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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가의 열두 달> 저자; 카렐 차베크, 그림; 요제프 차베크

Bravery-무용- 2019. 7. 14. 16:40

<정원가의 열두 달> 저자; 카렐 차베크, 그림; 요제프 차베크

작품 안내(이명석 문학비평가)

겨울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알아야 봄을 맞을 자격이 있다. 우리도 차페크 씨처럼 작은 정원에서 큰 세상을 살아갈 원리를 배워보자. 꽃과 열매, 그들을 찾아오는 나비와 이웃 친구들은 덤이다.

 

정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금은 그저 물 주고 잡초 뽑고, 흙에서 자갈을 골라내느라 정신이 없다. 30쪽

 

인간은 어떻게 정원가로 다시 태어나는가

인간이 정원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성숙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나는 이를 '부모의 마음'을 갖춘 때로 본다. 그리고 또 하나, 자기만의 정원이 있어야 한다. 사소한 계기로 정원가는 조금씩 새로운 열정에 눈뜨게 된다.  열정은 반복되는 성공을 통해 기운을 얻고 새로운 실패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 모든 식물을 길러보리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게 되고, 그러다가 또 품종 한 가지를 파고들기 시작한다. 예술가적 열정에 사로잡힌 경우에는 화단 구성에 목숨을 건다. 32~33쪽

누가 가드닝(gardening)을 목가적이고 명상적인 일이라 했나, 마음을 바쳐서 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듯, 가드닝 역시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열정 그 자체다. 33쪽

 

정원가의 1월

'정원가는 1월에도 빈둥거릴 시간이 없다.' 1월이면 정원가는 '날씨를 경작한다.'

1월의 첫날부터 기온은 딱 영하 0.9도,적설량은 126 밀리미터, 살짝 흐리면서 서풍이 잔잔하게 불어오는 날씨면 더 바랄 게 없다. 까막서리(혹한일 때 내리는, 초목을 검게 얼려 죽이는 서리)가 찾아올 때면 정원가의 기분은 최악이다. 37쪽

퍼걸러(pergola); 덩굴 식물이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정원에 놓는 구조물

여름별장(summer-house); 여름에 쉴 수 있도록 정원 안에 만들어준 작은 오두막

 

씨앗

모든 식물은 씨앗 아랫부분에서 움튼 다음, 씨앗을 모자처럼 머리에 쓴 채 고개를 밀어 올린다. 47쪽

 

정원가의 2월

2월은 매우 위험한 시기임을 명심하자. 까막서리, 햇빛, 습기, 가뭄, 바람이 끊임없이 들이닥친다. 48쪽

지금은 그저 거름을 주고, 흙을 일구고, 이랑을 내고, 이것저것 배합한 재료를 흙을 뿌리는 것 말곤 딱히 할 일이 없다. 52쪽

미세한 맥박을 수천 번 파닥이면서 생명이 땅속에서 움터 오른다. 55쪽

 

가드닝의 기술

진정한 정원가란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56쪽

흙 가꾸기라고 하면 주로 괭이질하기, 흙 뒤엎기, 다지기, 갈기, 파묻기, 펑펑하게 고르기 등 온갖 땅파기 작업을 의미한다. 59쪽

 

정원가의 3월

3월은 정원에서 가장 바쁜 달, 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달 65쪽

 

새싹

싹이 트는 건 우리 인간이 '자연의 섭리'라 일컫는 현상인 동시에 진정한 의미의 '행진'이기도 하다. 73쪽

볼을 붉힌 작은 이파리야, 부끄러워 말렴. 단단히 몸을 접은 작은 부채야, 날개를 활짝 펴라. 솜이불 뒤집어쓴 잠꾸러기도 어서 일어나야지. 출발 명령이 떨어졌단다. 악보 없는 행진곡의 팡파르를 울려라! 금관악기야 반짝여라. 북소리야 울려 퍼져라. 플루트야 마음껏 지저귀어라. 바이올린도 어서 힘찬 합창을 시작해야지. 조용하던 갈색 초록색 작은 정원이 지금 막 개선 행진을 시작했다. 75쪽

 

정원가의 4월

정원가에서 4월은 가장 축복받은 날. 5월에는 꽃이 피지만 4월에는 싹이 튼다. 새순과 봉오리와 싹이 움트는 어린 가지야말로 자연의 가장 위대한 신비임을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노동절

 

정원가의 5

 

단비

이번에 내리는 비는 실비다. 차분하지만 담뿍 내리는, 정원가들과 농부들의 시름을 덜어주는 진정한 봄비. 더 이상 우악스럽게 퍼붓는 폭우가 아니다. 우아하고 사뿐하게 내려 단 한 방울도 헛되이 흘러넘치지 않는다. 머지않아 구름이 흩어지고 태양이 고개를 내민다. 빗줄기가 잦아든다. 곧 비가 멎는다. 대지는 달콤한 습기를 내뿜는다.

