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

42년만에 소요산을.......

Bravery-무용- 2007. 3. 25. 21:31

2007. 3. 25 산행은 경기도 동두천시에 위치한 소요산으로 아내와 류 춘근부부와 같이 하였다.

태화산우회에서 소요산 자유산행이 계획되여 있었으나 참석인원이 없어 친구와 같이 제물포역에서 1호선 소요산행 전철에 몸을 실었다.

전혀 예기치 않게 자주 같이 산에 오르는 구 상회님과 고은님이 부천역에서 승차를 한다. 

소요산역에 도착.

도로를 횡단하여 소요산 가는 아스팔트 도로로 들어섰다.

 

소요산 자재암 큰 빗돌이 도로 가운데 세워져 있고 우리는 인도를 걸으며 안개로 희뿌옇게 보이는 소요산으로 들어선다.

매표소와 일주문을 지나 속리교에 다달으니 아스팔트 도로는 끝나고 좌측 높은 곳 깍아지른듯한 낭떠러지에서 힘찬 물줄기를 떨어뜨리는 원효폭포.

 

 그리고 폭포 옆으로는 큰 석굴이 보인다.

폭포주위는 쉬어가기 좋게 나무의자들이 설치되여 있다.

오늘 산행은 이 산의 명칭인 소요(逍遙)에 걸맞게 자유롭고 여유를 가지고 슬슬 오르기로 하였다.

조선시대의 지성인 화담 서경덕, 봉래 양사언 그리고 매월당 김시습이 자주 소요 하였다 하여 소요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소크라테스와 그 제자들은 늘 산책을 하면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사색을 즐겼기에 소요학파(逍遙學派)라고도 불리우고 있으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정신작용으로는 자유롭고 여유있게 슬슬 걸으며 사색을 한다는 것이 공통적이었던가 보다.

그만큼 걷는다는 것은 정신과 육체에 큰 도움이 되는 것 이다.

발품을 30여분 밖에 하지 않았지만 새소리와 폭포소리의 어울림에 한참을 이곳에서 머물렀다.

이제는 속세와 멀어지기 시작하는 속리교(俗離橋)를 넘어서 좌측은 자재암 가는길 우측은 의상대 가는 세갈래에서 시멘트 받침목계단으로 되여 있는 좌측 자재암으로 발길을 옮겼다.

좌측 바위아래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모습이 아래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건너야 하나?

특이하게 다리 바닥 화강암에 석각된 세심교(洗心橋)를 지나 높은 벼랑위에는 소나무가 많이 보이는 정진중으로 출입금지된 돌담장에 둘러싸여있는 백운암에 다달았다.

시멘트계단을 올라 어느정도 발걸음을 옮겨 자재암에 도착.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의 인연이 있은후 수행을 하였던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자재암.

소요산 자재암을 1965년 10월 중학생시절 소풍을 왔던 곳으로 무려 강산이 네번 바뀌어 42년만에 처음으로 찿아 왔다.

단풍이 붉게 물든 것 말고는 회상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이곳까지 올라온 길도 전혀 머리속에 떠오르지가 않고 사찰의 추녀로 사진 촬영한 곳 을 짐작만 할뿐.

친구는 올라온 길은 좁고 계곡이 지금보다 더 넓은 것으로 회상하고 있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 빛바랜 앨범을 뒤져 자재암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가지고 위치를 확인 하면서 디카를 눌러댄다.

 

 

42년전에는 없었던 법당이 옆에 세워져 있다.

 그 법당도 39년전(불기 2513년 9월 30일 준공)에 지워진 것이다.

자재암 뒤는 단애를 이룬곳으로 벼랑위에는 소나무들이 감싸고 있고 자연석굴로된 나한전도 보이고 옥류폭포에서 힘차게 떨어진 물은 맑은 소를 만들고 있다.

