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9
경북 봉화 청량산(870 미터)
태화산우회와
청량산은 경북 봉화군 재산면 남면리와 명호면 부곡리 안동시 도산, 예안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써 도립공원이다.
"청량산 육육봉"이라 불리는 12개 바위봉우리가 있어 주왕산,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기악(奇岳)중 하나이다.
청량산을 사랑하고 아껴 스스로 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 부른 이 황 퇴계선생의 청량산에 대한 싯귀를 옮긴다.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훤사하랴마는 못믿을 손 도화로다
도화야 물따라 가지마라 어주자 알가 하노라.
빗방울이 가늘게 내렸다 그치다를 반복하는 날씨에 35번 국도와 낙동강 줄기 따라 나란히 달려 온 2대의 태화산우회 버스는 청량교를 지나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청량산 버스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태백산 맥이 들어 내렸다가 예안 강가에서 우뚝하게 맺힌것이다.밖에서 바라보면 다만 흙뫼부리 두어송이 뿐이다. 그러나 강을 건너 골안에 들어가면 사면이 석벽에 둘러 있고 모두 만길이나 높아 험하고 기이한것이 형용 할 수가 없다"라고 청량산을 표현하였다.
주차장에서 산우들 산행준비를 끝내고 아스팔트길따라 오르면서 연화교를 건너고 좌측 안쪽으로는 청량사 일주문이 보인다.
계속 아스팔트 길따라 선학정을 지나 오르는 길가 가드레일에는 몇 사람 시인들의 싯귀를 걸어 놓아 지루하지않게 싯귀도 읽어가며 산행들머리인 입석에 도착하였다.
곧바로 가면 산성입구와 축융봉 가는 길 태화산우들은 입석에서 좌측 나무계단인 산길로 올라선다.
간간히 비를 뿌렸던 하늘은 구름이 걷히며 가을햇살이 비치고 오르막은 이파리가 떨구어진 굴참나무가 많이 보이는 길이다.
뒤돌아보니 굴참나무숲 사이로 입석주위에 주차장이 내려다 보인다.
산기슭길을 걸어 청량사 1.0키로, 자소봉 2.0키로, 입석 0.3키로 안내판 세갈래에서 자소봉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는 산길은 통나무계단 오르막이다.
걷다가 뒤돌아보며 만산홍엽으로 물든 계곡과 먼산 그리고 구비구비 이어진 청량산 도로가 계곡 깊숙히 내려다 보이고 옆으로는 흑절벽의 중간쯤에 자리한 응진전이 가을빛에 물든 나뭇잎과 푸른 소나무와 어울리며 그림을 그리듯 다가선다.
채마밭을 지나며 옆으로는 별채 무의당이 있는 응진전에 당도했다.
응진전은 의상대사가 683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공민왕을 따라 피란온 노국공주가 16나한을 모시고 기도했던 곳이기도 하단다.
응진전 뒷 봉우리는 금탑봉으로 봉우리 꼭대기에는 작은바위가 올려 있듯이 보인다.
그 작은바위를 동풍석(動風石)이라 하는데 밀어도 떨어지지 않아 붙여진 이름이란다.
빨간색으로 물든 담쟁이 넝쿨이 금탑봉이 너무나 높았던지 오르다 멈추어 있다.
청량산의 바위들은 흔히 보이는 화강암이나 갈색빛의 바위가 아니라 바위의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마치 시멘트 콘크리트에 자갈을 부어 마무리 짓지 못하고 굳어 버린 모양을 띄우고 있다.
진안의 마이산바위도 이곳 바위와 흡사한 것 같다.
금탑봉을 등진 법당앞은 조망하기 좋은곳 경유대다.
조선시대 성리학자 신재 주세붕(1,459-1,554)이 자신의 자(字)를 따서 붙여진 이름 경유대.
경유대에서 조망을 한다.
어느샌가 하늘은 점점 먹구름이 드리워있고 건너편 봉우리 축융봉과 청량산성이 나의 눈동자와 일직선으로 바라다 보인다.
응진전을 뒤로 하고 총명수(聰明水)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신라말 대 문장가인 최치원이 이 물을 마신후 더욱 총명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가뭄이나 장마에 상관없이 물의 양이 일정하단다.
물은 고여 있는데 경계목에는 마실 수 없는 물이라는 경고 문구가 붙여있다.
이번에는 어풍대(御風臺)앞이다.
고대중국의 인물이라는 열어구가 바람을 타고 보름동안 놀다가 돌아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어풍대에서 수 십길아래 내려다 보이는 청량사는 흑직벽에 푸른소나무와 갈색과 붉은색 그리고 노란색의 단풍속에 둘러싸여 더욱 그윽한 모습으로 고즈넉하게 보인다.
어풍대는 청량사를 내려다 보이는 최고의 뷰 포인트다.
한참을 머물면서 풍경속에 너울너울 춤추며 주위를 멤돌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히 스친다.
