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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

Bravery-무용- 2015. 7. 8. 18:00

걷기예찬 걷기예찬
김화영,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 | 현대문학 |

 

일상에 속박되어 답답한 느낌이 들었을 때, 온전히 내 두 발로 걸어다니는 여행을 꿈꾸었다. 그 당시가 한창 제주 올레길이 새로 만들어지고, 걷기 열풍이 시작되던 즈음이었다. 점점 빠르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버스나 지하철, 자동차를 이용하며 바삐 돌아다니는 생활 속에서 천천히 걷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휴식이었다. 무언가 해야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느긋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걷는다는 것은 내 존재 자체를 일깨우는 시간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이 새로이 책을 냈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이 책을 통해 10년 전 《걷기 예찬》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책을 먼저 읽을 기회가 생겼음에도, 이상하게《걷기 예찬》을 먼저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마음 먹으면 그대로 실천하게 되는 법, 결국 나는 이 책을 먼저 집어들었다. 이 책이 2002년에 출간된 것이면 지금처럼 올레길, 둘레길, 마실길 등 걷는 길에 대한 인식도 별로 없던 때였고, 한창 월드컵 분위기에 젖어들었던 기억만 얼핏 난다. 10년 넘게 지나서야 2014년의 내가 드디어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9쪽)

다비드 르 브르통이 쓴 이 책은 걷기를 예찬한다기보다는 걷는다는 것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철학적인 고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이미 이 세상을 먼저 살아간 사람들인 루소, 니코스 카잔차키스, 바쇼 등의 걷기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으며,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읽어나가다보면 걷는다는 것에 대해서 새롭게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 책은 내 두발을 이용해서 직접 걸어간다는 느낌으로 하나씩 천천히 읽어야 그 맛이 제대로 우러난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소리내서 읽든가 음미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 혹은 운동을 위해 걷자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생각을 이끌어내고 존재 자체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는 걷기를 지향한다. 당장 걷기 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한 박자 쉬면서 걷기에 대해 생각해보고 짐을 꾸리고 싶어지는 책이다. 걷기에 대해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보고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책이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 든다. 9쪽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21쪽

 

진정한 걷기 애호가는 구경거리를 찿아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기분을 찿아서 여행한다.다시 말해서 아침의 첫걸음을 동반하는 희망과 에스프리, 저녁의 휴식에서 맛보는 평화와 정신적 충만감을 찾아서 여행한다.

 

레지스 드브레는 말한다."발걸음의 문화는 덧없음의 고뇌를 진정시켜준다" 35쪽

 

로돌프 퇴퍼는 <지그재그 여행>에서 "여행을 할 때는 배낭 이외에 활기. 쾌활함, 용기, 그리고 즐거운 마음을 충분히 비축해 가지고 떠나는 것이 매우 좋다" 49쪽

 

루소,스티븐슨,소로에 이르기 까지 많은 사람들은 혼자 걷기의 옹호자들이다. 혼자 걷는것은 명상, 자연스러움, 소요의 모색이다. 49쪽

한편 퇴퍼는 단체여행의 장점중 하나인 연대의식을 강조한다. 여럿이 여행할 경우에는 사람들 사이에 활기가 돋고 다양한 대화, 교감, 그리고 특히 공동체 정신, 소집단 정신이 조성된다. 55쪽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며 주위에서 울려오는 소리들을 음미하고 즐기는 것이다. 68쪽

 

나그네들에게 노래는 소리나는 지팡이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촉진제인 동시에 그 장소의 정령에 대한 친근감과 찬미의 표시다. 83쪽

 

소크라테스와 그 제자들이 보여준 수많은 강의들이 많은 산책과 길 가다가 만난 사람들과의 우연한 대화, 그리고 발걸음의 리듬에 맞추어 거닐면서 전개된 논리들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94쪽

 