태양이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축축한 흙에서 지글지글 끓는 듯한 열기가 피어오른다. 유리온실 속에 있는 것처럼 끈적끈적하고 숨이 턱턱 막힌다. 하늘 한구석에서 또 다른 비구름이 차 오른다. 후덥지근한 공기를 들이 마신다.  103쪽

하늘 위로 몰려드는 하얗고 검은 구름 덩어리를 지켜본다, 마치 온 세상이 부드럽고 따뜻한 5월의 소나기 속으로 녹아드는 것만 같다.  104쪽 

 

정원가의 6월

6월은 풀을 베는 달. 

진딧물은 이런 처치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번져, 박멸되기는커녕 잔가지 곳곳이 마치 수놓은 것처럼 진딧물로 빼곡하게 뒤덮인다. 결국 징그러워서 몸서리가 쳐지더라도 가지를 하나하나 문질러가며 터트려죽이는게 답이다. 114쪽

 

채소밭 정원가들

채소밭 정원가들의 즐거움을 깰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채소를 재배하면 자신이 기른 것들을 입안에 마구 욱여 넣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116쪽

 

정원가의 7월

7월은 장미를 접목하는 달.

더위에 마르고 굳은 화단의 흙을 다시 일궈줘야 한다. 보통 일 년에 여섯 번 정도 흙을 덮는데 119쪽

7월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당연히 정원 물주기다. 저녁에 세찬 물줄기를 맞은 꽃과 잎사귀에서 물방울이 반짝일 때의 기쁨을 아는가 . 정원 전체가 잔뜩 목말랐다가 물을 마신 나그네처럼 촉촉한 숨을 내쉴 때의 기쁨을 아는가 123쪽

하나가 피면 늘 하나가 진다. 그러면 '너도 다했구나,'라고 중얼거리며 (꽃에게 하는 말이다) 시든 줄기를 자른다. 저 꽃들을 보라. 실로 여인을 닮았다, 너무나 아름답고 생기가 넘쳐 우리는 이 광경을 원 없이 눈에 담지만 그 아름다움을 전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시들어 가기 시작하면 누더기처럼 추해진다. 세월은 이토록 무상하구나. 정원가의 가을은 3월에 시작된다. 첫 스노우드롭이 시드는 그때. 125쪽

**스노우드롭; 수선화과의 꽃

 

식물학 챕터

 

정원가의 8월

8월은 정원가들이 그들의 멋진 정원을 뒤로한 채 훌짝 휴가를 떠나는 달이다.

정원에 매일 물 줘야 한다는 말을 깜빡했네, 하루에 한 번이면 되는데, 새벽 다섯 시쯤이나 저녁 일곱 시쯤이 제일 좋아. 침엽수들은 꼭대기부터 잎과 몸통 전체가 흠뻑 젖도록 주고 132쪽

장미에 흰곰팡이가 슬면 새벽 이슬이 걷히기 전에 화초용 유황을 뿌려주면 돼

꽃양귀비는 씨앗을 거둔 다음 봉투에 담아 보관해

물에 푹 담갔다가 곧장 응달에 옮겨심게, 토탄이랑 부엽토도 조금 섞고, 받자마자 꼭 심어야 하네  134, 135쪽

 

선인장 키우는 사람들

선인장 꽃을 피워본 적 있는 선인장쟁이의 자랑과 과시는 엄마의 자식 자랑에 비할 바가 아니다. 144쪽

 

정원가의 9월

원예적 관점에서 9월은 어느 때보다 충만하고 은혜로운 달이다. 

무엇보다 9월은 "땅이 새로이 열리는 달", 즉 식물을 또 한 번 심을 수 있는 달이다! 식물은 9월에 땅속에서 뿌리를 내려 봄이 되기 전 자리를 잡아야 한다. 145쪽

휼륭한 정원가나 농원 주인은 보통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바른생활 사나이. 역사에 남을 만한 범죄를 저지른 적도, 전쟁에서 공을 세우거나 정치적 업적을 남긴적도 없다. 146쪽

완숙한 가을에 피는 꽃들은 쉼 없이 피고 지는 청춘의 봄꽃들에 비해 훨씬 힘 있고 열정적이다. 152쪽

 

