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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장 그르니에

Bravery-무용- 2017. 10. 16. 16:24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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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민음사에서 아주 오래 전에 나온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다. 장 그르니에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가인데,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알제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또한 장 그르니에는 우리가 많이 아는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스승이기도 하다. 나도 그렇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에세이는 소설보다 가벼운 글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장 그르니에의 「섬」이라는 에세이집은 전혀 가볍지 않다. 장 그르니에의 「섬」은 단순히 에세이집이라고 분류하기 보다는 에세이집과 철학서 중간에 위치한 책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책이 유명한 이유는 장 그르니에의 훌륭한 글들이 담겨있는 이유도 있지만, 책의 서문 때문에 더욱더 유명해졌다. 이 책의 서문은 장 그르니에의 제자 알베르 카뮈가 썼는데, 이 서문은 현대에도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너무나 멋진 서문이다. ‘서문의 정석’이라고 말하여도 절대 표현이 아깝지 않다. 따라서 이 책을 읽어 볼 때는 서문도 꼼꼼히 읽어봐야 할 것이다. 특히 이 부분에선 마치 내가 서문의 젊은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장 그르니에, 「섬」의 서문 中에서

또한 이 책은 알베르 카뮈의 전집을 번역했던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것으로 장 그르니에의 글을 세심하며, 정성들여 번역이 되었다. 특히, 우리말로 소리 내어 읽을 때도 고려한 것처럼 우리말의 운율도 살아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난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에세이는 ‘고양이 물루’라는 에세이였다. 이 이야기는 매우 단순한 이야기로, 물루와 처음 만난 부분부터 물루가 죽을 때까지를 기록한 것이다. 이처럼 매우 간단하며,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을 이야기로 쓴 에세이이지만, 뭐랄까. 이 글은 아주 천천히 꼭꼭 씹으면서, 아껴보고 싶은 글이다. 빠르게 눈으로만 읽는다면, 이 순간순간의 감정이 달아날 것 같은 글이라고 해야할까.

이 에세이의 마지막 부분이 매우 인상 깊었다. 항상 자유롭게 놀던 물루가, 어느날 습격을 당했는지 몰라도 한쪽 다리는 절며, 몸엔 총알이 박힌 채 돌아왔다. 특히 물루의, 장 그르니에를 바라보던 눈을 심하게 다쳐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반려동물이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또한 그는 이제 물루가 뛰어 놀았던 정원 넓은 집에서 떠나야만 하며 새로 살게 되는 곳은 물루와 함께 살 수 없다. 몸이 불구가 되고 앞을 보지 못하는 고양이를 돌보아 줄 사람도 주위에 없다. 그래서 그가 한 선택은 물루에게 영원한 잠을 선물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장 그르니에를 자기가 책임지지 못한다고 안락사를 선택했다며 비난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의 선택이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가, 왜 자기를 이렇게 심하게 다치게 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야 하며 더 이상 물루에겐 빛이란 없다. 깜깜한 암흑속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물루만을 생각하여 한 선택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장 그르니에는, 내가 한때 사랑했던 어떤 존재가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그대로 참고 견디어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선택의 좋다, 나쁘다는 사람들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만 자기의 생에서 찬란한 빛이었던 물루에게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장 그르니에의 마음도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이 책은 매우 간단한 소재를 가지고 쓰여진 글이지만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다. 난 20대를 살아가는 이라면, 까뮈가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감정이 달아날까, 아니면 제대로 느끼지 못할까봐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읽고 싶은 글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감정은 지금 이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것이며, 시간이 지난 후엔 퇴색되거나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는 있지만 똑 같은 감정을 기억하기엔 매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똑 같은 감정을 느낄 수는 없겠지만, 지금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상기시켜주는 매개체가 이러한 좋은 글들이 아닐까 싶다. 장 그르니에의 「섬」은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우리 물루는 자기가 사랑했던 정원에, 곧 제 집이나 다름없던 정원에 깊이 잠들었다. 그는 아마도 쒜렌느 근처에 있는 섬에 매장되는 파리의 고양이들보다 더욱 행복하리라. 더구나 가슴을 짓누르는 듯 빽빽이 들어찬 공동묘지에 묻혀 있는 저 인간들보다 더 행복하리라. 아피아로를 따라가며 자신들의 영지에 묻힌 로마 사람들처럼 행복하리라. 그는 이제 그 속에 있었다. 바로 그가 묻힌 그 날 저녁부터 떨어진 낙엽들이 그 위를 덮으리라. 그리고 나는 서둘러서 나의 방으로 올라갔다. 어머니와 나는 그 이튿날 떠나기로 했는데 아직 이사 준비가 채 끝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장 그르니에, 「섬」의 고양이 물루 中에서


알라딘 서재에서 옮겨온 글

2017년 10월 15일 읽다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