다 더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삶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연속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해결되는 순간이 행복해지는 순간만은 아닌 듯하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고 방황하기에 우리의 삶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폴 오스터는 말한다. '태양은 과거고 지구는 현재며 달은 미래다'라고.

 

2018년 6월 10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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