청량사와 응진전, 김생굴 갈림길에서 오른쪽 김생굴 방향으로 걷는다.
골에서 바람이 스치니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렸던 갈색 나뭇잎들이 난분분 난분분 흩어져 낙엽위로 쌓인다.
낙엽위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며 깊어지는 가을을 느낀다.
쉬엄 쉬엄 가을 산길을 오르면서 직벽의 바위에는 물기의 흔적만이 보이는 김생폭포를 지나고 김생굴도 지나며 철계단을 내려섰다가 바로 자소봉 방향으로 오른다.
김생굴은 통일신라시대 최고의 서예가 김생이 10년간 글씨공부를 하였던 곳이란다.
얕은 고갯마루에서 까마귀 울음소리에 눈을 돌려 뒤 돌아본다.
이제 하늘은 먹구름이 완전히 덮여 있고 청량사는 왼쪽측면으로 석탑만이 보인다.
돌밭길과 철계단을 오르면서 응진전 1.1키로, 장인봉 2.4키로 능선위에 올랐다.
이곳에서부터 15분이상 가팔진 오르막을 오르며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고갯마루에 올랐다.
왼쪽 철계단을 올라 자소봉중턱의 넓은 전망장소에 올랐다.
해발 840미터로 일명 보살봉이라고도 한다.
자소봉 꼭대기는 약 20미터의 수직 봉우리로 오를 수 가 없고 자소봉 정상석은 이곳 넓은 전망대에 오석에 세워져 있으며 조망 망원경까지 설치되여 있다.
자소봉은 주세붕이 붙인 이름으로 청량산에서 3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주차장에서 자소봉까지 남쪽과 남서쪽 방향을 조망하면서 올랐다면 이곳에서는 동북과 북쪽, 북서의 방향을 조망 할 수가 있다.
서쪽방향으로 구름속에 가려있는 월악산 비봉을 멀리 그려보고 북서쪽으로는 소백산의 산줄기가 마금루를 긋고있다.
북으로는 청옥산과 그너머 태백산 긴능선이 구름에 덮여 있어 상상만 하여본다.
철계단을 다시 내려와 자소봉을 오른쪽으로 에돌면서 해발 820미터 탁필봉 정상석 앞을 지난다.
봉우리의 생긴 모습이 붓끝을 모아 놓아 필봉이라 하였는데 주세붕이 중국 여산의 탁필봉과 비교하여 붙여진 이름 탁필봉(卓筆峯).
탁필봉을 지나면서 철계단을 오르면 연적봉.
산우들 우회하는데 기를쓰고 철계단을 올라 연적봉 정수리에 섰다.
연적봉은 형상이 마치 벼루에 먹을 갈때 물을 담아 두는 연적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이름.
몇 그루의 소나무가 반기는 봉우리는 십여명 이상 오손도손 사방을 바라보며 풍경을 담을 수 있고 편안한 공터에 소나무가 그늘까지 만들어 주고 있다.
자소봉과 탁필봉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보이고 청량산 계곡의 푸른소나무에 갈색의 단풍과 어울려 멋진 가을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축융봉과 안동댐의 넓은 호수가 보인다.
철계단을 내려와 우측으로 돌면서 연적봉을 올려다 본다.
참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능선길 멀리 청량산의 명소가 되어 버린 하늘다리가 보인다.
연적 고갯마루에 내려왔다.
장인봉으로 향하여 소나무 바윗길을 오르고 다시 나무계단과 직각에 가까운 철계단을 내려 뒷실고개에 닿았다.
뒷실고개는 청량사에서 올라 오면 장인봉과 자소봉의 갈림길이다.
하늘다리를 향하여 능선길을 오르면 이곳을 795미터봉이라 한다.
이곳에서 한 사람만이 이용 할 수 있는 직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넓은 철계단을 오르면 소나무가 많이 보이는 자란봉이다.
자란봉(紫鸞峯)은 상상의 새 란(鸞)새가 마치 춤을 추는것과 흡사한 모습이기에 주세붕이 붙인 이름이란다.
하늘다리 앞이다.
장인봉과 선학봉을 가기 위하여는 하늘다리를 건너야 한다.
아찔하고 깊은 협곡을 내려다 보며 다리가 없었을 땐 어떻게 장인봉을 갔을까?
아마도 밧줄을 이용하고 절벽을 부여 잡고 나무등을 의지하며 저 아래까지 내려갔다 올라 왔을 것이다.
하늘다리는 해발 800미터 지점의 자란봉과 선학봉을 연결하여 주는 90미터 길이로 폭은 1.2미터에 지상고는 70미터에 이르는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서 계곡의 풍경을 담는다.
아내는 계곡의 풍경담기에 다리 중간지점에서 건널줄을 모른다.
자린봉에도 선학봉에도 너무나 많은 등산객으로 줄을 서서 건너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리 가운데에서 풍경담기에 시간이 더욱 많이 지체된다.
구름다를 건너 철다리 지나면 소나무숲 선학봉이다.