발밑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이 지닌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친구여. 그대는 저 구름들조차 우리 발밑의 흙만큼 변화무쌍하지도 아름답지도 경외할 만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54쪽 

 

정원가의 10월

10월은 흔히들 자연이 겨울잠에 들 준비를 하는 달이라고 말한다. 10월은 4월만큼이나 좋은 달이라는 것을. 10월은 봄이 시작되는 첫 달. 땅속 깊은 곳에서 싹이 트고 생장하는 달. 남몰래 싹눈이 여무는 달이다. 158쪽

10월은 일 년 열두 달 중 식물을 새로 심거나 옮겨 심기에 가장 좋은 달이다. 159쪽

수호성인까지 모신다. 손에 릴리움 칸디덤을 든 성 요셉(성 요셉의 상징 중 하나가 백합류의 꽃이 핀 지팡이다.  ****‘릴리움’(Lilium) 백합(화), 나리꽃. ****

정원은 언제나 미완의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살이와 꼭 닮았다.  167쪽

 

가을의 아름다움

가을, 글감이 넘친다. 다채로운 가을의 빛깔, 음울한 안개, 망자의 혼, 하늘에 드리워진 흔적, 올해의 마지막 아스터, 아직 꽃을 피우려 애쓰는 붉은 장미, 저녁의 불빛, 묘지에 피워 올린 촛불의 냄새, 마른 낙엽 등의 감상적인 소재들. 168쪽

흰색, 분홍색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 가녀린 자태가 마치 무도회 드레스를 입고 추위에 떨고있는 아가씨 같다.

집에 대한 사랑은 천상의 신에게 바치는 경배와도 같다.  171쪽

 

정원가의 11월

세상에는 멋진 직업이 많다. 신문에 글을 쓰고, 의회 활동을 하고, 이사회에 참석하고, 공문서에 서명하는 직업 등등. 하지만 제아무리 휼륭하고 사회에 보탬이 될지라도 '삽을 든 사람'처럼 존재 자체가 하나의 조각 작품이자 기념비요 동작 하나까지 품격 넘치는 직업은 없다. 172쪽

11월은 흙을 퍼 올릴 때면 마치 맛난 음식을 한 숟갈 떠 올릴 때처럼 입에 군침이 돌며 행복한 기분이 든다.

173 쪽

정원가가 꼭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가을이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는 얼마든지 식물을 옮겨 심을 수 있다.

174쪽

더 추워기기 전에 화단에 짚이불을 덮어주어야 한다. 밑동 주변에는 흙을 봉긋하게 쌓아 올린다. 178쪽

장미도 마지막 꽃송이를 끈질기게 품고 있다. 꽃의 여왕이여, 일 년 중 절반을 꽃피운 그대여. 맡은 바 소임을 다 해주어 참으로 고맙습니다. 179쪽

자연에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겨울잠에 든다는 표현도 사실 틀린 말이다. 그저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들어설 뿐. 생명이란 영원한 것. 섣불리 끝을 가늠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다려보라. 179쪽

 

준비

여러해살이들이 땅속에선 이처럼 혈기왕성하게 자라고 있다. 11월의 한계선 안에서 3월의 생명은 싹을 틔운다. 11월의 땅, 그 속에서 다음 봄을 위한 설계도가 이미 완성된다. 184쪽

 

정원가의 12월

올해 처음으로 당신의 정원을 바라보는 순간, 당신의 첫마디는 과연 무엇일까?

 

정원가로 살아간다는 것

장미를 꽃피우는 건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로 그렇다. 장미꽃을 보려면 6월이나 7월까지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장미 관목이 자라는 시간까지 따지면 심고 나서 적어도 3년은 기다려야 한다. 197쪽 

정원가는 반드시 스스로 부딪히고 인내하면서 깨달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정원가들은 미래를 위해 살아간다.  시간은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해마다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한다. 신의 가호로 고맙게도 우리는 또다시 한 해 더 앞으로 나아간다!  200~201쪽

 

옮긴이의 말

매달 변해가는 정원의 모습이 시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다가, 어설프면서도 욕심 가득한 정원가의 아니러니한 모습이 익살스럽다가, 또 어느 순간 날선 사회풍자가 훅 치고 들어온다.

어떤 이에게는 가드닝의에 대한 로망을 충족시켜줄따뜻한 정원 에세이로, 어떤 이에게는 통쾌하고 강렬한 인문 에세이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감수자의 말

진정한 정원가는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라고 차페크는 말한다. 11월 땅속의 식물들은 잠들어 있는 게 아니라 봄을 위한 설계도를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정원의 식물들보단 정원가의 행동과 심리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에세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