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한국을 찾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포함한 공식 일정에 수십 분씩 늦어 외교적 결례가 아니냐는 논란을 빚었다. 그런가 하면 4월에 방한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박 대통령과 악수해 매너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들은 대체 왜 그랬을까.
푸틴의 상습 지각은 자국민에게는 당당한 리더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게이츠의 주머니 악수는 ‘나는 타인의 반응에 개의치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설사 문제가 되더라도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다고 변명하면 된다.
하버드대의 프랜시스카 지노 교수는 이를 ‘빨간 운동화 효과’라고 정의했다. 규범을 무시한다는 건 그만큼 행동에 책임을 질 자신이 있다는, 혹은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신호를 준다. 그래서 대중은 의도적으로 규칙이나 규범을 깨는 ‘룰 브레이킹’ 행위를 하는 사람을 권력자로 인식한다.
지노 교수는 이런 상관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우선 이탈리아의 한 명품 브랜드 매장에 우아한 정장을 입고 고가의 롤렉스 시계를 찬 손님과, 운동복 차림에 저가의 스와치 시계를 찬 손님을 들여보냈다. 그랬더니 점원들은 운동복 차림의 손님이 지위가 더 높을 거라 평가했다. 또 강의실에 들어온 대학 교수의 복장과 외모를 달리해 학생들의 반응을 보는 실험도 했다. 학생들은 넥타이를 매고 말쑥하게 면도한 교수보다 허름한 티셔츠를 입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교수가 지위가 높고 학문적 능력도 우수할 거라 믿었다. 남의 눈을 개의치 않는 걸 보니 그만큼 자신감이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빨간 운동화 효과가 극대화되려면 규칙을 어겼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크고, 대중이 쉽게 인지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의도적이어야 한다. 특히 대중의 관심을 먹고 자라는 정치인 등 권력자들의 룰 브레이킹은 많은 경우 단순히 무례한 행위가 아니라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다.
허행량 세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hsign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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