선학봉(仙鶴峯)의 이름도 주세붕이 지었는데 봉우리모양이 학이 공중으로 날아 솟구치는 듯하여 붙인 이름.
많은 사람들이 오손 도손 모여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바위와 바위사이로 빼곰하게 보이는 깊은 계곡을 몰래 훔쳐 보듯 내려다본다.
능선을 내려오며 앞에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는다.
오를수 없는 앞 봉우리 앞에서들 많은 사람들이 망설인다.
누군가 등산로 화살표에 "장인봉 가실려면 우측으로 50미터내려 300미터 올라가시오" 라고 적어놨다.
많은 사람들이 망설이는 지점에 친절하게 표시를 하여주어 고마움을 가지며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산악회 리본이 나뭇가지에 많이 매달려 있다.
나무계단을 내려가 좌측으로는 청량폭포 내려가고 직진은 장인봉 오르는 안부다.
산허리를 돌아 오르다 보면 긴철사다리가 나오고 철사다리를 오른다.
철사다리를 오르는 아내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참나무 숲길을 따라 걸어 청량산에서 가장높은 해발 870미터 장인봉에 섰다.
전에는 의상봉이라 하였다.
넓은 정상주위는 이파리 떨어진 참나무가 빙둘러있다.
이곳 봉우리이름도 주세붕이 지었는데 중국 태산 장인봉을 비유하였단다.
오늘 올랐던 봉우리들은 모두가 조선시대의 성리학자 주세붕의 냄새가 풍긴다.
큼직한 정상석의 글씨는 신라시대 최고의 서예가 김생의 글을 집자한 것이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높은 직벽위에 난간이 설치되여 있고 전망망원경도 설치되여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산봉우리들과 산줄기들이 깊어간 가을의 모습을 보여 주며 먹구름 아래 한없이 펼쳐져 있다.
계속 아래는 모래톱과 어울려 낙동강 물줄기가 굽이쳐 흐르며 멀리는 안동호도 보인다.
강건너 산꼭대기와 산기슭에는 여기 저기 밭을 일궈 놓은 고랭지밭들이 보인다.
풍경담기에 정신이 없는 아내를 재촉하여 전망대에서 정상으로 되돌아와 정상석 뒤면에 주세붕이 지은 등청량정(登淸凉頂)시를 읽는다.
정상에 올라
주세붕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두손으로 푸른하늘을 떠받지니
햇빛은 머리위에 비추고
별빛은 귓전에 흐르네
아래로 구름바다를 굽어보니
감회가 끝이 없구나
다시 황학을 타고
신선세계로 가고싶네
정상주위에서 낙엽을 방석삼아 아내와 배낭을 내려 놓고 산우들을 기다리며 허기진 배를 채우지만 산우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한두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제법 많이 내려 우의를 입고 하산을 한다.
선학봉과 하늘다리를 건너 자란봉을 거쳐 뒷실고개에서 청량사로 내려간다.
잔돌이 많아 보통 미끄럽지가 않다.
아무리 조심하여도 몇 번을 엉덩방아 찔뻔했다.
문무왕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청량사로 내려와 청량사 본전인 유리보전을 들른다.
편액된 유리보전은 공명왕의 친필로 알려졌다.
어풍대에서 훨훨 날으며 머물고 싶었던 청량사 주위 풍경을 고개를 뒤로 적셔 올려 보기도 하고 앞산의 모습도 바라보며 몇 번을 돌아본다.
범종각을 지나 침목의 내리막길을 내려 가다 안심당앞에서 머무르는데 핸드폰에 벨이 울린다.
대장님이시다 산우들이 기다린다고 찻집은 들르질 못하고 부지런히 내려간다.
다시 빗방울이 굵어지고 주차장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우의를 다시 입고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산우분들께 죄송할뿐.
2대의버스는 우리부부가 버스에 오르자마자 봉화군 봉성면 봉성장터 돼지숯불구이 마을로 달린다.
10여곳의 식당이 숯불구이 영업중이다.
솔향기가 묻어난 숯불구이에 소주 한 잔 곁들여 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식당 주인으로부터 봉성돼지숯불구이에대한 유래를 듣는다.
고려 현종때부터 전승되어 오는 토속음식으로 순수한 소나무 숯불만을 이용하여 구웠기에 소나무에서 나는 독특한 솔향기가 돼지고기맛에 스며들여 독특한 맛을 낸다고 자랑한다.
숯불굽는 분은 자기 선조때부터 이 일을 하였다고 알려준다.
식당에서도 소주는 팔지만 가지고 온 소주를 부담없이 마음껏 마실수 있도록 하는 주인의 배려는 더욱 빛이났다.
청봉숯불구이(권오수 054-672-1116, 011-541-9302)
모든 일정이 끝났다.
인천을 향하여 달리는 버스속에서 흡족하였던 청량산 만추의 가을 산행을 다시 한번 그려본다.
2보1원 16,000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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