키에르케고르는 "나는 걸으면서 나의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

니체는"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몫을 하고 싶어한다. 때로는 들판을 건너질러서, 때로는 종이 위에서 발은 자유롭고 건실한 그의 역할을 당당히 해낸다"

<차라투스트라>에서 그는 이렇게 적는다.'심오한 영감의 상태, 모든 것이 오랫동안 걷는 길 위에서 떠올랐다. 극단의 육체적 탄력과 충만.' 95쪽

 

풍경과의 관계는 각각의 장소가 자아내는 느낌들의 갈피갈피는 거기에 접근하는 사람과 그때의 기분과 심리에 따라 달라진다. 108쪽

 

동방의 전통에서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장소를 만났을 때 만난 이의 근원에 변화를 가져오는 존재감 혹은 아우라를 그 사람이나 장소의 다르샤나(darshana)라고 부른다. 108쪽

 

아스팔트에는 역사도 없고 이야기도 없다. 자동차는 장소와 역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풍경을 칼처럼 자르고 지나간다. 반면에 걷는 사람은 전신의 감각을 열어놓고 몸을 맡긴 채 더듬어가는 행로와 살아 있는 관계를 맺는 가운데 매순간 발밑에 밟히는 땅을 느낀다. 122쪽

 

글쓰기는 길을 걷는 동안 수집한 수많은 사건들의 기억  숱한 감동들, 그리고 느낀 인상들이다. 139쪽

루소는 고백록을 집필하면서 그에게 도보여행은 끝없는 행복의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때에 느꼈던 인상들을 기록해두지 않은 것을 몹시 후회한다고 적고 있다. 141쪽

 

성서에 나오는 백성들은 가장 전형적인 순레자들이다. 아브라함은 히브리 사람들을 이끌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야영에 야영을 거듭하며 약속의 땅을 걸어간다. 아브람과 그의 자손들은 가나안에 자리 잡는다. 이것이 바로 역사 속에 기록된 긴 장정의 첫 번째 에피소드다. 열다섯 장에 달하는 시편(119장에서 133장) 기쁨을 나타내는 순례자들의 찬가였다. 227쪽

 

로마의 순례자들 로메이(Romei)는 로마로, 팔미에리(Palmieri)는 예루살렘으로,  페레그리니(Peregrini)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레를 떠났다. 229쪽

 

순례는 신에 대한 항구적인 몸바침이며 육체를 통하여 드리는 기나긴 기도다. 232쪽

 

걷기는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고 단순하게 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을 털어낸다.

순례자는 걸으면서 속으로 끊임없이 마음의 기도를 드린다. 이른바 헤시카슴(Hesychasme)이라는 것이다.

237쪽

 

티베트 사람들은 호흡과 걸음을 조화시키기 위하여 만트라(mamtra)라고 하는 성스러운 요령을 활용한다.

241쪽

 

티베트로 가는 고갯마루의 가장 높은 곳. 전통에 따라 주위를 여러 번 돈다. 순레자가 아무 탈 없이 도착하게 된 것을 산에 감사드리기 위하여 돌 하나씩을 얹어 쌓은 탑이다. 245쪽

 

거룩한 풍경 위로 무한한 평화가 깃들면서 순례자의 가슴을 가득 채우니 모든 근심 걱정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248쪽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다 손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간다. 251쪽

 

길을 걷는 것은 때로 잊었던 기억을 다시 찾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리저리 걷다보면 자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여유가 생기게 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걷는 것에 의해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트이고 추억들이 해방되기 때문이다.  255쪽

 

정신적 시련의 통과는 걷기라는 육체적 시련 속에서 효과적인 해독제를 발견한다. 256쪽

정신적 육체적 저력을 최대한으로 동원하여 병을 이길 수 있도록 걷는 치유법을 일부러 조직하는 경우들도 있다. 258쪽

 261쪽

대지는 자동차의 타이어를 위해서보다는 우리의 두 발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임을, 우리에게 몸이 있는한 그것을 써먹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