 

 

 

자재암의 추억을 다시 또 간직하고 소나무와 낙엽송이 어우러진 하백운대 오름길로 들어서니 새소리도 지저귄다.

뒤돌아본 자재암은 깊은 단애에 소나무에 둘러 있어 은근하게 보인다.

선녀탕과 하백운대를 표시한 세갈래길에서 하백운대로 오르는 산기슭 산길은 통나무 계단길도 걷고 쇠난간을 잡고 험상궂은 바위 오름길도 나무계단도 오르니 한 그루 고사목과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며 반겨주는 언덕마루에 도착하였다.

즐기듯 천천히 올라왔어도 숨이 가쁘다 .

배낭을 내려놓고 골에서 불어주는 시원한 골바람을 맞으며 다리쉼을 한다.

20여분을 쉬엄쉬엄 산허리를 돌면서 통나무 계단길도 걸으며 해발 440미터 하백운대에 도착하니 산꾼들이 쌓아 놓은 돌탑이 제일 먼저 맞이 한다.

 

하백운대(下白雲臺)는 넓은 공터로 가운데는 돌탑이 있고 주위는 낙엽송이 둘러있어 한 여름에는 사방을 바라보기에는 숲에 가려 좋은 장소는 아닌것 같다.

꼭대기에서 막걸리를 파는 사람이있다.(상백운대, 공주봉에도 있다)

다리쉼을 하면서 막걸리 한 잔도 들이켜 갈증을 해결하고 능선길 따라 400미터 거리에 있는 중백대운대로 발길을 옮긴다.

돌이 많이 깔려있는 돌서더릿길도 오르며 능선길 우측은 깊은 소요산의 계곡과 여러모양의 소나무들이 재각기 멋을 자랑한다.

 

 

능선길에 중백운대 해발 510미터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넓은 바위에 우뚝 서있는 소나무의 모습은 일품이다.

중백운대에서 상백운대 가는 길은 돌니모양의 능선길도 걷고 포천 갈림길 넓은 고개마루에 도착하였다.

아직까지 걷히지 않은 안개로 먼 조망은 어려우나 가야할 원효봉, 공주봉이 나뭇잎이 떨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봉긋하게 보인다.

 

우측 선녀탕으로 내려가는 이정표를 지나 559 미터 상백운대에 도착하였다.

몇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바위들이 있고 한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줄 소나무와 낙엽송들이 있는 상백운대 주위는 몇몇 등산객들은 휴식을 취하면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먼저 도착한 구상회님과 고운님을 만나 간식을 나누는 중에 으랏차님과 친구분들도 만나니 반가움에 모두들 함박웃음이다.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20여분 이상을 머물렀다 .

 

1-10 칼바위 표지판이 세워진 곳에 도착하여 소요산의 유명한 칼바위 능선길로 들어 섰다.

돌니로 이루어진 능선길을 기우뚱거리며 나무를 의지하며 조심스럽게 걸어 1-11 칼바위 정상 표지판에 다달았다.

나무등줄기가 꼭 거북의 등처럼 생긴 노송은 바위에 걸터 앉은 듯한 자세로 산아래를 내려 보고있는 모습이 과연 나무중에 으뜸인 소나무의 기품이 돋보여 보인다.

 

다시 닭벼슬같은 너설로 이루어진 바위능선을 잠시 걷고 쇠난간을 이용하여 내려가며 나한대 봉우리가 천천히 올라 오라는듯이 바라보고 있다.

나한대와 선녀탕으로 내려가는 갈림길 안부에 내려와 나한대로 발길을 옮겨 이정표가 떨어져 나간 갈림길 3지점에 도착하였다.

친구 류춘근 부부는 이곳에서 선녀탕방향으로 먼저 내려간다.

 

나한대 오름길은 가팔진 나무계단길로 어기적 어기적대며 올라 작은 바위들이 널려있는 해발 571미터 나한대(羅漢臺)에 올라왔다.

