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

가야산, 백운동서 해인사까지

Bravery-무용- 2006. 11. 20. 10:21

2006년11월19일 8시 50분경  경북 성주군 백운동 가야산 국립공원 버스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예로부터 조선 8경중에 한곳이며 12대 명산중에 하나로 손꼽혀온 가야산.

산행은 들머리인 백운동에서 천불봉, 상왕봉을 거쳐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유래 되었다는 해인사까지다.

넓은 주차장에는 고려말과 조선초의 문신인 본관이 성주 이씨(星州 李) 이 직(李 稷)선생의 유명한 시조인 "가마귀 검다하고 백노야 웃지마라" 시비가 오석(烏石)에 세워져 있다.

 

주차장에서 300미터정도를 이동하여 백운동 매표소에 도착하였다.

공단직원과 인원 점검을 하고 매표소를 지나 바로 백운교를 건넌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43호인 가야산 산성터를 지나며 옹기골에서 흐르는 물소리도 듣는다.

평탄한 등산길과 돌로 잘다듬어진 산길을 산죽과 같이 사붓하게 걸으니 백운1교 철다리다.

다리를 건너 정성드려 쌓아놓은 크고 작은 세개의 돌탑을 지나며 백운2교 철다리도 건넌다.

 

지난 여름의 푸르름을 보였던 산뽕나무, 비목은 나뭇잎이 떨어져 가지만 남아있다.

매표소에서 1키로를 걸어온 지점을 지나 같은 철다리인 백운3교도 지난다.

여기서 5분여 다리품을 하며 철계단을 올라서니 쉬어가기 좋은 넓은 지대가 나타난다.

이곳이 동성재이다.

 

다리쉼을 하며 성주군에서 설치한 가야산 안내판을 보며 오늘 산행코스를 확인한다. 

가자! 칠불봉 앞으로 2.5키로

다시 한번 철계단과 나무계단을 오르고 백운암이 있었던 백운암지터에 도착하였다.

벌써 매표소에서 2.3키로를 걸어왔다.

산죽과 침엽수만이 푸른잎을 자랑하고 활엽수들은 나뭇잎이 떨어져 간다.

넓은 나무계단길 양옆은 당단풍나무의 군락지로 낙엽이 없는 모습이 깊어진 가을을 느낀다.

동성재에서 20여분을 뻑세게 올라 서성재에 도착하였다.

이곳에 올라선 산우님들 모두가 다리쉼을 하며 재넘어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땀을 씻는다.

칠불봉 이정표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나무계단을 오르는 좌측은 계단을 따라 돌담불이 길게 이어져있다.

이번에는 돌담불이 산길로 바뀌며 산중턱까지 이어진다. 

큰바위가 우뚝 솟아있고 고목이 버티고 있는 넓은 지대에 올라서 배낭을 내려놓는다.

 

 

여유롭게 가을 산의 정취를 느끼며 작은 암봉에 올라 사방을 두리번 거린다.

힘차게 호흡을 하고 천불봉으로 향한다.

본격적으로 오르는 길이다.

 

몇번에 걸쳐 오르는 철계단에는 암릉과 멋진 조화를 이룬 소나무들이 제나름대로 자태를 뽐내고있다.

철계단을 힘차게 오르고 뒤를 돌아본다.

멀리 펼쳐진 산과 농촌마을의 모습은 평화로움이 가득스러위 보인다.

 

해인사 방향의 계곡은 골이 깊지 않고 드넓고 펑퍼짐하게 보인다.

산의 풍광을 오르며 뒤돌아보기를 반복하면서 칠불봉 300미터 앞에 다달았다.

마지막 칠불봉 오르는 암벽에 높게 설치된 철계단에는 이곳을 찾은 산행객들로 줄을 잇고 있다.

 

 철계단을 올라 상왕봉 200미터, 백운동매표소 4.1키로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우측 칠불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암릉길이 나무계단인 사다리를 타고 올라 칠불봉에 다달으니 11시30분.

 

화강암에 <칠불봉(七佛峯) 1,433M  뒤에는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산162번지> 표지석이 가야산 전설내용과 함께 세워져 있다.

대가야국 김수로왕의 일곱왕자가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의 수행력에 감화되어 스승으로 모시고 3년간 수도 후 생불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파란 가을하늘에 멀리는 조각구름이 보이는 이곳에서 한없는 산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동으로는 저 멀리 구름과 숨박꼭질하고 있는 팔공산이 보일것이고 서로는 덕유산줄기가 보일것이다.

칠불봉에서 바라보는 상왕봉에는 많은 산행객들이 보이고 있다.

 

뒤에 오는 산행객들을 위하여 칠불봉을 내려와 상왕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작은 암봉을 돌아 해발 1,420미터, 상왕봉 100미터가 표시 되여 있는 펑퍼짐한곳에서 철계단을 올라 상왕봉에 도착하였다. 

