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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선비 일상의 사물들에게 말을 걸다

Bravery-무용- 2015. 12. 17. 13:58

조선선비 일상의 사물들에게 말을 걸다

기준 지음
역자
남현희 옮김
출판사
문자향 | 2009.10.25

 

『조선선비, 일상의 사물들에게 말을 걸다』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자 관료였던 기준(奇遵, 1492?1521)이 일상으로 늘 대하는 예순 가지 사물들에서 깨달은 단상(斷想)을 글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기준이 기묘사화로 함경도 온성에 유배를 가서 위리안치(圍籬安置)되어 있던 시절, 실의에 빠진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삶의 경계와 지침으로 삼기 위해 지은 글이다. 원제는 「육십명(六十銘)」이며, ‘예순 가지 사물에 새긴 글’이란 뜻이다

역자 서문
육십명서(六十銘序)
육십명(六十銘)
01. 가시나무 울타리 _ 절망 속에 심는 희망 / 총리(叢籬)
02. 울타리 나무 _ 홀로 선다는 것 / 입주(立株)
03. 울타리 구멍 _ 욕망의 근원 / 질욕혈(窒慾穴)
04. 집 _ 대장부의 집 / 광거와(廣居窩)
05. 부엌 _ 변혁의 공간 / 천선조(遷善竈)
06. 방 _ 혼자 있는 공간 / 암실(暗室)
07. 온돌 _ 존재의 본질 / 정사돌(靜俟堗)
08. 선반 _ 겸손하라, 마지막까지 / 유종판(有終板)
09. 마루 _ 하늘의 이치를 즐기는 공간 / 낙천당(樂天堂)
10. 섬돌 _ 한 계단 한 계단 차근차근 / 승계(升階)
11. 지게문 _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 / 명이호(明夷戶)
12. 바라지창 _ 비움과 채움 / 허유(虛牖)
13. 벽 _ 중심을 잡은 군자 / 군자벽(君子壁)
14. 창문 _ 소통과 균형 / 시창(時窓)
15. 서가 _ 책임과 역량 / 재도가(載道架)
16. 문 _ 어리석음의 원인 / 우문(愚門)
17. 길 _ 사람의 길 / 유호로(由戶路)
18. 평상 _ 어려움 앞에서 / 건상(蹇牀)
19. 삿자리 _ 사귐의 도 / 비점(比簟)
20. 처마 _ 예의 표상 / 자비첨(自卑簷)
21. 굴뚝 _ 집중의 의미 / 주일통(主一桶)
22. 뜰 _ 넉넉한 대지 / 종용정(從容庭)
23. 텃밭 _ 내 탓 / 불원전(不怨田)
24. 다리 _ 인생의 강을 건너는 비결 / 게의교(揭衣橋)
25. 측간 _ 혼자 있을 때 / 거악측(去惡廁)
26. 항아리 _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 곤옹(困甕)
27. 가마솥 _ 물과 불이 만나는 공간 / 뇌부(雷釜)
28. 세발솥 _ 변혁의 공간 / 폐정(廢鼎)
29. 화로 _ 그쳐야 할 때 / 지지로(知止鑪)
30. 물병 _ 말조심 / 수구호(守口壺)
31. 대야 _ 가득 차면 넘치리 / 봉수반(奉水盤)
32. 목욕통 _ 날마다 새롭게 / 일신우(日新盂)
33. 사발 _ 겸손의 미덕 / 오영발(惡盈鉢)
34. 술잔 _ 절제의 의미 / 무량배(無量杯)
35. 숟가락 _ 식사 예절 / 소양비(小養匕)
36. 젓가락 _ 둘이 하나 되는 비결 / 손일저(損一箸)
37. 서안 _ 선비의 분신 / 오덕안(五德案)
38. 궤안 _ 동병상련의 대상 / 삼징궤(三懲几)
39. 갓 _ 어버이의 은혜 / 대모관(戴慕冠)
40. 허리띠 _ 긴장과 해이 / 해혹대(解惑帶)
41. 옷 _ 사람의 형식 / 양위의(養威衣)
42. 이불 _ 형제의 우애 / 우사금(友思衾)
43. 베개 _ 성실한 자기반성 / 구성침(九省枕)
44. 자리 _ 본성을 회복하는 공간 / 금태석(禁怠席)
45. 수건 _ 수신의 의미 / 자결건(自潔巾)
46. 상자 _ 있어도 없는 듯 / 손출협(遜出篋)
47. 붓 _ 배움의 열정 / 호학필(好學筆)
48. 벼루 _ 곧고 바른 의지 / 지정연(志貞硯) :
49. 먹 _ 우주를 품은 빛깔 / 회문묵(晦文墨)
50. 부채 _ 만족하는 삶 / 안분선(安分扇)
51. 칼 _ 날카로움과 무딤 / 상둔도(尙鈍刀)
52. 송곳 _ 날카로움의 경계 / 계리추(戒利錐)
53. 주머니 _ 명철한 선비 정신 / 불괄낭(不括囊)
54. 빗 _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 / 이분즐(理紛櫛)
55. 칫솔 _ 처음으로 돌아가라 / 이목(頤木)
56. 등잔걸이 _ 꺼지지 않는 마음의 등불 / 집희경(緝熙檠)
57. 불어리 _ 순수한 마음과 올곧은 행실 / 불미구(弗迷篝)
58. 지팡이 _ 꺾이지 않는 절개 / 불굴장(不屈杖)
59. 신발 _ 평소의 본분 / 소리혜(素履鞋)
60. 빗자루 _ 마음의 빗자루 / 부옥추(富屋箒)
명물기(名物記)
명후(銘後)
위리기(圍籬記)
역자 후기

 

하 찮은 사물에서도 수기치인의 철학을 읽어내는 조선 선비의 맑은 신독의 정신과 행동 양식이 돋보인다. 하찮은 사물이란 정말 하찮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여길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울타리, 부엌, 방, 온돌. 선반, 마루, 섬돌, 지게문, 바라지창, 벽, 창문, 서가, 문, 길, 평상, 삿자리, 처마, 굴뚝 등등.

 

가시나무 울타리를 보고는 절망 속에 심는 희망을 생각하고, 온돌에서는 존재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선반에서는 겸손의 철학을 모색하며 대야 에서도 가득 차면 넘치리라는 지혜를 읽어 들인다. 마루는 하늘의 이치를 즐기는 공간임을 각인시킨다. 그래서 낙천당이다. 바라지창 에서는 비움과 채움을, 창에서는 소통과 균형의 미학을 느끼려 한다. 허리띠를 통해 긴장과 해이의 중요성을, 빗을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라고 보는가 하면, 베개를 성실한 자기반성이라는 키워드로 읽는 것은 이채롭다. 또한 젓가락에서는 둘이 하나 되는 비결을 논한다. 섬돌은 역시 한 계단 한 계단 차근차근 올라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모든 사물들이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위하고 자신은 그것을 묵묵하게 받혀주고 드러내지 않는다. 요즘말로 하면 1인자가 되려는 모습보다는 2인자로 남아 더 좋은 일을 하면서도 나서지 않으려는 철학과 혜안을 지닌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세상을 변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