오늘 산행중 가장힘든 고빗사위였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과 같은 뜻 으로 소승 불교 수행자중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을 뜻 하는것이니 이 산에서는 원효대사를 연상하여 본다. 

지나온 봉우리들이 연이어 보이면서 잘가라 하는 듯 하고  의상대는 어서 오라 손짓하는 듯 하다.

의상대를 향하여 미끄러운 돌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철계단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간다.

소요산에서 자주 소요하였다는 봉래 양사언의 시가 떠올라 몇번을 흥얼거리며 힘든줄 모르고 오른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꼭대기에 이르련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소요산 암릉길의 바위들은 뾰족하기도 하면서 미끄러운 부분이 많아 항상 조심하여야 한다.

나한대에서 부터의 산길을 걸으면서 주위의 조망은 하백운대에서 칼날능선 안부까지의 조망과는 전혀 다른 맛을 느낀다.

 

의상봉으로 오르는 좌측 계곡아래의 모습은 산기슭 아래는 군부대가 멀리는 하천과 시내가 한눈에 와닿는다.

소요산의 주봉인 의상대(義湘臺)에 도착하였다. 해발 587 미터.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로 화강암에  동두천 시청산악회에서  소요산 의상대 표시석을 세워 놓았다.

사방이 거칠것이 없다.

맑은 날씨는 아니지만 멀리 보이는 봉우리들 아래는 동두천시내가 이곳에서는 평온하게만 보인다.

산정에서의 기쁨은 내가 걸어왔던 봉우리들을 바라볼때의 흐뭇함일 것이다.

 

공주봉을 가기 위하여 나무계단을 내려가니 바위들이 널려 있는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몇몇 등산객들 모여 앉아 휴식을 하고있는 모습이 보인다.

일주문 1키로가 표시 되여있는 갈림길을 지나 오르막을 잠시 올랐다 다시 내려가고 또 다시 오르는 길은 비탈진 위험한 곳에 스탠에 밧줄로 설치된 오르막을

마지막 힘을 다하여 해발 526 미터 공주봉(公主峰)에 도착 하였다.

 

 

 

원효가 요석공주를 위해 지었다는 전설이 있는 봉우리다.

넓은 봉우리에 헬기장도 있고  아마추어 무선안테나도 세워져 있다.

나무로 넓게 만들어 놓은 테크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자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소요산을 넉넉하게 소요하였다. 내려가자 !

내려 가는길은 폭이 넓은 나무계단길을 다리를 길게 뻗으면서 내려간다.

 

중턱쯤 내려 갔을까 넓은바위 벼랑끝에 소나무 한 그루가 쉬었다 가란다.

내려가는 길이 보통 된비알이 아니다.

 

조심스럽게 밧줄을 잡으면서 내려 가고 바위너덜 지대가 보이는데 위에서 부터 쏟아져 내려와 저아래까지 바위들이 널려 있다.

돌무지길을 걷기도 하며 내려오니 의상대 1키로, 일주문 400미터 세갈래길을 지나 산죽도 보이더니 구 절터에 도착하였다.

구 절터에는 쉬어가기 좋게 나무의자들이 설치되여 있다.

내려온길을 올려다 보니 이곳에서 부터 오르면 무척 힘들게 오를 된비알 길이다.

 

자연보호헌장비를 지나니 자재암으로 올랐던 세갈래 길이 나오고 속리교를 지나 원효폭포에 도착하였다.

나한대 갈림길에서 먼저 내려온 류춘근 부부를 원효폭포에서 만나 일주문을 지나 소요산 산행을 끝냈다.

 

맑은 계곡 청정한 목향도 내가 다시 찿을 곳 입니다.

산자락 한줌 야생화도 개울가의 풀꽃도 내가 다시 찿을 곳 입니다.

나 뿐만 아니라 내 아내와 내 자식이 다시 찿을 곳 입니다.        - 동두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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