계곡과 정상을 오가며 날개짓하는 까마귀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화강암으로 된 정상석은 <가야산(伽倻山) 우두봉(牛頭峰) 해발 1,430M, 합천군(陜川郡)은 한문으로 한글로 상왕봉 뒷면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천인리 산 1-1> 각(刻)하여 있다.

우두봉정상을 상왕봉(象王峯)이라고도 하는데 상왕은 열반경에서 부처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천불봉과 조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남산제1봉과 깃대봉이 앞에 보인다.

해인사방향으로 부드러운 계곡이 낙엽이 떨어진 깊은 가을의 모습을 보여주며 더 멀리는 치인리도 보인다.

사방 모두 계곡 아래는 수많은 작은산과 부락이 산정에서는 평화롭게 보이기만 하다.

바로 아래에는 거북모양의 암봉도 보인다.

 

이 중환의 택리지에 가야산 상봉을 "돌 형세가 사면으로 깍아지른 듯하여 사람이 오를 수 없다. 그 위에 평탄한 곳이 있는 듯하나 알 수가 없다. 그 꼭대기에는 항상 구름기가 자욱하게 덮여 있는데, 나무꾼과 목동들이 봉우리 위에서 들려 오는 풍악 소리를 가끔 듣는다 한다. 절 스님의 말로는 큰 안개가 끼면 산 위에서 말 발자욱 소리가 날때도 있다고 한다"며 산정상의 신비함을 표현하였다.

 

내려가야지 해인사로.........

해인사 가는길 정상 아래에는  산님들 오손도손 모여 앉아 높은 가을 하늘에서 점심식사 하는 모습이 정겹다.

해인사 4.5키로 이정표를 따라 돌길을 내려간다.

내려오는길 너른바위에 아내와 같이 앉아 다시 한번 가야산 가을 정취에 빠져오랫동안 머무른다.

 

 

 

가야산은 신라말 최고의 지식인인 고운(孤雲) 최 치원(崔 致遠)선생의 유적이 많은 곳으로 이곳에서 도를 닦다 종적을 감췄다 한다.

쓰러져가는 신라를 생각해서인지 다시는 속세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입산시(立山詩)에다 담았다.

 

                 스님네여 청산이 좋다 말하지 마오

                 산이 좋으니 어찌 산을 나가리요

                 뒷날 내 자취를 두고 보십시오

                 한번 청산에 들어가면 다시 안 돌아오리다

 

너른 바위에 누워 바라보는 높은 하늘, 조각구름 그리고 산봉우리들 모든것이 아름답다.

 

철계단을 내려 좌측으로 약 50여미터를 들어가니 큰 바위앞에 보물 264호 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이 있다.

 

 

여래(如來) "부처"를 달리하는 뜻으로 진리로 부터 진리를 따라서온 사람이라는 뜻이리라.

 

다시 산길로 나와 두번째 철계단을 내려서니 좌우가 산죽이다.

좌측 헬기장을 지나고 토신골 따라 잔돌과 나무계단길을 내려선다.

해인사 1.4키로가 남았다.

정상에서 부드럽게 보였던 계곡이 해인사 내려가는 길인데 가파르지 않게 내려간다.

옆으로는 홍류동계곡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토신골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잣나무 군락을 지나 선유교를 넘어선다.

이제는 넓은 길이다.

우측 극락교를 거쳐 용탑선원을 들려보고 사명대사부도 및 석장비 그리고 아름드리 소나무와 마지막 단풍이 물들어 고즈넉스러운 보물 제1300호인 홍제암도 들려본다.

 

오래된 나뭇결의 나무냄새와  고풍스럽고 단아한 해인사.

해인사는 법보(法寶)사찰로 불보(佛寶)사찰 통도사, 승보(僧寶)사찰 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이다.

국보32호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들의 자랑 팔만대장경.

보이는것 어느것 하나 문화재 아닌것이 없는 해인사 주위는 아름드리 잣나무와 느티나무도 보인다.

 

 

만해 한 용운님은 해인사 순레기(海仁寺 巡禮記)에 홍류동을 아래와 같이 극찬하였다.

 

"홍류동은 실로 진외(塵外)의 명구(名區)이다.

홍류동에서 해인사에 이르기까지 산회수영(山廻水굽을영), 수영산회(水영山廻). 물굽이마다 수려(水麗) 아닌곳이 없다. 산모롱이마다 산명(山明) 아닌 곳이 없다.

산이 다하였는가 하면 다시 산이요, 물이 궁(窮)하였는가 하면 다시 물이다.

물굽이가 많을수록 싫지 아니하고, 산모롱이가 거듭할수록 가고 싶다.

가면서 말하고 말하면서 감탄한다."

 

2시 40분경 상가와 주차장이 있는 가야면 치인리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한다.

치인리는 고운 최 치원선생의 이름을 따서 치원리, 치인(致仁)리로 불리어 오다가 스님의 검은옷을 연상시키는 치인(淄仁)리로 불리운다 한다.

 

 

산우님들을 태운  버스는 홍류동계곡을 따라 가야산을 멀리하며 달리고 산우님들 힘든 산행에 스르르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