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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피서

Bravery-무용- 2015. 8. 6. 15:03



피서(避暑)는 한자그대로 더위를 피하는 것이다. 더위를 피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요즘에는 집에 선풍기와 에어컨, 욕실이 있고 일상에서 탈출해 멀리 떠나는 피서를 선택하지만 옛 선조들은 어떻게 여름을 지냈을까? 우리의 선조들은 작은 일상 속에서 즐기는 여유와 지혜로운 자기만의 피서법을 개발했다.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여름용품은 합죽선이나 죽부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시나 삼베로 지은 적삼 안에 입어 땀이 차지 않게 하는 등거리라는 물건은 참 기발하다. 등나무로 엮은 조끼로 옷이 몸에 달라붙지 않게 해 준다. 여름철의 우물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등목을 한 번 하고 나면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불볕더위도 당산나무의 넓은 그늘에서는 기세가 꺾였다. 그래도 더우면 계곡물에 발을 담그거나 멱을 감으면 더위는 저만치 달아난다.

우리나라에는 참 독특한 피서법으로 여름을 난 선인들이 많았다. 조선 중기 퇴계의 제자였던 문신인 정경세는 날씨가 더우면 문을 걸어 잠그고 깊은 방안에 틀어박혀 조용한 가운데서 오는 서늘함을 느꼈다고 한다.

조선 후기 문신이었던 송규렴은 '상상의 피서'를 즐겼다고 한다. '맑은 시냇가에 정자를 짓고, 정자 뒤편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고, 연못가에는 버드나무를 심어 놓고 온종일 정자 난간에 기대어 더위를 식힌다'고 상상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다산 정약용은 '다산시문집'의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시에서 8가지 자기만의 피서법을 소개하고 있다. “송단호시(소나무둑에서 활쏘기), 괴음추천(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타기), 허각투호(빈 정자에서 투호놀이하기), 청점혁기(깨끗한 대자리 깔고 장기 두기), 서지상하(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동림청선(동쪽 숲에서 매미소리 듣기), 우일사운(비 오는 날 시 짓기), 월야탁족(달밤에 물가에서 발 씻기)"으로 몸가짐을 아무렇게나 할 수 없던 옛 선비들의 피서법을 그렸다. 피서도 풍류의 하나였다. 물론 현 실정에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사소한 일상생활 속에서 피서하는 여유와 멋이 배어 있다.

그러면 오늘날 여름휴가의 실태는 어떤가. 각종 동창회나 계모임 등 끼리끼리 모여 물 좋은 계곡이나 펜션, 물놀이 시설이나 테마파크 등을 찾아 술과 고기를 먹고 즐기며 한가하게 노는 것으로 인식됐다. 좀 있는 사람들은 비행기타고 해외로 떠나기도 한다. 물론 뜻있는 사람끼리 술잔을 주고받고 세상 이야기 나누며 노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휴가 및 여가에서도 빈부 격차가 존재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때론 먹고사는 양극화보다 여가 문화의 양극화가 가져다주는 소외감이 더 크기도 하다. 윤종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